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3화
233. 접근 2
내게 부모란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하는 핏덩이를 보육원 앞에 버려놓고 간 사람들이었다.
그것도 11월의 차가운 바람이 부는 날 새벽에 말이다.
때마침 새벽기도를 드리기 전 수녀님들이 보육원 문 앞에 버려진 날 발견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다.
당시 새벽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던 때였고 날 감싸고 있는 포대기의 천은 얇디얇았으니까.
그리고 강은기도 엄마와 함께 고생한 탓인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빠에 대한 적개심은 나보다 몇 배는 더했었다.
그 탓에 난 이연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내겐 미카엘라 수녀님이 아빠이고 엄마였어. 그러니까 두 번 다시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마. 그리고 아들을 찾으려고 했으면 직접 찾아왔겠지. 사람을 대신 보내는 게 말이 돼?”
날 선 내 말에 이연실의 목소리가 주춤거렸다.
하지만 이연실은 날 설득하려 애를 썼다.
나와 똑같이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그녀는 어릴 때부터 부모를 만날 수 있으면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를 버린 데는 말 못 할 사정이 있었을 거라면서.
-그래도 한번 연락해 봐. 내가 그 사람들 명함 받아뒀어.
“명함?”
-응. 대흥 저축은행 명함을 가지고 있던데? 그것도 대표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서울에서 꽤 큰 저축은행의 대표가 누군가의 아이를 대신 해 찾는다고?
그 순간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아들을 찾는 게 아니라 혹시 은기가 큰 빚을 져서 돈 받으려고 그러는 거 아냐?”
-에이 설마. 그런 거라면 오빠가 아닌 은기 오빠만 찾았겠지.
“그래도 그 사람들이 알고서 찾아온 건 아니라며? 그냥 아빠가 있는지 없는지만 물었다며?”
-어. 그건 그렇지만······
“괜한 미련 같은 거 가지고 흥분하지 마. 그리고 난 그런 기대 버린 지 오래되었어.”
보육원에 온 아이들은 언젠간 자기 부모가 자기를 찾아올 거라는 희망을 품고 산다.
하지만 그 희망은 한 해 한 해 닳아 없어지다 결국엔 부모에 대한 증오로 변한다.
그리고 나 역시 똑같은 과정을 밟았다.
내 경우에는 12살에 그 미련을 온전히 버리고 그 자리를 증오로 채웠다.
-아 아니 그래도······
아쉬워하는 이연실의 말에 단호히 선을 그었다.
“됐어. 난 부모란 존재는 잊었으니까 더는 말하지 마.”
-미 미안해. 오빠.
괜찮다고 이연실을 달랜 뒤 그녀의 몸 상태를 물었다.
“그나저나 몸은 좀 어때?”
-괜찮아. 엄마 따라 매일 밭매고 하니까 더 건강해졌어. 우리 엄마지만 진짜 엄청나다니까? 배추에 호박에 오이에 고추에. 쌀만 있으면 전쟁이 터져도 자급자족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래. 야채 많이 먹고 몸조리 잘하고. 오빠도 조만간 들를게.”
-올 때 대학로 호떡당에서 꿀 호떡 좀 사다 줘. 자꾸 단 게 땡겨!
“그래. 그럴게.”
이연실과의 전화를 끊는 순간 긴 한숨이 나왔다.
이연실과 강은기도 용서한 나였지만 부모란 존재는 그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본 적도 없고 만난 적도 없지만 그럴 사정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탓에 난 눈앞의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다간 이유 없이 들끓어 오르는 분노에 이성을 잃을 것 같았으니까.
* * *
사무실로 올라가자 이영진이 급하게 날 찾았다.
조금 전 도란희의 일 때문에 도망가려 했지만 이영진이 날 찾는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팀장님! 이것 좀 보세요.”
“뭐 뭔데?”
“소이영이 저희랑 붙는다는데요.”
말을 마친 이영진이 자신의 폰을 내밀었다.
[(속보) <돈의 축제> 여주인공으로 소이영 전격 발탁!]
[<돈의 축제> 초호화 출연진 캐스팅!]
[충무로의 블루칩 소이영이 선택한 첫 번째 드라마는 돈의 축제!]
[<돈의 축제> vs <신의 이름으로>. 수 목 드라마의 승자는?]
소이영은 데뷔와 동시에 수상을 밥 먹듯 하던 천재 여배우.
드라마 출연을 꺼리던 소이영이 하필이면 동 시간대에 편성된 경쟁 드라마에 출연한다고 한다.
“소이영은 드라마 출연에 관심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 쪽대본이 난무하는 드라마 판이 싫다고 했지.”
