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3화
313. 음악방송 무대 2
MBS의 예능국 국장실.
장병훈 국장이 눈에 쌍심지를 켜며 나와 은지유 대리를 노려본다.
“내가 이직한다는 정보는 어디서 들었나?”
“알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말씀 못 드립니다.”
“이 사람이 정말!”
“입을 다물 테니 대신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십시오.”
장병훈 국장이 참지 못하고 화를 벌컥 낸다.
“허 이 친구! 배짱 한번 두둑하군! 이런 상황에서도 나랑 거래하자고?”
“국장님. 입을 다물어 주는 것만큼 좋은 이직 선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닙니까?”
날 빤히 노려보던 장병훈 국장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한다.
지금 이 일이 알려졌다가는 현재 협상 중인 TVM 이직 건이 물거품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도 양심 없는 놈은 아닙니다. 제 부탁을 들어주시면 섭섭지 않은 선물을 하나 더 해드리겠습니다.”
“어르고 달래는군. 내가 그렇게 호구로 보이나?”
“국장님. 제가 오죽 궁지에 몰렸으면 이런 짓까지 하겠습니까?”
장병훈 국장이 날 빤히 쳐다본다.
“무슨 일이 있나 보군.”
잠깐 생각에 잠긴 장병훈 국장이 묻는다.
“혹시 그 선물이라는 거. 이직한 방송국에서 유진 씨를 출연시켜주겠다는 약속인가?”
“장 국장님이 이직하시는데 저도 그 정도 성의는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순간 화를 내던 장병훈 국장의 표정이 조금은 풀린다.
요즘 가장 핫한 여배우인 유진이는 예능 출연을 거의 하지 않고 있기에 출연만으로도 화제를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쪽. 동행한 친구는 입 무거운 거 맞나?”
은지유 대리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인다.
장병훈 국장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다.
“이거 세상에 비밀이 없다더니만 알았어. 원하는 거나 말해 봐.”
“죄송합니다. 상황이 급해서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됐고. 본론부터 말해 봐.”
“강하나의 다음 주 음방 데뷔 무대를 원래대로 되돌려주셨으면 합니다.”
장병훈 국장이 고개를 갸웃한다.
“강하나? 그 너튜브 100만 가수? 근데 걔가 왜? 다음 주 우리 음방에 나오기로 했나?”
“일정이 잡혀 있었는데 갑자기 취소당했습니다.”
현재 상황을 대략 말하자 장병훈 국장이 머리를 벅벅 긁는다.
“음악센터 방 CP. 그 새X 완전 꼴X이라서 내 말 잘 안 들을 텐데······.”
그 순간 난 기다렸다는 듯 방상오 CP의 상황도 전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방 CP님도 곧 KNET으로 간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순간 장병훈 국장의 눈이 번뜩인다.
장병훈 국장과 방상오 CP는 사사건건 부딪히던 앙숙과도 같은 사이였기 때문이다.
“확실해?”
“예.”
고개를 끄덕이자 장병훈 국장의 입가로 의미심장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 새X. KNET한테 잘 보이려고 로비를 넙죽 받아먹었나 보네.”
“······.”
무언의 동의를 한 순간 장병훈 국장이 단호히 대답한다.
“오케이. 그러면 순번은 상관없지?”
“예. 대신 무대 2개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나도 아니고 2개?”
“이브원에 맞서기 위해 특별 무대를 기획한 게 있습니다.”
잠깐 고민하던 장병훈 국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 그렇게 하지.”
“오늘 안으로 답을 들을 수 있을까요?”
“오늘은 무슨. 근처에서 기다리다가 PD나 만나고 가!”
“예. 국장님.”
난 장병훈 국장에게 인사한 뒤 은지유 대리와 함께 방을 나섰다.
* * *
MBS의 주차장에서 기다린 지 20분도 지나지 않았을 무렵.
<음악센터>를 연출하는 주한수 PD에게서 직접 전화가 걸려왔다.
-정 팀장. 크흠 내가 그러려고 한 게 아니고 말이야······.
주한수 PD는 본인의 의도가 아닌 방상오 CP의 지시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면 저희 하나. 다음 주에 출연할 수 있는 겁니까?”
