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4화
294. 보컬 트레이너 1
“오늘 너 상여금 받을 거야.”
회의실 자리에 앉자 옆자리의 구성철 실장이 낮은 목소리로 속닥인다.
“상여금이요?”
“그래. 그런데 억 단위인 거 같더라.”
이제껏 굴렁쇠 엔터 상여금의 최대는 5천만 원이었다.
그런데 억 단위를 줄 예정이라 말한다.
그 탓에 구성철 실장은 마치 본인이 받는 듯 기뻐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금액은 대표님이 말씀 안 하셨지만 이 정도는 미리 알고 있어도 되겠지.”
난 씨익 웃으며 답했다.
“오늘 좀 시끄럽겠는데요?”
속삭이는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하다 보니 비어 있는 자리에 각 부서의 팀장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김동수가 들어온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 기가 잔뜩 죽어 지내더니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목에 힘을 주고 있다.
첫 안건은 김동수가 체결해 왔다는 일본 현지 파트너십 갱신에 관한 보고였다.
“아리스 엔터와 5대 5 수익 배분으로 재계약을 맺었습니다.”
한동안 쭈글이 신세였던 김동수가 오래간만에 자신 있는 표정으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부서를 가리지 않고 박수가 터져 나왔다.
특히 서예종 라인의 이기철 이사와 주호성 팀장은 유달리 힘차게 박수를 쳐댔다.
“그동안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강감찬 대표는 속내를 감춘 채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김동수를 격려했다.
“잘했다. 동수. 지금처럼만 해.”
“물론입니다. 전반기 부진은 후반기에 반드시 만회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상여금은 5천만 원으로 잡혔으니 그렇게 알고.”
역대 최고액의 상여금을 받게 되자 김동수가 신이 나 외쳤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내가 회귀한 이후 가장 크게 운명이 바뀐 사람들을 꼽자면 미소와 유진이 그리고 주영인과 김동수다.
내가 바꾼 여러 일정이 영향을 미치며 네 사람에 관한 기록은 꽤 지워진 상태였다.
하지만 날새에게 받았던 몰카와 김동수를 피해 미국으로 간 최성애라는 여배우에 관한 일은 이미 벌어진 일.
그 두 가지를 엮으면 서예종 라인이 어떻게 그를 지켜내든 끝장을 낼 수 있다.
그 생각을 하는 동안 각 실의 실장들이 차례로 실적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김동수를 빼고도 다들 실적이 크게 올랐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그나마 가수 1실의 실적이 하락세를 그렸지만 대신 가수 2실이 전례 없는 성장세를 보이며 그 손해를 메꾸고도 남는 돈을 벌어들였다.
각 실급의 보고가 끝나자 강감찬 대표가 흐뭇한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그리고 다음은 정 팀장.”
“예. 대표님.”
“성과급 3억은 이번 주 내로 입금될 테니까 그렇게 알도록!”
굴렁쇠 창립 이래 상여금은 김동수의 5천만 원이 최고였다.
그런데 1억도 아니고 무려 3억이라고?
역대 최고급 상여금이 몇 분도 지나기 전 바뀌었다.
순간 회의실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급기야 이기철 이사가 조심스레 의견을 꺼내 들었다.
“저 대표님. 액수가 너무 과한 것 아닙니까?”
강감찬 대표가 이기철 이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뭐가?”
“이제껏 그 정도의 상여금을 지급한 적은 없었잖습니까?”
강감찬 대표가 피식 웃는다.
“그러니까 박탈감이 느껴진다 이 말인가?”
“예. 직원들 사기가 떨어질까 걱정입니다.”
하지만 강감찬 대표는 단호하기만 했다.
“우리 굴렁쇠는 성과를 낸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 성과에 맞는 상여금을 수여해 왔다. 내 기억이 잘못되기라도 한 건가?”
이기철 이사가 김동수를 가리키며 언성을 살짝 높였다.
“예. 여기 김 실장만 하더라도 이번 일본 파트너와의 재협상을 성공시켰는데 상여금이 5천이잖습니까?”
