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5화
295. 보컬 트레이너 2
찌지직!
3층에서 떨어지려는 서연우의 허리띠를 꽉 붙들었지만 허리띠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허리띠뿐만이 아니라 내 손아귀도 찢어질 지경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서연우가 시멘트 포대를 놓지 않고 있다.
미련하긴!
“빨리 시멘트 버려요!”
그 순간 서연우가 메고 있던 시멘트를 놓았다.
시멘트 포대가 아래로 떨어진다.
그 순간 바짝 마른 그의 몸이 뒤로 딸려왔다.
동시에 난 서연우와 함께 뒤로 나자빠져 버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엉덩방아를 찧었다.
연이어 서연우가 떨어뜨린 시멘트 포대가 1층에 닫는 소리가 울린다.
콰직-.
쿠웅이 아니고 콰직이라면 1층에 쌓아놓은 뭔가가 부서진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난 서연우가 다치지나 않았을까 이리저리 둘러보며 확인하기 시작했다.
“연우 씨. 괜찮아요?”
바닥에 누운 서연우가 얼이 나간 표정을 짓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 예. 예······.”
너무 놀라 몸을 파르르 떨고는 있었지만 다친 곳은 없었다.
‘다행이다.’
서연우가 수원에 있는 건설 현장으로 일을 나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기뻤던가.
일용직으로 일을 나갔다는 건 휠체어를 타지 않고 일이 가능한 정상적인 몸이란 뜻이었으니까.
어떻게든 빨리 만나고 싶어 현장으로 달려왔더니 추락하기 일보 직전.
내가 조금만 늦었다면 서연우는 회귀 전처럼 휠체어를 타고 다닐 뻔했다.
추락을 막아준 탓인지 서연우의 얼굴엔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혼란스러운 표정이 깃들어 있었다.
회귀 전 휠체어를 탄 채 늘 날카로운 인상을 쓰고 독설을 뿜던 남자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내 앞에 있었다.
“그 그런데 누구······세요?”
정장을 입은 내 복장은 이 작업 현장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었기에 서연우가 궁금한 표정을 짓는다.
“아. 저는······.”
명함을 건네주려고 지갑 안주머니로 손을 넣었다.
그런데 그 순간 건물 아래에서 거친 남자의 욕설이 터져 나왔다.
“또 저 또라이 XX가 사고 쳤네? 야! 너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
고개를 돌려보니 현장 반장이 삿대질하며 달려왔다.
헬멧도 쓰지 않고 옷차림도 엉망이다.
거친 작업 현장이라지만 사람이 다치는 걸 걱정하지 않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반장은 달랐다.
“이 등신 같은 새X! 니가 놓친 시멘트 포대 때문에 1층에 타일 쌓아놓은 거 다 깨졌잖아! 넌 오늘 일당 없는 줄이나 알아!”
50대 중반인 현장 반장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섞여 나온다.
아까 콰직 하는 소리가 타일이 깨지는 소리였나 보다.
하지만 사람 목숨보다 그깟 타일이 중요하다는 태도에 머리끝까지 화가 차올랐다.
“하마터면 사람이 죽을 뻔했는데 그게 지금 할 소립니까?”
반장이 미간을 찌푸린다.
“넌 뭐야? 넌 뭔데 남의 현장에 들어와서 XX이야? 야! 용식아! 이 새X 쫓아내라!”
나도 일용직 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남의 현장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싶진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생계가 걸려있었으니까.
하지만 안전 장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이 현장은 사람 하나 잡고도 남을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니 아무래도 이 현장은 더는 작업이 이뤄지게 둬 선 안 될 것 곳이었다.
결심을 마친 나는 곧장 전화를 꺼내 들었다.
그 사이 현장 반장이 욕설을 내뱉으며 부르는 소리를 듣고 현장 작업자들이 뛰어 올라왔다.
“반장님. 왜 불러요?”
“최 반장. 왜 그래? 무슨 일인데?”
그 순간 난 몰려드는 작업자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안전보건공단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기 수원 신축 빌라 건설 현장인데 작업자 안전 의무 사항을 이행하지 않는 현장이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그 순간 자신만만했던 현장 반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 형씨. 잠깐만. 어이! 어이!”
