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5화
235. 하나 튜브 2
실시간으로 빠르게 늘어나는 조회수에 도란희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이 이렇게 급격히 오를 수가 없는데?”
도란희뿐만이 아니라 은지유 대리도 크게 뜬 눈을 끔뻑이며 영문을 몰라 황당해하고 있었다.
“옷 찢어지겠습니다. 다들 이제 손 좀 놓죠?”
도란희와 은지유 대리가 내 말을 듣고 황급히 손을 놓는다.
뮤직비디오 조회수 증가 추세에 변함이 없는 것을 확인한 두 사람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강하나는 여전히 내 어깨를 꼭 붙잡고 있다.
‘하긴. 누구보다 불안한 사람은 본인이겠지.’
도란희가 답답하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팀장님.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이상해할 것 없어. 유진이한테 하나 너튜브 채널 좀 홍보해 달라고 부탁해뒀으니까.”
“유진 씨요?”
“그래. 지금 유진이 스타그램에 들어가서 확인해 봐.”
도란희가 급히 유진이의 스타그램에 접속했다.
[정유진@miso_1004]
[게시물 527 팔로워 39만 팔로우 319]
-굴렁쇠 엔터 신인 싱어송라이터 ‘강하나’ 출격
-밤 11시. 뮤직비디오 업로드.
-밤 11시 11분. 실시간 라이브 스트리밍 (30분 동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하나 튜브] (링크)
(유진&미소_응원_댄스.GIF)
#굴렁쇠엔터신인여가수 #오늘밤11시라이브공연 #데뷔가너튜브다 #백만구독자기원 #짱이쁨 #짱짱노래잘함
유진이가 스타그램에 업로드한 GIF 파일에는 유진이와 미소가 커다란 플래카드를 들고 춤을 추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댓글이 수도 없이 달리고 있었다.
유진이와 미소의 팬들이 ‘하나 튜브’ 링크를 타고 들어오고 있었고 그 덕에 현재 구독자와 조회수가 빠르게 느는 중이었다.
[하나 튜브]
구독자 313명
[Official M/V] 강하나의 <새로운 시작> -조회 수 : 3142
빠르게 늘어나는 구독자 수와 조회수에 도란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러려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래. 이미 유진이 스타그램이 웬만한 지면보다 집중도가 높은데 굳이 돈 써서 홍보 의뢰할 필요 없잖아. 어차피 내일 아침이면 알아서들 기사가 늘어날걸?”
그 말을 하는 동안 조회수가 5천을 돌파했다.
잠깐 고민하던 도란희가 또다시 질문을 해왔다.
“팀장님. 기자들한테도 알렸으면 더 빠르게 올라가지 않았을까요?”
“기자들이 기사를 그냥 써 줘?”
기브앤테이크(give and take).
연예면 기사는 정확히 돈을 부은 만큼 분량이 나온다.
최소혜 기자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연예 기자들에게는 뭔가를 제공해야 했다.
돈이든 술이든 아니면 기삿거리든 간에.
김영란법이 적용되었다고는 하지만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태반이고.
그래서 난 기자들을 앞세우지 않고 유진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유진이의 팬들은 일단 호의적인 반응으로 강하나를 바라봐줄 테니까.
게다가 대중이 먼저 관심을 가지면 그때는 쓰지 말라고 해도 기자들이 알아서 기사를 쓰게 된다.
“어차피 기자들에게 알려봤자 초반만 넘기면 어차피 큰 차이는 안 나.”
“그건 그렇지만······.”
난 더는 대답해주지 않고 여전히 내 어깨를 붙잡은 강하나의 이름을 불렀다.
“하나야. 이제 방송 준비해야지?”
“아. 넵!”
라이브 방송까지 이제 남은 시각 7분.
강하나가 입술을 앙다물고 내 어깨에서 손을 뗀다.
그것도 두 번 정도 뗄까 말까 고민하고서 말이다.
“오빠 덕분에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강하나가 깊은 심호흡을 마치고 녹음 부스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나는 강하나가 방송을 준비하는 동안 폰으로 <새로운 시작> 뮤직비디오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 * *
<새로운 시작> 뮤직비디오는 인사동의 고풍스러운 카페에서 시작되었다.
뮤직비디오 속 늦은 밤.
인사동 카페의 창밖으로 노란색 백열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다.
어둡고 침침한 카페 구석에 앉은 강하나는 낡은 가죽 가방에 든 통기타를 옆자리에 둔 채 멍하니 넋을 놓고 있다.
테이블에 놓인 건 몇 모금 마시고 남은 국화차.
말라버린 국화의 꽃잎은 색이 바래 누렇게 변해 있었다.
축 처진 어깨를 한 강하나가 남은 차를 마신다.
조용한 카페 안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호로록거리는 소리가 유달리 쓸쓸하게 들렸다.
