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1화
251. 상대가 뭘 하든 1
-3.2%로 지상파를 제외하면 동 시간대 1위예요!
회귀 전 우성찬이 주연을 맡았을 때는 2.6%의 시청률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3.2%로 올라가 있었다.
난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있는 팀원들에게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며 3.2를 손가락으로 표현했다.
그와 동시에 팀원들은 다들 입을 막고 환호를 해댔다.
연이어 전화 너머로 유현지 PD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래서 말인데~ 정 팀장님~
평상시에는 늘 날이 서 있는 목소리인데 갑자기 이러니 소름이 돋는다.
-차기작 안 잡혔죠?
“차기작이요?”
-예. 이번 드라마 끝나고 내가 생각한 게 있는데······
설마 그걸 하려고?
난 다급히 폰에서 귀를 뗀 뒤 다이어리를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0.1]
[날짜 : 2020년 11월 2일]
-PM 09:50 TVM <지옥 포차> 1화 시청률 3.2% (보고 사항 : )
[날짜 : 2020년 11월 24일]
-PM 09:50 TVM <지옥 포차> 8화 시청률 0.5% (보고 사항 : 조기 종영)
유현지 PD의 차기작 <지옥 포차>.
인간 세상에 섞여 사는 요괴와 귀신들이 포차 주인에게 자신의 한을 의뢰하면 주인공과 그 보조가 한을 해결해 준다는 내용이다.
에피소드도 나쁘지 않고 참신하기도 했지만 문제는 CG였다.
각종 귀신과 요괴들을 제한된 제작비로 만들다 보니 CG의 퀄리티가 엉망이었다.
그 탓에 차라리 사람에게 인형 탈을 씌운 게 낫겠다는 악평을 들으며 최악의 성적으로 8화 만에 조기 종영을 맞는다.
하지만 자신의 미래를 알지 못하는 유현지 PD는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3년을 기획한 작품인데 하루에게 꼭 어울리는 캐릭터가 나와요. 출연료도 5백만 원으로 대폭 올려드리고. 어때요? 끌리지 않아요?
편당 250만 원에 해당하는 하루의 출연료가 순식간에 2배로 올랐다.
하지만 망작이 될 게 뻔한 <지옥 포차>에 그냥 올라탈 수는 없었다.
“이제 막 드라마 첫 화가 나갔는데 벌써 차기작을 거론하는 게 너무 이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PD님.”
조심스레 돌려서 거절 의사를 말했지만 유현지 PD는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출연료가 마음에 안 들어요? 편당 5백이면 나 진짜 신경 쓴 거예요!
편당 천만 원을 준다고 해도 고민할 판인데 유현지 PD는 이 상황에도 값을 깎으려고 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제안을 거절하려는 순간 전화를 바꾸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유 PD. 잠깐 전화 좀 바꿔.
-예. 이사님.
TVM의 대표가 되는 실세 중의 실세 조응천 이사의 목소리다.
-오늘 방영분 반응이 생각 이상으로 좋았네. 축하하네.
“다 이사님이 신경 써 주신 덕분입니다.”
조응천 이사는 유현지 PD와 조정실에서 1화를 함께 봤다며 연신 칭찬을 해댔다.
-그런데 하루를 캐스팅하던 날 내가 도와준 일을 잊진 않았겠지?
“물론입니다.”
-그럼 이번엔 자네가 나 한번 도와주게. 우리 유 PD 후속작에 출연 좀 해줘. 그러면 CK 그룹의 식품 계열사 광고 중 알짜배기로 하나 고르게 해주겠네.
TVM의 모회사인 CK 그룹은 대한민국 최고의 미디어 관련 회사이자 식품 회사이다.
그러다 보니 TVM은 같은 CK 그룹 계열의 회사와 많은 비즈니스를 하곤 했었다.
<먹방의 대가>의 경우도 메인 스폰서가 CK 식품이고.
그러니 조응천 이사가 <지옥 포차>에 출연해주면 CK 계열의 식품 광고를 따게 해준다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조기 종영당하는 <지옥 포차>에 하루를 출연시킬 수는 없었다.
