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3화
293. 링링
‘링링의 실력이 그렇게 형편없나?’
프로다운 기교를 가진 건 아니지만 맑은 목소리와 뛰어난 표현력만큼은 상당한 수준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방선우는 링링이 아이돌이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왜?”
“성대가 너무 약해요.”
“성대가 약하다고?”
“높음 음역에서뿐만 아니라 보통 음역에서도 성대가 힘들어하더라고요. 더 큰 문제는······.”
“더 큰 문제는 뭐?”
“소리가 갈라지는 걸 보니 벌써 성대에 결절이 생겼을 가능성도 있어요.”
잠깐 고민하던 난 방선우에게 되물었다.
“혹시 링링한테 안 맞는 노래를 불러서 그런 건 아니고?”
강하나의 보컬은 청아한 음색을 가진 링링과는 달랐다.
탄탄한 중음역대의 목소리와 독특한 가성이 합해져 나는 소리였으니까.
하지만 방선우가 고개를 젓는다.
“아뇨. 자기 목소리로 자기 스타일로 노래를 불렀어요. 그런 문제는 아니에요.”
하긴 절대음감을 가진 방선우의 평이 잘못되었을 리는 없겠지.
나는 잠깐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회귀 전 링링이 탑 아이돌로 생활했던 건 대략 1년 정도.
언니의 이름을 알린 뒤 그녀는 더 이상 연예계에는 미련이 없다며 은퇴해버렸다.
그 은퇴의 이유가 성대 문제는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기억을 떠올려 보자 당시 링링의 목소리는 지금처럼 맑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혹시 치료 방법은 없고?”
“성대도 근육이라 훈련이 되지만 그래도 타고나는 부분이 워낙 커서······.”
“만약 전문적으로 보컬 트레이닝을 받으면 어때? 좀 나아지진 않을까?”
방선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나아지긴 하겠죠. 단 하루 노래하면 2 3일은 쉬어줘야 할걸요? 근데 프로는 그럴 수가 없잖아요.”
제한적이라지만 그나마 희망을 발견했다.
“그러면 좋은 보컬 트레이너를 구하고 엄격한 스케줄에 따라서 노래를 부르면?”
방선우가 갸웃거렸다.
“훨씬 나아지겠죠. 하지만 확실한 건 아니니까 전문적인 보컬 트레이너에게 다시 확인해 보세요. 무엇보다 먼저 제대로 된 병원도 가 보시고요.”
“오케이.”
막상 아이돌이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던 두 사람의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동생이 너무 어린 데다 한국에서 아이돌을 하려고 한 탓에 말리려고 했을 뿐.
연예인이 되는 것 자체를 말리려고 한 건 아니었단다.
난 방선우와 함께 내린 결론을 두 사람에게 재차 말했다.
두 사람은 한국말을 할 줄 알지만 능숙한 건 아니었으니까.
“일단 재능은 차고도 넘쳐. 한국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하니까 한국 활동에도 문제가 없고.”
왕룽과 릴리가 서로를 쳐다보며 짧은 눈빛을 교환했다.
막상 연예인이 되는 걸 반대했지만 링링이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고민이 되는 눈치였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어.”
난 링링의 성대가 약하기에 좋은 보컬 트레이너와 엄격한 스케줄에 맞춰 가수 생활을 할 때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릴리가 놀란 표정으로 말한다.
“앞으로 노래를 못하게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링링이 말린다고 들을까요?”
잠시 생각하던 릴리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링링 고집 엄청 세요!”
그래.
그럴 거라면 진즉에 말을 들었겠지.
링링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무조건 안 된다고 하는 건 좋지 않다.
“링링 같은 타입은 차라리 관리해 주는 게 좋을 겁니다.”
왕룽과 릴리가 서로를 쳐다본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자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내 왕룽이 릴리의 손을 붙잡고 설득을 시작했다.
“윤호한테 맡겨보자. 윤호라면······ 링링을 위한 최선의 길을 찾아줄 수 있을 거야.”
