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7화
317. 서재일 1
강하나에게 쏟아지는 광고 목록을 정리해두라고 지시한 뒤 급히 회사를 나섰다.
서재일 검사가 기다리는 카페 고인돌은 회사에서 걸어가면 5분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
하지만 일부러 천천히 걸으며 이수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찬아. 너 혹시 서재일 검사에 관해서 아는 거라도 있냐?”
전화를 받은 이수찬은 자신이 아는 서재일 검사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올해 35살인 서울중앙지검의 미친개라고 불리는 서재일은 권력형 수사부터 민생 범죄까지 온갖 수사에 가장 앞서 발로 뛰는 검사라고 한다.
세상의 정의는 자기가 다 수호할 듯 움직이다 보니 검찰 조직 내에서도 골칫덩이라고.
그런데 엘리트들만 모인다는 서울중앙지검에서도 에이스 소리를 듣는다는 건 그가 그만큼 유능하다는 증거였다.
게다가 엄청난 체구에 국가대표급 유도 실력을 갖추고 있어 어지간한 조폭들은 눈도 못 마주친다고 한다.
그래도 검사 중에서 몇 안 되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은기 형님도 서 검사를 골라서 자수한 겁니다. 뒤통수 안 맞으려고요.
“오케이. 대충은 어떤 사람인지 알겠다.”
난 강은기의 면회도 서재일 검사의 손에 달렸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이수찬과의 전화를 끊었다.
서재일 검사가 날 찾아온 건 강은기가 습격을 받았던 병원 일 때문일 터.
그 탓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언제고 내게 죄가 씌워질지 몰랐으니까.
카페 고인돌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구의 몸이 단번에 눈에 띄었다.
이수찬의 말대로 190cm정도 되어 보이는 키에 정장이 터져 나갈 듯한 근육질의 남자가 깍두기 머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몰랐다면 전국구 조폭 정도라고 오인할 정도다.
다만 덩치에 어울리지도 않게 에스프레소에 휘핑크림을 잔뜩 올린 허니 브레드를 먹고 있었다.
꿀이 부족한지 곁에 있는 조그만 흰색 단지에 든 꿀을 조금씩 더 뿌려 가면서.
‘곰이 꿀을 먹네······.’
언뜻 든 생각을 떨친 난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서재일 검사와 가볍게 인사를 한 뒤 자리에 앉았다.
그는 오늘 음악방송을 보고 강하나의 팬이 되었다며 칭찬을 늘어놓았지만 난 곧바로 본론을 물었다.
커피를 사주겠다는 것도 마다하며 말이다.
“왜 절 보자고 하셨습니까?”
서재일 검사가 가볍게 말을 받는다.
“병원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하지만 그가 왜 날 찾아왔는지 여전히 알 수 없었기에 시치미를 뚝 떼고 대답했다.
“병원 일이라뇨?”
“에이~ 편하게 여쭤보려고 온 거니까 협조 좀 해주시죠. 강은기 습격 사건의 내막을 알려주시면 바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날 은기가 있던 구치소가 H 병원을 자주 이용한다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가 봤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날 은기를 만나진 못했습니다.”
“정윤호 씨. 검사 앞에서 거짓말하시면 안 됩니다.”
서재일 검사가 웃으며 주머니 안쪽에서 사진 몇 장을 꺼낸다.
오전 11시 15분의 사진엔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나와 이수찬 그리고 최동혁이 함께 병문안을 온 모습이 담겨 있다.
그것까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다음으로 나온 사진들을 본 순간 할 말이 사라졌다.
1층부터 9층까지의 사진 중 7층만 빼고 나머지 층의 입구 사진 어느 곳에도 내 모습은 없었으니까.
즉 내가 엘리베이터에 타는 사진만 있고 내리는 사진은 없는 셈이다.
“CCTV가 꺼져 유일하게 안 찍힌 7층을 제외하고는 어느 층에도 정 팀장님이 내린 흔적이 없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건 11시 25분. 10분 동안 엘리베이터에 다섯 명이 들어간 거 확인하고 오는 거니까 계속 엘리베이터 안에 있었단 거짓말은 하지 마십시오.”