-그래. 그리고 무대 순서가 1번 2번인데 괜찮겠어?
음방 1번 무대는 주로 생짜 신인들을 세운다.
제일 먼저 현장에 도착해야 하고 제일 늦게까지 기다리기 때문에 모두가 꺼리는 순번이다.
하지만 난 곧바로 승낙했다.
출연 약속만 받는다면 이 순번 또한 바꿀 방법이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PD님.”
-그래. 뭐 그러면 다음 주에 보자고.
주한수 PD가 급히 전화를 끊는 순간 곁에 있던 도란희가 환호를 내지른다.
“아싸! 팀장님. 이제 KBC랑 SBC에 연락하실 거죠?”
“아니.”
“왜요?”
“왜긴 왜야. 지금까지 우리가 숙였으니 이제는 저쪽에서 숙이고 들어오게 만들어야지. 안 그래?”
MBS에서 출연 약속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그때부턴 SBC와 KBC 역시도 내게 전화를 할 게 분명했다.
방송국 쪽에서 출연을 가지고 먼저 갑질을 했으니 이젠 내가 할 차례였다.
곧바로 차를 돌려 회사로 향한 우린 강하나의 음원 업로드를 준비했다.
오늘 업로드 할 음원은 강하나의 <새로운 시작>과 강하나와 김종훈이 함께 부른 <혼불> 두 곡.
이브원의 신곡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이미 알려진 <새로운 시작>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음원 업로드는 밤 12시.
매일 11시가 넘어서까지 라이브 방송을 하는 강하나도 오늘은 방송을 일찍 끝낸 뒤 회의실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종훈이 얘는 왜 안 와?”
“아 징크스 때문에요.”
오늘 강하나의 라이브 방송에서 게스트로 함께 방송한 김종훈은 현재 지하 녹음실에서 음원 순위가 발표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자신이 직접 음원 순위를 보게 되면 더는 음원 순위가 안 올라간다는 징크스가 있다나.
“이따가 순위가 뜨면 가서 데려와야겠네. 알았어.”
잠시 후.
12시가 된 순간 은지유 대리가 외친다.
“업로드됐습니다!”
과거 체리블라썸의 의 멜랑 차트 진입 순위는 15위.
이번에는 몇 위가 나올까 하고 다들 초조하게 집계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회의실의 대형 LCD 화면에 차트 순위가 올라오자 도란희는 회의실이 떠나가라 외쳤다.
“팀장님! 대~박!! 저 저것 좀 보세요.”
강하나의 신곡 순위가 올라온 순간 다들 어이없는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미친······!”
[멜랑 차트]
3위 강하나 <새로운 시작> (진입) 5위 강하나 & 김종훈 <혼불> (진입) ······
“새로운 시작은 진입이 3위야!”
“혼불은 5위고! 이거 대박인데?”
“그러면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우리끼리 1위 싸움이야?”
“몰라. 내일 이브원 음원이 등록되는 거 보면 알겠지.”
강하나의 너튜브 라이브로 홍보해 둔 덕에 <새로운 시작>은 진입과 동시에 3위를 달성해 버렸다.
게다가 강하나와 김종훈과의 듀엣곡인 <혼불>도 5위로 진입해 버렸다.
구독자 100만 명 골드 플레이 버튼을 달성한 강하나의 위엄이 드러나고 있었다.
음원 차트 순위를 본 강하나가 눈을 끔벅거린다.
“유 윤호 오빠. 이거 제대로 나온 거 맞아요?”
“그래. 여기 3위랑 5위.”
강하나가 꿈만 같다는 듯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그 순간 도란희가 강하나를 덥석 껴안았다.
“하나야! 축하해!”
“고 고마워. 란희야.”
동갑내기 두 사람이 얼싸안으며 이 일을 기뻐하고 있었다.
잠시 후.
다시 한번 차트 순위가 갱신되었다.
[멜랑 차트]
1위 강하나 <새로운 시작> (+2) 2위 강하나 & 김종훈 <혼불> (+3) ······
“티 팀장님. 이거······ 뭐 잘못된 거 아니에요?”
