제 34화
34. 선택의 시간 1
-최준우 씨가 작년 연말부터 매일같이 클럽 BLUE를 드나들었다는 제보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잠복을 했고요. 검찰이 CCTV를 확보했으니 이제 다 나올 겁니다.
장문기의 말에 따르면 오늘도 최준우가 클럽 BLUE에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뜻.
그때였다.
현장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눈 오덕구 팀장이 옷을 여미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으으. 춥다. 뭐 하고 있냐?”
“아. 이지연 작가님 신작 캐스팅 제안 때문에 고민 중입니다.”
“그래? 그냥 현장에 있던 기자를 찾아서 최준우 정보 좀 달라고 하면 안 되려나?”
“안 주더라고요.”
“야. 루머일 수도 있어. 괜히 고생하지 말고 그냥 이 작가님 대본으로 해. 나도 읽어 봤는데 이 작가님 대본 진짜 좋더라.”
물론 대본이야 좋지.
사정을 모르면 나도 맘 편히 이지연 작가의 대본을 택했을 거다.
“오 팀장님. 오늘 막방 회식에 유진이 좀 데려가 가 주실 수 있습니까?”
“회식 빠지려고?”
“예.”
잠깐 고민하던 오덕구 팀장이 한 가지 충고를 해왔다.
“조심해라. 꼬투리 잡힐 짓 하지 말고. 요즘 너 고깝게 보는 사람 많아.”
그거야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없을 거다.
갑자기 1년 차가 치고 올라오면서 대표가 직접 챙긴다는 말이 도는데 시기 질투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일일 테니까.
군말 없이 믿어주는 우리 2실 선배들이 특이한 거지.
“늘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부사수를 내가 챙기는 게 뭐가 감사할 일이라고.”
당연하다는 듯 말한 오덕구 팀장이 노파심에 한 마디를 더했다.
“대신 오늘도 별다른 정보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윗선 뜻에 따르자 윤호야. 이제까지 잘해 왔는데 괜히 삐끗해서 헛발질하지 말고. 응?”
“알겠습니다.”
역시 아무런 증거 없이 말만으로 설득하는 건 무리다.
“커~뜨!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최고였어요. 은영 씨. 유진 씨.”
유진이의 첫 번째 드라마 촬영이 드디어 끝이 났다.
“수고하셨습니다.”
“유진 씨. 수고했어요.”
“감사합니다.”
촬영을 끝낸 배우들이 스태프들에게 꽃다발을 받기 시작했다.
드라마 후반 부에서 연기가 빛나는 유진이는 마치 주연처럼 대우받고 있었다.
활짝 웃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가슴이 벅차올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데뷔하자마자 이지연 작가에게 잘릴 운명이었는데 연장된 26화까지 무려 6화에서나 주요 조연이라니!
거기다 광고도 하나 따냈고 S급으로 분류되는 이지연 작가와 김솔잎 작가와의 인맥도 생겼다.
자칫 암흑으로 물들 뻔한 유진이의 인생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 이 모습을 보기 위해 난 회귀한 거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진짜다.
올라가는 것도 한 방이지만 내려오는 것도 한 방인 게 바로 이 연예계니까.
그러니 절대로 최준우와 얽히게 둘 수는 없다.
유진이는 스태프들의 박수를 뒤로하고 한가득 꽃을 안아 든채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오빠. 제 연기는 어땠어요?”
말해 뭐 해.
그저 빛일 뿐.
나는 꽃다발을 대신 받아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최고였어.”
내 칭찬에 유진이가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아 그리고 이거 선물.”
“어? 뭐예요?”
보너스를 받은 기념으로 하트 모양의 펜던트를 샀다.
두 개.
“쌍쌍이네요?”
“그래. 미소랑 너랑 하나씩 하라고. 안에 서로 사진 넣어두면 괜찮겠다 싶어서 샀어.”
하트모양의 은빛 펜던트 안엔 유진이와 미소의 사진이 들어갈 엄지손톱만 한 공간이 있었다.
“이쁘긴 한데 비싼 거 아녜요?”
“아냐. 싼 거야.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저도요.”
유진이가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녀석의 눈에 눈물이 글썽대고 있었다.
별걸 가지고 다 운다 싶다.
하지만 괜히 나도 코끝이 찡해서 몸을 돌렸다.
“그럼 오 팀장님. 유진이 좀 잘 부탁드립니다.”
“어. 수고.”
유진이가 무슨 소리냐며 묻는다.
“어디 가세요? 곧 회식 있다던데?”
“급한 일이 좀 있어서.”
“그럼 늦더라도 회식 꼭 오세요. 오늘 한우래요!”
그러고 보니 한우 먹어본 지 꽤 됐네.
꿀꺽.
나도 모르게 군침이 흘렀다.
회귀 전에도 병원에 누워 죽도 못 먹고 수액으로 버텼다.
