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2화
302. 한우주 6
날 발견한 KJ 로펌의 이문영 변호사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저 정 팀장님이야말로 여긴 어쩐 일이시죠?”
유선정 작가 측 변호사인 그녀는 작가실에서 계은숙 작가를 설득하고 있었다.
성큼성큼 다가간 난 그녀를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이 변호사님. 지금 위증교사를 하고 계시는 겁니까?”
이문영 변호사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무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위증교사라뇨!”
위증교사죄를 짓게 되면 변호사라도 형을 받을 수가 있었다.
그 탓에 이문영 변호사는 자신을 변호하기 시작했다.
“전 그냥 계은숙 작가님한테 여쭐 일이 있어서 온 거예요. 위증하라고 제안한 적 따윈 없다고요!”
“변호사가 사건 주요 증인을 만나서 할 이야기가 뭐가 있다고요? KJ 로펌에서 법률 드라마라도 만든답니까?”
이문영 변호사의 입이 닫히더니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지 눈을 팽팽 돌리기 시작했다.
“더 할 말 남았습니까?”
“······.”
“할 이야기 없으면 자리 좀 비켜주시죠.”
그러나 이문영 변호사는 발걸음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계은숙 작가에게 조언이랍시고 해주고 있다.
“계 작가님. 본인한테 불리한 건 말씀 안 하셔도 돼요.”
계은숙 작가가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어요.”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온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이 변호사님!”
“계 작가님이 선임한 변호사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예요.”
“제가 법조계 사람이 아니라고 너무 띄엄띄엄 보시네요? 다른 변호사에게 사건 수임을 권해주시는 것도 변호사법 위반으로 알고 있는데요?”
수임 알선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짚자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그런 건 또 어떻게 알았어······요?”
“그건 아실 것 없고요. 진짜 끝까지 가 볼까요? 예?”
코너에 몰린 이문영 변호사는 어처구니없게도 계은숙 작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작가님. 제가 수임을 권유했나요?”
“아 아뇨. 제 제가 상의할 일이 있어서······ KJ 로펌 변호사님께 연락을 드린 거예요. 그리고 유 작가님 시놉시스에 관해서라면 전 아무것도 몰라요!”
계은숙 작가는 찔리는 게 있는지 우리 쪽을 쳐다도 보지 못한 채 말하고 있다.
그때 한우주 작가가 나섰다.
“계 작가님! 일주일 전에 제 시놉시스 같이 보셨잖아요! 그때 엄청 재미있다고 꼭 성공할 거라고 격려도 해 주셨잖아요!”
“내 내가 언제? 한 작가의 시놉시스? 난 몰라! 난 아무것도 못 봤어!”
“작가님! 정말 너무하세요!”
한우주 작가가 분한지 눈물을 글썽거린다.
난 그녀를 토닥인 뒤 계은숙 작가에게 시선을 돌렸다.
“계 작가님. 배신자들이랑 천국의 발아래 이태백의 달. 이 작품들 기억하시죠?”
내가 말한 작품들은 그녀가 중간 관리자로 보조 작가들을 이끌며 제작에 참여한 작품들이다.
그녀는 작가실장이니 다른 보조 작가들을 관리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 그게 왜요?”
“그때 고료 관리를 계 작가님이 하셨죠?”
회귀 전.
계은숙 작가는 오랫동안 구상했던 <운명의 아이들>이란 작품으로 결국엔 시청률 18%를 달성하는 이름 있는 작가가 된다.
그러자 그녀의 밑에서 일을 했던 보조 작가들이 과거의 일을 폭로한다.
보조 작가 시절 100만 원도 안 되는 월급에서 30만 원씩 계은숙 작가에게 뜯겼다고.
자기만 그런 게 아니라 작가실에서 오랫동안 내려오는 관행이었다는 변명에도 대중은 코웃음을 쳤다.
그 이후 계은숙 작가는 더 이상 작가 생활을 이어가지 못한 채 사라져버렸다.
그 기억을 떠올려 슬쩍 운을 띄웠더니 계은숙 작가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자 작가실 고료는 원래 작가실장인 제가 하는 건데 그게 무 무슨 문제죠?”
“진짜 이렇게 나오실 겁니까? 그렇다면 그때 ‘작가실 공금’ 문제를 KBC 대표님께 알려도······.”
순간 계은숙 작가가 외친다.
“잠깐만요!”
내가 말하려는 게 뭔지 파악한 그녀는 더 이상 말하지 말라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계은숙 작가의 태도가 바뀌자 이문영 변호사가 다급히 묻는다.
“작가님.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제게 사실대로 말씀을 해주시면 도울 수 있어요!”
당황한 이문영 변호사가 선을 또 한 번 넘기 시작했다.