하지만 난 소이영이 영화판에 머문 진짜 이유를 안다.
탑 엔터테인먼트 시절 그녀의 별명은 ‘돈벌레’.
그런 소이영은 누구보다 자신의 몸값을 지키는 데 혈안이었기에 드라마 판에 관심 없는 척 굴었다.
영화에서의 몸값을 드라마 판에서는 제대로 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소이영이 스크린을 떠나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건 답이 하나였다.
“이번엔 출연료를 엄청 세게 받았나 본데?”
이영진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편당 출연비가 1억5천이랍니다. 거기에 옵션을 더하면 2억이라는 소문도 있고요.”
“2억? 미친 거 아냐? 그 정도면 우리 1실의 조민성 배우 수준이잖아?”
S급 배우의 평균 몸값은 보통 편당 1억 정도 선에서 플러스 알파.
그런데 처음 드라마에 출연하는 소이영에게 옵션 포함 2억을 준단다.
그 정도면 출연료가 국내 최고의 몸값을 받는 배우 1실의 조민성과 같은 금액이다.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온다.
“미친······. 아니다 하긴 그 정도 되니까 소이영이 움직이는 거겠지.”
이영진이 걱정하는 눈빛으로 묻는다.
“어쩌죠? 소이영의 첫 드라마라면 화제성이 보통이 아닐 건데요.”
“영진아. 너 소이영 팬이니?”
“아 아니······ 그건 아니고.”
팬이군.
충무로의 신성.
매혹적인 마스크.
사람을 홀리는 목소리.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다는 연기력.
소이영이 2년 전 주연을 맡아 연말 주연상을 휩쓸었던 <사랑 그까짓 거>에서 받았던 평가였다.
난 눈치를 보는 이영진을 쏘아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그래도 우리 드라마가 이길 테니까.”
만만치는 않은 상대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난 소이영이 가진 문제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회귀 전 그녀를 진짜 탑 스타로 만들어 준 건 다름 아닌 바로 나였으니까.
* * *
새벽 6시.
경기도 양평의 촬영 현장.
차에서 내리기 전 오늘 밤에 있을 강하나의 너튜브 준비 상황을 체크했다.
도란희가 보내준 체크리스트를 확인하고 답신을 보냈다.
[정윤호 팀장 : 이따가 10시 넘어서 녹음실로 내려갈게. 그때까지 방송 준비 잘 해둬.]
[우주최강섹시미녀 도란희 : 넹~ 이따 봬요. 팀장님.]
까톡을 마친 난 뒷좌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진아. 다 왔어.”
유진이가 눈을 번쩍 뜨며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우리······ 밥 먹어요?”
“아니. 촬영장 다 왔다고.”
유진이가 입가에 흐른 침을 살짝 닦으며 웃는다.
연일 촬영 때문에 식단 조절을 하는 터라 꿈에서도 밥을 찾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 드라마 촬영이 끝나면 조금 쉴 수 있게 스케줄을 빼야 할 거 같다.
“그리고······ 자 여기 손거울.”
유진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손거울을 받아든다.
깜짝 놀란 유진이가 입가에 하얗게 말라 있는 침을 닦았다.
“혹시······ 봤어요?
어색하게 웃는 유진이를 향해 빙긋이 웃었다.
“침 흘려도 예쁜데 뭘?”
기운을 내라고 장난스레 말하자 유진이가 닭살이라며 몸을 웅크린다.
“아 뭐예요. 아침부터~”
하지만 행동과는 달리 유진이의 얼굴이 활짝 피고 있었다.
“자자 촬영해야 하니까 어서 내리자.”
“네~.”
밝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유진이와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평소와는 달리 촬영장 이곳저곳에서 소란스러움이 가득했다.
알고 보니 소이영이 우리 상대 드라마의 주연이라는 기사 때문이다.
웅성대는 소란에 오디오 감독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와 동시에 김성운 PD가 샷을 끊고 확성기로 외친다.
“왜 이리들 시끄러워! 촬영에 집중 안 해?”
김성운 PD의 호통에 흐트러져가던 분위기가 바로잡혔다.
스태프들의 사과에 김성운 PD가 다시 한번 외쳤다.
“상대 드라마 주연이 누가 되든 우린 우리 일만 하면 돼! 정신들 바짝 차려!”
거침없는 카리스마로 빠르게 분위기를 수습한 김성운 PD는 평소보다 빠른 페이스로 촬영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 탓에 유진이의 촬영 일정이 무려 30분이나 앞당겨졌다.
“오빠. 저 촬영하고 올게요.”
“오늘도 파이팅!”
“네~!”
