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4화
304. 최은태 1
‘날새가 잡혀갔다고?’
맹렬한 경계경보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만약 날새의 입에서 최은태 회장의 아들에 관한 정보가 흘러나간다면 강은기나 나나 위험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난 곧장 이수찬에게 리버스 엔터에서 보자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난 고개를 갸웃하는 유진이에게 말했다.
“유진아. 미안한데 나 먼저 좀 가 볼게. 갑자기 일이 생겨서.”
“무슨 일인데 그래요? 표정이 너무 안 좋은데······.”
“아무튼 오늘은 좀 늦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난 별일이 아니라고 말한 뒤 곧장 이수찬의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이수찬과 최동혁을 제외하고도 20명 정도의 전투 조가 모여 있었다.
“가자. 시간 없다.”
“예. 형님.”
혹시나 모를 일을 위해 마스크와 방검복 그리고 야구 배트를 챙기고 있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 다섯 대에 나눠 탄 우리 일행은 곧바로 경기도 남양주로 향했다.
날새에게 위치추적 장치를 달아놓은 터라 앱에 위치가 나오고 있었다.
그때 앞자리 조수석에 앉은 최동혁의 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형님. 감시조 녀석들의 보고입니다.”
현재 날새는 경기도 남양주의 폐공장 건물 안으로 끌려간 상황이라고 한다.
그리고 현재 날새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감시조는 건물 내부에 몇 명이 있을지 몰라 망원경으로 주위를 살피고만 있단다.
최동혁이 얼굴을 굳히고 묻는다.
“형님. 다소 무리라도 진입부터 시키는 게 어떻습니까?”
“그러다 애들 다치면? 됐어. 다 같이 들어가자. 아무리 급해도 동생들이 다치는 건 안 돼.”
최동혁이 혀를 내두른다.
“형님도 참 대단하십니다.”
“뭐가?”
“긴장도 안 되십니까? 저희야 칼밥 먹고 산 세월이 있지만 형님은 그냥 직장인이잖습니까?”
한 번 죽고 나니 깡이 좋아져서 그런 모양이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날새 일에나 집중하자.”
“예. 형님!”
최동혁은 든든하다면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잠시 후.
목적지에 도달했다.
우린 혹시나 들킬까 봐 공장에서 대략 50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차를 세웠다.
“수찬아. 복면 준비했지?”
“예.”
난 심호흡을 하고 복면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혹시 몰라 방검복도 착용한 뒤 이수찬에게 말했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괜히 이런 일에 말려들었네.”
이수찬이 피식 웃는다.
“은기 형님을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리고 형님이 어디 남입니까?”
“고맙다.”
차에서 내린 우린 상대가 칼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기에 다들 야구 배트를 꺼내 들었다.
이수찬이 뒤를 보며 말한다.
“최대한 싸우진 않고 제압만 하고 빠진다! 혹시나 위험해져도 막기만 해! 우리 더는 조폭 아니다 알겠지?”
다들 이수찬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먼저 이수찬과 최동혁 그리고 내가 가장 앞서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린 이내 감시조가 있는 곳에 도달했다.
5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낡은 폐공장이 보인다.
공장을 감시하던 감시조 두 사람이 다가와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날새 그 친구를 보호하던 조원들이 교대하려는 타임에 갑자기 들이닥쳐서······.”
무릎을 꿇으려는 동생들의 팔을 붙잡았다.
“무슨 무릎까지 꿇어? 일어나.”
감시조의 보고에 따르면 현재 공장에는 네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아까부터 비명이 들립니다.”
난 이수찬과 눈빛을 맞췄다.
“시간이 촉박한 것 같다. 가자.”
“예.”
우린 복면을 쓰지 않은 감시조를 뒤로 돌리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먼저 최동혁이 동생들을 이끌고 빠르게 공장의 벽으로 달렸다.
아무도 공장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없었기에 다음으로 나와 이수찬이 남은 동생들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벽에 달라붙어 유리창으로 슬그머니 안을 쳐다보자 허름한 폐공장의 가운데 손을 뒤로 묶인 채 낡은 의자에 붙들린 날새가 보인다.
꽤 심하게 당했는지 얼굴이 엉망이었다.
그 순간 날새를 둘러싼 두 사람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뭐 한다고 입을 닫고 있어? 빨리 불어!
-도촬이나 해서 먹고사는 더러운 놈이라고 들었는데 입이 왜 이리 무거워?
-야! 누가 최 회장 아들인지 말만 하면 바로 풀어줄게.
-그래 쉽게 가자. 강은기가 최 회장 아들 맞지? 그게 아니면 은기네 식구들이 널 보호하고 있을 리가 없잖아 안 그래?
날새라면 진즉에 불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입을 다물고 있었던 모양이다.
