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5화
305. 최은태 2
“설마······ 아니지?”
강은기가 죽은 게 아니냐고 묻자 이수찬이 고개를 젓는다.
“예. 목숨에는 지장이 없으시답니다.”
짧게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누구한테 찔렸는데? 아니 그것보다 얼마나 다쳤는데?”
이수찬이 부들부들 떨며 대답한다.
“둘 다 모르겠습니다. 지금 변호사도 구치소장에게 연락받고 다시 들어가는 길이랍니다.”
대체 어느 정도로 다쳤는지 누구에게 다친 건지도 알 수 없단다.
대답하던 이수찬이 주먹을 꽉 쥐며 말한다.
“형님! 분명히 이건 최만식! 그 새X가 한 짓입니다!”
이수찬의 말대로 감옥 안에서 손을 뻗쳤다면 최만식 정도는 되어야 한다.
하지만 조폭 시절의 원한일 수도 있기에 속단할 순 없었다.
잠깐 생각에 잠긴 틈을 타 이수찬이 최동혁에게 외친다.
“동혁아 미래상상 저축은행으로 바로 들어가자!”
“그래. 트렁크에 연장도 있으니까 이대로 가면 돼.”
미래상상 저축은행은 최만식 대표가 이사로 있는 회사.
이수찬은 곧장 최만식부터 치자고 말한다.
최동혁이 동의하자 이수찬이 무전기를 잡았다.
그 순간 난 이수찬의 손을 꽉 붙들어 말렸다.
“수찬아! 참아!”
이수찬의 눈이 내 쪽을 향한다.
“지금 참으라고 하셨습니까?”
날카로운 그의 눈빛은 마치 조폭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하지만 죽어서 회귀까지 한 내가 이 정도로 겁을 먹을 리가 없다.
난 반쯤 정신을 놓아버린 이수찬의 정신줄을 잡기 위해 거친 말을 내뱉었다.
“이 자식. 눈빛 봐라! 왜? 나도 치려고? 이젠 형도 안 보여?”
순간 흥분으로 이성을 잃었던 이수찬의 눈동자에 빠르게 초점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 그런 건······ 아닙니다.”
정신을 차린 이수찬의 얼굴엔 불만이 남아 있었다.
강은기가 다쳤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굴고 있는 탓일 거다.
하지만 난 연거푸 이수찬을 몰아세웠다.
“정신 차려 이수찬! 너희들 정상적으로 살아 보라고 은기가 자수한 건데 흉기를 들고 저축은행에 쳐들어가? 왜? 뉴스에라도 나려고? 그냥 아예 경찰에다가 대고 다시 조폭을 하겠다고 선언이라도 하지 그러냐?”
내 말이 맞다 싶은지 이수찬의 기가 조금 더 꺾이기 시작했다.
최만식은 현재 미래상상 저축은행의 이사라는 엄연한 사회적인 인정을 받는 직책을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수찬이 이를 악물고 분노를 다스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진정한 이수찬을 향해 말했다.
“최만식을 그냥 둘 생각은 없으니까 오해하지 마.”
이수찬의 눈이 번뜩인다.
“정말이십니까? 형님.”
“그래. 그러니까 경거망동하지 말고 일단 은기 상태부터 계속 확인해 봐. 은기랑 같이 구치소에 들어간 애들도 자중시키고.”
“예. 형님. 그리고······ 조금 전에는 죄송합니다. 너무 화가 나서 그만.”
“괜찮으니까 어서 전화나 돌려.”
그제야 이수찬이 전화로 여러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 * *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10분간 누구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고 있었다.
늘 회사 업무 때문에 울리던 내 폰도 지금은 조용하기만 했다.
마치 뭔가 일어날 것처럼 말이다.
그때였다.
위잉!
내 폰인가 하고 봤더니 곁에 앉은 이수찬의 전화다.
“여 여보세요? 아 은기 형님? 괜찮으세요?”
밝아지는 이수찬의 얼굴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은기 형님입니다. 지금 구급차 안에서 전화하시는 거랍니다.”
“스피커폰으로 돌려봐.”
“예.”
이수찬이 스피커폰을 켜자 강은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윤호냐? 나 죽다 살았다. 씨X.
강은기는 구급 대원의 폰을 빌려 몰래 전화를 하는 거란다.
난 굳었던 얼굴을 풀고 대답했다.
“목소리 들어보니까 크게 다친 건 아닌가 보네?”
-어. 찔리긴 했는데 살 만해.
칼에 찔렸지만 팔 쪽을 살짝 그였을 뿐이란다.
“그런데 갑자기 어떻게 된 거야?”
-변호사 접견하고 들어오는데 한 놈이 덤비더라. 네가 미리 경고를 안 해줬으면 위험했을 거야.
“누군지는 알아?”
-몰라. 뽕쟁이라서 횡설수설하는데······ 지금부터 알아봐야지.
죽을 뻔한 강은기에게 대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더는 조폭처럼 살지는 않기로 엄마와 연실이 앞에서 약속까지 한 녀석인데.