강감찬 대표는 태연스레 대꾸했다.
“그래서 부족해?”
“물론 그것도 엄청나게 감사한 일이지만 액수에서 이렇게 큰 차이가 날 이유는 도대체 뭐랍니까?”
강감찬 대표가 재미있다는 듯 웃는다.
“다들 여기 이 이사 말이 옳다고 생각하나?”
강감찬 대표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기철 이사의 말에 100% 동의하진 않아도 내 상여금이 지나치게 크다는 데는 동의하는 듯했다.
강감찬 대표가 김동수를 쳐다본다.
“김 실장. 너도 이번 조치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냐?”
김동수가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액수 차이가 너무 크게 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러면 하나만 묻자. 일본 파트너들이 계약을 갱신해 준 이유가 뭐였지?”
“한국의 굴렁쇠가 최근에 급성장을 해서······ 아!”
순간 말을 하던 김동수가 말을 흐려 버린다.
“그래. 네 입으로도 말한 그게 이번 상여금의 이유다. 우리 굴렁쇠가 잘 나가서! 그리고 올 상반기 우리 회사의 실적을 견인한 사람이 누구지?”
그제야 다들 아차 하는 표정을 짓는다.
김동수는 몸을 움찔거리며 자신의 입을 원망하고 있었다.
자기가 이룬 업적의 근간이 내게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강감찬 대표는 기세를 몰아 김동수를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또 하나! 동수 네가 중국의 장쉬안 이사와 함께 말아먹을 뻔했던 계약을 성사시킨 건 누구지?”
그것도 나지.
김동수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호준을 놓치지 않고 잡은 것도 윤호다. 찍어준 작품 모두가 흥행해 여러 부서의 실적을 호전시킨 것도 윤호의 실적이다. 다들 잊었나?”
내가 찍어준 작품 덕에 실적이 오른 것은 잊고 자기들이 잘해서 돈을 벌었다 생각한 실장들도 얼굴을 붉혔다.
다들 이제야 내게 빚진 걸 떠올리는 듯했다.
강감찬 대표는 내가 한 굵직한 일들을 말하며 김동수를 질타했다.
“막내 팀장이 잘하면 격려를 해 주지는 못할망정 기껏 한다는 게 상여금을 질투해?”
강감찬 대표는 이번에 다른 팀장들에게도 들으라는 듯 호통쳤다.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부러워할 시간이 있으면 실적을 내! 실적만 내면 3억이 아니라 10억을 못 줄까!”
이번에 다른 팀장들이 고개를 숙였다.
강감찬 대표가 혀를 찬다.
“그리고 이번 상여금은 굴렁쇠 엔터의 대주주이신 최 회장님께서 직접 정하신 거니만큼 더는 토 달지 말도록.”
회귀 전에는 굴렁쇠 엔터가 어떻게 돌아가던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명동 쪽 비즈니스를 처리하는 것만 해도 바빴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내 보너스 같은 사소한 일을 직접 챙기고 있다니.
내가 아들 후보군이라는 걸 신경 쓰고 있는 걸까?
어차피 며칠 뒤에 대흥 저축은행장을 만날 계획이니 거기서 최은태 회장에 관해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상여금에 관한 언급이 끝난 직후 내가 보고할 차례였다.
“정 팀장. 유진이 이야기나 해봐.”
“예.”
난 자리에서 일어나 정 팀의 실적 보고를 시작했다.
“이번 ‘만신 월아’ 이슈 때문에 유진이에게 방송 3사에서 모두 차기작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그중 최고 조건은 MBS인데 대본만 고르면 제작비를 대겠다고 합니다.”
방상영 1실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MBS 대표님께······ 드라마 작가와 대본을 고를 권한을 받았다고?”
“예.”
술렁이는 소리가 다시 한번 퍼진다.
대본과 작가를 고를 수 있다는 건 제작자의 권한을 일부나마 가졌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무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MBS의 대표로부터 직접 제안을 받았다는 말에 다들 벙하고 쪄버렸다.
