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6화
236. 하나 튜브 3
강하나의 마구잡이 춤을 본 시청자들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실시간 채팅)
-다솜이아빠 : ㅋㅋ 노래는 잘하시는데 춤은 뭔가 엉성하신 듯.
-예쁘니09 : 춤 좀 못 추면 어떰? 나 오늘부터 이 언니 팬 할거임.
-하우스 : 대단하다. 저 실력으로 하필이면 제일 어렵다는 환상 거울을? ㅋㅋ 멘탈 갑 인정.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잘 춘다는 평가는 없다.
손과 발이 싱크로가 안 맞는다는 둥 용감한 걸 넘어 이 정도면 패기가 넘친다는 둥.
그러나 시청자들이 즐거워하는 것만은 확실했다.
채팅창을 보던 도란희가 도통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팀장님. 춤도 못 추는데 왜 이렇게 반응이 좋죠?”
“재밌잖아.”
도란희가 미간을 찌푸린다.
“저러다가 하나 이미지가 망가지면요?”
“이미지가 망가지기는커녕 친근해진 거 같은데?”
채팅창을 보던 도란희가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랩은 안 하겠죠? 하면 안 되는데. 하나 랩 진짜 못 하는데.”
하지만 도란희의 믿음을 강하나가 배신해 버렸다.
랩을 해달라는 요구를 듣는 순간 강하나는 생기 넘치는 목소리로 외쳤다.
“랩이요? 당연히 할 수 있죠. 대신 춤보다는 조금 못하니까 너무 욕하지는 마세요.”
순간 도란희가 그것만은 안 된다며 녹음 부스로 손을 뻗었다.
“하나야 안 돼. 시킨다고 다 하면 어떻게 해! 그건 아니야!”
하지만 도란희의 목소리는 강하나가 있는 녹음 부스 안으로는 전해지지 않았다.
녹음 부스는 완전 방음이 되는 장소였으니까.
목을 가다듬은 강하나가 마이크를 기울이고 랩을 시작했다.
“예! 체킷! 첵! 원투. 원투. 아아~! 드랍 더 비트! 에이요! 두두등장~!”
느린 비트로 랩을 하는데도 엇박자가 계속해 생기기 시작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랩을 하고 있지만 ‘얼쑤~’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딱 좋은 템포.
도란희가 모든 걸 포기한 채 날 쳐다본다.
“팀장님. 저걸 어떻게 해요?”
난 씨익 웃으며 채팅창을 가리켰다.
(실시간 채팅)
-MK.래퍼 : 와 씨. 이거 진짜 무슨 딜이 안 박히네. 뻔뻔하다 뻔뻔해. ㅋㅋ. 근데 엉성한 랩이 묘하게 끌리네.
-머시배눔 : 두두등장을 이렇게도 부를 수 있구나. 근데 랩이 아니라 자진모리장단에 가사만 붙인 것 같은데? ㅋㅋ
-청학동소녀 : 완전 조선식 플로우임. 대박.
-너튜브고인물 : 하나님을 국립국악단으로! ㅋㅋ.
“어? 이게 왜 반응이 좋지?”
강하나의 독특한 보컬과 어울린 랩은 묘하게 중독성이 있었다.
심지어 강하나는 핸드 사인까지 하며 힙합 스웩을 연신 표출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채팅창에는 시청자들이 연신 ‘두두등장!’을 적어대고 있었다.
그렇게 30분이 지났을 때.
실시간 시청자 수는 최고 3523명으로 동 시간대 한국 너튜브 실시간 시청자 수 순위 3위까지 달성했다.
그리고 채널 구독자는 1923명 뮤직비디오의 조회 수는 4만 2천 번을 넘겨 버렸다.
회귀 전 첫날 구독자 3.
실시간 시청자 1.
뮤직비디오 조회수 5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을 성적이었다.
* * *
녹음 부스에서 나온 강하나의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부스 안에는 에어컨이 있었지만 너무 열성적으로 춤을 추고 랩을 한 탓에 온몸이 땀범벅이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강하나 최고다!”