변호사라지만 경력이 부족한 탓에 연신 실수 연발이다.
이문영 변호사는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하려 했지만 계은숙 작가의 멘탈이 이 상황을 버티지 못했다.
“아니 제가 왜 그걸 이 변호사님께 말해야 하나요? 이 변호사님이 제 변호사예요? 아니잖아요!”
“그 그건 그렇지만 협박을 당하는 건 막아야······.”
“아뇨. 다 필요 없으니까 나가 주세요! 어서 가요!”
계은숙 작가가 이문영 변호사를 떠밀었다.
이문영 변호사는 더는 버티지 못한 채 작가실 밖으로 밀려 나갔다.
* * *
KBC의 작가실은 긴 테이블을 중심으로 각자 작업을 할 수 있는 책상들이 놓여 있다.
메인 작가들의 경우는 별도로 방을 받지만 보조 작가들이나 서브 작가들은 이곳 작가실에서 작업하곤 한다.
그러나 오늘은 우리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다.
이문영 변호사를 몰아낸 계은숙 작가가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관행이었어요! 제가 먹은 게 아니라 윗 작가님들에게 교습료로 바쳤고요.”
“압니다. 하지만 그 돈을 수금하신 건 계은숙 작가님이시죠. 아닙니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보조 작가들에게 내려가는 고료를 빼돌린 다음 메인 작가나 PD에게 바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한 달에 100만 원도 못 버는 작가들에게 고료를 뺏는 건 벼룩의 간을 빼먹는 행위만도 못한 짓.
그러나 알게 모르게 꽤 많은 작가가 여전히 그런 짓을 하고 있다.
특히 유선정 작가는 그 정도가 심한 편이고.
계은숙 작가가 눈물을 글썽이며 호소했다.
“저라고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작가님들이 돈을 빼라고 하는데 무슨 수로 버텨요? 그리고 전 더 많이 뜯겼다고요!”
계은숙 작가 역시도 피해자라고 항변했지만 난 흔들리지 않고 말했다.
“관행이라고 해서 이미 저지른 짓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그 그러면 어쩌라고요?”
“어쩌긴요. 피해를 받은 사람에게 보상하고 지금이라도 올바른 길을 가셔야죠.”
“전 모아둔 돈도 없는데요?”
“누가 돈으로 보상하랍니까?”
“그러면요?”
“그때 고생했던 보조 작가님들에게 좋은 자리를 소개해 줄 짬은 되잖습니까? 저도 도울 수 있는 일은 돕겠습니다.”
현재 그녀의 인맥으로는 과거 그 보조 작가들에게 얼마든지 일자리를 주선해줄 수 있었다.
계은숙 작가가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인다.
“아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난 곁에 있는 한우주 작가를 앞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또 하나. 여기 한 작가의 작품을 일주일 전에 봤다고 사실대로 증언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더는 계 작가님을 닦달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계은숙 작가가 한우주 작가와 날 번갈아 쳐다본다.
뭔가를 말을 하려는 듯 주춤거리던 그녀가 내게 고개를 숙인다.
“미 미안한데 그럴 순 없어요.”
대체 왜 그러냐 묻자 계은숙 작가가 어렵게 일을 열었다.
“저도 솔직하게 돕고 싶긴 한데······ 유 작가님이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유 작가님이라면 절 매장해버릴 거예요! 아까도 변호사 보낸 거 보셨잖아요.”
과거에 있었던 일이 밝혀지는 것만큼이나 유선정 작가가 두렵다고 말한다.
유선정 작가에게 밉게 보여서 방송가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사라져 간 사람도 많단다.
얼마나 겁이 나면 몸을 바르르 떨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젠 그녀를 달랠 차례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유선정 작가는 더 이상 작가 생활을 못 할 테니까요.”
계은숙 작가가 눈을 똥그랗게 뜬다.
“작가 생활을 못 하다뇨? 그게 무슨 뜻이죠?”
난 대답 대신 이지연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피커폰을 틀자 이지연 작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계 작가가 증언한다고 약속했어?
“아뇨. 아직입니다.”
-이거 스피커폰 맞아?
“예.”
이지연 작가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친다.
-계 작가 듣고 있어? 나 이지연이야.
계은숙 작가가 깜짝 놀라 외친다.
“자 작가님. 안녕하셨어요?”
-안녕? 안녕 못 하지! 내가 참여할 작품에 선정이가 태클을 거는데 어떻게 안녕해?
“예? 작품에 참여하다뇨?”
-나 화란전에 보조 작가로 참여하기로 했거든.
계은숙 작가의 눈이 미친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작가님이······ 보조 작가로요?”
-그래. 그리고 내가 한 작가의 작품에 보조 작가로 참여한다고 발표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계은숙 작가가 침을 꼴딱 삼킨다.