하지만 이 상황이라면 그에게 무작정 약속을 지키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강은기는 그런 내 속내를 읽었는지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야 나 이제 조폭 아냐. 그러니까 누가 한 일인지 알아내면······ 그땐 다른 방법으로 갚아 줄 거니까 걱정하지 마.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그때 강은기가 생뚱맞은 소리를 해온다.
-그나저나 고맙다 윤호야.
“뭐가?”
-애들 옆에 있어 준 거! 아마도 너 없었으면 그놈들 진즉에 사고를 쳤을 거다.
날 쳐다보는 두 사람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인다.
혹시라도 혼이 날까 걱정하는 눈치였기에 슬그머니 말을 돌렸다.
“아냐. 얘들도······ 이제 조폭물 다 빠졌어.”
이수찬과 최동혁이 연신 감사하다고 고개를 굽힌다.
“그런데 병원은 어디래?”
-몰라. 안 알려주네. 범죄자라 이거지 뭐.
예상가는 곳이 있었지만 모른 척 시치미를 떼었다.
“알았다. 몸 관리 잘하고. 곧 면회 갈게.”
-범죄자가 무슨 면회냐. 아마 안 될 거야. 그리고 연실이한테는 말하지 마. 괜히 걱정만 끼치고 싶지는 않으니까.
“너 하는 거 봐서.”
-야 그게 더 무서워.
그렇게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강은기가 말한다.
-윤호야 너 최 회장 만날 거지?
“어.”
-그러면 내 말 좀 전해주라.
이제껏 유쾌하게 대화를 받던 강은기의 목소리 톤이 갑작스레 바뀌었다.
낮고 느릿하게.
-최 회장. 내 눈에 띄지 말라고 해.
“······.”
-수십 년 만에 나타나 우리 인생을 휘젓는 바람에 내가 죽을 뻔했다고. 차라리 내 아버지가 아니길 빌라고 해! 눈에 띄면 절대 가만 안 둘 테니까.
보통의 자식들이라면 아버지를 만나는 걸 기대하고 기뻐했을 거다.
하지만 그건 강은기와 내게는 통용되지 않는 가정이다.
부모 없이 자란 서러움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가 갈릴 정도였으니까.
“알았어. 그렇게 전할게.”
-이제 전화 끊어야 한단다. 나중에 또 전화할게. 그리고 너도 몸조심해. 최만식이 널 노릴 수도 있잖아.
“그래. 알았어.”
아무래도 이번에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최은태 회장을 만나 확인을 해야겠다.
누가 진짜 아들인지 말이다.
그런데 강은기의 경고 때문일까.
불안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동시에 섬뜩한 한 가지 경우의 수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제길. 아니겠지?’
* * *
미래상상 저축은행의 이사실.
곁에 서 있던 비서실장 양지훈이 귓속말로 뭔가를 말한다.
그러자 최만식이 싸늘한 표정을 짓는다.
“뽕쟁이가 실패했군. 칼솜씨가 쓸 만하다고 해서 기대를 했더니.”
“죄송합니다.”
최만식이 그럴 줄 알았다며 묻는다.
“아냐. 그보다. 회사 입구에는 애들 깔아뒀어?”
“예. 실력 좋은 놈들로 뽑아뒀습니다.”
최만식이 비릿한 웃음을 짓는다.
“괜히 피 보지 말고 오는 대로 경찰 불러. 놈들을 한 번에 잡아넣을 기회니까.”
“안 그래도 인근 서장들에게 미리 약을 쳐 뒀습니다.”
강은기에게 히트맨을 보내 처리하는 데 실패한 이상 당연히 그 동생들이 반격해 온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경찰을 동원해 조폭으로 모조리 감옥에 보내버릴 생각이었다.
수족이 날아간 이후라면 강은기 하나 처리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그때 양지훈 비서실장이 묻는다.
“혹시 그놈들이 안 오면 바로 플랜 B를 가동할까요?”
최만식이 시계를 본다.
“아까 남양주 공장에 놈들이 나타나 날새를 구출해 갔다고 했지?”
“예.”
“그럼 여기까지 오는 시간을 계산해보면 얼추 30분 이내로 쳐들어올 거다. 그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으면 플랜 B 가동해.”
강은기를 잡기 위해 여러 개의 덫을 깔아둔 최만식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양지훈 비서실장이 고개를 끄덕인 뒤 사무실을 나갔다.
급한 일들을 마무리한 최만식이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앞에 앉아 있는 굴렁쇠 엔터 주호성 팀장에게 말했다.
“주 팀장. 어쩌면 니 덕에 대박이 터질 수도 있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김동수보다 널 밀도록 하마!”
주호성 팀장이 노골적으로 웃으며 손바닥을 비볐다.
“꼭 그런 걸 바란 건 아닙니다만 기회를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일주일 전.
날새를 믿지 못하던 주호성의 레이더에 날새와 강은기의 식구들이 만나는 게 발각됐다.
큰 공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한 주호성은 김동수를 건너뛰고 곧바로 최만식을 찾아와 이 사실을 직접 보고했다.
그러자 최만식은 과감하게 구치소 안에 있는 강은기를 처리하려고 손을 썼다.
