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6화
326. 타격 1
낙산공원 주차장에서 가장 가까운 입구.
주택가 사이로 난 오르막길엔 출입 금지를 뜻하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앞에 있던 덩치 큰 두 사람이 경광봉을 흔들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이봐! 거 공사 중이라는 표지가 안 보여?”
“이 야밤에 대체 무슨 용무로 오셨수?”
까칠한 두 사람의 말에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그냥 밤길 산책 온 겁니다.”
낙산공원 둘레길은 야간 산책로로 꽤 유명한 곳이라 전혀 어색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여자친구도 없이 혼자?”
혼자 왔다고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본다.
순간 발끈해 외쳤다.
“아니 꼭 여자친구가 있어야 산책할 수 있습니까? 솔로는 산책도 못 해요?”
두 사람이 여전히 날 미심쩍은 눈빛으로 쳐다본다.
회귀 전 이곳은 주영인과 가끔 오던 곳.
난 기지를 발휘해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외쳤다.
“예. 그래요. 저 차였어요! 헤어진 여친이랑 가끔 들르던 곳이라서 와 봤습니다! 됐습니까?”
그제야 두 남자가 낄낄대며 웃는다.
“뭐. 마음은 이해하는데 오늘은 안 돼. 여기 오늘 전기가 나가서 위험하니까 돌아가. 공원 전체를 폐쇄한 상태니까.”
두 사람은 의심을 떨치고는 알아서 술술 정보를 불기 시작했다.
모든 입구가 통제라고?
그렇다면 일단 작전상 후퇴다.
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뭐 다음에 다시 오죠.”
“그래. 힘내고. 근데 생긴 거 보니까 금방 여친 만들겠네!”
“그게 뭐 제 마음대로 됩니까?”
두 사람과 어색한 인사를 마친 뒤 몸을 돌렸다.
대략 20m 정도를 내려온 순간 힐끗 뒤를 돌아보자 빨간 담뱃불 두 개가 보였다.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둘이서 내 뒷담화를 늘어놓는 모양이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 같지 않은데······.”
회귀 전 야간 아르바이트도 종종 해 본 적이 있었기에 그들이 공사 현장을 지키는 평범한 일용직 노동자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난 즉각 서재일 검사에게 까톡으로 현 상황을 알렸다.
* * *
내 메시지를 확인한 서재일 검사는 낙산공원의 모든 입구가 봉쇄되었다는 걸 확인한 후 내게 까톡으로 연락해왔다.
[서재일 검사 :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정윤호 팀장 : 저도 여기서 거래를 한다는 것만 들었지 자세한 건 모릅니다.]
나 역시 이곳에서 거래가 일어난다는 것 빼고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정도 준비라면 강명길 팀장만이 오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재일 검사 역시 내 말에 동의를 표했다.
[서재일 검사 : 예상보다 규모가 큰 거래가 있는 것 같군요. 이거 추가로 지원 요청을 해야 하나······.]
현재 서재일 검사는 윗선에 찍힌 터라 자신이 믿을 수 있는 몇몇 검찰 수사관들을 데리고 온 상황.
하지만 지원을 요청하면 정보가 샐 수도 있다.
‘어떻게 한다······.’
잠깐 고민했지만 이대로 박상곤 의원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정윤호 팀장 : 검사님. 이렇게 하죠.]
[서재일 검사 : 어떻게요?]
[정윤호 팀장 : 제가 주차장 근처까지 몰래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과거 주영인과의 낙산공원 데이트 때 봐뒀던 산길을 이용하면 들키지 않고 주차장에 접근할 수 있었다.
서재일 검사는 제보자인 내가 위험한 일을 담당한다는 게 불안한 듯했지만 결국 내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서재일 검사는 내가 알려주는 길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재일 검사 : 조심하시고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바로 포기하십시오.]
[정윤호 팀장 : 알겠습니다.]
까톡 대화를 끝낸 나는 곧바로 낙산공원에 붙어 있는 주택가로 향했다.
* * *
“헉헉헉.”
주택가 골목길 사이에 있는 쪽 길을 통과한 나는 그 끝에 맞닿아 있는 산길을 타고 올라 주차장 바로 위에 도착했다.
현재 시각 11시 20분.
주차장 조명은 꺼져 있었지만 낙산공원 바로 곁에 붙은 주택가 가로등 덕분에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주차장에는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다 내보냈군.’
아마도 주차된 차량의 블랙박스를 걱정해서 모조리 내보낸 모양이다.
난 도착했다는 까톡을 보낸 뒤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잠시 숨을 골랐다.
“많이 변했네. 정윤호.”
아무리 박상곤 의원을 잡고 최만식을 잡기 위해서라지만 나조차 놀랄 만큼 과감해졌다.
그때였다.
[서재일 검사 : 지금 차가 여러 대 올라갑니다. 조심하세요. (사진 첨부)]
까톡으로 받은 사진에는 일곱 대의 차량이 줄지어져 오는 게 보인다.
맨 앞과 맨 뒤쪽엔 [공사 차량]이라는 마크를 붙인 흰색 1톤짜리 트럭이 있었는데 그 사이에 승용차들이 섞여서 올라오고 있다.