건설 법규가 워낙 엄격하다 보니 안전 조치를 위반하는 사항이 발견되면 작업 중지를 먹을 수가 있었다.
굴렁쇠에 오기 전까지 작업 현장을 꽤 오래 굴렀기에 현장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아는 내게 걸린 게 그의 불운이라면 불운이었다.
작업자들은 그대로 발걸음을 멈췄고 현장 반장은 전화를 끊으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난 내가 본 모든 불이행 항목을 전부 고발했다.
“예. 안전시설이 전혀 없어서 아주 위험한 상황입니다. 방금도 큰 사고가 날 뻔했고요. 고용노동부에도 전화를 넣을 거니까 얼버무리려 했다가는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반드시 현장 상황을 확인하고 민원 처리 결과를 묻겠다고 못을 박았다.
그 탓에 처음엔 심드렁하게 전화를 받았던 상담원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자 잠시만요! 감독관님이 직접 나갈 테니까 위치를 좀 찍어주세요!
“예.”
위치를 보내고 전화를 끊자 현장 반장이 비굴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이 이봐. 뭘 또 이런 사소한 일로 신고까지 해? 사람 밥줄 끊을 일 있어?”
마음만 먹으면 못 끊을 것도 없지.
어차피 현장 작업자들은 다른 현장으로 일을 가면 그만이니까.
일이 끊기는 건 현장 반장과 현장 소장뿐이었다.
“그쪽도 우리처럼 막일하는 사람들 사정은 뻔히 아는 거 같은데······ 수습은 내가 할 테니까. 대신 100만 원. 그래 100만 원 정도로 퉁 치는 게 어때?”
100만 원 같은 소리 하네.
사람이 죽을 뻔했는데.
“이거 놓으시죠?”
난 현장 반장의 손을 떨치고 건물 아래에 있는 이동민 실장에게 외쳤다.
“실장님! 현장 촬영 좀 해주세요!”
“어~”
이동민 실장이 즉각 폰을 꺼내 들고 촬영을 시작했다.
현장 반장이 급히 일하는 작업자들에게 이동민 실장을 말리라고 명령했지만 이젠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내가 어디로 전화하는지 듣는 순간 작업자들도 이미 이 현장은 끝났다는 걸 알아채 버렸으니 말이다.
* * *
이동민 실장이 현장을 촬영하는 사이 난 서연우를 챙겼다.
“연우 씨. 가시죠.”
“어 어딜요?”
“일단 내려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연우가 움찔거리며 내 뒤를 따라 움직인다.
순간 현장 반장이 악에 받쳐 외쳤다.
“야! 막내! 너 그 양복쟁이랑 같이 가기만 해 봐! 내가 너희 집이랑 연락처 다 알고 있어!”
서연우의 나이는 고작 23살.
아버지 나이대의 덩치 크고 험상궂은 남자가 협박하자 두려움에 발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난 서연우를 다독인 뒤 현장 반장에게 일갈했다.
“당신! 이 친구 손가락 하나라도 건드리면 나한테 죽을 줄 알아!”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리고 싶었지만 꾹 참는 중이다.
이글거리는 내 눈빛과 주먹을 쥔 태도가 심상치 않다 싶었는지 현장 반장의 입이 그대로 다물어져버렸다.
놀라서 딸꾹질을 시작했지만 애써 괜찮은 척 허세를 부리면서.
난 다시 한번 서연우를 향해 내려가자고 말했다.
“연우 씨. 걱정하지 말고 저랑 같이 가시죠.”
“아 예. 예.”
난 서연우와 함께 아래로 발걸음을 옮겼다.
날 지켜보던 작업자들이 스르륵 옆으로 비켜나 주고 있었다.
작업 중지가 떨어지게 되면 어차피 다른 현장으로 갈 사람들이었으니까.
1층으로 내려간 나는 촬영을 마친 이동민 실장을 불러 차에 올라탔다.
“뭐냐? 상황 돌아가는 걸 보니 뭔가 심각해 보이던데? 일단 찍으라는 건 찍었어.”