“죄송합니다만 아직 결정을 내리기에는 시기가 좀 이른 것 같습니다.”
조응천 이사가 기분이 상한 말투로 날 압박한다.
-그렇게 말하니 좀 섭섭하군. 하여간 내일까지는 잘 생각해 보도록 하게. 이런 기회 자주 오는 게 아니니까!
달칵.
조응천 이사가 언성을 높이며 전화를 끊었다.
“휴우~”
한숨을 몰아쉬고 곁을 보니 정 팀 직원들이 놀란 눈을 뜨고 있는 게 보인다.
스피커 폰은 아니었지만 조응천 이사의 목소리가 워낙 커 다들 들렸나 보다.
이영진이 불안한 표정으로 묻는다.
“티 팀장님. 아무리 그래도 TVM 이사님인데······ 너무 딱 잘라 선을 그은 거 아닙니까?”
“내가 왜 그랬는지 SNS 반응이나 확인들 해 봐.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난리 났을걸?”
팀원들이 그제야 폰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실시간 반응)
-지금 먹다 남은 된장찌개 데워서 순식간에 밥 한 공기 뚝딱했음. 개존맛탱!
-오늘 저녁은 무조건 백반이다. 가즈아~!
-하루가 먹던 백반집 위치 아시는 분?
-저거 촬영 장소가 돈암동 할매손맛 백반일걸요. 거기 맛 끝내줌. 근데 하루가 만든 게 더 맛있어 보임.
-내일 2화도 무조건 본방사수! 밥반찬이 따로 없네. 와~ 생각만 해도 침 고이네.
SNS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저녁으로 백반 정식이나 된장찌개를 먹었다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어~?”
“반응이 꽤 좋은······데요?”
“아니지. 이 정도면 꽤 좋은 정도가 아니라 대박이야.”
난 SNS 반응을 보고 놀란 직원들을 향해 말했다.
“설령 방송국 이사가 아니라 대표가 직접 연락해 압박해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해. 제작자에게 말리면 내가 아니라 소속 배우가 손해 본다는 걸 언제나 명심들 하고!”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팀장님!”
“그럼 밥 먹으러들 가자!”
그런데 회사 앞 백반집에 도착해서 보니 줄이 50m는 서 있었다.
평소에 좌석의 반도 안 차는 인기 없는 백반집이 말이다.
이영진이 어색한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팀장님. 우리······ 어디서 먹죠?”
이대로 줄을 섰다간 빈혈로 쓰러질 것 같았기에 난 직원들과 함께 근처에 앉을 만한 식당들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평소에는 반도 안 차던 백반집들이 만원 행렬이다.
더군다나 테이블마다 다들 폰을 켜놓고 뭔가를 보고 있었다.
순간 이영진이 한 백반집 유리창에 철썩 달라붙어 폰을 확인했다.
“팀장님. 사람들이 ‘먹방의 대가’ 재방 보는데요?”
“영진아 사람들 놀라겠다. 창문에서 얼굴 떼!”
이영진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창문에서 얼굴을 뗀 뒤 자신을 쳐다보는 직장인들에게 사과했다.
“아. 죄송합니다~.”
그 후로 돌아봤지만 도저히 들어갈 백반집이 없었다.
“그냥 일식이나 양식으로 할까?”
팀원들이 고개를 젓는다.
“안 돼요! 오늘만은 무조건 한식 먹어요!”
도란희의 눈이 번뜩이는 걸 본 순간 난 타협점을 내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저녁은 명륜사또갈비로 가자. 거기 가면 된장찌개랑 반찬 다 나오니까.”
“명품한우도 찌개랑 반찬 잘하는데······”
중얼대는 도란희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뒤 발걸음을 옮겼다.
백반집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하루의 <먹방의 대가> 첫 방송은 대성공이었다.
* * *
[<먹방의 대가> 신인 배우 ‘하루’의 원맨쇼. 직접 만들어 먹는 한 끼의 힐링.]