차트 진입 후 고작 10분 만에 1위를 차지해 버렸다.
홍보팀 김미혜 대리는 믿기지 않는지 곡에 달린 댓글들을 LCD 화면에 띄웠다.
(댓글)
-소오름. ‘새로운 시작’이 왜 이렇게 듣기 좋지? 창법이 바뀌었나?
-중독성 어쩔? 이거 누가 한 시간짜리로 음원 편집 못 해주나?
-김종훈이랑 듀엣이라니! 우리 하나가 이제 진짜 메이저로 가는구나!
-이 시각에 ‘혼불’ 들으니까 소름이 오싹 돋네.
-김종훈도 창법이 많이 바뀐 듯. 난 원래 김종훈 목소리 별로였는데 이번엔 진짜 좋다.
곡도 좋았지만 창법이 바뀌고 듣기 좋아졌다는 평가가 줄을 잇고 있었다.
댓글을 읽은 팀원들이 연신 쌍엄지를 치켜들자 보컬 트레이너 서연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부끄러워한다.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이어지던 순간 회의실의 문이 반 정도 열렸다.
그리고 그 틈으로 김종훈이 얼굴을 슬그머니 들이민다.
“윤호야. 어떻게 됐어?”
징크스가 있다더니 도저히 궁금증을 못 참고 올라온 모양이다.
“들어와서 확인해 봐.”
“안 돼. 나 징크스 있다고 했잖아. 나쁜지 좋은지 그것만 말해줘.”
강하나가 냉큼 달려가 김종훈의 팔을 붙잡았다.
“더 올라갈 순위도 없어요! 빨리 들어와서 직접 봐요.”
더 올라갈 순위가 없다는 건 1위라는 뜻.
회의실로 들어온 김종훈은 힐끗거리며 대형 LCD에서 순위를 확인했다.
“아자! 듀엣곡으로는 1위다!”
김종훈은 가수답게 풍부한 성량으로 회의실이 떠나가라 외쳤다.
그 후 김종훈은 들뜬 표정으로 서연우에게 다가갔다.
그 역시 매일 서연우의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연우 쌤. 덕분에 내 평가가 확 달라졌는데 이거 어떻게 보답하지?”
서연우가 손사래를 친다.
“아니에요. 종훈 형님이 워낙에 잘하셔서 전 한 것도 없었는데요 뭘.”
“또 이런다. 그러면 내가 알아서 선물 준비한다?”
김종훈은 기대하라며 서연우의 손을 잡고 흔들어댔다.
잔뜩 들뜬 김종훈은 이번엔 날 불렀다.
“윤호야. 그러면 무대는 MBS만 준비하면 돼?”
“아니. SBC랑 KBC도 준비해야지.”
“왜? 거긴 까였다며?”
“두고 봐. 이제 곧 저쪽에서 먼저들 연락해 올 거니까.”
방송 삼사에서 이 순위를 보고 그냥 있을 리가 없다.
등록과 동시에 두 곡을 1위와 2위로 연달아 차트에 올렸는데 그대로 볼 인간들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란희야. 팬카페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
“이제 열려고요.”
강하나의 팬클럽 ‘ONE & Only’는 온라인 카페에서 가입을 받을 예정이다.
도란희가 클릭 몇 번으로 포털 사이트에서 카페를 개설했다.
“팀장님. 됐어요!”
잠시 후.
강하나의 스타그램에 팬카페를 열었다는 글이 업로드된 순간 카페에 급속도로 가입자가 늘기 시작한다.
“5백 6백······ 팀장님! 가입자 증가 속도가 미쳤어요!”
카페 가입자 수가 초당 백씩 올라간다.
도란희가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면서 묻는다.
“팀장님. 팬클럽 가입하면 주기로 한 기념품은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 다 줘야지.”
팬카페에 가입한 일반 회원 중 만 원을 입금하면 정식 팬클럽 회원으로 전환된다.
팬클럽 가입 선물은 최상급 굿즈였고.
“하나 팬들은 좋겠네.”
김종훈이 부러워하는 듯 말하며 날 쳐다본다.