‘역시 강명길 혼자가 아니었네.’
잠시 후.
흰색 1톤 트럭이 공원 입구에 도착하자 날 막아섰던 경호원 복장을 한 2인조가 트럭의 짐칸에 올라탔다.
이내 차는 주차장 입구까지 올라왔고 경광봉을 든 남자가 짐칸에서 내리더니 내려온 차단기를 올렸다.
이어서 주차장으로 모든 차들이 일렬로 들어왔다.
그리곤 생각지도 못하게 벤츠 승용차가 아니라 맨 앞에 세워둔 공사용 트럭에서 박상곤 의원실의 유상기 보좌관이 내렸다.
“자자! 다들 우리 영감님 성격 급하신 거 알지? 여기가 끝이 아니니까 빨리빨리 움직여.”
승용차에서 내린 남자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며 박스를 옮기기 시작했지만 강명길 팀장은 어리바리하게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거기! 뭘 그렇게 두리번거려! 빨리 안 실어!”
“예. 예! 죄송합니다.”
회귀 전에는 마치 엄청난 모험이라도 한 듯 자신의 무용담(?)을 지껄이더니 지금 보니 우스울 정도였다.
대략 3분.
트럭 뒤 짐칸에 사과 박스가 산처럼 쌓이자 유상기 보좌관이 방수포를 덮는다.
내 생각보다 훨씬 큰 거래가 일어나고 있었다.
어쨌건 거래 장면을 다 찍었기에 동영상 촬영을 멈추고 까톡을 보내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유상기 보좌관이 든 무전기가 갑자기 치직거린다.
-레드! 레드! 레드!
유상기 보좌관의 안색이 변한다.
“XX! 들켰다! 다들 빠져나가!”
유상기 보좌관은 급히 트럭에 올라타더니 시동을 걸었다.
‘어떻게 된 거지? 서 검사가 입구에 있는 사람들한테 들킨 건가?’
사정을 파악할 겨를도 없이 까톡을 보냈다.
[정윤호 팀장 : 서 검사님! 촬영 완. 그런데 애들이 무전 받고 튀는 주입니다!]
[서재일 검사 : 오케이!]
빠르게 답장을 하느라 서로 오타가 난다.
난 개의치 않고 연이어 까톡을 보냈다.
[정윤호 팀장 : 흰색 1톤 트럭에 유상기 보좌관이 타고 있습니다. 번호판은 96오 3412. 뒷 짐칸 방수포랑 공구 밑에 싣더군요.]
까톡을 보내고 고개를 들자 차들이 입구 반대 방향으로 빠져나가는 게 보인다.
그때 맨 뒤에 따라왔던 트럭이 추격을 막기 위해 차를 90도로 튼 다음 도로를 가로막는 게 보인다.
난 다시 한번 서재일 검사에게 상황을 중계했다.
그러자 서재일 검사는 다른 루트로 쫓겠다며 답변을 해왔다.
모두가 사라지고 5분 뒤.
난 옷을 툭툭 털고 몸을 일으켰다.
“······잡겠지?”
혹여나 못 잡으면 어쩔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그래도 혹시나 갔던 놈들이 돌아올지 몰랐기에 힘들게 올라왔던 험한 길로 내려와야만 했었다.
차를 대놓은 주차장에 도착한 후에야 옷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그리고 10분이 지났을 무렵.
서재일 검사에게 까톡이 도착했다.
[서재일 검사 : 잡았습니다!]
“아자!”
난 들뜬 마음에 다른 사람도 잡았냐고 물었지만 인력 부족으로 유상기 보좌관을 잡는 게 한계였단다.
[서재일 검사 : 지금부터 좀 바쁠 테니 자세한 건 내일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동영상 찍은 것 좀 보내주십시오.]
[정윤호 팀장 : 예!]
난 대용량 파일 전송 앱을 사용해 거래 현장 녹화 파일을 전송했다.
그 후 곧장 명동 최은태 회장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거래 현장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할까요?”
최은태 회장이 웃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얼마에 팔 건가? 비싸게 팔아도 괜찮네.
최은태 회장은 요즘 전화를 할 때마다 값을 치르겠다고 말한다.
빨리 강은기를 만나게 해달라는 뜻인 줄 알기에 딱 잘라 말했다.
“됐습니다. 최만식이나 잘 처리해주십시오!”
-알겠네. 그러면 값은 내 알아서 치르지.
최은태 회장은 일에 대한 보상만큼은 받는다고 하지 않았냐고 우기며 전화를 끊었다.
“못 말리겠군.”
난 고개를 저은 뒤 이어서 강감찬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 대표님. 거래 장면 찍었습니다. 검찰이 보좌관도 잡았다고 합니다.”
내 들뜬 목소리에 강감찬 대표가 상기된 목소리로 답한다.
-수고했다. 지금 바로 회사로 들어와.
“예. 대표님.”
강명길 팀장은 무조건 날릴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젠 어떻게 배우 3실을 공략할지 그걸 고민할 차례가 다가왔다.