[전국 백반집을 만석으로 채운 먹방 대란]
[<먹방의 대가> 1화 시청률. 3.2% 동 시간대 케이블 1위]
어제 있었던 방송 반응이 연예 기사면을 가득 채웠다.
백반집 앞에 장사진을 친 사람들의 사진과 함께 1화의 무대가 된 맛집의 위치를 묻는 문의 역시도 댓글에 가득했다.
그리고 잠시 후 방영될 2화의 메뉴는 바로 갈비찜.
며칠간 이어진 야근으로 일찍 퇴근한 터라 오늘은 식구들과 함께 <먹방의 대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미소와 함께 1층 거실에 테이블을 정리하는 동안 하루와 유진이는 주인아줌마를 도와 갈비찜을 하고 있었다.
칙칙칙칙!
압력솥에서 요란한 소음과 흰 증기가 뿜어져 나오자 이곳 거실까지 달콤하고 구수한 냄새가 흘러왔다.
“삼촌! 냄새 엄청 좋아요!”
“그러게?”
내 곁에 딱 달라붙어 있는 미소가 젓가락으로 테이블을 통통 두드린다.
“엄마! 할머니! 하루 오빠! 빨리빨리! 이제 시작해요!”
미소의 힘차게 외치자 주방에 있던 세 사람이 거실로 달려왔다.
“어머! 벌써 시작했어?”
“예. 이제 시작할 것 같네요. 어서들 자리하세요.”
아줌마와 유진이 하루가 테이블에 앉자 곧 <먹방의 대가> 2화가 방송되었다.
오늘 하루가 만들 갈비찜은 지방이 많은 옛날식 갈비찜이었다.
<먹방의 대가>는 먼저 맛집에서 먹어본 뒤 하루가 자취방에서 재현하는 내용이기에 2화의 시작은 ‘신사동 원조 갈비찜’에서 먹방을 하는 장면부터 나왔다.
하루가 앉은 테이블에는 간장과 설탕의 맛을 흠뻑 머금은 소 지방이 부드러운 젤라틴처럼 변한 갈비찜이 나왔다.
영상을 본 정인지 아줌마가 감탄사를 터트린다.
“요즘 갈비찜은 저렇게 잘 안 하는데 잘도 저런 가게를 찾았네?”
“예. 신사동 뒷골목에 있더라고요. 옛날식이래요.”
“조만간 가 봐야겠네~”
“그러실 필요 없을걸요? 하루가 똑같이 만들 겁니다.”
“그래~?”
그 순간 모두가 현재 압력솥에 들어 있는 갈비찜을 기대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사이 ‘신사동 원조 갈비찜’ 먹방이 끝나고 TV 화면은 하루의 자취방으로 바뀌었다.
레시피가 CG로 나온 뒤 하루가 앞치마를 두르더니 주방으로 가 재료 손질을 시작했다.
하루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이마와 관자놀이에 땀이 송송 맺힌 게 선명히 보인다.
솜털이 비칠 정도로 가까이 얼굴을 줌인하자 하루가 TV를 보지 못하고 자꾸 시선을 돌렸다.
화면에 가득 찬 자신의 얼굴이 적응되지 않는 모양이다.
“하루야. 부끄러워?”
“네······. 왠지 창피하네요.”
“알아. 그래도 모니터는 꼭 해야 해. 대중들은 현장에서 네가 어떤 연기를 펼치든 TV에서 나오는 장면만 보고 판단할 테니까.”
배우들이 현장에서 어떤 연기를 펼쳤든 간에 대중들은 PD의 편집본을 보고 판단한다.
연기자는 대중들이 바라보는 시선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자신이 출연한 분량을 모니터해야 했다.
물론 매니저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 중 하나고.
하루가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어요 형. 그리고······ 고마워요.”
“고맙긴. 당연한 거지.”
그사이 TV 속 요리가 끝이 났다.
하루는 짙은 갈색을 넘어 검게 변한 갈비를 당근 무 대파와 함께 먹음직스럽게 사기그릇에 담아놓았다.
