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0화
260. 폭풍의 전조 2
신사동 리버스 엔터 본사.
은기가 자수하고 남은 식구들은 강한 엔터의 사옥을 통째로 임대준 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면서 신사동 인근에 새 터전을 만들었다.
회사 입구에 차를 대자 머리를 깔끔하게 기른 전직 조폭들이 제법 매니저다운 복장으로 달려 나왔다.
“오셨습니까? 형님!”
“조폭 티 내지 말랬더니 또 이러냐?”
홀로 정장을 입고 있는 이수찬이 히죽 웃으며 말한다.
“그래도 처음 오시는 건데 인사는 제대로 드려야죠.”
손을 휘휘 저으며 일어나라고 하자 다들 뭐가 좋은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알았어. 그나저나 차는 어디다 댈까?”
“키 주세요. 애들 시켜서 주차해 두겠습니다.”
이수찬이 손짓하자 직원 한 명이 뛰어와 키를 달라고 한다.
얼굴을 보니 내가 알던 녀석이다.
천사 보육원 후배 강태천.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녀석인데 여기서 다시 만났다.
“오래간만이에요. 형.”
“뭐야? 태천이 너도 여기 있었냐?”
“예. 올라온 지 얼마 안 됐어요.”
강태천은 수원에서 일용직으로 지내다가 소식이 닿아 서울로 올라왔단다.
숙소를 제공하고 아는 형님들이 있었기에 고민할 틈이 없었다면서 말이다.
“공사판과는 다르겠지만 여기도 만만치 않게 힘들 거야. 언제든 혼자 처리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형한테 연락하고.”
“예. 형.”
인사를 마치고 이수찬과 함께 건물로 들어갔다.
“그나저나 날새 그 인간은 어디 있어?”
“일단 동혁이 방에 넣어두고 지키고 있습니다.”
날새가 찾아온 이후 리버스 엔터의 운영이사인 최동혁이 집중 관리를 하고 있단다.
“형님. 그런데 날새를 만나기 전에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뭐?”
엘리베이터로 향하며 이수찬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해주기 시작한다.
“저번에 보육원에 찾아와 형님과 은기 형님을 찾던 대흥 저축은행 기억나시죠?”
“그래. 당연히 기억하지.”
“거긴 대호파 자금을 양지로 전환하기 위해 이름만 바꾼 곳이라 보시면 됩니다.”
“대호파?”
“예. 명동의 큰 어르신 그러니까 최은태 회장님 밑에 있는 조직입니다.”
최은태 회장.
굴렁쇠 엔터의 대주주이자 명동의 가장 큰 전주인 그가 대흥 저축은행을 움직여 고아들을 조사했다고 한다.
“잠깐······ 그러면 최 회장이 자기 친아들을 찾고 있는 거였어?”
“예. 그런 거 같습니다.”
침을 삼킨 이수찬이 말을 계속 잇는다.
“그리고 날새는 은기 형님이랑 형님이 차은태 회장의 아들로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합니다만······.”
“내가 후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도착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자 이수찬이 최상층을 누른다.
“글쎄요. 다음은 은기 형님이나 형님이 직접 오지 않으면 입을 안 열겠답니다.”
“알았다. 그건 직접 만나서 묻는 수밖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고급스러운 카펫이 깔린 임원 층이 나온다.
바닥은 레드카펫으로 깔려있고 벽에는 온갖 명화들이 걸려 있었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감탄하며 걸어가는데 대표이사실이라는 문패가 두 개나 보였다.
“수찬아. 그런데 대표이사실이 왜 두 개야?”
“아 저거요?”
이수찬이 어색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아 미안. 내가 괜한 걸 물었네.”
“아닙니다! 형님은 뭐든 마음대로 물으셔도 됩니다. 저건······ 그러니까. 은기 형님이 만들어 두라고 해서 만들어 둔 방입니다.”
“응? 그런데 왜 그렇게 긴장해?”
이수찬이 미적거리며 말을 꺼낸다.
“저긴 형님 방입니다.”
“어느 형님?”
이수찬의 날 쳐다본다.
“나?”
“예. 은기 형님이 나중에 출소하면······ 형님이랑 같이 회사를 운영하고 싶으시다고 하셔서······.”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이수찬이 굳은 표정으로 내게 부탁하기 시작했다.
“형님. 그냥 여기에 와서 저희를 이끌어 주시면 안 됩니까? 이제 저희도 조폭 짓 안 하고 사람답게 살잖습니까?”
난 이수찬을 보며 조심스레 고개를 저었다.
굴렁쇠에는 나만 믿고 쳐다보는 배우와 가수들이 가득했으니까.
이수찬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쉰다.
“······그래도 언제나 저희가 형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이수찬의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전생에는 어떻게 지내는지조차 잊었던 가족들이 여기에도 있었다.
엇나갔던 가족들이지만 조금만 도와주면 앞으로는 양지에서 계속 살 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사이 최동혁의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혹시 뭐 협박 같은 거 했어?”
“전혀요. 그런데 저희가 아직도 조폭인 줄 알고 지레 겁을 먹고 쫄아 있습니다.”