“안 돼. 돌아가!”
김종훈이 발끈한다.
“내가 뭘 했는데?”
“너 또 우리 회사에 오겠다고 말하려고 했잖아.”
김종훈이 입술을 삐죽인다.
“귀신같은 자식······”
이제 녀석이 말하려는 건 눈빛만 봐도 알 것 같다.
하지만 SJ 엔터 이서준 회장이 오늘도 김종훈이 이적하면 가만히 안 있을 거라는 까톡을 보내왔기 때문에 절대로 허락할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어. 왔다.”
드디어 기다렸던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 : KBC 차태희 PD]
“다들 잠시만 조용!”
들뜬 분위기던 직원들이 단숨에 입을 닫았다.
이제부턴 방송국을 상대로 협상(?)을 해야 했으니까.
전화를 받자. 다급한 차태희 PD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 팀장님! 지 지금 좀 뵐 수 있을까요?
현재 시각 오전 12시 30분.
이미 웬만한 직장인들은 꿀잠에 빠져 있을 시간이다.
“이 늦은 시간에 방송국에 들어오라고요?”
-아 아뇨! 지금 제가 정 팀장님 쪽 회사로 가고 있어요.
하지만 난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흐름은 우리 쪽으로 돌아왔으니 최대한 튕겨야 좋은 조건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글쎄요. 시간이 너무 늦어서 뵙기에는 좀 무리가 있을 것 같은데요······.”
차태희 PD가 다급히 외친다.
-저 정 팀장님! 무조건 우리가 잘못했으니까 얼굴을 보고 이야기해요! 지금 우리 CP님도 함께 가고 있어요!
김영국 CP까지 이 시간에 함께라면 최소 국장 선에서 지시를 내렸다는 소리였다.
하나의 곡이 음원 1위를 하는 것을 보고 방송국이 뒤집어졌나 보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밀당을 할 기회였다.
“저기······ 이미 MBS랑 단독 출연을 약속했습니다. 죄송한데 오셔도 딱히 할 이야기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순간 전화기 너머로 김영국 CP의 고성이 터져 나왔다.
-뭐? MBS에서 단독 데뷔 무대를 한다고?
“예. 오늘 CP님께 까인 다음에 MBS에 가서 사정사정해서 겨우 무대 얻었습니다. 독점을 조건으로 무대를 땄기에 다시 되돌리기에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김영국 CP가 다급히 외친다.
-세상에 조건만 맞추면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5분 안에 그쪽 회사에 도착하니까 사무실에서 봐! 일단 보면서 이야기해! 응?
김영국 CP는 내가 또 거절할까 봐서 멋대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전화를 끊은 난 팀원들을 보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KBC PD랑 CP가 직. 접. 온다네요?”
그 순간 팀원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다.
이어서 난 24시간째 자지 않고 있는 도란희에게 시선을 돌렸다.
“란희야. 이 정도면 만족해?”
PD와 CP가 이렇게 당황한 걸 보니 좋냐고 묻자 도란희가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흐흐흐. 아직이요. 이따가 두 사람 올 때 저도 데리고 가 주세요. 눈앞에서 두 사람이 사과하는 거 보고 싶어요. 흐흐.”
도란희의 새빨갛게 충혈된 눈이 점점 광기로 물들고 있었다.
그래서 난 즉각 은지유 대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은 대리님이 저랑 같이 가시죠. 란희가 미친 짓 할 거 같아서 못 데리고 가겠어요.”
“그럴까요?”
도란희가 내 팔을 붙들고 다급히 외친다.
“아~ 왜요! 팀장님. 그러지 좀 마요! 네?”
“알았어. 알았으니까 이것 좀 놔! 옷 늘어져!”
“예~ 썰!”
결국 은지유 대리와 도란희 두 사람을 모두 데리고 이동민 실장의 방으로 향했다.
CP가 오는 만큼 최소한 격을 맞추기 위해서는 이쪽도 실장 한 명은 나가야 하니까.
이제부터 난
강하나의 무대를 최고로 만들어 주기 위해 뜯어낼 수 있는 건 다 뜯어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