“저한테 좀 보내주세요.”
난 이동민 실장에게 영상을 받자마자 모든 관계 기관에 민원을 넣었다.
현장 반장이 밖에서 삿대질하고 있었지만 난 눈도 끔뻑하지 않았다.
이내 근처 다른 현장에 있는 감독관이 3분 이내로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잠시 기다렸다가 감독관 오는 거 보고 출발하시죠.”
이동민 실장이 피식 웃는다.
“네 실력이라면 저런 인간쯤은 한주먹일 텐데?”
“보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래. 잘 참았다.”
그제야 난 뒷좌석에 앉은 서연우에게 고개를 돌렸다.
“많이 놀라셨죠?”
창문 쪽을 바라보던 서연우가 화들짝 놀란다.
일용직으로 먹고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현장에 난리를 쳤으니 걱정이 될 거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 굴렁쇠 엔터의 정윤호 팀장입니다. 연우 씨를 보컬 트레이너로 스카우트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명함을 받은 서연우가 눈을 끔뻑거린다.
“굴렁쇠 엔터테인먼트요?”
“예.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하시는 걸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구로에서 보컬 선생님으로 활동하셨죠? 경력이 꽤 되시던데요?”
서연우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그걸 어떻게······.”
“TK 엔터의 연습생 이상균을 가르쳤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TK 엔터에서 보이그룹 데뷔를 준비하는 이상균이 그의 제자였다.
서연우에게 고작 3개월밖에 배우지 않았지만 그 덕에 TK 엔터에 멋지게 합격했다.
“걔 TK 들어간 지 겨우 보름인데······ 같은 업계 분이시라 정보가 빠르시네요.”
난 시치미를 뚝 떼고서 말했다.
“그보다. 제가 관리하는 연예인 중에 체리블라썸이라는 팀이 있습니다. 아시죠?”
“예. 알고 있습니다.”
“그 친구들의 보컬 선생님으로 서연우 씨를 모시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국적 아이돌 팀 하나를 더 맡아주셨으면 하고요.”
서연우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난 내친김에 조건을 말했다.
“연봉은 3천만 원을 기본급으로 하고 세부 사항은 원하는 게 있으면 맞춰드리겠습니다. 숙소도 별도로 제공해 드리고요. 어떻습니까?”
서연우는 이 뜬금없는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지 눈만 끔뻑거린다.
“지금 이거······ 꿈 아니죠?”
서연우의 질문에 이동민 실장이 씨익 웃는다.
“아닙니다. 연우 씨.”
서연우가 도저히 못 믿겠는지 자기 볼을 꼬집어 본다.
“으으윽. 아프네. 아파. 아프다······.”
같은 말을 반복하던 서연우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거리기 시작한다.
그때였다.
감독관 2명이 인상을 쓴 채로 뛰어오는 게 보였다.
그와 동시에 이제껏 보이지 않던 현장 소장이 헬멧도 쓰지 않고 뛰어오고 있었다.
알음알음 아는 사이라 안전 수칙을 엉망으로 어기는 걸 봐줬겠지만 오늘만큼은 그냥 넘어가진 못할 거다.
이미 증거 영상을 모든 기관에다 전송했으니까.
그 탓에 감독관은 도착하기 무섭게 현장 소장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우리에게 쌍욕을 하던 현장 반장은 그런 게 아니라며 손을 휘적거렸다.
하지만 감독관은 연신 삿대질을 하더니 모든 작업자에게 돌아가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가지고 있던 파일철에서 A4 사이즈의 노란색 작업 중지 스티커를 꺼내 들었다.
“최 감독관님! 작업 중지만은 좀······.”
현장 소장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제발 그것만은 붙이지 말아달라 외친다.
“이 소장! 그러기에 내가 현장 관리 똑바로 하라고 했잖아! 시절이 어느 시절인데 이딴 문제만 일으켜? 텄으니까 비켜. 안 비켜? 당신들 콩밥 먹고 싶어? 응?”
감독관들은 기어코 소장과 반장을 떼어내고 현장에다 스티커를 붙였다.
