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8화
278. 만신 월아 4
드르륵.
차 문을 열자 유진이와 양소리 대리 그리고 이시연 AD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김성운 PD가 싸늘한 말투로 묻는다.
“이 선배. 지금 뭐 하는 짓거리야?”
평소 김성운 PD는 이시연 AD에게 존대했다.
그녀가 자신보다 입사가 빠른 선배였었으니까.
아무튼 본인의 출세가 빨랐지만 김성운 PD는 직책이 낮은 선배들에게도 깍듯했었다.
그런 김성운 PD가 노골적인 반말을 쓰자 이시연 AD가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일단 내려와 봐.”
“김 PD. 너 갑자기 왜 이래?”
김성운 PD가 벌컥 화를 낸다.
“갑자기? 그걸 몰라서 물어? 여기 정 팀장한테 내가 찾았다고 거짓말했다면서!”
이시연 AD가 입술을 살짝 깨문다.
“거짓말이라니! 사람이 착각을 좀 할 수도 있지. 그나저나 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냐? 그래도 내가 선배야!”
“말이 심하다고? 어이가 없네.”
김성운 PD가 차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더니 이시연 AD를 밀쳤다.
그리고는 시트 사이에 숨겨놓았던 초소형 카메라를 끄집어낸다.
“이건 안 심하고? 이. 선. 배?”
김성운 PD의 표정은 부모의 원수라도 만난 듯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이시연 AD도 보통은 아니다.
“그 그게 뭔데? 그걸 왜 나한테 들이대?”
이시연 AD가 시치미를 뚝 떼자 김성운 PD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 선배! 아니 이시연! 당신 정말 이렇게 나올래?”
이시연 AD가 고개를 휘젓는다.
“그러니까 실망이고 뭐고 그게 뭔데 나한테 따지냐고! 난 몰라!”
김성운 PD가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날 쳐다본다.
방송국 직원들의 싸움에 끼어들어봤자 도움이 될 건 없다.
하지만 지금은 예외였다.
김성운 PD와는 앞으로도 함께 가야 할 사이.
거기다 이시연 AD처럼 위험한 사람이 연출부에 남는다면 그것 또한 위험한 일이다.
난 폰을 꺼내 조금 전 녹화된 CCTV 영상을 플레이했다.
이시연 AD는 본인이 카시트에 카메라를 숨기는 장면이 재생되자 표정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이 이게······ 어 어떻게······.”
늘 느끼지만 사람들은 자기 잘못을 들키기 전에는 제법 당당하다가도 증거가 나오면 한순간에 무너져 버린다.
이시연 AD가 입을 다물자 김성운 PD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른 채 말했다.
“미치겠다 정말. 당신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야? 강일구 그 쓰레기 같은 놈과 연락하는 것도 당신 맞지?”
강일구의 이름이 나온 순간 이시연 AD가 갑자기 눈을 부라린다.
“왜? 그 쓰레기 같은 새X가 돈이라도 준대?”
그 순간 이시연 AD의 입이 열렸다.
“김성운······ 너 말 함부로 하지 마!”
이시연 AD는 마치 강일구 기자를 욕하는 게 짜증 난다는 듯 외친다.
김성운 PD가 이시연 AD를 뚫어져라 노려보다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네요. 저랑은 말이 안 통하니 이 뒤는 정 팀장님이 하시죠.”
안 그래도 벼르고 있던 참이다.
난 그 즉시 강감찬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오늘 MBS 윗분들 만나시죠?”
-안 그래도 이제 막 MBS에 도착해서 대표실로 올라가려던 참이다. 왜? 그사이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냐?
난 곧장 현장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한 뒤 증거 자료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 AD가 차량 내부에 몰카를 설치해서 강 기자한테 넘기려고 한 모양입니다. 법무팀 불러서 제대로 붙어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내가 생각 이상으로 강하게 대응하자 그제야 이시연 AD의 입이 열렸다.
“저 정 팀장. 잠깐만······.”
하지만 난 잠깐 기다려 달라는 이시연 AD의 말을 무시했다.
“하마터면 유진이에 관한 모든 정보가 새어 나갈 뻔했습니다 대표님!”
내 언성이 높아지자 강감찬 대표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올라가는 대로 최 대표님과 상의해 보마. 방금 찍었다는 영상은 나랑 곽 법무팀장한테 보내고. 정보가 샜을지 모르니까 우리도 소송 들어가야지.
“예. 대표님.”
-현장 챙기느라 고생 많다 윤호야. 계속 수고해라.
“늘 걱정시켜드려 죄송합니다.”
-걱정은 무슨. 이따가 끝나고 나서 다시 통화하자.
강감찬 대표와 전화를 마치자 이시연 AD가 내 손을 덥석 붙잡는다.