날새가 리버스 엔터와 함께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강은기를 의심하기에 충분했으니까.
최만식이 말에 주호성이 연신 맞장구를 쳐댔다.
그러나 주호성의 내심은 겉과 달랐다.
‘씨X. 미쳤다 미쳤다 해도 설마 이렇게까지 미친X일 줄이야!’
단지 의심이 간다고 말했을 뿐인데 사람을 죽이려고 할 줄은 몰랐다.
장단을 맞추는 주호성의 등줄기엔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순간 최만식이 새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받아. 수고비다.”
“이런 걸 바란 건 아닙니다. 대표님.”
두툼한 봉투를 본 주호성은 침을 꼴딱 삼키며 거절했다.
마치 이 돈이 자신의 목숨값처럼 느껴졌으니까.
“왜? 자신 없어? 설마 이제 와서 강은기가 우리 영감 친아들이 아니라는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지?”
주호성은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틀림없을 겁니다!”
최만식이 싱긋이 웃는다.
“그래. 그래야지. 강은기가 최 회장 아들이 아니라면 호성이 네가 책임져야 할 테니까!”
주호성이 마른침을 삼켰다.
‘책임을 지라면······ 설마 목숨이라도 내놓으라는 건가?’
여기가 법치국가 한국이 맞나 헷갈렸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상황이다.
최만식이 주호성의 뺨을 톡톡 두드린다.
찰싹찰싹하는 소리가 나는데도 주호성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 남자가 큰일을 하려면 그 정도 확신은 있어야지. 아 그건 그렇고 정윤호 그놈은 곧 실장을 단다지?”
“예!”
“그 문제는 내가 어떻게든 늦춰보지. 그러니까 넌 그 전에 배우들 몇 명 맡아서 키워봐. 뒷돈을 좀 챙겨줄 테니까.”
“예! 대표님.”
직접적인 지원을 말하자 주호성의 얼굴에서 빛이 난다.
“대신 내 지시는 잊지 말고.”
“예. 박 의원님 당 대표 축하연 뒤풀이 때 A급 이상만 준비하겠습니다.”
강감찬 대표 몰래 최만식에게 상납할 여자 연예인들을 준비하는 주호성이었다.
몇몇은 굴렁쇠 엔터 소속으로 몇몇은 다른 회사 소속으로 말이다.
“그래. 그래야지.”
그렇게 대화를 하는 사이 30분이 지났다.
최만식이 손에 찬 손목시계를 가만히 쳐다본다.
“아무래도 이것들 안 오나 본데?”
그렇게 혼잣말한 최만식은 전화를 들었다.
“어. 난데. 아무래도 플랜 B로 가야겠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알겠다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 * *
서울 H 병원.
강은기가 있던 구치소는 환자가 생기면 모조리 지정 병원인 이곳으로 보낸다.
회귀 전 대마로 구속된 이성준의 맹장이 터졌을 때 왔던 곳이었다.
그리고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강은기는 구치소 환자 전용층인 7층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눈치를 보며 엘리베이터에 빠르게 올랐다.
꽃바구니를 든 이수찬과 음료수 선물 세트를 든 최동혁도 내 뒤를 따랐다.
문이 닫히고 우리만 남자 이수찬이 묻는다.
“형님. 여긴 왜 오자고 하신 겁니까? 병문안 꽃바구니까지 들고서요.”
“아마 여기에 은기가 입원해 있을 거야.”
“여기에요?”
“그래.”
순간 최동혁이 묻는다.
“어차피 은기 형님은 면회도 안 될 텐데······ 혹시 빼내시려고요?”
“은기가 무기 징역을 선고받은 사형수냐? 빼내긴 왜 빼내? 영화 찍냐?”
최동혁의 말대로 습격까지 당한 죄인을 쉽게 면회할 수 있을 리 없다.
빼내는 건 더욱 안 되는 일이고.
하지만 그런데도 찾아온 건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최만식이라면 또 한 번 더 노릴 수 있다.’
명동의 살모사라고 알려진 그가 쉽게 포기할 리가 없었다.
난 인상을 굳힌 채 두 사람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잘 들어. 7층에 도착하자마자 입구에 경찰이 없으면······ 두 사람 모두 들고 있던 거 놓고 바로 날 따라와.”
강은기가 왔다면 7층 엘리베이터 입구에는 경찰 두 명이 지키고 있을 거다.
아마 병실 복도에도 한 명이 지키고 있을 거고.
하지만 최만식이 강은기를 노린다면 경찰들 세 명은 모두 자리를 비웠을 거다.
“설마 그 인간이 경찰까지 움직일 수 있습니까?”
“확실하지는 않은데 그러고도 남을 놈이긴 해.”
회귀 전 김동수가 온갖 로비를 하고도 무사했던 건 정치권을 비롯해 고위 경찰과 검사들과도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상황을 파악한 두 사람의 눈빛이 번뜩인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긴장하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7층에 멈춰 섰다.
띠잉!
“7층입니다.”
안내 음성이 울린 뒤 문이 천천히 열린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앞과 병실 앞을 지켜야 할 경찰이 보이지 않았다.
내 생각이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