“하나야 수고했어! 첫 방송에 이 정도면 대박이야!”
사람들의 환호에 강하나가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란희야. 은 대리님. 선우 그리고 이 감독님도요. 모두들 덕분에 잘된 거 같아요.”
“덕분은 무슨. 채팅창 때문에 많이 놀랐을 텐데 당황하지 않고 잘했어.”
“아니에요. 오빠.”
도란희가 혀를 내두르며 수건을 내밀었다.
“얘는? 이미지 관리 좀 하지!”
강하나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대답한다.
“다들 나 데뷔시킨다고 고생한 걸 뻔히 아는데 어떻게 그래. 그리고 내가 이미지가 어디 있어?”
강하나가 날 쳐다본다.
“오빠가 말한 대로 채팅창이 좀 맵던데요?”
강하나에게 미리 악의적인 댓글이 올라올 걸 예상하고 대비를 시켰었다.
너튜브 중에서 매운 댓글을 읽게 하고 파프리카 TV에서 댓글을 보게 하면서.
“대응 잘했어. 그리고 수위 높은 섹드립은 절대 받아주지 마. 우리 쪽에서도 필터링하겠지만 그런 건 안 얽히는 게 좋아.”
“네. 그럴게요.”
강하나는 도란희가 건네준 물을 마시고는 자기 너튜브의 구독자와 조회수를 확인했다.
“오빠. 이렇게 많이 들어왔어요?”
“아직도 늘고 있어.”
현재 ‘하나 튜브’의 구독자 수는 2522명.
뮤직비디오 조회 수는 4만5천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 정도면 성공 맞죠?”
“그냥 성공이 아니라 대성공이지.”
아무리 유진이가 홍보했다고 해도 이 늦은 시간에 이렇게나 사람이 몰릴 줄이야.
더군다나 하나는 아무 인지도도 없었기에 지금 성적은 기적에 가까웠다.
“중요한 건 이걸 이어가는 거야. 오늘 마음을 잊지 말고. 알았지?”
“네! 알겠어요.”
“그리고 어머니께 연락 드려야지.”
비록 오랫동안 원하던 아이돌은 아니지만 가수가 된 것만으로도 강하나의 엄마는 기뻐할 게 틀림없었다.
강하나가 녹음 부스로 들어가기 전 잠시 맡아뒀던 폰을 내밀었다.
폰을 건네받은 강하나가 떨리는 손으로 자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엄마······ 나 하나. 응······ 응.”
엄마란 말을 내뱉은 순간부터 이제껏 웃고 있던 강하나의 눈에서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무려 6년의 연습생 시절.
온갖 유혹이 있었고 심지어 트로트 가수로 데뷔시켜 밤무대를 돌리려는 회사의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이겨 낸 강하나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
“나 이제······ 진짜 데뷔했어. 그러니까 이제 걱정 좀 그만해. 괜찮대도? 아냐. 나 안 울어.”
그 모습을 본 도란희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강하나가 눈물을 글썽이며 폰을 내밀었다.
“응? 왜?”
“엄마가 오빠 좀 바꿔 달래요.”
“날?”
강하나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전화를 내게 건넸다.
전화를 받은 난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처음 인사드립니다. 하나 매니저인 정윤호 팀장입니다.”
그런데 상대편에서 아무런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혹시나 폰이 꺼졌나 싶어 다시 확인했는데 전화는 통화 중이었다.
순간 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기다리시잖아.
이윽고 강하나의 엄마 김현지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 하나 엄마예요.
강하나보다 조금은 더 가녀린 목소리가 들려온다.
“예. 어머님.”
-우리 하나가 정 팀장님 덕분에 데뷔까지 하게 됐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뇨. 제가 아니었더라고 하나는 잘했을 겁니다.”
-그렇진 않을 거예요. 우리 하나가 끈기는 있지만 수완이 좋은 애가 아니라서요.
강하나의 엄마 김현지는 유명 가수 김현자의 카피 가수로서 연예계 밑바닥의 온갖 험한 일들을 직접 경험해본 분이다.