내가 생각한 단 하나의 허점을 짚다니 역시나 에이스 검사다웠다.
그래도 난 그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뻔뻔하게 굴었다.
“그래서요?”
서재일 검사가 어이없다는 듯 쳐다본다.
“허 참. 이렇게 막가시는 분은 아니라고 들었는데요?”
“지금 법적으로 취조하시는 거 아니라면서요? 검사님이 너무 무서워서 순간 거짓말을 했습니다. 예. 7층에 갔습니다. 근데 그게 끝입니다.”
“친구가 싸우는 소리가 나는 데 병실 안으로 가보지 않았다는 겁니까?”
“전 일반인이잖습니까? 동생들이 달려가서 막는 동안 그냥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겁이 나서 발걸음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서재일 검사가 날 노려본다.
“지금 그걸 믿으라는 겁니까?”
“믿든 안 믿든 저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정 팀장님.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시면 정식으로 소환해서 심문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정식으로 소환장 보내주십시오.”
현재 난 범죄자가 아니다.
그러니 그가 쓸 방법은 제한되어 있었다.
난 서재일 검사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태연하게 테이블에 놓인 차가운 물잔을 호로록 들이켰다.
* * *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며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결국엔 서재일 검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봐요. 그쪽을 곤란하게 하려고 찾아온 거 아니니까 협조 좀 합시다. 강은기 그놈이 전직 조폭이라고 해도 제 발로 날 찾아와서 자수했으니 형량도 세지 않아요. 내가 진짜 걱정하는 건 그 인간이 다시 조폭으로 돌아가는 거란 말입니다.”
이제야 날 찾아온 진짜 이유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번 습격 사건에 관해 습격한 놈이나 강은기 씨나 아무도 입을 안 엽니다. 제가 뭐라도 단서는 얻어야 수사를 할 거 아닙니까?”
난 서재일 검사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은기를 걱정하시는 마음은 있습니까?”
“뭐 솔직히 말하면 내가 관리하는 놈을 노렸다는 게 제일 빡치긴 하죠.”
생각 이상으로 솔직하게 대답한다.
“하지만! 그것만큼이나 개과천선해서 착하게 살아보겠다는 놈을 제대로 살게 돕고 싶다는 마음도 있습니다. 죄를 짓고 벌을 받으면 누구나 새로운 기회를 살 자격은 있잖습니까?”
대한민국 검사 중 범죄자의 갱생을 이 정도나마 생각해주는 사람도 몇 없겠다 싶었다.
잠깐 고민했지만 혼자서 박상곤과 최만식을 상대로 싸우는 것보다 함께 싸울 동지가 있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공짜로는 안 되고.
“그러면 혹시 은기 면회는 언제부터 허락해주실 겁니까?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검사님이 좋아하실 만한 기억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서재일 검사가 코웃음을 친다.
“검사를 상대로 거래를 하는 겁니까?”
“아······ 떠오르던 기억이 갑자기 가물가물해지는 거 같습니다.”
서재일 검사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말이나 못 하면······.”
“······.”
“알았어요! 면회 잡아드릴 테니 말이나 해보세요.”
그제야 난 자세를 바로 하고 답했다.
“일단 저도 습격자가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순간 서재일 검사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자칫 장난하냐고 쌍욕이라도 할까 싶어 난 다급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단서를 드릴 수는 있습니다.”
“단서요?”
“예. 지난주 금요일. 남양주 내곡리에 있는 폐공장으로 들어가는 CCTV를 확인해 보십시오. 차 번호는 저도 모르지만 오전 10시 정도에 진입했고 11시 20분 정도에 다급히 도망치는 차량입니다.”
“병원이 아니라 남양주 내곡리?”
“예. 은기에게 습격자를 보내온 곳에서 그에 앞서 은기네 식구 한 명을 납치했습니다.”
납치범들을 잡으며 나아가다 보면 그 끝에는 최만식이 있을 거다.
이 일로 최만식을 잡아도 좋고 그게 안 된다면 그의 수족을 잡아넣을 수 있어도 좋은 일이다.
한동안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서재일 검사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일단 단서는 줬으니까 내가 한번 파보죠. 하지만 다음번 만날 땐 제대로 된 답변을 해야 할 겁니다.”
