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6화
296. 보컬 트레이너 3
“들어오세요.”
할머니와 이야기를 마친 서연우가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현관으로 나온 서연우는 얇은 모시옷을 입은 할머니의 오른손을 꼭 붙들고 있었다.
두 사람의 등 뒤로 좁은 거실과 방 한 칸 그리고 작은 화장실이 보인다.
난 서연우의 손을 잡고 있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서연우의 할머니가 고개를 갸웃하다 갑자기 환하게 웃는다.
“아이고~ 어서들 와요. 우리 연우 학교 선생님들인가 보네요?”
정장을 입고 있었던 탓에 오해를 받았다.
하지만 서연우의 할머니가 치매 란 걸 알았기에 그녀가 놀라지 않게 대꾸했다.
“예. 우리 연우 학생이 공부를 너무 잘해서 가정 방문을 왔습니다.”
이동민 실장도 적절히 내 말에 대꾸한다.
“예! 연우 학생이 음악 성적이 1등이라서 격려차 방문을 했습니다.”
그 순간 서연우의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치기 시작한다.
“아이고~ 경사 났네 경사 났어!”
할머니가 환히 웃는 모습을 보자 서연우가 우리의 거짓말에 장단을 맞춘다.
“할머니. 나 1등 했어. 그래서······ 우리 앞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서연우가 눈물을 글썽였다.
그 순간 서연우의 할머니가 손자의 얼굴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예쁘고 귀엽다며 볼 뽀뽀를 해대면서 말이다.
“아이고 내 새끼. 장하다. 장해! 할미가 이럴 줄 알았어~”
서연우의 할머니는 활기찬 목소리로 방이 떠나가라 외쳐댔다.
치매를 겪고 있는데도 자기 손자에 대해서만큼은 믿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서연우의 할머니가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오셨는데 뭘 드린다? 아 맞다. 그게 있었지!”
순간 서연우의 할머니가 몸을 홱 하고 돌려 방으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서연우가 할머니의 손을 놓쳐버렸다.
“할머니! 어디 가?”
잡을 틈도 없이 할머니가 급히 방으로 달려간다.
서연우가 한숨을 내쉬고 우리에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정신이 괜찮으실 때도 많은데 오늘은 좀······.”
난 괜찮다며 서연우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그런데 아예 최근 일은 기억하지 못하시는 겁니까?”
“아니요. 오락가락하세요. 아침에 일 나갈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서연우의 목소리는 울음을 참으려는 듯 미세하게 떨려오고 있었다.
잠시 후 닫혔던 방문이 다시금 벌컥 열렸다.
그런데 서연우의 할머니 오른손에는 구겨진 곽 하나가 들려 있었다.
성큼성큼 다가온 서연우의 할머니가 곽을 내게 내밀었다.
“선생님. 내가 우리 손주 배고프면 주려고 숨겨둔 건데 이거라도 드셔보세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예요.”
그녀의 손에 들린 건 귀퉁이가 찌그러진 계란 과자다.
놀란 서연우가 다급히 외친다.
“팀장님. 드시지 마세요.”
오래된 거라며 혹시라도 먹고 배탈이 날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서연우의 할머니가 혼란에 빠진 듯 당황했다.
“응? 이거 연우 네가 어제 할미한테 준 거잖아?”
그 순간 난 활짝 웃으며 할머니가 건넨 과자를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우리 연우 학생이 할머니 드실 걸 먹는 게 싫어서 그랬나 봅니다.”
난 과자를 손에 들고 서연우를 향해 말했다.
“연우 학생 걱정하지 마. 학생 앞으로 장학금도 나오니까 그걸로 할머니 드실 과자 사줄게.”
그 순간 서연우의 할머니가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작은 목소리로 손자를 나무란다.
“예끼~ 우리 손주. 아무리 할미가 좋아도 선생님한테 그러면 못 써.”
서연우가 눈물을 꾹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할머니······ 죄송해요.”
서연우의 할머니가 웃으며 다시금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서 드셔보세요. 맛나요. 이거.”
슬쩍 유통 기한 날짜를 봤지만 다행히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먹어도 문제가 없다.
“잘 먹겠습니다.”
이동민 실장이 말리려는 눈치였지만 난 태연히 과자 봉지를 부욱 뜯었다.
봉지 안의 계란 과자는 약간 말라 있었다.
하지만 난 아무렇지 않게 과자를 꺼내 한입 베어 물었다.
눅눅하고 퀴퀴한 과자.
하지만 과자에는 손주를 아끼는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내가 과자를 먹는 모습을 본 서연우의 할머니가 아이처럼 웃는다.
“참 맛나지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예요.”
“예. 어르신~”
난 곽에 있는 과자 몇 개를 더 꺼내 한입에 넣고 와그작 씹었다.
입안에 침이 고이자 조금은 먹을 만해졌다.
내가 환히 웃으며 과자를 먹자 서연우의 할머니가 빙긋이 웃는다.
