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2화
252. 상대가 뭘 하든 2
[<돈의 축제>의 소이영! 과감한 노출 예고!]
[소이영! 최초의 노출 씬 예고! <돈의 축제> 3화. 8월 5일 방송!]
[<돈의 축제>의 주연 최태경! 조각 같은 근육 노출]
드라마에서의 노출씬.
대개 흥행 작가들은 스토리의 진행과 상관없이 시청률을 올리는 수단으로 ‘노출씬’을 활용한다.
가령 산속 연못에서 목욕하는 여주인공과 도망치던 남자주인공이 뜬금없이 만난다든가 하는 식으로.
아무튼 주연 배우들이 속살을 보이는 노출씬은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시청률을 급상승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제껏 단 한 번도 노출씬을 찍지 않았던 소이영이 노출한다는 소식은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기사를 본 팀원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팀장님. 공중파에서 노출이라니. 방심위는 뭐 한답니까?”
이영진이 씩씩거리며 분을 참지 못한다.
“뭐 언제나 그랬듯 경고나 주고 말겠지. 그런데 예고편은 떴어?”
“예. 여기요.”
“한번 볼까?”
홍보팀 김미혜 대리가 회의실에 있는 LCD 화면으로 <돈의 축제>의 3화 예고편을 틀었다.
예고편에서 소이영은 비키니 차림으로 자쿠지에 앉아 남자주인공 최태경과 와인 잔을 나누고 있었다.
연분홍 색의 비키니를 입고 있었는데 X자 스트랩이 바스트를 감싸 라인을 드러내는 스타일로 몸매를 부각하고 있었다.
짧은 예고편을 본 이영진의 표정이 더 심각해졌다.
“이거 먹히겠는데요?”
난 곧장 직원들에게 네티즌의 반응을 체크하라고 일렀다.
다들 네티즌 반응을 확인하는 사이 정상봉이 유독 불안한 표정으로 짓는다.
“팀장님. 괜찮을까요?”
“걱정하지 마. 저런 건 어차피 단기처방이니까.”
태연한 척 굴었지만 사실 나도 긴장이 된다.
회귀 전에도 소이영이 노출한 영화나 드라마는 시청률이 잘 나온 편이었으니까.
그사이 김미혜 대리가 자신이 찾은 SNS 반응을 LCD 화면에 띄웠다.
“팀장님. 이거 한번 보세요.”
(실시간 반응)
-대박 돈의 축제 3화 본방 사수.
-이거 언제 하는 거임?
-수목 드라마.
-그럼 다음 주 수요일까지 숨 참는다.
-ㅋㅋㅋ. 시청률 밀리니까 일단 벗네. 소이영에게 실망했음.
-그래서 안 봄?
-미쳤음? 평생 소장각인데 ㅋㅋㅋ
-소이영 짤방 모음 투척하고 감 <링크>
포털 게시판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예상한 대로군요.”
김미혜 대리가 손가락으로 모니터 한쪽을 가리켰다.
“보세요. 실검 순위에도 올라왔어요. 소이영 최초 노출이라고!”
이영진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투덜거린다.
“거참. 겨우 수영복 가지고. 누가 보면 베드씬이라도 찍은 줄 알겠네······.”
홍보를 맡은 김미혜 대리가 굳은 표정으로 대책을 언급한다.
“팀장님. 우리도 보도자료를 다시 뿌리는 게 어떨까요? 기삿거리는 충분한데.”
현재 이번 달 우먼즈의 매진 사태와 <신의 이름으로>의 1화와 2화 반응으로 인해 유진이의 인지도는 급상승하고 있다.
하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기사를 올려본들 금방 묻힐 겁니다. 괜히 힘 빼지 말고 기다려 보세요.”
걱정하는 직원들을 안심시키며 별일 아니라는 표정으로 탕비실로 향했다.
‘흥분하지 말자.’
원래라면 이건 방송국이 대처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신의 이름으로>의 주인공들을 데리고 있는 엔터 회사들이 대응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 작품으로 반드시 유진이에게 상을 안겨주고 싶었기에 나 역시 대책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몇 가지 대책이 떠올랐다.
