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1화
311. 오복희 3
MBS가 유일한 옵션이 아닌 걸 알아차린 순간 주도권은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
“정 팀장! CP도 오 PD가 원하는 사람으로 정하게 해줄게! 그리고 한 작가도 <아름드리나무 아래서>를 쓴 경력을 대우로 편당 3천! 됐지? 이 정도면 최고로 대우해 준 거야! 알지?”
실로 파격적인 제안이 쏟아지고 있었다.
“대표님. 그럼 편당 제작비는 얼마나 주실 겁니까?”
“편당 5천 더 올려서 3억 5천! 어때?”
“감사합니다. 다만 고료 계약은 좀 수정했으면 합니다.”
작가의 고료가 편당 3천만 원이면 50화에 15억을 받는 계약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인센티브 계약.
회귀 전 <화란전>은 부가 수입과 해외 판권 수입의 개런티 조항을 넣으면서 2%만으로도 10억 이상을 벌었기 때문이다.
“고료가 왜? 이 정도면 최상이잖아!”
“예. 압니다. 지금 고료를 올려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편당 고료를 줄일 테니 인센티브 조건을 계약에 넣어주셨으면 합니다.”
“인센티브?”
“예. 몇 프로로 해주시느냐에 따라서 고료를 최대 천만 원까지 삭감하겠습니다.”
잠깐 주판을 두드려 보던 최상병 대표가 외친다.
“1%!”
난 즉각 고개를 저었다.
“3% 주십시오!”
“1.5%!”
“3% 주십시오!”
“2%! 더는 안 돼!”
“3% 주십시오!”
“아니 이 친구가?”
“3% 주십시오!”
“자네······ 계속 3% 고집할 거면 그 입 다물게.”
“······.”
“아니 다물란다고 진짜 다물어? 나랑 싸우자는 건가?”
“······.”
“젊은 사람이 왜 그리 고집을 부리나! 서로 양보해서 2% 선에서 합의 보세!”
난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을 세 개 들어 올렸다.
이럴 땐 노빠꾸가 답이다.
“곧 죽어도 3%라 이건가? 입 열고 말해!”
“해달라는 거 다 해주신다면서요?”
최상병 대표가 긴 한숨을 쉰다.
“나 원 내 평생 이런 협상은 처음이군. 그래 3% 해! 대신 편당 고료 2천만 원을 낮추지. 콜?”
“콜!”
협상이 끝난 순간 최상병 대표가 몸을 부르르 떤다.
최상병 대표는 드라마 제작을 자신이 먼저 제안했지만 역으로 몰리는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유진이의 인기.
한우주 작가와 유선정 작가의 소송으로 인한 화제성.
<신의 이름으로>의 시청률 30% 돌파.
거기에다 다른 방송국들까지 <화란전>에 관심을 가진 순간 모든 게 내가 원하는 대로 이뤄지고 있었다.
그 순간 강감찬 대표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러면 계약서를 쓸까요?”
MBS의 최상병 대표가 한숨을 폭폭 내쉰다.
“이거 빨리 안 쓰면 또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겠군. 당장 사인하지 정 팀장.”
완전히 당했다는 표정으로 최상병 대표가 법무팀에 연락을 넣었다.
계약서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최상병 대표가 내게 묻는다.
“정 팀장! 그런데 진짜 다른 데 가려고 한 거야? 아니지?”
난 씨익 웃으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사실 처음 제안을 해준 곳이 MBS라 어지간하면 다른 곳에 갈 생각은 없었다.
다른 파트너를 만나 처음부터 다시 계약 조건을 맞추려면 얼마나 골치가 아픈데.
아무튼 방송 삼사의 필두 MBS와의 첫 승부는 이렇게 내 완승으로 끝이 나고 있었다.
* * *
대표이사실을 나오자 오복희 PD는 언제 제재를 받았냐는 듯 밝은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정 팀장님이 잘 나간다는 소리를 괜히 듣는 게 아니었네요. 안에서 아주 제법이시던데요?”
난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하여간 덕분에 징계도 풀렸으니까 바라는 거 있으면 말해 보세요.”
“별 건 없고 최 대표님이 약속한 대로 배역만 몇 개 주시면 됩니다.”
“진짜 그게 끝이에요? 작품에 간섭하실 생각도 없고요?”
“예. 진짜 그게 끝입니다. 그리고 매니저가 어떻게 연출에 관여합니까?”
“헐~ 대박.”
날 빤히 쳐다보던 오복희 PD가 이지연 작가에게 묻는다.
“작가님. 정 팀장님의 진짜 정체가 대체 뭐예요? 뭐 재벌 아들이라도 돼요? 아니면 혹시 이번 드라마 스폰서예요?”
“보면 몰라? 그냥 매니저잖아.”
오복희 PD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말도 안 돼! 그냥 매니저가 방송국 대표랑 국장도 몰아세운다고요?”
이지연 작가가 장난스레 웃는다.
“자세한 건 오 PD가 앞으로 천천히 알아봐. 근데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랑 여기 솔잎이 그리고 한 작가는 유노를 보고 모인 거라는 거야.”