회귀 후 먹은 고기는 유진이 집에서 먹은 장조림 캔과 소고기 국밥뿐이고.
하지만 억지로 몸을 돌려 최준우가 나타날지 모르는 클럽 BLUE로 향했다.
으드득.
한우를 못 먹은 이 원한은 최준우 그 인간에게 대신 풀어야겠다.
* * *
강남에 있는 르코르 호텔 지하에 있는 BLUE 클럽 앞.
“아 진짜. 밀지 좀 마.”
“오늘 ZIZAK 오빠들 온다고 한 거 확실하지?”
“벌써 와서 룸 하나 잡아놨다던데? 씽씽이 오빠가 사진 보내 줬어. 봐.”
미니스커트에 롱코트를 입은 젊은 여성의 무리가 ZIZAK이라는 아이돌 그룹 이야기로 상기된 표정이다.
또 다른 젊은 남자 무리는 생일 파티를 하겠다며 들떠 있었고.
“오늘 스타일 좀 사는 거 같지 않냐?”
“그렇지말입니다.”
“야 말투 좀 조심해! 군바리 티 내냐?”
“죄 죄송합니다. 최 병장님 아니 형님.”
하지만 안타깝다.
스포츠머리와 말투로 봐서는 딱 봐도 군인인데 아마도 입구 컷 당할 거 같다.
나는 인파로 북적거리는 클럽 BLUE의 입구가 아닌 르코르 호텔 주차장 입구 쪽 근처 골목길로 차를 옮겼다.
최준우라면 호텔에 있는 VIP 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클럽으로 내려갈 테니까.
끼이익.
호텔 주차장의 진입로가 보이는 곳에서 시동을 끄고 최준우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끼기긱.
최준우의 파란색 람보르기니가 르코르 호텔의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왔다.”
혹시 안 오면 어쩔까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나 보다.
찰칵.
일단 사진부터 한 장 찍었다.
클럽 안으로 들어갈까 싶었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런 사건은 잘 해결하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 * *
“아. 씨X. 긁으면 특종이 다 튀어나오는 줄 아나?”
빠직!
장문기 기자는 편집장실에 불려갔다 나온 뒤 화를 이기지 못하고 다이어리를 책상에 집어 던졌다.
“장 기자. 왜 또?”
동기인 양주성 기자가 의자를 쭉 빼며 물었다.
“아 몰라. 씨X. 특종 안 가지고 오냐고 지X지X 하는데 답답하면 자기가 발로 뛰던가. 편집장 달고나서는 3일에 한 번씩은 깐다니까.”
“요즘 회사가 적자라서 그런다더라. 야 그래도 넌 낫다. 난 매일 까이는 중이야.”
같이 고생하는 처지지만 동기가 고생이 더 심하다는 소리를 들으니 왠지 기분이 풀린 장문기다.
“양 기자. 소스 좀 없어?”
양주성 기자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요즘 TK 엔터 박은빈이 연기 못한다고 많이 까이는 것 같던데. 그거나 털고 용돈 좀 받아 보지 그래? TK가 돈은 이리저리 많이 뿌리잖냐. 가서 밥도 좀 얻어먹고.”
“야. 그게 무슨 특종이냐. 돈 받고 기사 써 주는 거지.”
“흐흐. 특종이라고 문구 하나만 붙이면 특종이지. 특종이 별건가? 그냥 가라로 써.”
“야매 기사는 너나 실컷 써 인마.”
한숨을 내쉰 장문기가 불쌍한 표정으로 양주성을 바라봤다.
“양 기자. 그러지 말고 소주나 빨러 갈까? 오늘 기분도 꿀꿀한데?”
“됐어. 내가 너 같은 총각이랑 같은 줄 아냐?”
“거참. 천하의 주당 양주성이 다 죽었네. 마누라가 그렇게 무섭냐?”
“너도 결혼해 봐 인마.”
노총각인 장문기는 또 배부른 소리 한다며 투덜투덜거렸다.
“혼자 편의점에서 맥주나 까야지. 나 먼저 간다.”
장문기가 집에 가려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띠리리링.
취재부의 공용 전화기에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박봉두 과장이 이해가 장문기를 불렀다.
“어이 장 기자. 변태 같은 목소리의 제보자가 너 찾는다. 어서 받아 봐.”
“저를요?”
“대형 사건이래. 뭔지는 나한테는 말 절대 안 한단다.”
“끊 끊지 마세요!”
장문기 기자는 헐레벌떡 자신의 자리에 있는 인터폰을 집어 들었다.
-여보세용? 장문기 기잔가용?
변태 같은 목소리라더니 남자가 억지로 코를 막은 코맹맹이 소리를 내고 있다.
장난 전화일 가능성이 크지만 오늘따라 기자의 감은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억지로 목소리를 숨기려는 걸 보면 신분을 감추고 싶은 심리를 가진 제보자일 가능성도 있었고.