“자 잠깐만. 응? 우리 이야기 좀 해. 말로 하자 말로.”
“이제 와서 말로 하자고요?”
“아니 너무 그러지 말고······.”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만들 때는 자기 눈에도 피눈물 날 각오 정도는 해야지.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버티다 못 이기는 척 빌기 시작했다.
난 이런 타입이 정말로 싫다.
하지만 강일구를 제대로 엮기 위해선 이시연 AD의 도움이 필요한 것도 사실.
“선처를 받고 싶습니까?”
이시연 AD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우선 선처받고 싶으시면 이번 일. 입도 벙긋하지 마세요. 아시겠습니까?”
이시연 AD가 주춤거린다.
“아시겠냐고요!”
“어 어. 그 그래.”
난 이시연 AD를 연달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이 몰카는 어디서 구한 겁니까?”
“······일구 씨에게 받은 거.”
“혹시 이거 원격으로 파일 전송 되는 겁니까?”
이시연 AD가 고개를 젓는다.
“아 아냐. 이건 너무 작아서······ 직접 수거해야 된대.”
순간 김성운 PD가 내 편을 들기 시작한다.
“선배. 구속되지 않으려면 알고 있는 거 다 불어. 여기 정 팀장한테 개겼다가 개털 된 사람 한둘이 아냐. 알지? 선배라고 다를 것 같아?”
김성운 PD가 이시연 AD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이시연 AD의 입에서 그동안의 일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스타 패치의 ‘거머리’ 강일구와 자신은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관계라고.
그가 끈질기게 부탁을 해서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이야기를 끝낸 이시연 AD가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기 시작한다.
“정 팀장! 한 번만 봐줘! 우리 엄마가 알면 나 죽어 정말!”
하지만 이 일은 내 마음대로 봐주고 말고 할 사항이 아니다.
강감찬 대표가 MBS의 대표를 만나러 갔으니 최소 좌천이다.
그쪽 엄마를 걱정하기 이전에 감옥으로 가야 할 걱정을 해야 할 정도랄까.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14조. 몰카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증거는 완벽하니까 빠져나갈 순 없을 겁니다.”
이시연 AD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버렸다.
“지 징역?”
“대신 방금 그 이야기를 증언해 주시면 구속은 면하게 해드리겠습니다.”
“무 무슨 이야기? 설마 일구 씨가 시켰다는 거?”
“싫으시면 그냥 혼자 다 뒤집어쓰고 콩밥 좀 먹어 보시던가요.”
이시연 AD의 눈이 갈등으로 흔들린다.
결혼을 생각한 상대다 보니 많이 주저 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결정타를 날려야겠다.
“그보다 참 이상하네요. 강일구 씨는 최근에 해체한 스쿨 파티 보컬 이선아 씨와 사귄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 AD님이랑 결혼을 한다는 건지······”
“뭐? 거 거짓말. 정 팀장. 거짓말하지 마!”
이시연 AD는 말도 안 되는 모함을 말라며 외쳤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다.
강일구는 앞으로 1년 뒤 이선아와 결혼에 성공하며 연예부 기자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못 믿겠으면 직접 알아보세요. 스쿨 파티 전 매니저 번호라도 알려드릴까요?”
이시연 AD가 손을 부들부들 떤다.
“바 방금 그 말 거짓이 아니면 내가······ 증언할게. 전화번호부터 줘. 빨리”
이시연 AD는 내가 알려준 번호로 연락해 통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성을 지르며 전화를 끊었다.
스쿨 파티 멤버들은 매니저를 가혹하게 부리기로 유명했으니 좋은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았을 거다.
당연히 강일구 기자와 이선아가 사귄다는 걸 숨길 이유도 없었을 거고.
전화를 끊은 이시연 AD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이빨을 갈기 시작한다.
“증언······할게. 그 개XX는 내 손으로 XX버릴 거야!”
이걸로 강일구 기자를 붙잡는 카드를 손에 쥐게 되었다.
“모레 연락할 테니까 그때 오셔서 증언 한 번 해주세요.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요.”
이시연 AD가 눈을 빨갛게 물들이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이시연 AD의 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이시연 AD가 전화를 받는 순간 찢어지는 듯한 고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야 이. 미친 XX. 명색이 연출부라는 인간이 할 짓이 없어 몰카를 찍어? 너 돌았지? 맞지? 아니면 나 엿 먹이려고 그랬냐? 대표님이 나까지 잡아 죽인단다! 당장 튀어 들어와!
MBS 드라마국 김격식 국장의 목소리다.
그 순간 이시연 AD는 연신 굽신거리기 바빴다.
이제 남은 건 강일구 하나.
내일 유진이의 생방송이 안전하게 끝나면 강일구 기자에게 미남계를 쓴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이다.
* * *
8월 26일 오전 7시 30분.