릴리의 눈길이 내 쪽으로 향한다.
“제 동생을 부탁드려도 돼요? 미소처럼 아껴줄 수 있어요?”
릴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입니다.”
릴리가 녹음 부스를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릴리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러자 왕룽은 상하이 쪽에서 모든 비용을 댈 테니 좋은 보컬 트레이너부터 구해달라 말했다.
그 순간 생각나는 보컬 트레이너가 한 명 있었다.
‘연우를 찾아봐야겠다.’
회귀 전 탑 엔터테인먼트 시절 함께 일을 했던 한국 최고의 보컬 트레이너 한 명이 떠올랐다.
서연우.
그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이었지만 15살 때부터 노래로 밥벌이를 했었다.
그는 평범한 외모에 불편한 몸이라 가수로서는 도저히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능력을 보컬 트레이닝에 올인했다.
만약 그를 영입할 수 있다면 링링이 아이돌 생활을 하는 건 가능해질 거라 생각이 든다.
다만 현재로는 어디에서 뭘 하며 살고 있는지 모르기에 이수찬에게 찾아달라고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난 그런 서연우를 염두에 두고 왕룽에게 말했다.
“알았어. 찾은 다음에 연락할게.”
왕룽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잠시 후.
녹음실을 나온 링링이 상기된 표정으로 결과를 묻는다.
“팀장님. 저 어땠어요?”
심장이 떨리는 듯 두 손을 꼭 쥔 채였다.
“일단 노래는 합격!”
“아싸!”
링링이 그것 보라며 자기 언니인 릴리에게 외친다.
“언니. 봐봐. 내가 뭐랬어? 나 잘한다고 했잖아!”
“그래. 링링······.”
“응? 근데 표정이 왜 그래? 그렇게 내가 아이돌 되는 게 싫어?”
“아 아냐. 그런 게 아니라······.”
난 들뜬 링링을 달래고 방선우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 주기 시작했다.
링링의 표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그러면······ 저 아이돌 못 해요?”
눈물을 글썽이는 링링을 차분히 달랬다.
“아니 할 수 있어. 대신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해.”
“저 뭐든 할게요! 말씀만 하세요!”
난 링링에게 성대를 보호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차가운 물과 탄산수는 피하고 최대한 말을 아끼라는 것 등등.
이제 16살이라 어려운 일들이 대부분인데도 링링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쉽지 않은 일들일 텐데 그래도 아이돌이 하고 싶어?”
링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후회해도 끝까지 가 보고 나서 할래요.”
꿈을 향해 달려가고 싶다는 링링의 눈빛은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알았어. 네 꿈. 어떻게든 이뤄줄게.”
그 순간 링링이 눈물을 주르륵 흘리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흐흑.”
링링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러다 결국엔 녹음실이 떠나가라 울기 시작했다.
꿈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된 날 시한부 선언을 받은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잠시 후.
링링의 울음이 그치길 기다린 뒤 차분히 말했다.
“링링. 앞으로는 이렇게 울지 마. 우는 것도 성대에 무리가 많이 가니까.”
링링이 황급히 눈물을 닦고 고개를 끄덕였다.
금세 의지를 불태우는 링링의 모습을 보니 희망이 보인다.
이 업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능력 이상으로 멘탈도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요? 저 이제부터 한국에 있어요?”
“아니 일단은 돌아가. 보컬 트레이너를 구한 다음에 부를게.”
“네.”
“그리고 가기 전에 일단 병원부터 가서 체크부터 해보자.”
왕룽이 좋은 병원을 알고 있다 말했지만 나보다 잘 아는 건 아닐 거다.
난 한국 최고의 가수 전문 의사를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 * *
“자 아~~ 하세요.”
“아~~”
김수명 원장의 수명 클리닉.
진료 의자에 앉은 링링이 아기 새처럼 입을 짝 벌렸다.