“이렇게 잘 드실 줄 알았으면 좀 더 챙겨뒀어야 했는데······ 다음번에 내가 안 먹더라도 더 챙겨 놓을 테니까 꼭 다시 오세요.”
당신이 드실 간식을 아껴놓았다가 기꺼이 주겠다는 말에 말문이 콱 막혔다.
어떻게 사셨으면 정신을 놓은 상황에도 이렇게 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울컥하고 올라온 감정을 가까스로 달래며 그녀에게 답했다.
“예. 어르신. 꼭 다시 오겠습니다.”
서연우의 할머니는 인자한 얼굴로 웃으며 나와 이동민 실장의 손을 한 번씩 만지작거렸다.
마치 잊지 않으려는 듯 말이다.
그렇게 현관에서의 인사를 마친 우린 거실로 향했다.
할머니의 상태를 본 나는 서연우에게 당장 오늘 계약하고서 집을 알아보자고 말했다.
“저기······ 할머니 식사 좀 챙겨 드리고 가면 안 될까요? 아직 식사를 안 하셔서요.”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시킬까요? 할머니는 뭐 좋아하세요?”
서연우가 주춤거리며 말한다.
“할머니······ 짜장 좋아하세요.”
“아. 예.”
순간 서연우의 할머니가 고개를 젓는다.
“우리 손주. 할미는 짬뽕 좋아해. 그것도 까먹었어?”
서연우는 가슴이 아픈지 힘들게 입을 연다.
“할머니······ 매운 거 못 드시잖아······요.”
난 서연우를 말리며 할머니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어르신. 요즘은 백짬뽕이 그렇게 맛있답니다. 그거 시켜드릴게요.”
서연우의 할머니가 방긋이 웃는다.
“아이고~ 내가 오늘 호강하는 날이네. 선생님들이 와서 짬뽕을 다 사주고~”
“앞으론 자주 드실 수 있게 해드릴게요.”
서연우의 말이 틀릴 리가 없다.
하지만 할머니를 혼란스럽지 않게 안심을 시킨 뒤 당신의 것으로는 울면을 시켰다.
잠시 후 시킨 음식들이 잔뜩 도착했다.
서연우는 자신의 식사보다 할머니의 식사 시중을 하기 바빴고 할머니는 짬뽕이 너무나 맛나다며 울면을 맛있게 드셨다.
서연우는 할머니가 식사를 마친 후에야 퉁퉁 부은 짜장을 먹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할머니는 식곤증이 온다며 잠이 들었다.
혹시나 할머니가 놀랄까 봐 편지까지 써 놓은 후에야 겨우 집을 나설 수가 있었다.
* * *
지하 녹음실.
회사에 도착한 나는 서연우의 실력을 모두에게 보여주기 위해 강하나와 체리블라썸을 불렀다.
계약에 앞서 서연우의 가치를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선택이다.
서연우가 할머니를 편히 모실 수 있도록 더 좋은 대우를 받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동민 실장은 아직 나이가 어린 서연우가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을지 감을 잡지 못하는 상태.
내가 추천했으니 잘할 거라고 생각은 하겠지만 기대치는 낮을 수밖에 없다.
라이브 카페에서 몇 년간 공연했다고 해도 현재 나이는 고작 23살이었으니까.
그때 강하나가 4번 녹음실의 문을 열고 나타났다.
그녀는 우리 팀을 전담할 보컬 트레이너를 구했다는 말에 누구보다 기뻐한다.
“인사해. 이쪽은 새로 온 서연우 보컬 트레이너.”
“안녕하세요~ 신인 가수 강하나예요!”
강하나가 허리를 반으로 굽히며 인사했다.
서연우가 어색하게 웃으며 맞절한다.
“제가 알려드릴 게 있을지 모르겠네요. 누나가 워낙 잘하셔서······.”
“에이~ 저야 기본기도 없이 생으로 부르는 건데요 뭘.”
인사를 나눈 강하나는 들고 온 가방을 소파에 놓았다.
“그러면 저. 이제 어떻게 하면 되나요?”
서연우가 5년 정도 지난 폰으로 메모장 앱을 킨다.
“혹시 본인이 느끼기에 어렵다고 생각하는 구절이 있으면 조금만 다듬어 보죠.”
그런데 자신의 전공 분야를 언급하기 시작하자 서연우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이동민 실장이 흥미로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강하나가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외친다.
“특별한 건 아닌데 후렴구에서 음이 살짝 떨어지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후렴구의 ‘와~’에서요.”
방선우도 곁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누나가 워낙 성량이 풍부해서 잘 넘어가는데 그 파트에서 힘이 살짝 떨어지긴 하죠.”
솔직히 나로서는 전혀 몰랐던 일이었다.
하지만 기계 같은 귀를 가진 두 사람이 헛소리할 리는 없다.
서연우가 폰에다 메모를 한 뒤 재차 묻는다.