MBS의 <오늘 아침!> 스태프들이 촬영 현장에 도착했다.
이헌제 PD와 함께 들어온 카메라 감독 리포터 그리고 작가로 이뤄진 <오늘 아침!> 팀들은 <신의 이름으로>의 현장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누며 오늘 생방송으로 촬영할 장면에 관한 상의를 시작했다.
주차장에 차를 댄 난 ‘진유정 여사’로 분장한 유진이를 뒤로하고 차 밖으로 나왔다.
내 옆에 차를 댄 강감찬 대표도 기지개를 켜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이제 시작이구나.”
“예. 대표님.”
며칠간 고생한 탓인지 그의 얼굴이 왠지 창백해 보였다.
“건강은 좀 어떠세요?”
“쓸데없는 걱정은 말고. 그보다 유진이는?”
“분장 끝내고 스탠바이 중입니다.”
“그래.”
강감찬 대표의 든든한 뒷모습을 보니 걱정 따윈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이미 촬영장 한 편에는 <오늘 아침!>의 이헌제 PD가 주연 배우들과 인터뷰를 시작했다.
생방송 시각인 8시 30분까지는 10분이 남은 시각.
그런데 그때였다.
시계를 힐긋 보던 강감찬 대표가 나지막이 웃으며 말한다.
“이제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갑자기 폰에서 연달아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띠링-띠링-!
[(속보) <신의 이름으로>의 ‘만신 월아’. 사실은 1인 2역?]
[(속보) 세상을 속인 압도적인 연기. 그녀의 정체는 바로······]
[(속보) ‘만신 월아’의 정체. MBS <오늘 아침!>에서 전격 공개!]
아직 생방송이 10분이나 남았는데 ‘만신 월아’가 1인 2역이라는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술렁이는 소란이 마치 메아리처럼 현장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현장 스태프들이 당황해하자 강감찬 대표는 날 보며 살짝 윙크를 짓는다.
“걱정할 것 없다. 이름은커녕 이니셜도 언급하지 않았으니까.”
“이래도 되는 겁니까?”
“되고말고. 원래 대중의 관심을 잡으려면 예고편 정도는 때려줘야 하는 법이거든”
얼마나 많은 언론이 움직였는지 5분도 되지 않아 ‘만신 월아’가 포털 실검 순위 1위에 올라왔다.
강감찬 대표가 언론 플레이를 위해 쓴 돈은 내가 생각한 범위를 까마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 * *
MBS <신의 이름으로> 촬영 현장.
10분 전 예고 편을 뿌린 탓에 현장이 어수선해지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정보에 스태프들이 두리번거린다.
“대체 누군데?”
“누가 1인 2역을······ 했다는 거지?”
현장에 김수희 선생님이 보이지 않자 잠깐 그녀를 의심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김 선생님이신가?”
“말이 돼? 저번 촬영 때 두 사람이 연기 대결을 한 거 본 건 아예 뇌에서 지웠어?”
“아. 맞아······ 그랬지.”
다들 얼이 나간 터라 현장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있었다.
몇몇 스태프들은 날 보며 따지듯 물어본다.
“정 팀장. 도대체 누구야?”
“혹시 조연 중에 한 분인가?”
다들 유진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채로 질문을 퍼붓는다.
“이따가 보시죠.”
난 어떤 질문과 협박에도 대꾸하지 않고 잔잔한 웃음만 지었다.
그때였다.
김성운 PD가 주변을 살펴보며 외친다.
“자자. 다들 촬영이 코 앞인데 왜 이렇게 시끄러워요? 집중 좀 합시다~”
김성운 PD는 시치미를 뚝 뗀 채 촬영을 하자고 일렀다.
스태프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리하자 그 옆으로 MBS의 <오늘 아침!> 팀들도 준비를 마쳤다.
“자 우리도 이제부터 생방으로 진행할 테니까 다들 긴장하자고.”
<오늘 아침> 팀을 이끄는 이헌제 PD는 조금 전 ‘만신 월아’의 정체를 들었다.
그 탓에 근질근질한 입을 다물고 있는 게 고역인 모양이다.
사람들이 아직도 ‘만신 월아’의 정체가 누군지를 알지 못하고 있기에 김성운 PD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정 팀장. 진 여사님 나오라고 해요.”
“예. PD님.”
오늘 찍는 씬 111은 ‘만신 월아’와 그녀의 딸 ‘청명’이 만나는 씬.
김성운 PD는 두 사람 중 먼저 ‘만신 월아’를 연기하는 진유정 여사를 불렀다.
난 알겠다고 대답한 뒤 벤츠 스프린터의 슬라이딩 도어를 열었다.
드르륵.
문이 열림과 동시에 MBS <오늘 아침!> 팀의 카메라에도 REC 버튼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생방송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