그리고 네임펜으로 뭔가를 적기 시작한다.
작업 중지 스티커에는 중지 이유와 중지 기간을 적는데 아마도 족히 한 달은 공사가 중지되었을 것 같았다.
현장 소장과 반장이 넋을 잃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후에야 운전대를 잡았다.
그 모습을 본 이동민 실장이 통쾌하다는 듯 웃는다.
“이젠 가도 되겠네.”
그제야 난 시동을 걸고 서울로 향했다.
* * *
서울로 가던 도중 서연우의 부탁을 받고 그의 집으로 차를 돌렸다.
할머니가 있다는 걸 들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계셨어요?”
회귀 전 내 기억에서는 서연우에게 가족은 없었다.
하지만 사정을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아빠랑 엄마는 10년 전에 집을 나갔고 할머니가 고생하시며 절 키워주셨어요. 그런데······.”
그런데 그 할머니가 최근 치매에 걸렸다고 한다.
23살의 나이로는 짊어지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상황이다.
회귀 전 서연우가 왜 자기 이야기를 그토록 꺼렸는지 알 것 같았다.
몸이 그렇게 되고 할머니가 치매에 걸렸다면 나라도 과거 이야기를 하기 싫었을 것 같다.
그리고 대화를 하다 보니 실은 그가 다정다감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운명을 바꾼 덕에 성격이 변하기 전의 서연우를 만날 수가 있었다.
그 뒤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서연우의 집 근처에 도착했다.
“저기······ 차댈 곳이 없으니까 할머니가 괜찮으신지 잠깐 보고 나올게요.”
서연우는 치매인 할머니 상태를 보고 나오겠다고 말한다.
식사를 안 했을 수도 있다면서.
“그럼 저도 화장실 좀 쓰고 싶은데 잠깐 들러서 인사나 드릴까요?”
심한 치매는 아니라고 했지만 할머니의 상황을 정확히 알고 싶었다.
이제 정 팀의 일원이 될 사람의 형편을 제대로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연우가 한숨을 푹 내쉰다.
“안 될 건 없는데 너무 놀라지는 마세요. 할머니가 가끔 이상한 짓을 하셔서······.”
괜찮다고 서연우를 달랜 뒤 그의 뒤를 따랐다.
허름한 3층짜리 연립빌라의 반지하.
반지하로 내려가니 퀴퀴한 냄새가 물씬 풍겼다.
볕이 들지 않아 곰팡이가 핀 듯했다.
서연우가 부끄러워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잠시만요. 저부터 들어갈게요.”
할머니가 놀랄까 봐 걱정된다는 말에 이동민 실장과 난 잠시 밖에서 기다렸다.
“할머니. 나 왔어.”
살짝 열린 문틈으로 서연우의 인사에 이어 다정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렸다.
“아이고~ 내 새끼. 학교 갔다 왔어? 배고프지. 할미가 밥 줄까?”
“할머니는 식사하셨어? 나 기다리지 말고 먼저 먹으라고 했잖아~”
서연우의 할머니가 미안한 말투로 말한다.
“내 새끼가 학교에서 공부하느라 힘든데 나 혼자 어떻게 먹어? 기다렸지~”
그 순간 서연우의 목소리가 가볍게 떨려왔다.
“그러지 말라니까. 할머니가 밥을 잘 먹어야······ 나랑 오래오래 살지. 나 없어도 꼭 챙겨 드세요. 예?”
“아냐~ 우리 손주가 걱정해서 할미 이제 안 아파. 말끔히 나았어. 그나저나 배고프지? 할미가 밥해 줄게. 뭐 먹고 싶어?”
할머니와 손자의 다정한 대화가 그 뒤로도 이어졌다.
두 사람의 대화가 너무도 자연스러웠기에 이동민 실장이 조금은 안심한 투로 말한다.
“치매가 심하진 않으신가 보네.”
난 잔잔히 고개를 저었다.
“연우 씨도 저처럼 고졸입니다.”
서연우의 나이는 올해 23살.
그 순간 이동민 실장도 뭐가 잘못되었는지 깨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