“그래. 알았다. 들어가 보자.”
최동혁의 사무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최동혁과 날새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날새는 눈 아래로 다크서클이 코까지 내려왔고 머리는 기름으로 떡이 져 있는데 며칠은 잠도 못 잔 모양이다.
“오셨습니까? 형님.”
최동혁이 환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그래. 반갑다. 근데 우리 인사는 나중에 따로 하고 일단 이 친구랑 단둘이 이야기 좀 하게 자리 좀 비워줄래?”
두 사람이 나가자마자 난 날새의 맞은편에 앉았다.
날새가 눈치를 살피며 사과부터 한다.
“저······ 그전에 현장에서 있었던 일은 정말 미안하게 됐수다. 그 그쪽이 이런 사람들의 형님인 줄 알았으면 안 그랬을 거요.”
난 손을 들어 날새의 말을 막았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최은태 회장의 친자를 찾는 일에 관한 거나 들어봅시다.”
날새가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
“그전에 내 안전에 대한 보장부터 받고 싶은데······.”
“당신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야 약속하죠.”
잠시 침묵하던 날새의 입이 열리자 본격적인 고백이 시작되었다.
시작은 김동수의 지시로 내 뒤를 캤다는 이야기였고 두 번째는 최은태 회장의 잃어버린 친아들을 찾으라는 지시를 받은 이후의 일이었다.
그런데 그 잃어버린 친자와 내 나이가 비슷하다 싶어 집중적으로 팠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와 강은기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나왔단다.
“근거가 뭡니까?”
“아니 꼭 근거라고 할 만한 게 있는 건 아니고 추리······나 추론의 영역인데. 쉬운 말로는 감이라고 하는 거.”
정황증거뿐이란 말에 기대가 빠르게 사그라든다.
‘뭘 기대한 거야? 정윤호.’
내게 부모란 존재는 언제나 분노를 일으키는 대상이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마음속 깊은 곳에는 티끌만 한 기대가 있었나 보다.
난 미련을 버리고 냉정하게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 상황이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우선 첫 번째.
나나 강은기가 최 회장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
이 사실을 김동수가 알게 되면 나나 강은기의 신변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거다.
김동수의 뒤에 있는 최만식 대표는 최은태 회장의 친아들을 제거하려 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반대로 명동의 큰 어른이라는 최은태 회장이 이 사실을 알게 될 경우 양자 최만식을 쳐내려 할 게 뻔하다는 거다.
그때는 최만식 편에 선 사람들도 덩달아 위험한 처지가 될 수 있었고.
“요약하자면 당신은 사람 상하게 하는 일에 가담하기도 싫고 다치기도 싫다 이거네요. 맞죠?”
날새가 반색하며 대답했다.
“내 말이 바로 그거라니까! 그래서 김동수에게 보고할 때도 강은기 대표와 정 팀장에 관한 건 숨겼수다!”
혹시나 우리 두 사람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공범으로 몰릴까 봐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여자 연예인의 몰카를 찍어댄 쓰레기 같은 인간도 자기 목숨은 귀중한지 아는 모양이다.
“그 정도로는 그쪽을 돕기 힘든데······.”
“아니 그럼 이런 고급 정보를 날로 드시려고?”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던 일입니다.”
그 순간 날새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리더니 소파 밑으로 내려와 무릎을 꿇었다.
“자 잠깐만! 정 팀장님! 나 좀 사 살려주쇼!”
“왜 이러십니까?”
“최만식 대표 성격이라면 강은기 대표나 정 팀장님이나 저나. 이 일에 관련된 저희 다 죽을지도 모른다니까요?”
상대에게 어떤 협박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날새는 엄청나게 겁에 질려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날새를 써먹을 방법 하나가 번뜩이며 떠올랐다.
최만식 대표가 김동수를 끼워서 이 일을 조사하는 이유는 자신을 함부로 드러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당연히 양부인 최은태 회장의 눈치를 보는 것일 테고.
친아들이 나타나면 자신의 위치가 흔들릴까 걱정이 되면서도 양부인 최은태 회장과 정면으로 충돌할 자신은 없는 상황인 게 틀림없다.
그러니 만약 날새가 중간에서 증거나 정보를 왜곡해 준다면 당분간은 최만식 대표의 행동을 방해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사이 나도 어떻게 이 상황을 대처할지를 결정할 수 있을 테고.
난 두 손을 모아 싹싹 비는 날새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는 김동수의 시선을 돌리려고 하는데. 힘 좀 빌립시다.”
날새가 식은땀을 흘린다.
“그 그럼 다시 김동수에게 가서 놈의 지시를 따르라고요?”
“눈치가 빠르시네.”
날새의 얼굴이 하얗게 변한다.
“나 나보고 죽으라는 건 아니겠지? 거기로 돌아가면······.”
“걱정하지 마세요. 은기네 식구들이 지켜줄 겁니다. 대신 어떻게든 시간만 끄세요.”
고민하던 날새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이 한계요. 오래는 못 버텨.”
“기대도 안 합니다.”
우선 최은태 회장이 어떤 의도로 아들을 찾는 건지부터 알아야만 했다.