그제야 난 환한 얼굴로 정 커피를 들고서 회의실로 향했다.
“자자~ 다~ 커피 한잔하고 일합시다. 제가 생각한 게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예?”
커피를 받아든 직원들이 기운을 차리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 후.
한세화 대표는 연거푸 내일 있는 SBC 일요일 예능의 예고편까지 공개해 버렸다.
그 순간 <돈의 축제>에 관한 관심도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신의 이름으로>에 관한 기사가 싹 사라질 정도로.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 * *
이지연 작가의 집.
저녁 초대를 받고 유진이와 미소를 데리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집으로 가자 김솔잎 작가와 김수희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왕 킹크랩’을 무려 10kg짜리로 시켜놓고서.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려는데 미소가 묻는다.
“삼촌~ 킹크랩이 뭐예요?”
“미소만큼 큰 게.”
“개? 멍멍?”
미소는 킹크랩을 들어본 적 없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게. 양손에 집게가 달린 게. 엄청 커.”
미소의 눈이 큼지막해지더니 두 팔을 자기 몸통만큼 벌렸다.
“이~만큼 커요?”
“아니 더 커.”
“그럼 이~~마아아안큼?”
미소가 두 손을 활짝 펼친다.
“응. 그만큼.”
“우와~~!! 진짜요?”
미소가 입을 쩍 벌리고 감탄사를 터트렸다.
미소의 활짝 웃는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지연 작가는 연신 웃음을 터트린다.
“우리 미소가 이번에 1화부터 너~무 잘해줘서 선생님이 특별히 선물하는 거야.”
미소가 허리를 반으로 꾹 접으며 인사한다.
“진짜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지연 작가의 표정이 살짝 불만스러워 보인다.
그 순간 뒤편에 있던 김솔잎 작가가 키득거리며 웃는다.
“미소가 안 안아줘서 우리 작가님 삐지셨네~에.”
이지연 작가가 발끈한다.
“아니거든?”
그 순간 미소가 신발을 벗더니 이지연 작가에게 다가가 허리춤을 꼭 껴안았다.
“작가 선생님. 최~고!”
이지연 작가도 금세 흐뭇한 표정으로 미소를 껴안았다.
“그래? 그럼 나도 미소 최~고!”
김솔잎 작가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그 순간 거실에 있던 김수희 선생님이 호통을 친다.
“다들. 현관문에 서서 뭣들 해? 어서들 들어와.”
그제야 신발을 벗고 거실로 향했다.
주문해 놓은 대게를 기다리며 소파에 모여앉아 드라마와 관련된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폰으로 기사를 확인하느라 대화에 끼지 못했다.
여전히 연예 기사면에는 소이영이 비키니를 입고 나온 짧은 노출 영상을 캡처한 기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반면 우리 쪽 방송국과 두 주연의 기사들은 도통 위로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정 팀장. 뭘 그렇게 봐?”
이지연 작가의 목소리에 정신을 퍼뜩 차렸다.
“아 소이영 노출 기사가 늘어나고 있어서 조금 걱정되어서요.”
“걱정하지 마. 걔가 그거 조금 벗는다고 시청률이 늘겠어?”
이지연 작가가 퉁명스레 말하자 김솔잎 작가가 냉큼 말을 이어받았다.
“아녜요. 작가님. 저게 지금 얼마나 화제인데요.”
김솔잎 작가가 이번엔 내게 묻는다.
“우리 정 팀장님 성격에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것 같은데. 대책은 있어요?”
“예. 있습니다.”
난 모두에게 유진이가 샤넬의 모델을 거절하고 LM 의류가 새롭게 런칭하는 명품 브랜드의 광고 모델이 됐다는 걸 알렸다.
“일단 반응 보고 도저히 저희 쪽 드라마 이름이 언급 안 되면 <신의 이름으로> 3화가 방송되는 월요일에 광고하려고요. 샤넬의 제안도 거절한 정유진! ‘신의 이름으로’에서 보여줄 L.M.L 패션쇼! 같은 거로 기사 헤드라인 뽑아뒀습니다.”