날새가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자 금목걸이를 한 남자가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날새의 고개가 왼쪽으로 돌아간다.
-얀마! 정신 차려!
날새가 정신을 차렸다.
-으으. 난 몰라······ 난 몰라······.
난 즉각 이수찬에게 말했다.
“수찬아. 지금 빼내자. 아직 안 불었다.”
평소 같았으면 더 조심했을 거다.
넓은 공장의 주변 부지에는 탈출구도 몇 개는 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대로 놈들을 놓칠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날새가 이름을 불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이수찬이 고개를 끄덕이곤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마치 군대에서나 쓸 법한 수신호를 보냈다.
최동혁이 수신호를 본 뒤 5명 정도를 데리고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발길질을 하며 문을 부숴버렸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최동혁과 5명이 빠르게 안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난 이수찬과 함께 곧장 그 뒤를 따랐다.
우리가 들어가자 날새의 곁에 있던 두 남자가 외친다.
“XX. 어디서 온 거야?”
“XX! 야! 쪽수 많다 튀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지 놈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최동혁이 가장 앞서 놈들의 뒤를 따랐지만 거리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잡아!”
최동혁의 외침에 동생들이 죽어라 쫓았지만 납치범들도 걸음아 나 살려라 반대쪽 출구를 향해 달려다.
“야~~! 시동 걸어!”
공장 반대편 쪽에 일행이 있었는지 차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반대편 출구로 나가자마자 문이 쾅 하고 닫혔다.
뒤따라간 최동혁이 문을 발로 찼지만 밖에서 잠갔는지 열리지 않았다.
이어서 부웅 하고 차가 출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숨을 쌕쌕 몰아쉰 최동혁이 뒤쪽을 향해 외쳤다.
“영훈이랑 상철이! 바로 차 끌고 쫓아가 봐!”
“예!”
이수찬과 최동혁이 도망간 놈들을 뒤쫓으라고 부산을 떠는 동안 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날새에게 다가갔다.
얼굴은 팅팅 부어 있고 입 안이 터져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으으······ 난 몰라······. 난 몰라······.”
난 날새의 뒤로 돌아가 묶인 손을 풀었다.
“범준 씨!”
“으으으······ 나 난 모른다니까?”
“접니다!”
날새의 손목을 푼 난 그의 앞에서 복면을 벗었다.
멈칫하던 날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다.
퉁퉁 부어 있는 눈꺼풀을 어렵게 떠올린 그의 눈동자에 초점이 잡혔다.
“정 팀장······?”
“예 맞습니다.”
날 알아본 날새가 갑자기 가슴을 들썩이며 웃기 시작했다.
“씨X. 겁나게 반갑소. 키키키킥······.”
안도의 한숨 대신 그는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입 안이 터져 피가 섞인 침을 흘려가면서.
난 주변을 둘러보며 물을 달라 말했다.
동생 중 한 명이 가져온 생수통을 들고 그가 웃음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웃음을 마친 날새가 오른손을 부들부들 떨며 들어 올렸다.
“그거 말고 담배 한 까치만 주쇼.”
주변 정리를 마친 이수찬이 인상을 썼지만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나 담배 있으면 하나 줘.”
하는 짓이 마음에 드는 인간은 아니지만 최소한 의리는 지켰다.
얼굴이 엉망이 될 때까지 맞으면서도 아무것도 불지 않은 사람에게 담배 한 개비 정도야.
동생 중 한 명이 담배를 빨아 불을 붙여 내밀었다.
힘들게 받아든 날새가 길게 한 모금을 빨아들인다.
새하얀 연기가 입과 코로 나오자 아픈지 인상을 찌푸렸다.
콜록거리던 날새가 한숨을 푹 내쉰 채 말한다.
“구하러 올 줄 알았수다. 그래서 그 씨X 놈들이 패는데도 한 마디도 안 했소. 내가!”
생각할수록 분하고 억울한지 점점 울먹이는 목소리를 뱉는 날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날새가 담배 한 모금을 더 빤 뒤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최근 김동수의 독촉이 심해지자 날새는 다시 최은태 회장의 잃어버린 아들을 찾는 일을 재개했다고 한다.
그런데 남은 후보들을 찾는 게 예상보다 너무 쉬워 변수가 생겼다.
본래라면 남은 후보들이 건설 현장에서 일하느라 지방에 있어야 했는데 계속되는 불경기로 인해 대부분이 집에 있었단다.
하루 이틀 사이에 모든 후보를 만난 날새 입장에서는 더는 시간을 끌 방법이 사라졌다.
결국 날새는 내가 대흥 저축은행 측을 만날 때까지 잠적하기로 결심했다 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복면을 쓴 남자들이 들이닥쳤단다.