“지금 그거 정 팀장님한테 밉보이면 가만 안 두겠다는 말 맞죠?”
이지연 작가가 피식 웃는다.
“유노는 자기한테 밉보일 짓은 하지도 않을걸?”
오복희 PD가 내 쪽을 다시 쳐다본다.
“어차피 자주 볼 거니까 차차 알아가요. 그런데 나 드라마 설렁설렁은 안 만들어요. 스케줄 빡셀 거고 매니저들도 일정 때문에 곡소리 날 거예요. 괜찮겠어요?”
“시청률만 잘 뽑아 주시면 됩니다.”
그러자 곁에 있는 유진이가 입을 열었다.
“PD님! 저도 최선을 다할게요.”
오복희 PD가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요. CP는 류한준 선배님에게 부탁드릴 거예요. 불만 있으면 지금 말해요.”
류한준 CP는 경력 20년의 관리자로 국장 승진을 하지 못한 사람이다.
회귀 전에도 오복희 PD와 함께 퇴사해 <화란전>을 만든 인물이고.
“오 PD님 뜻대로 하시면 됩니다.”
“벌써 마음에 들기 시작하는데요?”
오복희 PD가 만족한 표정으로 한우주 작가를 쳐다본다.
“한 작가님. 그러면 대본은 언제 다 나와요?”
한우주 작가가 폰을 손에 쥔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일단 5화까지는 썼어요.”
“그러면 완성된 분량만이라도 미리 줄 수 있어요? 연출 구상 좀 하게요.”
한 우주 작가가 까톡으로 대본을 건네주자 오복희 PD는 선 채로 대본을 읽어나갔다.
“뒤로 갈수록 재미있네. 제가 회사 내에서 좋은 스태프란 스태프는 다 끌어 올게요. 나만 믿어요!”
“부탁드릴게요.”
이어서 대본 10화 정도까지 나오면 캐스팅 일정을 다시 잡자고 계획을 세웠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제작비 170억의 대작이 이렇게 첫발을 디뎠다.
신인 한우주 작가와 드라마 광인 오복희 PD를 중심으로 말이다.
* * *
집으로 돌아온 순간 유진이가 꿈만 같다는 표정을 짓는다.
“오빠. 편당 1억 1천만 원이 진짜죠?”
유진이는 실감이 나지 않는지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물었다.
“당연하지. 나중에 계약서 받아서 미소처럼 코팅해 둬.”
유진이가 혀를 빼꼼 내밀며 대답했다.
“힛. 그래야겠어요.”
유진이는 버거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에서 지금처럼 바뀐 게 믿어지지 않는 듯 굴었다.
내가 회귀한 게 작년 12월.
그리고 지금은 8월이니 그녀의 인생이 바뀐 건 아직 채 1년이 지나지 않았다.
TV를 틀면 이곳저곳에서 유진이의 얼굴이 나오고 길거리를 걸으면 유진이의 입간판이 서 있었다.
버거퀸에선 조만간 유진 버거와 미소 버거를 만들어낼 계획조차 있다는 상황이고.
꿈만 같다는 표정을 짓는 유진이에게 물었다.
“그런데 힘들진 않아?”
“뭐가요?”
“이번 드라마 끝나면 바로 또 다음 드라마 촬영해야 하잖아.”
유진이가 고개를 젓는다.
“예전엔 이것보다 더했어요. 그때보다 적게 일하고 돈은 훨씬 더 버는데 뭐가 힘들어요. 이 정도면 축복받은 거죠. 안 그래요?”
행복해하는 그녀의 대답을 듣자 그동안의 내 노력이 헛되지 않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면 오늘 저녁은 기념으로 뭐 좀 시켜 먹을까? 아니다 한우 먹으러 갈까?”
“진짜요?”
“그래. 뭐든 말해. 내가 쏜다!”
유진이가 웃으며 답했다.
“그러면 특 수육 국밥이요. 순대 한 접시랑 해서요!”
“응? 고작 그거?”
“수육 국밥이 어때서요? 그리고 미소가 그걸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수십억짜리 계약을 맺었지만 축하 음식은 그저 수육 국밥과 순대로 만족한다고 말한다.
S급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녀의 욕심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때였다.
“엄마~~ 다녀왔습니다~!!”
2층 현관문이 열리며 정인지 주인아줌마의 손을 잡은 미소가 들어온다.
노란 모자를 쓰고 노란 가방을 멘 병아리 차림으로.
“어? 삼촌도 있었네? 삼촌 다녀왔습니다~”
배꼽 인사를 하는 미소를 보며 유진이가 외친다.
“미소야 오늘 저녁은 수육 국밥 먹을까? 삼촌이 쏜대! 아 참 순대도!!”
미소가 행복한 얼굴로 외친다.
“그럼 난 간이랑 허파도 먹을래요!!”
그 순간 수십억 계약을 맺었던 때보다 더한 웃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 * *
굴렁쇠 엔터의 회의실.
MBS와 <화란전>의 계약을 맺었단 소식에 정 팀 팀원들이 다들 넋이 나간 표정을 짓는다.
이영진이 침을 꿀떡 삼키며 묻는다.