김솔잎 작가가 고개를 끄덕인다.
“거봐. 내가 뭔가 있을 줄 알았다니까.”
이지연 작가가 피식 웃는다.
“유노~ 방송국이랑 제작사에서 해야 하는 일을 대신한다고 수고가 많아.”
“아닙니다. 지금 내 일 네 일 할 때가 아니잖습니까?”
“그게 말이야 쉽지. 매니저 중에 누가 그렇게까지 해? 유노 말고는 그런 거 한다는 매니저를 본 적이 없어 난.”
이지연 작가의 칭찬에 머리를 긁적였다.
김솔잎 작가도 나만 한 사람이 없다며 연신 추켜세운다.
그런데 그때 이지연 작가가 퉁명스레 말한다.
“근데 솔잎이 넌 부르지도 않았는데 여긴 왜 왔어? 집필 안 해?”
처음부터 같이 있길래 당연히 부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지연 작가는 유진이와 미소와 나 그리고 김수희 선생님만 불렀단다.
김솔잎 작가가 뻔뻔하게 대꾸한다.
“왜긴요? 비싼 밥 얻어먹으려고 왔지. 작가님 드라마 런칭하면 꼭 첫 주에 제일 비싼 거 사 드시잖아요. 자신을 위한 선물~이라면서!”
이지연 작가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쳐다본다.
“솔잎~ 날 위한 선물이지 널 위한 선물이니? 니가 먹을 건 니가 알아서 시켜 먹어. 뭐 하나 제대로 사 온 것도 없으면서?”
“아 왜요. 작가님 좋아하시는 딸기 사 왔잖아요.”
“고작 1kg 사 와놓고는······”
김솔잎 작가가 씨익 웃는다.
“알았어요 다음엔 2kg 사 올게요. 그리고 오래간만에 친정 왔는데 구박 좀 하지 마세요!”
이지연 작가는 졌다면서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때였다.
띵동 하는 소리와 함께 인터폰이 울린다.
“게 왔어요?”
미소가 눈을 끔뻑이며 묻자 김솔잎 작가가 재빨리 일어났다.
“미소야 잠깐만? 언니가 나가 볼게.”
“네~!”
인터폰으로 간 김솔잎 작가가 스크린에 비친 상대를 확인했다.
“에이 뭐야. 게가 아니라 김성운 PD님이랑 최태현 본부장님이시네······”
<신의 이름으로>의 연출자 김성운 PD가 MBS의 최태현 본부장과 함께 왔단다.
최태현 본부장은 45살의 나이로 이사 승진을 눈앞에 둔 수완가다.
드라마국 PD 출신이었지만 특별히 성공한 드라마 하나 없이 사내 정치를 잘해 라인을 타고 올라간 사람이다.
그런데도 방송국이 배우나 작가들보다 더 갑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다.
“작가님.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긴. 쫓아낼 거 아니면 열어 줘야지.”
김솔잎 작가가 현관문을 열어주자 이내 두 사람이 양손에 선물을 들고 나타났다.
이지연 작가가 좋아하는 고급 케이크와 값비싼 와인까지.
하지만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등장에 이지연 작가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왜 또 이런 걸 들고 와? 우리 저녁에 밥 먹어야 하는데······.”
“하하하. 작가님도 참. 식사하시고 나중에 디저트로 드시면 되죠.”
“안 그래도 다이어트 중인데 눈치 없긴.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까 일단 앉아.”
최태현 본부장이 이지연 작가와 인사를 나눈 뒤 돌아가며 우리와도 인사를 나눴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최태현 본부장은 이번 드라마에 기대가 크다며 연신 칭찬을 해댔다.
“입에 발린 소린 됐고. 그래 오늘은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온 거야?”
최태현 본부장이 근엄한 표정으로 말한다.