* * *
굴렁쇠 엔터의 대표이사실.
강감찬 대표와 곽무혁 법무팀장 강지영 본부장 그리고 정수혁 재무 이사 등 강감찬 대표 라인의 이사진들이 모두 모였다.
강감찬 대표가 곽무혁 법무팀장에게 묻는다.
“여파는 어느 정도가 될까?”
“적진 않을 겁니다. 어쨌거나 굴렁쇠에서도 오늘 당선된 여당 대표에게 뇌물을 준 셈이니까요. 검찰 조사도 있을 거고 언론의 질타도 쏟아질 겁니다.”
강감찬 대표가 인상을 쓴다.
“그 정도야 감내해야지. 그나저나 이젠 서예종 쪽을 어떻게 할지나 이야기하지.”
고개를 끄덕인 곽무혁 팀장이 이어서 말한다.
“일단 김 실장 허락 없이 강 팀장이 여당 당 대표에게 돈을 넘기는 건 불가능했을 겁니다. 검사가 강 팀장을 조사하면 바로 그 윗선인 김 실장의 이름이 나올 거로 생각합니다.”
“하긴 나도 검사 앞에 가면 쫄리는 데 강 팀장이 버텨내진 못하겠지.”
“그럴 겁니다.”
“오케이. 만약 김 실장이 구속되면 바로 해고 절차 밟을 준비 해.”
“그런데 주주분들이 가만히 계실까요? 현재 김 실장이 서예종 라인의 핵심이잖습니까?”
강감찬 대표는 굴렁쇠 엔터의 이미지 하락과 검찰 조사를 맞바꿔 서예종 라인에 치명타를 가하려고 하고 있었다.
거기다 김동수까지도 강명길과 엮어 감옥에 넣어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주주들은 나한테 맡겨. 그리고 이참에 배우 3실에 대한 전체 감사도 한 번 하자. 내부에 고인 종기는 짜내야지. 안 그래?”
주주들은 자신이 맡겠다는 강감찬 대표의 말에 우리 역시도 저마다 몇 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 와중에도 서재일 검사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밤새 우리끼리의 대처 방법을 의논한 뒤 회의를 마쳤다.
집으로 갈 시간은 없었기에 숙직실에서 세 시간 정도를 자고 일어났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샤워를 하고 나오자 정신이 조금 든다.
폰을 확인하자 모든 신문에는 어젯밤 일을 다루고 있었다.
[서울 도심 간밤의 추격전! 여당 당 대표 당선일 날 벌어진 수상한 돈 거래!]
[여당 당 대표 보좌관 유상기 현장에서 체포!]
[서울 중앙지검. 여당 대표 박상곤 의원 소환 예정.]
[박상곤 대표. 두문불출. 당사에 출근도 하지 않아.]
‘이제 다 끝난 건가?’
난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다이어리를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0.1]
[날짜 : 2022년 11월 11일]
-PM 01:00 탑 엔터테인먼트 창업식.
“아직은 아니군······.”
탑 엔터테인먼트가 설립된다는 일정은 아마도 김동수가 회사에서 나간 후에야 사라지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샤워실 앞 복도에서 매니저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야. 어제 에이스 엔터 매니저가 유 보좌관한테 돈 줬다던데 알고 있어?”
“소문엔 TK라던데?”
“XX. 연예계 대가리들. 다 상납이라도 한 거 아냐?”
“미치겠다. 우리는 명단에 없어야 할 텐데······.”
생각보다 일이 컸다고 생각할 무렵 1층 로비에서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대체 뭔 일인가 하고 2층 난간에서 1층 로비를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벌써 왔나?’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10명과 여자 2명이 로비에서 다들 멈추라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어서 가장 앞에 선 정장의 남자가 흰 종이를 펼치며 외친다.
“다들 그대로 계십시오! 현 시각 부로 긴급 압수수색을 시작합니다!”
동시에 함께 온 사람들이 소리친다.
“거기! 움직이지 말래도!”
“강명길 팀장이 있는 곳이 배우 3실이랬지?”
“야! 가서 싹 다 뒤져!”
검찰 수사관들이 푸른 박스를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재일 검사에게 들었기에 미리 준비하고 있던 일이지만 막상 일이 벌어지자 기분이 조금 묘해진다.
그런데 그때였다.
[발신자 : 서재일 검사]
‘이제야 시간이 난 모양이군.’
난 전화를 받자마자 약속대로 사정을 봐 달라고 말했다.
“서 검사님. 지금 온 검사님들한테 살살 좀 해달라고 해주십시오.”
그 순간 서재일 검사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한다.
-예? 검사가 오다뇨? 제가 이제 직접 가려는데 대체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난 즉각 영상 통화로 바꿔 1층 로비에 들어온 사람들의 얼굴을 비췄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누굽니까?”
서재일 검사가 사람들의 얼굴을 보곤 이를 빠드득 갈며 외친다.
-박상곤. 이 개XX가 감히······.
회사에 찾아온 건 박상곤 대표 쪽에 줄을 댄 정치 검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