그리고 나나 강은기가 그의 아들이 맞는지를 확인해야 했고.
최은태 회장의 잃어버린 아들을 찾는 문제가 어이없게도 굴렁쇠 엔터의 미래와도 연결되어 버렸다.
* * *
“김동수나 최만식 대표로부터 전해 듣는 말은 작은 단서 하나라도 리버스 엔터 쪽 식구들에게 전하세요.”
“예······.”
“그리고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죠. 숨겨둔 몰카도 다 토하십시오.”
날새가 감옥에서 나오면 처리하려고 했던 일이 쉽게 처리될 것 같았다.
“아 아니 그런 건 더 없다니까 괜한 사람을 잡고 그러시네. 저번에 경찰한테 압수 다 당했다니까?”
난 코웃음을 치며 회귀 전 경찰이 아닌 검찰이 털었었던 그의 아지트 위치를 언급했다.
“당신 집 말고. 영등포랑 구로에 있는 비밀 장소 털어서 한 장이라도 나오면 이 판 다 엎어버릴 겁니다. 이래도 없습니까?”
순간 날새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한다.
“그 그걸 어떻게······.”
“그러니까 같잖은 수 쓰지 말고 이 친구들이랑 같이 가서 다 뱉어내세요.”
이수찬과 최동혁이 곁에서 인상을 찌푸린다.
“이 와중에도 숨겨? 이야~ 이 인간 몹쓸 인간이로구만?”
“그러게. 진짜 너무하시네.”
두 사람이 투덜대기만 했을 뿐인데 날새는 지레 겁을 먹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 전부 지우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런데 김동수한테 이미 넘긴 도촬 사진들이 일부 있는데 그건 어떻게 합니까?”
“김동수와 몰카 사진도 거래했습니까?”
“그 그게 한 2년 됐습니다.”
순간 김동수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거래 내역 같은 건 있습니까?”
“아뇨. 그딴 건 안 만드는 주의라서······ 없습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면 제게 김동수한테 사진을 넘긴 사람들의 명단을 주십시오.”
날새가 날 힐끔거리며 쳐다보다 테이블에 있는 종이에 적기 시작한다.
이미 사진을 넘긴 사람은 10명 정도.
‘그나마 다행이네······.’
명단에 적힌 사람들의 몰카는 미래에도 공개된 적은 없다.
조금은 안심되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보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몰카가 공개되면 여배우들의 경우 심한 악플에 시달리다 자살을 선택하곤 하니까.
다만 지금은 내 일부터 처리해야 했다.
최동혁이 날새를 향해 말한다.
“일어나쇼. 집에 다시 한번 들렀다가 은신처에도 가야지.”
“아 알았수다.”
최동혁이 날새를 데리고 나가자 이수찬이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묻는다.
“형님. 날새 저 사람 믿을 수 있을까요?”
“양아치니까 믿지 마. 대신 자기 목숨도 걸렸으니까 함부로는 안 움직일 거야.”
“예.”
“그리고 최은태 회장이 잃어버렸던 아들을 왜 찾는지 좀 알아봐 줘. 최만식 그 인간 속내는 짐작이 가는데 최은태 회장은 속을 모르겠네.”
“어떻게든 알아보겠습니다.”
“조심해. 위험하다 싶으면 즉각 모든 조사를 멈추고.”
이수찬이 내 눈치를 힐끔힐끔 살핀다.
“그래도 그분이 형님들 두 분 중 한 분의 아버님이시라면······.”
난 이수찬을 보며 분명히 말했다.
“됐어. 은기나 나나 둘 다 아버지라면 이부터 갈린다. 최만식이라는 놈 때문에 대비하느라 그러는 거지 핏줄을 찾고 싶어서 그런 건 아냐. 그리고 그 잘난 핏줄보다 니들이 다치지 않는 게 더 중요해. 알겠냐?”
핏줄보다 함께 자란 가족이 우선이라는 말에 이수찬이 감격한 표정으로 내 손을 꼭 붙들었다.
“형님······.”
“됐어. 감격 안 해도 돼.”
괜히 무안해져서 잡은 손을 풀려는데 이수찬이 어색하게 웃으며 내 손을 더욱 꼭 잡았다.
“지금 이거······ 뭐하자는 거야?”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긴 합니다만 오신 김에 우리 회사 연예인 중에서 뜰만 한 애들 좀 골라 주십시오.”
밥값은 하고 가라는 말에 피식 웃으며 답했다.
“알았어 명단 가져와.”
“예 형님!”
이수찬이 태블릿을 펼쳐 리버스 엔터에 소속된 배우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얘는 빼고······ 얘는 조만간 사고 칠 가능성이 100프로고······ 얜 폭탄이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자 이수찬이 씨익 웃는다.
“아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몰카 피해자 10명은 저희가 영입해서 보호하겠습니다.”
“응?”
“형님 성격에 그 여배우들을 그냥 놔두실 생각은 아니시잖습니까?”
“자식이. 이젠 내 마음속까지 읽냐?”
이수찬 덕에 걱정거리를 하나 덜어버린 난 내 뒤를 캔 김동수에게 치명타를 입힐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