“작가님도 아시다시피 SBC 돈의 축제 측에서 독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대로 흐름이 저쪽으로 넘어가도록 두고 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흐름 한번 넘어가면 시청률 역전되는 건 식은 죽 먹기 아닙니까?”
순간 이지연 작가가 싸늘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뭐야. 지금 내가 홍장미에게 진다는 거야?”
최태현 본부장이 손사래를 치며 다시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한다.
제발 한 번만 도와달라고 말이다.
“아니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 이런 거죠.”
“말을 제대로 해! 그러니까 어떻게 도와달란 말이야?”
“하하하. 그거야 뭐······ 아시지 않습니까?”
이지연 작가가 미간을 찌푸린다.
“내가 이래서 최 본부장을 만나는 걸 싫어해. 왜 사람이 말에 핵심이 없어!”
최태현 본부장이 우리 쪽을 쳐다보며 말을 빙빙 돌린다.
그 순간 상대의 생각을 알아차렸다.
‘이 인간이 미쳤나?’
날 보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도 맞불을 놔줬으면 한다는 거였다.
다시 말해 유진이의 노출씬을 넣어달란 뜻이었다.
그 순간 이지연 작가도 최태현 본부장의 방문 목적을 알아차렸다.
“정 팀장만 빼고 잠깐 대본 방으로 가서 놀고 있어.”
김솔잎 작가가 고개를 갸웃한다.
“진짜요? 대본 방에는 아무도 안 들여 보내주셨잖아요.”
이지연 작가의 집에는 그녀의 초고나 습작을 모아 둔 대본 방이 2층에 있었다.
그런데 김솔잎 작가 말고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했던 그곳을 유진이와 미소에게 열어주고 있었다.
“어서 가래도?”
“네. 알았어요.”
김솔잎 작가는 날 빼고 모두를 데리고 사라졌다.
이지연 작가가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순식간에 표정을 고쳤다.
회귀하고 처음 만났던 그 날.
오만하게 사람을 내려다보던 그 차가운 모습으로.
“지금 우리 최 본부장이 바라는 게 우리 배우들도 벗기라는 거네? 맞지?”
“아니 꼭 그렇다기보다는······ 저쪽이 강하게 나오니까 저희도 강하게 나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뭐 그런 말이죠.”
이지연 작가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왜 이렇게 무리수를 두지? 설마 승진에 경쟁 상대라도 생긴 거야?”
최태현 본부장이 머리를 긁적이며 답한다.
“예. 예능국의 장 국장이 요즘 타율이 좋다 보니 제가 좀 조마조마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달라고?”
“그러니까 이번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제가 이사로 승진하면 이 은혜 절대 안 잊겠습니다.”
“우리 시청률이 이렇게 좋은데도 불안해?”
“예. 장 국장이 만든 예능 프로들의 성적들이 꽤 좋아서요. 윗선에서는 장 국장을 바로 이사로 승진시킬 모양인데 그렇게 되면 우리 드라마국에 지원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작가님!”
최태현 본부장이 사내 정치 이야기를 꺼내자 이지연 작가가 싸늘한 표정으로 말을 딱딱 끊어 말한다.
“그.래.서 누굴 벗기라는 거야?”
“제 생각에는 요즘 유진 씨가 굉장히 인기가 있으니······.”
방송국 본부장이 되면 나 정도 되는 사람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최근에 내 이름이 알려졌다고 해도 방송국 사람들이 봤을 땐 중소규모 엔터 회사의 팀장 나부랭이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유진이의 매니저인 내 앞에서 이런 개소리를 늘어놓는 건 말도 안 될 정도로 무례한 짓이었다.
김성운 PD가 미안하다고 연신 손짓을 하는 걸 보니 방금의 발언은 최태현 본부장의 독단.
그래도 참을 생각 따위는 없었다.
‘감히 유진이에게······ 뭘 하라고?’
하지만 나보다 먼저 이지연 작가가 분노를 터트렸다.
“뭐~? 자기 출세하겠다고 배우를 벗기자고? 이 인간 아주 미친 X 아냐?”
이지연 작가의 날 선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거실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