김수명 원장은 수면 마취를 하면 성대에 무리가 갈 수 있다며 무수면으로 내시경 튜브를 밀어 넣기 시작했다.
굵은 튜브가 목을 타고 내려가는 이물감이 괴로울 텐데도 링링은 언니의 손을 잡고 꾹 참아내고 있었다.
이비인후과가 아니라 여기로 온 건 김수명 원장이 성대에도 일가견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수명 원장에게 링링의 상황을 말하고 정밀 검진을 부탁한 상황이다.
잠시 후.
내시경 검사가 끝나자 김수명 원장이 개인적인 소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정 팀장님. 제가 이비인후과 전공이 아닌 건 아시죠?”
김수명 원장은 가정의학과 전공의다.
“위 대장 내시경까지 다 볼 줄 아시는 분이 너무 겸손해하십니다.”
가정의학과는 다른 과를 정하면 그것만 파는 전공의와 달리 전 전공을 돌아가며 의술을 배운다.
그러나 김수명 원장은 각 과에서 수련 받을 당시 담당 교수들이 자기 과로 전공을 바꾸라고 권했을 정도의 실력자였다.
실력 있는 의사란 걸 안다는 내 칭찬에 김수명 원장이 헛기침하며 말한다.
“큼. 일단 말씀하신 대로 결절이 있는 건 맞습니다. 사실 결절이라고 부르기도 힘들 정도로 미세하게 보이네요.”
방선우의 말이 맞아떨어지자 링링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하지만 난 링링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안심시켰다.
“괜찮아. 링링. 아직 진단 안 끝났어.”
김수명 원장이 짧게 숨을 내쉬고 진단을 이어 말한다.
“결절은 조금만 쉬어주면 나을 겁니다. 물론 그동안 노래는 절대 금지고 말도 아껴야 하는 건 아실 거고요.”
“예. 그렇다면 프로가 될 수는 있겠습니까?”
김수명 원장은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분의 성대 근육은 일반인보다 30% 정도 얇습니다. 하지만 아직 어리니까 성장과 함께 성대 근육도 함께 자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음색이 약간 변할 수도 있지만 그건 창법으로 조절하시면 될 것 같고요.”
단련된 가수의 성대는 일반인보다 두꺼워진다.
성대도 근육인 이상 단련이 가능하니까.
링링도 그렇게 단련을 할 수 있다는 말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일단은 좋은 보컬 트레이너를 만나서 다치지 않고 꾸준히 단련하면 가수가 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라고 보입니다. 단 정기적인 검사는 필수겠지만요.”
수면 마취를 하지 않고 검사를 받아 아직 고통이 가시지 않았지만 링링은 또박또박 대답했다.
“그 정도는 견뎌낼 수 있어요!”
김수명 원장이 따뜻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쉽진 않을 겁니다.”
“괜찮아요. 아이돌을 할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렇다면 같이 한번 노력해 보죠.”
링링이 눈물을 글썽이며 김수명 원장을 와락 껴안아 버렸다.
“네~ 선생님!”
김수명 원장이 어색한 포즈로 링링의 등을 톡톡 두드렸다.
“힘내요. 저도 최선을 다해 돕도록 하겠습니다.”
링링이 밝은 목소리로 답하며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김수명 원장님!”
* * *
인천공항.
나도 왕룽과 릴리 그리고 링링을 배웅하기 위해 공항으로 나왔다.
링링은 일단 중국으로 돌아가 부모의 허락을 받은 후 한국으로 와 정식으로 아이돌 팀을 꾸려 보자 말했다.
그리고 릴리와 왕룽은 이 프로젝트에 관한 모든 비용은 상하이 뉴미디어 그룹이 대겠다고 약속했다.
링링의 잠재력을 모르는 그들 커플로서는 나에게 너무 큰 부탁을 한 게 아닌지 계속 미안해했다.
하지만 난 괜찮다며 왕룽과 릴리를 안심시켰다.
사실은 중국 시장을 휘어잡을 거물이 스스로 안겨 온 셈이니까.