“알겠습니다. 다른 건 없나요?”
“글쎄요. 딴 건 별로······ 없는 거 같아요.”
“그러면 노래를 한번 들어보고 말씀드릴게요.”
강하나가 녹음 부스로 들어갔다.
반주가 시작되자 강하나는 매혹적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서연우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서연우의 손가락이 번개처럼 움직이며 폰에다 수정 사항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강하나의 노래에서 더하거나 뺄 게 없어 보였기에 대체 뭘 쓰는지가 궁금했다.
잠시 후 노래가 끝났다.
서연우가 폰을 만지작거리며 슬쩍 내 눈치를 본다.
바꿔야 하는 게 있나 본데 막상 말하려는 건 부담이 되는 것 같았다.
현재 강하나는 구독자 100만 명을 가진 너튜브 스타이기도 했으니까.
난 서연우와 시선을 맞추며 그를 안심시켰다.
“연우 씨. 편히 말씀하세요.”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프로 가수가 아닌 자신이 말을 해도 되냐는 듯한 표정이다.
하지만 난 딱 잘라 말했다.
“본인이 느끼기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속에 담지 말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세요. 앞으론 연우 씨가 하나의 보컬 트레이너입니다.”
서연우가 심호흡하고서 자신 있는 목소리로 답한다.
“예. 팀장님.”
그때 노래를 끝낸 강하나가 녹음 부스에서 나왔다.
“최선을 다해 불렀는데 듣기 어땠나요?”
서연우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까 말씀하신 파트. 음이 울리는 공명점을 조금만 올려 보시는 게 어떨까요? 호흡을 약간만 더 강하게 하고 성대를 조금만 조일 수 있게 하인두와 중인두 근육을 움직여보세요. 그러니까 여기를 이렇게 움직이면······.”
서연우가 전문 용어로 한참 설명을 하며 발성하기 더 좋게 하기 위한 목 부위를 손으로 가리켰다.
강하나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알겠는데······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서연우가 괜찮다며 강하나를 안심시킨다.
“일단 시도를 하면서 조정해 보죠. 아마 제가 말한 대로 해 보시면 한결 편하게 노래하실 수 있을 거고요.”
“네. 알았어요. 한 번 해볼게요.”
고개를 끄덕인 강하나가 반주 없이 발성을 바꿔 음을 내뱉어 본다.
『와~』
소리를 낸 강하나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어?”
절대 음감을 가진 방선우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누나. 좋아졌는데?”
음에 민감한 두 사람이 놀랐다는 건 확실히 변화가 있었다는 뜻.
서연우는 그 반응을 보고 자신을 얻었는지 발성 레슨을 이어갔다.
“이번에는 후렴구 들어가기 전에 짧게 한 호흡 끊고 가 보죠. 충분한 성량이 있으시지만 후반부에 폭발적인 성량이 필요하니까 그때까지는 효율적으로 호흡을 사용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음역 호흡 성량 성대를 다루는 법과 공명점을 잡는 것까지.
서연우는 마치 의사처럼 구강과 비강 그리고 상인두 중인두와 성대의 위치를 짚으며 구체적인 지시를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한 단어를 발성할 때 혀의 모양과 복근의 힘 정도까지.
너무도 구체적인 가이드에 오랜 프로듀서 경험이 있는 이동민 실장도 넋을 놓고 말한다.
“쟤 의사냐?”
“그럴 리가요. 가수가 되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했다고 들었어요. 해부학책을 구해서 공부도 하고요.”
그제야 이동민 실장이 납득간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사이 코칭을 끝낸 서연우가 강하나에게 다시 한번 지시를 내렸다.
“자 다시 한번 후렴구를 불러 보죠.”
“네.”
서연우의 지시대로 강하나가 짧은 호흡으로 숨을 들이마신 뒤 후렴구를 부르기 시작했다.
『습. 어제와는 다른 나 하이~』
그 순간 나조차도 확실히 구별할 정도의 차이가 생겼다.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고음이 들려왔다.
그 탓에 훨씬 듣기가 편해졌다.
이동민 실장이 황급히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강하나가 한발 빨랐다.
“또 없어요? 또?”
“아 그 그게요······.”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강하나의 노래에 고칠 게 이렇게 많았을까.
서연우의 코치는 끝없이 이어졌고 강하나는 그의 지시를 몇 번이고 곱씹었다.
트레이닝을 받고 난 강하나는 신이 나 외쳤다.
“선우야. 바로 반주 좀 줘. 지금 당장 해 볼래.”
“예. 누나!”
강하나가 마이크 앞에 서자 방선우가 곧바로 <새로운 시작>을 플레이했다.
녹음 부스에 들어간 강하나가 심호흡하더니 서연우의 조언대로 첫 소절부터 호흡을 반쯤 덜어내고 노래를 시작했다.
그 순간.
강하나의 노래에 마법이 펼쳐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