강하나의 엄마는 그녀의 딸이 혼자였더라면 자신이 겪은 일을 겪었을 거라며 내게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해 왔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더 잘될 겁니다.”
-전 팀장님이랑 믿겠습니다. 잘 좀 부탁드려요.
“예. 어머님.”
전화를 끊고 강하나에게 폰을 돌려주려고 했다.
까톡.
갑작스럽게 까톡 알림 메시지가 폰 화면에 떠올랐다.
[박예슬 : 언니. 오늘 부른 그 곡 내가 달라고 졸랐던 곡 맞지? 언제 완성했어? 가사 붙이니 더 좋더라?]
박예슬은 아이스톤 출신으로 <글로벌 프로듀스 47>의 무대에 강하나와 함께 섰던 연습생.
메시지를 보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미리 보기 알림이 되어 있었기에 의도치 않게 볼 수밖에 없었다.
난 강하나를 향해 폰을 건네며 물었다.
“메시지 봐서 미안해.”
“보셔도 괜찮아요.”
“그런데 아직도 전 소속사 애들이랑 연락하니?”
“제가 연락하는 건 아닌데 요즘 들어서 걔들이 연락해요.”
“왜?”
“그게······ 글로벌 프로듀스 일로 연락이 오더라고요. 자기들 전화 투표 좀 해달라고.”
순간 도란희가 발끈했다.
“미친X들. 너한테 잘해준 것도 없으면서 무슨 투표를 해달래? 하나야. 걔들 라이벌이 최혜원이거든? 우린 최혜원 밀자! 응?”
<글로벌 프로듀서 47>의 열혈 시청자인 도란희는 출연자 명단을 달달 외우고 있다.
나는 씩씩거리는 도란희를 진정시키고 강하나에게 물었다.
“하나야. 지금부터 네 폰 나랑 란희가 맡아서 관리 좀 해도 될까? 이제부터는 네가 감당치 못할 정도로 연락이 올 거야.”
데뷔한 연예인에게는 초등학교 동창부터 지나가다 만난 영업사원들까지 전화가 걸려온다.
24시간 안부 전화만 걸려와도 활동은 고사하고 건강이 상해 병원에 입원하는 건 예사였다.
그리고 그중에 섞인 터무니 없는 메시지를 보게 되면 멘탈마저 흔들려 정신과에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젊은 연예인들은 사생활을 지켜달라고 거부하는 일이 잦지만 다행히 강하나는 군말 없이 폰을 넘겼다.
“괜찮아?”
“어차피 전화할 일도 별로 없어요. 엄마랑 아빠는 특별한 일 없으면 전화 거의 안 하시거든요.”
“그럼 네가 꼭 받아야 하는 사람만 알려줘.”
강하나가 까톡 명단에서 몇몇 사람을 가리켰다.
가족들을 제외하면 고등학교 때 친구 세 명이 끝이었다.
“나머지는 연락 안 해도 상관없어?”
잠깐 고민하던 강하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예.”
“오케이. 그리고 예슬이 얘랑은 앞으로 아예 안 만나는 게 좋아. 얘랑 얽혀서 너한테 득 될 게 없거든.”
“알겠어요.”
강하나의 허락이 떨어진 순간 난 내친김에 박예슬을 향해 전화를 걸었다.
두 번 다시 강하나를 흔들게 둘 수는 없었으니까.
* * *
전화를 걸자 박예슬이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하나 언니! 오늘 제법이던데? 난 언니가 그렇게 예능감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반가운 목소리였지만 그 속에는 가식과 비웃음이 섞여 있다.
자신은 현재 <글로벌 프로듀스 47> 인기투표 1위인데 반해 강하나는 회사까지 옮기고도 고작 유튜버로 데뷔했기 때문이다.
조만간 두 사람의 입지가 바뀔 테지만 지금 당장은 그런 걸 따지려고 전화한 게 아니었다.
“정윤호 팀장입니다.”
건너편에서 날 선 목소리가 돌아온다.
-아 뭐야! 하나 언니 폰을 왜 아저씨가 들고 있어요?