그 이후로는 이렇게 폭행을 당하고 있었고.
이야기를 들은 순간 한 가지를 확신할 수 있었다.
‘최만식 쪽에서 저지른 짓이네.’
날새를 납치하면서까지 이 정보를 얻으려 할 사람이라면 결국 최만식과 최은태 두 사람뿐.
그중 최은태 회장은 수족인 대흥 저축은행 측과 직접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기에 이런 무리수를 둘 리가 없었다.
“그런데 듣다 보니 저쪽은 은기를 최 회장의 아들로 생각하는 것 같던데. 맞습니까?”
날새가 입을 행군 물을 바닥에 뱉었다.
“카악~ 퉤. 그렇수다. 리버스 엔터 쪽 사람들이 내 근처에 얼씬대는 거 보고 그렇게 판단한 모양이더라고.”
그 순간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그 탓에 난 곧바로 이수찬에게 물었다.
“수찬아. 교도소 안에 소식 전할 수 있지?”
“예.”
“그럼 당장 은기한테 연락해서 조심하라고 경고부터 해. 놈들이 은기를 습격할 가능성이 있다.”
“아 알았습니다.”
이수찬이 급히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변! 지금 바로 접견 신청해서 형님한테 경고하세요! 노리는 놈들이 붙었다고!”
사정을 설명한 이수찬이 긴장되는지 손을 가볍게 떨었다.
“형님. 10분 안에 구치소에 도착할 거랍니다!”
아무 일이 없길 바라며 우린 날새를 부축해 차로 향했다.
그리고 난 최은태 회장과의 일을 조금 더 일찍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최만식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생각을 마친 난 곧바로 대흥 저축은행의 장기호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이 네 번 정도 울리자 장기호 이사가 전화를 받는다.
-아이고~ 정 팀장님. 어쩐 일로 먼저 연락을 다 하셨습니까?
“장 이사님. 솔직히 말씀해 주시죠. 최 회장님의 아들을 찾는 것 때문에 절 보자고 하시는 게 맞습니까?”
-예? 그 그게 무슨. 아 아닙니다!
“아닙니까? 그러면 내일 약속은 취소하겠습니다. 유진이는 저축은행 광고를 맡을 생각이 없다네요. 수고하시고 그럼 이만 전화 끊겠습니다.”
그 순간 장기호 이사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이봐! 잠깐만! 기다려 봐!
그래.
이제야 대호파의 행동대장인 장기호의 모습이 나온다.
-큰형님께 여쭤보고 다시 전화할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그동안 아무한테도 연락하지 말고. 알았지?
“10분 드리겠습니다. 지금 상황 진짜 X 같거든요.”
그리고 2분도 채 지나기 전.
대흥 저축은행장인 최영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가 회장님 아들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안 거지?
최영호 은행장은 경계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사정을 묻고 있었다.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난 최영호 은행장에게 어떻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조심한다고는 했는데 미흡했나 보군. 그런데 잠깐만! 그렇다면 지금 최만식은 어르신의 아들이 누군지 알았다는 건가?
“확실치는 않아 보였지만 현재 은기를 의심하는 건 확실합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 당황했나 본데 그렇다고 마냥 기다려 줄 순 없었다.
“그런데 그분은 왜 이제 와서 아들을 찾는 겁니까?”
최영호 은행장이 짧게 한숨을 내쉰 뒤 답한다.
-원래라면 답하면 안 되는 질문이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말하지. 아비가 자식 찾는 데 이유가 있나? 회장님도 나이가 드니 핏줄이 끌리시나 보더군.
완벽히 믿을 순 없지만 일단 아들을 찾는 게 나쁜 의도는 아닌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당장 만남을 주선해주십시오!”
-알겠네. 회장님한테 연락을 해보고······ 다시 연락 주겠네.
전화가 끊겼다.
최은태 회장과는 가능하면 만날 생각 따윈 없었지만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자 그냥 있을 순 없었다.
이수찬이 어디론가 전화를 해대는 걸 보며 난 잠깐 좌석에 몸을 기댔다.
최만식이 날 노린다면 어떻게 할까 고민하면서.
그때였다.
이수찬에게 간 변호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접견을 마쳤나 봅니다 형님.”
구치소에서 접견을 마쳤을 시간이라 급히 전화를 받는다.
그런데 이수찬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한다.
이를 빠드득 갈고 손엔 피가 통하지 않을 듯 핸드폰을 꽉 쥐고 있었다.
“수찬아. 왜 그래?”
내가 이름을 부르는데도 대답하지 않는다.
난 그런 이수찬을 다시 한번 불렀다.
“이수찬! 무슨 일이냐고!”
이수찬이 어렵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으 은기 형님이······ 칼을······ 맞았답니다.”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