한국 드라마계의 대모 이지연 작가가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도 유선정 작가의 주장은 힘을 잃을 테니까.
-이참에 선정이는 업계에서 쫓아낼 생각이야. 명색이 작가라는 게 어디서 채신머리없이 제자 대본을 훔쳐?
이지연 작가가 씩씩거리며 화를 내자 계은숙 작가는 어쩔 줄을 몰라 허둥대기 시작했다.
-넌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빨리 말해! 나 시간 없어!
“아 알겠어요! 한 작가의 시놉시스를 일주일 전에 봤다고 증언할게요!”
됐다.
-오케이! 그러면 지금 바로 삼성동으로 와!
“삼성동이요?”
-그래. 곧 기자 회견할 거야. 너도 와서 도와.
이지연 작가가 몰아치자 계은숙 작가가 넋이 나가 대답했다.
“예. 그럴게요.”
-그럼 이따 봐. 유노~ 걔 꼭 데리고 와!
“예. 작가님. 꼭 모시고 가겠습니다.”
뚝.
전화가 끊긴 순간.
계은숙 작가가 한우주 작가의 손을 잡았다.
“한 작가 미안해. 유선정 작가님이 변호사까지 보내서 협박하니 너무 무서워서······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나 봐.”
한우주 작가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계은숙 작가가 작가실장으로 수금을 주도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 또한 갑질 작가들에게 당한 피해자 중 한 명.
그래서 난 고소보다는 이렇게나마 기회를 주고 싶었다.
한우주 작가도 계은숙 작가의 손을 꼭 맞잡았다.
“이제라도 증언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그동안 저 많이 도와주셨잖아요. 그러니까······ 이번에도 좀 도와주세요······.”
“그래. 진즉에 이랬어야 했는데 미안해.”
두 사람이 눈물을 글썽이며 화해를 한다.
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마지막 조건을 걸었다.
“그리고 계 작가님.”
눈물을 뚝뚝 흘리던 그녀가 날 쳐다본다.
“증언을 제대로 해주시면 지금 집필 중인 작품의 드라마화에도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계은숙 작가의 <운명의 아이들> 정도면 준수한 흥행작.
이 기회에 잡아두면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계은숙 작가 본인에게 최초의 히트작이자 마지막 작품이 되었지만 이번 생에서는 달라질 수 있게 말이다.
계은숙 작가의 얼굴이 밝아진다.
“그 그럴게요!”
채찍과 채찍을 연달아 내려친 뒤 안겨준 당근이라 유독 달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렇게 우린 KBC 작가실을 나와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동안 다이어리를 확인하자 드디어 관련 일정이 사라지고 있었다.
[에브리데이 V10.1]
[날짜 : 2021년 3월 17일]
-PM 01:00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화란전> 저작권 소송 관련 회의. (보고 사항 : 보조 작가 출신 한우주. 스승인 유선정 작가의 시나리오를 탈취했다는 혐의로 피소.))
* * *
삼성동 인터콘티넨탈 호텔 소연회장.
100명이 넘는 기자들이 찾아와 회견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준비됐지?”
이지연 작가가 묻자 김솔잎 한우주 계은숙 작가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거린다.
“예. 준비됐어요.”
“그럼 회견장에 가 볼까?”
그런데 그때였다.
소연회장의 앞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유선정 작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잠깐만요. 유선정 작가 전홥니다.”
문고리에 손을 올렸던 이지연 작가가 문에서 손을 뗀다.
“뭐라고 하는지 받아 봐. 일단 들어보고 시작하지.”
“알겠습니다.”
전화를 받자 유선정 작가의 고성이 터져 나왔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니가 계 작가랑 이 변호사를 협박했다며?
“제가 협박을 했다고요?
-어디서 시치미야? 지금 네 이름으로 KJ 로펌에서 고소장 넣을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난 차갑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정말 끝까지 뻔뻔하네.”
-뭐 뭐? 야! 너 지금 반말한 거야? 새파랗게 어린 게 어디서 감히!
“당신 같은 사람은 어른으로 대접할 가치도 없어! 어디서 할 게 없어서 자기 제자 등을 처먹어? 당신이 사람이야?”
-이 이런 싸가지 없는······.
더는 들을 필요가 없었기에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지연 작가가 날 쳐다보며 웃는다.
“뭐래? 그 미친X은?”
“우리보고 도둑이라는데요?”
이지연 작가가 싸늘하게 웃는다.
“미친X. 아주 제대로 엿 한번 먹여줘야겠네. 다들 준비됐지?”
“예. 작가님.”
“가자!”
우린 이지연 작가의 뒤를 따라 기자 회견장으로 향했다.
유선정 작가가 저지른 모든 범죄를 터트리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