하루는 이마에 땀을 닦으며 행복한 표정으로 먹방을 시작했다.
찰진 소고기의 결이 쭈욱 찢어지자 화면을 보고 있던 미소의 입에서 침을 주르륵 흘렸다.
들고 있던 손수건으로 입을 톡톡 두드려 닦아줬는데 미소는 여전히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헤에~ 맛있겠다.”
곁에서 유진이와 아주머니의 침을 삼키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기에 슬그머니 물었다.
“지금 먹을까?”
그 순간 미소가 처음으로 내게 눈길을 준다.
“으으응~ 아뇨. 괜찮아요.”
미소는 입에 침이 고인 채로 고개를 젓는다.
꼬르륵.
“배고픈데 괜찮겠어?”
“네! 괜찮아요!”
미소는 배를 움켜쥐고 참겠다고 외쳤다.
미소의 배에서는 연신 꼬르륵 소리를 내며 밥을 달라 신호를 보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며 견뎌내었다.
그리고 드라마가 끝난 순간 다들 참지 못하고 한입으로 외쳤다.
“밥 먹고 합시다!”
* * *
[<먹방의 대가> 2화는 옛날 갈비찜!]
[<먹방의 대가> 2화 시청률. 4.1%!]
[공공홈쇼핑! 갈비 주문 폭주! 홈페이지 서버 다운.]
[<먹방의 대가> 주인공 하루. 스타 예감?]
이틀 동안 이어진 하루의 먹방 쇼로 SNS는 연신 불이 나고 있었다.
갈비찜 먹방 인증샷은 기본이고 하루가 먹었던 갈비찜 가게 앞은 100m에 달하는 줄이 늘어섰다.
그리고 몇몇 유명 유튜버들은 관련 식당들을 리뷰하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하루도 잘되고 유튜버도 잘되고 지역 경제도 살고 일석삼조다.
아직 3화도 채 방영되지 않았는데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순간 어제 그렇게 압박을 했던 TVM의 조응천 이사에게도 다급히 전화가 걸려왔다.
-정 팀장. 어제는 내가 마음이 급해서 실례한 것 같은데······ 이해하지?
연예인이 인기가 있으면 180도 변하는 게 방송국 사람들의 특징이다.
게다가 어제와는 달리 <지옥 포차>에 출연 없이도 광고를 해주겠다는 제의가 나왔다.
-그리고 어제 말한 이야긴데 CK 식품의 양은정 홍보 이사님이 하루를 모델로 쓰고 싶으시다고 연락이 왔어. 정 팀장 생각은 어떤가?
TVM의 자매회사인 CK 식품의 양은정 홍보 이사는 몇 년 안에 전무까지 올라간다.
무조건 만나봐야 했다.
그러나 시간 약속은 최대한 뒤로 잡았다.
“이사님. 다음 주 주말 어떠십니까?”
-다음 주 주말?
“예.”
-설마 3화랑 4화가 방영된 후에? 잠깐. 자네 설마······ 광고비를 높게 부를 생각으로?
조응천 이사가 내 뜻을 알아차렸다.
-허. 이 친구 젊은 사람이 심기가 깊구만 그래?
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의 대답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좋아. 내가 다음 주 주말로 약속 잡겠네.
단 두 번의 방송이 나갔지만 방송국에서의 대응이 달라졌다.
전화를 끊고 나자 다들 날 빤히 쳐다본다.
“하루 만에 대접이 이렇게 달라져도 됩니까?”
“조응천 이사님도 참 사람이 달라 보이네요. 어제는 그렇게 거만하게 나오더니 안면에 철판을 깐 것도 아니고.”
난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원래 이 판이 이런 거 이제 알았어? 인기만 있으면 웬만한 문제는 다 해결돼.”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의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연예 기사를 체크하던 이영진이 다급히 외쳤다.
“팀장님! 이것 좀 보십시오.”
[<돈의 축제> 예고편 3화. 소이영 전격 노출 감행!]
<신의 이름으로>의 첫 주 시청률에서 완패한 상대방이 과격한 수를 두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