강하나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닳아빠진 가죽 가방에서 통기타를 꺼낸 뒤 무릎에 올려놓았다.
이내 강하나가 현이 닳은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말해요~♬』
통기타의 거칠지만 또렷한 음 위에 강하나의 고혹적인 목소리가 살포시 얹힌다.
강하나의 독백 같은 노랫소리가 카페를 가득 채운 순간 어두운 그녀의 얼굴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안녕.
어제와는 다른 나 하이~
힘든 날은 이젠 안녕 바이~』
후렴구를 부른 강하나는 기타를 치며 카페 문을 나섰다.
그 순간 뮤직비디오의 배경은 부안 간척지의 푸른 갈대밭으로 바뀌었다.
그 이후 강하나는 푸른 갈대밭 한가운데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희망을 노래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생기가 가득 차 있었다.
『······안녕.
어제와는 다른 나 하이~
힘든 날은 이젠 안녕 바이~』
회귀 전 뮤직비디오와 같은 컨셉이지만 이석형 감독이 더욱 공을 들였는지 영상미의 차원이 다르다.
저예산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믿지 못할 만큼.
그 탓에 영상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다시 한번 빠르게 늘고 있었다.
왜 그런지 봤더니 익숙한 이름들이 보였다.
“얘들은 또 여기 왜 와 있어?”
[Official M/V] 강하나의 <새로운 시작> -조회 수 : 17182
(댓글)
-큐티세리 : 하나 언니의 너튜브 채널 개설을 축하합니다! 언니 뮤비 끝내줘요!
-우연히들린우연희 : 하나 언니. 대박 나세요. 뮤직비디오 보니까 심장이 두근두근!
-보름달은비 : 하나 언니 오늘 구독자 5천 명만 넘자!
-노래하는은아 : 하나 언니. 노래 좋아요. 언니도 좋구요.
······
체리블라썸 멤버들이 밤잠도 자지 않고 댓글을 달고 있었다.
현시점에서 걸그룹 원탑인 체리블라썸 멤버들이 직접 댓글을 달고 대응까지 해주자 순식간에 소문이 났는지 미친 듯 조회수가 불어나고 있었다.
순간 도란희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팀장님! 설마 체리블라썸한테도 홍보 부탁하셨어요?”
“아니. 얘들이 요 며칠 우리 집에서 머물고 있거든. 유진이가 스타그램에 올리는 걸 보고 링크 타고 왔나 봐.”
“헐~ 대박!”
아무튼 불판이 뜨거울수록 고기는 잘 익는 법.
체리블라썸의 참전으로 댓글 창은 다시 한번 불타올랐다.
* * *
라이브 스트리밍이 시작될 시간이 코 앞이다.
현재 채널 구독자 수는 천 명을 넘어서고 있었고 뮤직비디오 조회 수는 2만 번을 넘어가고 있었다.
고작 10분 만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30초 남았습니다.”
녹음 부스 안에서 강하나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다.
난 방선우에게 말해 녹음 부스 안에서 대화를 할 수 있게 마이크를 켜라고 말했다.
삐 하는 소리와 함께 녹음 부스 안과 연결이 되었다.
“하나야. 내 말 꼭 기억하지? 네가 최고라는 거.”
강하나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얼마나 두려울지 상상이 안 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기약 없는 데뷔를 기다리며 연습에 매진했었으니까.
무려 6년의 연습생 시간.
그 힘든 시절의 경험은 그녀의 멘탈을 강철처럼 단련시키기에 충분했다.
“20초 남았습니다.”
난 촉박한 시간을 보며 다시 한번 외쳤다.
“하나야. 이미 넌 뮤직비디오로 데뷔한 가수야. 그러니 자신 있게 방송하자. 알았지?”
그 순간 강하나의 눈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10초 남았습니다.”
난 웃으며 엄지를 세웠다.
“강하나! 파이팅!”
“고마워요 오빠.”
그 말을 남긴 강하나는 카메라로 시선을 돌렸다.
“스타트!”
그렇게 강하나의 첫 실시간 라이브 방송이 시작되었다.
* * *
[현재 : 2123명 시청 중 – 스트리밍 시작 10분 전]
밤 11시 11분으로부터 10분이 지난 시각.
늦은 밤인데도 실시간 시청자 수는 2123명에 이르렀다.
한국 너튜브 실시간 시청자 수 랭킹으로는 10위에 이르는 놀라운 성적이다.
‘하나 튜브’의 랭킹 순위를 본 도란희가 고무된 표정을 짓는다.
“팀장님. 시청자 수가······.”
“겨우 이 정도로 뭘 그리 놀래?”
내게 축하를 하려던 사람들이 헛기침하며 입을 닫았다.
그사이 녹음 부스 안에선 자기소개를 마친 강하나가 짙은 음색으로 자신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보이스 깡패.
빈티지 보컬의 탄생.
강하나의 음색은 한 번만 들어도 쉽게 잊히지 않을 정도로 강렬했다.