“하여간 트레이너 찾으면 연락할게. 이제 비행기 시간 다 됐어. 서두르자.”
난 짐을 끌며 일행들을 출국장으로 안내했다.
출국장으로 가는 동안 링링의 기분이 유달리 좋아 보였다.
어제 세리를 만나 선물로 받은 스카프를 목에 두른 채로 말이다.
“괜찮아? 링링?”
링링이 고개를 끄덕인다.
여전히 표정은 활달했지만 혹시나 목이 상할까 입은 열지 않고 있다.
“적당히는 말해도 괜찮아.”
“그래요?”
이제 고작 16살.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는데도 링링은 내 이야기를 듣는 즉시 목에 무리가 되는 모든 걸 끊어버렸다.
“제대로 된 보컬 트레이너를 찾아서 연락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맘 편히 먹고 기다려.”
“고맙습니다!”
“그래.”
링링과 릴리와도 인사를 한 다음 왕룽과도 인사를 나눴다.
“윤호야. 그러면 또 보자.”
“어. 트레이너 찾고 나면 연락할 테니까 그때 스케줄 잡자.”
왕룽은 지진에서 릴리를 구해준 보답을 할 테니 꼭 중국으로 와달라고 말한다.
“비행기 시간 다 됐다. 그러면 잘 들어가고.”
왕룽이 나머지 두 사람과 출국장으로 향하는 걸 본 뒤 난 회사로 향했다.
프로젝트 아이돌 그룹을 만들 계획을 알리고 보컬 트레이너도 영입해야 했으니까.
* * *
회사에 도착한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연예 기사 면을 확인했다.
[<신의 이름으로>. 끝을 알 수 없는 시청률! 10화 29.1% 11화는 얼마?]
[L.M.L 브랜드. 정유진을 만나 날개를 달다!]
[KNET ‘바닥 찍고 다시 하나!’의 주연 강하나. 너튜브 구독자 최단기 100만 돌파!]
[이태풍 주연의 <경계 너머로> 9월 개봉! 경쟁작이 없다!]
하나같이 잘 풀린다는 기사들의 연속이다.
“이대로만 쭉~ 이어졌으면 좋겠네.”
그런데 그때.
주차장에서 내린 선배들이 굴렁쇠 엔터의 순위가 최근 엔터 업계 5위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현재 1위는 주영인이 있는 에이스 엔터.
2위는 마동팔과 쁘띠모가 속한 TK 엔터.
3위는 최근 급격한 인수 합병을 통해 규모를 불려 소이영을 품고 있는 TNT 엔터.
4위는 이서준 회장과 김종훈이 있는 SJ 엔터.
그리고 5위가 우리 굴렁쇠 엔터였다.
다만 4위부터는 매출이 우리의 2배 이상이었다.
아직 갈 길은 멀었지만 그래도 꽤 빠른 성장과 함께 굴렁쇠의 평판은 더더욱 커지고 있었다.
최근 유진이의 ‘만신 월아’와 L.M.L 브랜드의 연이은 성공 덕분이었다.
그 덕에 날 보는 굴렁쇠 엔터의 직원마다 축하를 보내오고 있었다.
“야. 정 팀장. 너희 팀 실적 끝내주더라?”
“오늘 우리 팀 회식인데 안 올래?”
“그나저나 L.M.L 다음 쇼는 언제야? 괜한 중국 모델 쓸 거 없이 다음에는 우리 지효 좀 세워 줘. 걔는 패션쇼 경험도 있거든.”
내가 얻은 기회를 나누겠다고 하자 서예종 라인의 직원들도 이젠 서슴없이 다가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점점 회사 내 직원들의 추가 내 쪽으로 기우는 걸 체감할 수가 있었다.
“그럼 저 먼저 올라가 보겠습니다. 회의가 있어서요.”
“그래. 수고~”
난 선배들과 인사를 마친 뒤 6층 회의실로 향했다.
그런데 회의실로 들어간 순간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