“제가 드린 정보를 캐 보시면 자연스레 핵심에 다가갈 수 있을 겁니다.”
“그거야. 해봐야 알겠죠. 그리고······ 강은기 씨 면회는 일주일 뒤부터 허락하죠.”
서재일 검사는 그렇게 대답한 뒤 카페를 나갔다.
난 그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기대하며 회사로 돌아갔다.
팀원들이 야식으로 먹을 음료수와 샌드위치를 가득 사서 말이다.
* * *
[KBC 뮤직 스테이지 1위 <혼불> 2위 <새로운 시작> 3위 ······]
[<혼불> 대중음악과 국악의 환상적인 콜라보!]
[강하나. <새로운 시작>과 <혼불>. 두 곡으로 음원 절대 강자로 등극!]
[강하나 전성시대 너튜브 구독자 최단기 100만 돌파의 비결은 소통.]
강하나와 김종훈은 주말 동안 방송 삼사는 물론 케이블 음방까지 모조리 석권했다.
특히 KBC의 경우는 <혼불>이 1위를 차지해 2위인 <새로운 시작>을 뛰어넘는 이변도 있었다.
심지어 방송 점수를 많이 반영하는 SBC에서도 이브원을 압도했고.
그 덕에 강하나에게 광고들이 더욱 쏟아지기 시작한다.
주말 동안에 들어온 광고의 수만 하더라도 50여개.
그중에서 난 6개를 골라 광고를 선택했다.
합산 금액은 무려 7억 5천.
난생처음으로 광고를 찍게 된 강하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한테 광고 들어왔대~”
-혹시······ 이상한 광고 아니지?
“아냐. 초콜릿이랑 제과 광고랑······. ”
강하나가 이름 있는 회사의 제품을 언급할 때마다 강하나의 엄마는 기뻐서 울먹였다.
이내 강하나가 내게도 엄마 전화를 바꿔준다.
-정 팀장님! 이 은혜 절~대로 안 잊겠습니다.
“아닙니다. 어머님. 저희야말로 하나 덕에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한참 그렇게 서로 감사를 하고 난 후 강하나에게 폰을 돌려주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강하나를 축하하기 위해 회의실에 찾아와 있던 원로 가수 이말순 선생님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정 팀장. 나 폰 좀.”
“예?”
“왜? 현지 언니랑 오랜만에 통화 좀 하게.”
순간 곁에 있던 강하나가 눈을 끔뻑인다.
“선생님. 저희 엄마를 아세요?”
“응. 나 신인 때 너희 엄마가 나 엄청 이뻐 해줬어.”
난 강하나의 허락을 받고 전화를 건넸다.
이말순 선생님은 행복한 얼굴로 전화를 시작했다.
“현지 언니. 나 말순이! 오랜만이지? 그래. 복댕이 말순이! 언니가 나 귀엽다고 좋아했잖아.”
강하나의 엄마 김현지는 당대 트로트 슈퍼스타 ‘김현자’의 카피 가수다.
이말순 선생님은 그런 강하나의 엄마를 마치 친언니처럼 다정히 부르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두 사람의 인연에 모두 입을 열지 못했다.
“응! 그리고 하나가 우리 회사 들어와서 그동안 쭉~ 지켜봤는데 걱정하지 마. 하나 잘될 거야. 여기 정 팀장이 엄청 신경 많이 쓰거든~”
그때였다.
스피커 폰으로 전화를 돌린 이말순 선생님이 내게 전화를 바꿔 달라고 한 진짜 이유를 말한다.
“정 팀장. 혹시 우리 현지 언니. 현업으로 복귀한다면 도와줄 수 있어?”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난 즉각 대답했다.
“얼마든지요.”
순간 스피커폰으로 강하나의 엄마 목소리가 나온다.
-제 제가 이 나이에······.
이말순 선생님이 버럭한다.
“언니 나이가 어때서? 목소리 들어보니까 아직 20년은 현역으로 뛰겠네! 그리고 언니도 딸 잘되는 것만 보고 기뻐하지 말고 늘그막에 나랑 같이 공연도 다니고 그러면 좋잖아!”