<새로운 시작>을 마무리한 강하나가 긴 호흡을 내뱉으며 숨을 골랐다.
“어땠어요? 여러분? 처음이라서 좀 긴장했는데 실수를 해도 용서해주세요!”
강하나는 밝은 목소리 톤에 애교를 살짝 섞어내고 있었다.
(실시간 채팅)
-후방주의 : 이 언니 <글로벌 프로듀스 47> 오디션 예선에 나왔던 언니 같은데 키 크고 이뻐서 기억남. 근데 왜 떨어졌지?
-지나가던새우등 : 나도 1화 예선에서 봤음. 그때 랩하는 걸 보고 형편없다 싶었는데 타고난 보컬이시네. 그런데 그땐 왜 랩을 하셨어요?
-만물상 : 보나 마나 뻔함. 연습생의 비애지. 소속사에서 시키면 해야 함. 오디션 방송용으로 급히 연습해 나온 탓일 듯.
-이불파티 : 이젠 랩은 하지 말고 노래만 하세요.
-다솜이아빠 : 중간에 들어와서 제대로 못 들었어요! 앵콜 부탁드립니다.
-감평맨 : 뮤직비디오보다 뛰어난 라이브. 제대로 된 빈티지 보컬 한 분 등장하셨네요.
-해와달 : 저음과 고음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게 거의 기예의 영역이다.
예상한 대로 강하나의 보컬에 대한 칭찬이 집중적으로 이어졌다.
호의적인 반응에 자신감을 얻은 강하나가 다시 한번 통기타를 붙잡는다.
“그러면 다시 한번 못 들으신 분들을 위해 먼저 앵콜 신청부터 받고 다음으로 신청곡 부르겠습니다.”
강하나는 채팅창에 추천곡을 남겨 놓으라고 말한 뒤 다시금 자세를 잡았다.
그런데 그 순간 예상한 대로 씹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실시간 채팅)
-춤신춤왕 : 춤은 안 춰? 그 좋은 몸매로 앉아서 기타만 치지 말고.
-야밤의물고기 : 벗방 아닌가요?
-고인물의 귀환 : 쇼케이스도 아니고 너튜브로 데뷔? 소속사 오진다. ㅋㅋㅋ
강하나에게 온갖 이야기들이 쏟아진 순간 도란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쌍욕을 시작했다.
“이런 씨를 발라먹을 XX들이! 벗방? 어디서 우리 하나한테 XX대는 거야? 야밤의 물고기? 이런 개XX들은 아주 지글지글 타오르는 불 위에 던져놓고는 그냥 XX해서 XX하는······.”
속 시원하게 욕을 내뱉은 도란희가 거친 숨을 몰아쉰다.
하지만 이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내게 말한다.
“팀장님! 채팅에 블록 걸죠.”
은지유 대리도 같은 의견을 말한다.
“란희 말대로 악질적인 애들은 블록하시는 게······.”
난 은지유 대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석형 감독에게 말했다.
“이 감독님. 섹드립이랑 부모님 안부 묻는 내용은 다 차단해버리세요.”
“얘!”
순간 도란희가 묻는다.
“팀장님 이왕이면 하나한테 춤추고 랩 하라는 애들도 다 블록 걸면 안 돼요? 하나 춤 엄청 못 추잖아요. 랩은 뭐 할 말도 없고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걸?”
난 녹음 부스 안의 강하나를 턱으로 가리켰다.
강하나는 모두의 우려와 달리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있었다.
“6년을 연습생으로 버틴 하나를 믿어 봐. 하나는 회사의 신뢰가 계속되는 한 절대 흔들릴 가수가 아냐.”
멘탈 갑 강하나.
회귀 전 수많은 악플에도 흔들리지 않고 가수 활동을 이어갔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는 회귀 전 인터뷰에서 이런 말도 했었다.
-악플 때문에 힘드냐고요? 아뇨. 진짜 힘든 건 데뷔 전이죠. 이대로 연습생으로 인생이 끝나지 않을까 했던 불안과 공포의 나날이 끝없이 이어졌거든요.
강하나는 불확실한 미래가 무엇보다 무서울 뿐 막상 데뷔 후에는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런 강하나의 멘탈에 팬들은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춤이요? 제가 아이돌 연습생을 오래 하긴 했는데 춤에 소질이 없는지 실력이 안 늘더라고요. 못 춰도 이쁘게 봐주세요~오?”
장난스레 투정을 부린 하나는 곡을 고르기 시작했다.
강하나가 고른 곡은 걸그룹 핑크다이아의 <환상 거울>.
핑크다이아는 퍼포먼스로 승부하는 걸그룹이라 <환상 거울>의 안무는 대략 4분 55초 동안 손발이 쉴 틈이 없이 빠른 템포로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강하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저질 댄스 실력으로 손과 발을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채팅창은 환호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