인터폰을 받은 장문기가 송수화기를 든 채 박봉두 과장에게 끊으라고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런데 박봉두 과장이 장문기의 손짓 신호를 무시했다.
“제보자님. 잠깐만요. 녹취해도 될까요?”
-그건 좀 곤란 한데용?
“그럼 적을 것 좀 준비하겠습니다.”
장문기는 송화기 부분에 손을 막고 박봉두 과장을 험악한 눈으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과장님. 인터폰 내려놓으시죠?”
박봉두 과장이 헛기침하며 말했다.
“야. 특종이라며. 나도 좀 나눠 먹자.”
“안 됩니다. 저 장가가려면 돈 모아야 해요.”
“지X. 여자도 없는 새X가. 너 혼자 배 터지도록 해 먹어라.”
“예. 그러려고요.”
달칵.
박봉두 과장이 인터폰을 내려놓자 장문기는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전화를 받았다.
“말씀하세요.”
잠시 후.
예상과 달리 코맹맹이 소리의 남자는 정말로 대형 특종을 들려주고 있었다.
‘대박이다!’
장문기의 심장이 미친 듯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기자로서의 의심도 발동했다.
“젠틀맨 최준우라면 술도 안 마시고 클럽도 안 간다는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혹시 증거라도······”
-지금 사진 보내니까 확인하세요~옹.
띠링.
장문기의 폰에 한 장의 사진이 전송되었다.
최준우가 클럽 강남 BLUE의 지하 엘리베이터를 통해 올라가는 사진.
요즘 들어 클럽 강남 BLUE에서 안 좋은 소문이 돈다는 걸 알고 있던 장문기는 조금 더 자세한 소스를 원했다.
훨씬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증거를.
“최준우 씨 맞네요. 그런데 이걸로는 부족합니다. 그냥 친구만 만나러 가는 걸 수도 있고. 이 정도 가지고는 취재가 어렵······.”
-그래용? 알았어용~. 그럼 ‘연예가 빅뉴스’의 주강용 기자한테 전화 할게용~.
더 많은 정보를 캐보려던 장문기가 다급히 외쳤다.
“잠깐. 잠깐만요! 주강용은 안 됩니다! 그 자식 양아칩니다! 그놈 귀에 들어가면 다 망친다고요! 제가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예! 물론이죠! 사회 정의를 위해서라도 기필코 파헤치겠습니다. 그딴 개XX는 지구상에 존재하면 안 되죠. 속옷 색깔까지 탈탈 털 수 있습니다. 아 예. 예. 근데 선생님 존함이······ 예? 미래에서 온 예언자라고요? 이런 미친······ 아 아닙니다. 선생님보고 말한 게 아니라요. 여보세요? 여보······.”
달칵.
전화가 끊겼다.
“아 이놈의 입방정!”
제보자의 심정을 괜히 건드렸다는 후회도 잠시.
장문기는 간단한 소지품만을 챙기고 급히 밖으로 나섰다.
혹시나 자기가 아닌 다른 기자에게 연락이라도 할까 마음이 급했다.
연예가빅뉴스의 주강용 기자라면 자신과는 철천지원수 사이니까.
제한 시간 30분.
그사이에 안 오면 바로 주강용에게 전화를 한다고 했으니 시간이 없었다.
“장 기자. 어디가?”
박봉두 과장의 말에 장문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특종이요!”
탑스타 최준우가 물뽕을 사용한다는 말도 들었기에 보이는 게 없었다.
사진만 찍으면 특진에 보너스도 확정이니까.
* * *
“이 인간 말 진짜 많네. 그리고 미래에서 온 예언자가 어때서?”
직접 취재는 안 하고 내게서 정보를 더 캐내려 하기에 연예가빅뉴스의 주강용 기자 이름을 팔았다.
인간말종 주강용 기자는 변검 장문기와 쌍벽을 다투는 악질이다.
돈이 되는 뉴스를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기로 유명했으니까.
장문기 기자에게 제보했으니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현장에 온 그가 알아서 찌라시를 양산하고 사건을 얽어낼 테니까.
엔터테인먼트사로서는 최악의 상대지만 이렇게 뒤를 캐는 분야에는 최고의 전문가가 바로 장문기였다.
20분도 되기 전에 장문기가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주차장 발렛 요원에게 향했다.
주머니에서 새하얀 뭔가를 꺼내 찔러주곤 이야기를 한다.
“저 쫌생이. 또 문화상품권 준 건 아니겠지?”
그런데 발렛 요원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장문기의 얼굴이 환해지고 있었다.
“뭔가 쓸 만한 걸 캐냈나 보네.”
어차피 경찰을 통해서는 정보를 캘 수가 없다.
클럽 BLUE는 뒤는 봐주는 경찰이 있었으니까.
그때였다.
부르르릉.
들어간 지 30분도 안 되었는데 최준우의 차량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옆좌석엔 정신을 잃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뭐야? 저 자식? 설마 취한 여자를 집으로 데려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