이말순 선생님의 재촉이 이어지자 강하나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급하게 하는 건 좀······.
난 분위기를 타 몰아붙였다.
“언제든 재기하실 생각이 있다면 편히 말씀하십시오! 제가 특별히 신경 써서 모시겠습니다!”
거듭된 설득에 강하나의 엄마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새 생각 좀 해볼게요.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잘하면 쓸 만한 트로트 가수를 영입할 수 있게 되어버렸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겠다는 대답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그 순간 이말순 선생님이 날 보며 씨익 웃는다.
“정 팀장. 현지 언니 꼭 잡아. 제대로만 메이드 하면 굴러다니는 중소기업을 하나 손에 쥐게 되는 셈이야. 알지?”
곡만 잘 잡으면 트로트 가수는 S급 아이돌에 필적하는 수익을 올린다.
그리고 난 뜰 수 있는 트로트 곡을 웬만큼은 알고 있었고.
기쁜 표정으로 대답하려는 순간 이말순 선생님이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섰는지 이해가 되었다.
‘설마 날 실장이 될 수 있게 실적을 올려주려고 그러는 거였어?’
내가 도와준 연예인들이 이제는 날 도와주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실적은 채우고도 남겠습니다.”
이말순 선생님이 웃으며 손을 내젓는다.
“감사는 무슨. 내가 더 감사하지. 정 팀장 덕분에 내년 초까지 디너쇼가 전석 매진인데~”
그 이후 이말순 선생님은 자신과 강하나 엄마와의 인연을 한참 이야기한 뒤 회의실을 나섰다.
나는 강하나에게 어머니를 설득해 보라고 부탁한 뒤 다음으로 유진이의 상황을 체크했다.
현재 유진이가 출연하는 <신의 이름으로> 15화와 16화의 시청률은 각각 31.9%와 32.1%를 달성하며 계속 순항하는 중이었다.
“유진 씨는 차기작 ‘화란전’에서 S급 대우를 약속받았으니까 이제부터 들어오는 제안은 모두 급에 맞춰 대처하세요.”
“예! 팀장님!”
난 연이은 지시를 내린 후 정 팀의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그러면 전 이따가 태풍이 미팅 건 때문에 먼저 나가볼게요. 수고들 하세요.”
이제 이태풍의 <경계 너머로>가 드디어 다음 주 개봉이다.
배급사 측에서는 개봉 첫 주 무대 인사 스케줄을 잡기 위해 미팅을 요청해 왔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강은기를 만나야 했다.
서재일 검사가 힘을 써 이른 시간에 강은기와의 면회를 잡아 줬기 때문이다.
* * *
구치소에 도착해 특별 면회를 신청하자 팔에 붕대를 감은 강은기가 나왔다.
강은기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한숨을 내쉰다.
“말 안 해도 알겠다.”
“뭐가?”
“나지? 내가 그 영감 아들이지?”
난 말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의자에 몸을 기댄 강은기가 천장을 쳐다보며 또 한숨을 쉰다.
“XX X 같네······”
아버지를 찾았다는 데도 역시나 기뻐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한숨을 푹 내쉰 강은기가 날 쳐다본다.
“내가 말한 대로 전하긴 했고?”
“그래.”
“그럼 됐어. 이제까지처럼 모른 채 사는 게 서로 편해.”
테이블에 올라온 강은기의 손이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꽉 쥐어진다.
난 분노하는 그를 보며 차분히 말했다.
“알았어. 그러면 다른 이야기나 하자.”
강은기가 움찔했지만 난 일부러 화제를 바꿨다.
녀석의 성격상 아버지를 만나보라고 재촉하면 오히려 더 안 만난다고 고집을 부릴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서 검사 말이야. 중앙지검 에이스라더니 역시 보통이 아니더라?”
강은기는 아버지에 관해 더 묻고 싶은 눈치였지만 자존심 때문에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런데 그때.
강은기의 입에서 뜬금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맞다. 윤호야. 서 검사 지금 좌천당할 거 같다.”
“뭐? 갑자기 왜?”
“납치범들 캐다가 윗선에서 제대로 찍혔다더라고.”
서울지검의 에이스가 납치범의 뒤를 캐는 것만으로 좌천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