내가 말한 게 사실이라면 주요 출연진들을 모두 굴렁쇠 엔터 소속 배우로 채운다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방상영 실장이 재차 되묻는다.
“호 혹시 우리 회사에서 몇몇 이상 출연하면 안 된다는 제약 같은 건 있고?”
“없습니다. 드라마국과 의논은 해야겠지만 최대한 제가 원하는 대로 들어주겠노라 약속하셨습니다.”
상여금 때문에 시기와 질투가 어린 눈빛을 보이던 팀장들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제는 내게 잘 보여야지 자기들이 관리하는 배우를 꽂아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안 까닭이다.
“그 그러면 우리 배우 1실에 이정아 배우와 최태정 어때? 트랜디 드라마부터 정통 사극까지 전부 소화 가능한 실력파들인데.”
방상영 실장이 선수를 친다.
그때부터 모두가 자기들이 관리하는 배우들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우리 진수 씨가 감초 역할로 대한민국 원탑이라는 건 알지? 장르 불문하고!”
“악역은 어때? 조홍식 선생님이 악역으로 전환을 고려하고 계신데.”
팀장들의 소란에 마치 내가 제작사 사장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 탓에 팀장들의 모든 관심이 내게로 쏠려 버렸다.
그 순간 오랜만에 어깨 힘이 잔뜩 들어가 있던 김동수의 얼굴이 다시 한번 일그러지고 있었다.
* * *
일단 각 실별로 조연 하나에 단역 둘까지 TO를 배정한 뒤에야 소란이 가라앉았다.
“그건 그렇고. 정 팀장. 따로 지원이 필요한 건 없나?”
강감찬 대표는 원하는 건 뭐든 말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보컬 트레이너 한 명을 영입했으면 합니다.”
강참찬 대표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이 실장이랑 선우가 보컬 트레이닝에 일가견이 있는데 왜 새로운 사람이 필요하지?”
“이젠 하나와 체리블라썸에게 전문 보컬 트레이너가 필요합니다.”
강감찬 대표가 그 이유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회사 내엔 전문 보컬 트레이너가 한 명 따로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거기다 상하이 뉴미디어에서 걸그룹을 하나 런칭하는 비용을 전액 출자해 주기로 했습니다. 단 그 조건이 걸그룹을 전담할 보컬 트레이너를 붙이는 겁니다.”
내 폭탄 발언에 다시 한번 회의실이 술렁거렸다.
굴렁쇠에선 아이돌 한 팀을 온전히 런칭하는 데 드는 비용을 10억에서 15억 정도를 기본으로 잡는다.
거기에 마케팅 비용까지 더하면 2 30억도 부족할 정도였다.
그런데 보컬 트레이너만 구하면 그 돈이 필요가 없다고 하자. 강감찬 대표마저 깜짝 놀라 되묻는다.
“마케팅 비용까지 상하이 뉴미디어가 자금을 다 댄다고?”
“예. 거기다 수익 분배는 지난번 계약대로 5대 5로 하자네요.”
강감찬 대표가 회의실이 떠나가라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 이제 보니 우리 정 팀장한테는 상여금 3억도 부족한 거였군?”
강감찬 대표가 껄껄대며 웃지만 더는 질투에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내 성공은 모두가 나눠 먹는 대형 웨딩 케이크 같은 거니까.
하지만 딱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내가 데려오려 하는 보컬 트레이너는 휠체어 생활을 하는 장애인.
멀쩡한 사람 놔두고 굳이 몸이 불편한 사람을 데려오려 한다는 뒷말이 나올 수도 있다.
그 탓에 난 보컬 트레이너의 채용에 관한 무조건적인 권한을 달라고 요구했다.
강감찬 대표가 피식 웃는다.
“어차피 상하이 쪽에서 너한테 모든 걸 일임했는데 우리가 따지고 들면 꼴이 우습지. 그렇게 해.”
혹시라도 있을 반발을 정리한 강감찬 대표는 이동민 실장을 쳐다본다.
“이 실장.”
“예.”
“둘이서 메이드 한번 잘 해봐. 체리블라썸급 걸그룹 하나 더 만들어 보자고?”