“팀장님. 유진 씨 출연료만 55억이라는 거죠?”
“맞아.”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S급 배우를 드디어 가졌다는 감동에 정 팀 식구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와~ 이거 실화냐?”
“대~~박!”
“미친! 드라마 하나에 55억?”
이영진을 비롯해 다들 얼싸안고 난리였다.
“일단 다음 달에 선금으로 10억 들어올 거고 나머지는 나눠서 들어올 거야. 올해 출연료로만 20억 추가 수입 올릴 거고.”
“진짜 이러다가 올해 배우랑 가수랑 해서 100억 넘기겠는데요?”
현재 9월까지 매출은 배우와 가수 실을 합해 약 57억.
하루와 이태풍 그리고 한우주 작가와 체리블라썸까지 다 더하면 100억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었다.
“자자. 진정하고. 그런데 은 대리님. 하나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갑니까?”
다음 주.
강하나는 지상파 음악방송에 데뷔하게 된다.
그걸 위해 오늘은 음원 차트에 곡을 올릴 예정이고.
“업데이트 준비에는 문제가 없나요?”
“네. 이따가 12시에 멜랑 사이트에 음원 올릴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브원은 언제 음원을 등록한답니까?”
이번 주 끝이 난 <글로벌 프로듀스 47>는 최종 순위 결정전 11위까지의 멤버들을 한데 모아 이브원(EVE*ONE)이라는 프로젝트 걸그룹을 결성했다.
그리고 그 이브원도 다음 주 음방에 나온다.
“걔들 음원은 내일 등록한다고 하더라고요.”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따가 하나 라이브 방송 때 홍보 좀 하라고 전해주세요.”
“예. 그럴게요.”
난 강하나의 일정을 체크한 뒤 다음 주 음방 출연 순서를 잡는 페이스 미팅에 관해 물었다.
“SBC랑 KBC 그리고 MBS와는 페이스 미팅이 언젭니까?”
“2시간 정도 뒤로 잡혀 있어요. 란희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KBC에서 대기 중이고요.”
“알겠습니다. 팀장 회의 끝나면 저도 같이 가죠.”
“네. 팀장님.”
“자 그럼 저희 회의는 여기까지 하고. 전 팀장 회의에 다녀오겠습니다.”
“예! 다녀오십시오!”
정 팀의 회의를 끝내고 6층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선 김동수와 주호성 팀장이 뭔가 이야기를 나누는 게 보였다.
‘조금만 기다려······.’
두 사람은 최만식의 하수인.
최은태 회장에게 참으라고 했듯 나 역시 최만식 대표를 처리할 때까지는 감정을 숨겨야 했다.
강은기가 죽을 뻔했지만 난 아무것도 모르는 듯 자리에 앉았다.
순간 김동수와 주호성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난 속내를 감춘 채 두 사람에게 가볍게 목례를 건넸다.
두 사람이 흠칫했지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강감찬 대표가 들어오며 회의가 시작되었다.
“자. 다들 모였으니 회의 시작하지.”
회의실에선 우선 각 실급 보고와 팀장 등의 업무 보고가 이뤄졌다.
그리고 이어서 나의 실장 승진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었다.
“우리 정 팀장이 약속한 대로 ‘화란전’을 MBS와 계약했다. 자 다들 박수!”
강감찬 대표의 말에 구성철 실장을 비롯해 모두가 손뼉을 친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팀장들에게 인사를 한 뒤 그다음 나올 말을 기다렸다.
“주주분들이 전체적인 틀에는 찬성하셨지만 실장 승진에 한 가지 조건을 거셨다.”
“어떤 조건입니까?”
“연말까지 ‘정 팀’이 매출 100억을 달성하는 게 그 조건이다.”
생각 이상의 조건에 팀장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좀 센데요?”
“100억이면 승진을 안 시켜주겠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팀 단위가 아닌 실급의 매출을 훌쩍 뛰어넘는 결과를 내라고 했기 때문이다.
굴렁쇠에선 매출 50억을 넘긴 팀이 그다음 해에도 50억을 달성하면 그때 실로의 승격을 논의한다.
일례로 배우 1실의 팀장이던 김동수는 2년 연속 60억이라는 실적을 달성한 뒤 배우 3실을 만들며 실장으로 승진했었고.
아무튼 100억이라는 금액은 한 팀이 달성하기엔 엄청난 매출 기준.
불만을 가졌던 이들도 입을 다물었다.
승격을 논의하게 되는 2년 치 동안의 매출 기준을 남은 3개월 안에 마저 채우라는 뜻이었으니까.
“할 수 있겠나? 정 팀장!”
강감찬 대표의 말에 난 호쾌하게 대답했다.
“예! 대표님!”
“그래. 올해 안에 4실 만들어 보자.”
그런데 그때였다.
까톡을 알리는 진동이 울린다.
모른 척하려 했지만 계속되는 까톡이 울려 확인했다.
그런데 어처구니가 없는 까톡이 와 있었다.
[도란희 : 팀장님! 큰일 났어요! 우리 하나 다음 주에 음방 출연 못 할 거 같아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