회귀 전.
박예슬은 강하나가 유튜버로서 성공하자 강하나의 채널을 자기가 속한 EVE*ONE의 광고판으로 이용하곤 했었다.
하지만 내가 있는 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내 연예인이 남에게 이용당하는 꼴을 두고 볼 생각 따윈 없었으니까.
“하나 폰은 회사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가족을 제외한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기로 했으니 그렇게 아시고 협조 부탁드립니다.”
순간 박예슬의 당황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기가 막혀! 아저씨가 뭔데 연락을 하라 마라를 결정해요? 얼른 하나 언니 바꿔······.
“전화 끊겠습니다.”
달칵.
난 전화를 끊은 뒤 차단 목록에 박예슬을 등록해 버렸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이스톤 출신의 연예인들을 모두 차단했다.
“이렇게 확실히 선을 긋는 게 오히려 나아. 그리고 네 앞길에 방해되는 것들은 내가 싹 다 치워줄게.”
강하나가 걱정스레 묻는다.
“그러면 앞으로 방송국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죠?”
“어떻게 하긴. 인사해. 반갑게. 그리고 내 핑계를 대면 돼. 매니저가 폰도 뺏고 엄청 무섭게 군다고.”
난 곁에 있는 도란희에게도 지시를 내렸다.
“란희 너도 하나와 사적으로 만나려는 사람들은 철저히 걸러. 안 될 것 같으면 나한테 바로 전화하고.”
도란희가 거수경례하며 답한다.
“가릿!”
데뷔시켜 준다는 약속을 끝없이 어긴 소속사에 대해서도 6년을 참은 착한 사람이 바로 강하나다.
이런 성격의 연예인을 관리하려면 매니저가 단호한 면을 가져야만 했다.
그때부터 난 중요하지 않은 상대들을 까톡 대화 리스트에서 차단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말한 대로 그 와중에 연신 까톡 메시지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강하나는 내가 폰을 맡겠다고 한 이유를 정확히 알아차렸다.
“얜······ 5년 만에 연락해 오네.”
“얘가 누구더라?”
연습생 시절의 인연부터 초등학교 동창까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안부 메시지가 도착한다.
심지어는 자기가 시집가니까 조만간 한번 봤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도 도착했다.
김송이라는 이름의 대화상대를 본 강하나가 혀를 내두른다.
“얜 자기가 나 괴롭힌 것도 모르나 본데요?”
김송이는 강하나가 중학교 시절 자기를 잠깐 왕따를 시켰던 일진이란다.
“말했잖아. 어처구니없는 연락들이 올 거라고.”
그 말을 하며 김송이를 차단했다.
그 순간 곁에 있던 도란희가 씨익 웃음을 짓는다.
“하나야. 나랑 얘 결혼식에 같이 갈래?”
“가서 뭐 하려고?”
“그날 너 연예인 풀 메이크업하고 하얀 드레스 입고 가자.”
“그 그건 좀······.”
강하나가 당황했지만 도란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난 곁에서 새빨간 드레스 입고 펑펑 울어줄게. 아니다. 그냥 남편 바짓가랑이 붙들고 왜 날 버렸냐고 빽빽 고함쳐 줄까?”
도란희의 복수 계획을 듣는 순간 등골이 싸해진다.
미친 도란희 같으니라고.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강하나가 그 계획을 말렸다.
과거를 생각하고 살기보다 앞으로 벌어질 기분 좋은 일들만 신경 쓰자면서 말이다.
그렇게 10분 동안 대화상대를 차단한 뒤 빠르게 늘어나는 구독자를 보며 말했다.
“이 정도 속도면 생각보다 훨씬 일찍 10만 달성 하겠는데?”
방송을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안 된 이 시점의 구독자 수는 무려 3327명이었다.
회귀 전에는 3개월로 잡았던 10만 구독자.
한 달 만에 그 구독자를 달성할 생각이었는데 그보다 훨씬 일찍 될 것 같았다.
그렇게 강하나의 첫 너튜브 방송은 내 상상 이상의 결과를 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