“맡겨주십시오. 대표님.”
회의는 그렇게 끝이 났고 난 회의실을 나오자마자 이수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차 한국 최고의 보컬 트레이너가 될 인재 서연우를 찾기 위해서.
그리고 이틀이 지났다.
서연우를 찾으라 이수찬에게 부탁해 뒀더니 생각보다 빨리 전화를 해왔다.
-서연우라는 그 친구 구로에 살고 오늘은 수원 현장에 일용직으로 나갔답니다.
“잠깐만. 현장이라니? 건설 현장 일용직?”
서연우가 현장 일을 하다니!
혹시 동명이인이 아닐까 해서 물었는데 내 기억 속의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 맞단다.
-그 사람 맞습니다. 얼마 전까지 노래를 부르다가 개인 사정이 있다며 카페를 그만두고 현장 일을 나갔다고 들었습니다.
“몸이 불편하지 않은 거 확실해?”
-예. 그 말씀 때문에 찾기가 조금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막상 찾으니까 바짝 마른 거 빼면 겉으로는 멀쩡하다던데요?
이수찬의 말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지금 이 시점의 서연우는 장애인이 아니란 소리였으니까.
* * *
“야! 빨리빨리 좀 움직여! 날도 더운데 사람 열 받게 하지 말고!”
“아. 예. 죄송합니다.”
“자꾸 이런 식으로 일하면 오늘 일당은 없는 줄이나 알라고!”
수원의 신축 빌라 공사 현장.
험악한 인상의 현장 반장이 3일 전 처음 현장에 나온 서연우를 향해 연신 삿대질을 해댄다.
서연우는 곰방이라고 불리는 단순 운반작업을 맡았는데 워낙 일에 서툴다 보니 하루도 빠짐없이 욕을 먹고 있었다.
서연우는 시멘트 한 포대를 힘들게 어깨에 메었다.
어깨가 빠질 것 같았지만 일당을 위해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XX. 내 인생 왜 이러냐······.”
서연우는 15살부터 라이브 카페에서 돈을 벌며 9년 동안 가수를 꿈꿨다.
어릴 적 도망간 부모 대신 자신을 버리지 않고 키워준 할머니를 제대로 모시기 위해서.
하지만 서연우의 목소리에 감탄한 엔터 회사 프로듀서들은 그를 직접 만나면 주저했다.
그리고 다들 똑같은 말을 해댔다.
-성형할 생각은 있지? 한 2천만 원만 투자하면 될 것 같은데.
다들 서연우의 목소리를 원하면서도 서연우의 외모를 아쉬워하고 있었다.
일부 회사는 회사에서 먼저 성형비를 빌려준다고 했었지만 2천만 원이나 되는 빚을 지긴 싫었다.
그래서 선택한 건 오디션 프로.
하지만 예선 1차를 통과하고 2차 시험을 보려던 날 그동안 뒷바라지를 하던 할머니가 치매 판정을 받아 버렸다.
절망에 빠진 서연우는 가수를 때려치울 생각으로 라이브 카페에 더는 나가지를 않았다.
그리고 신축 빌라 현장으로 나와 일을 하는 중이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시멘트를 위로 나르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잡생각에 시달렸다.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고 어떻게 할머니를 모셔야 할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길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딴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서연우는 어느새 난간도 없는 3층의 끝에 도달해 있었다.
휘이잉.
더운 열기가 섞인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덕분에 정신을 차린 서연우의 눈 앞에 펼쳐진 건 허공이었다.
“어······ 어······?”
하필이면 안전 그물망도 쳐지지 않은 장소.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지만 시멘트의 무게 탓에 몸이 앞으로 기우뚱 기울기 시작했다.
서연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차라리 이 고통스러운 23년간의 삶이 끝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때였다.
멈칫.
앞으로 기울던 몸이 멈췄다.
놀란 서연우는 감았던 눈을 뜨고 등 뒤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정장을 입은 잘생긴 남자가 자신의 등을 꼭 붙잡고 있었다.
자신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필사적인 표정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