나는 유진이가 촬영에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승합차로 향했다.
* * *
유진이가 촬영하는 틈을 타 차 청소를 시작했다.
시트를 닦고 발판을 털어내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팀장이 이런 일까지 해요? 청소 정도는 밑의 팀원들 시키면 되잖아요.”
고개를 돌려보자 주영인이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난 남은 발판을 또 하나 꺼내며 대답했다.
“팀장은 청소 좀 하면 안 됩니까? 그리고 제 팀원들은 바빠서 이런 일을 할 여력이 없으니까 제가 대신해 줘야죠.”
주영인이 입술을 삐죽인다.
“그렇게 팀원들을 잘 챙기시는 분이 나한텐 왜 그렇게 야멸차게 굴었어요?”
왜 그러긴.
너랑 얽히기가 싫어서 그러지.
인상을 찌푸린 주영인이 쪽지를 전해준 걸 언급했다.
“그나저나 체리블라썸. 재계약 가로채려는 거 잘 막아냈다면서요? 막 고맙고 뭔가 보답을 해야 할 것 같고 그런 감정 못 느껴요?”
“그쪽이 돕지 않았어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딱 잘라 말했지만 주영인이 오해했다.
“그냥 고맙다고 말하지······.”
어처구니가 없어 입을 닫아 버렸다.
난 다시 한번 발판을 터는 거로 답을 대신했다.
펄럭.
먼지가 날리자 주영인은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결벽증이 있는 성격이라 이런 걸 참지 못했다.
그래서 난 과거 그녀를 담당할 때도 하루에 두 번씩 승합차 청소를 해야 했었다.
“오빠! 나 먼지 알레르기 있는 거 뻔히 알면서 그래요?”
주영인이 코를 훌쩍거리며 재채기하려고 한다.
“죄송합니다. 바빠서 지금 아니면 정리할 시간이 없습니다.”
손수건에다 코를 푼 주영인이 날 쳐다본다.
“그건 그렇고 오늘 기사 봤죠?”
“소이영이 상대 드라마에 나온다는 거 말씀입니까?”
“어떻게 생각해요? 우리 드라마가 거기에 이길 수 있을 거 같아요?”
주영인의 얼굴에 걱정이 어린 게 보인다.
‘설마 주영인이 긴장이라도 하는 건가?’
현재 주영인의 몸값은 편당 9천만 원.
그녀는 아직 1억의 출연료를 넘기지 못한 걸 신경 쓰고 있었다.
업계에서는 편당 출연료가 1억은 넘어야지 진짜 S급이란 평가를 한다.
주영인은 이번 작품을 성공시켜 그 급을 올리려고 하고 있었는데 소이영이 그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작품의 성공을 묻는 주영인에게 딱 잘라 말했다.
“영인 씨만 잘하면 됩니다.”
그런데 주영인의 눈은 내 입이 아닌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빤히 쳐다봅니까?”
순간 주영인이 빙긋이 웃는다.
“오빠가 자신만만한 거 보니까 걱정 안 해도 되겠는데요? 그리고 나야 뭐 지금처럼 열심히 할거고. 유진이도 준비 잘된 것 같고.”
순간 닭살이 돋아 올랐다.
그녀는 내 대답이 아닌 내 태도에서 <신의 이름으로>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고 있었다.
‘이러려고 나한테 질문을 한 거였어?’
올해 고작 24살인데도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성공을 쟁취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하긴 애당초 작품의 시놉시스가 아닌 내 선택을 보고 <신의 이름으로>에 주연 오디션을 본 주영이니 그럴 만도 하다 싶었다.
난 놀란 감정을 감추며 헛웃음을 지었다.
순간 주영인이 장난스레 웃었다.
“에이~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이 판에서 버텨보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 독해진 거지 저 그렇게까지 못된 여자 아니에요 오빠.”
늘 도도한 태도로 지내면서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은 사람 취급도 하지 않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생전 처음 보는 다정한 얼굴이 깃들고 있었다.
그녀가 가진 성격과 그녀가 하던 행동들을 몰랐다면 나도 모르게 한발 다가갔을지 모를 정도로 매력적인 모습.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밀어낸다고 그녀가 밀려나지는 않을 거라는 거다.
아니 이 상황에서 함부로 밀어냈다간 오히려 시기와 질투에 먼 주영인이 폭주할 수도 있었다.
그 탓에 난 어깨와 얼굴에 살짝 힘을 풀고서 달래듯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소이영이라는 배우가 만만하지는 않을 겁니다. 거기에 홍장미 작가도 그렇고 제작을 맡은 한세화 대표도 보통 사람이 아니고요. 혹시 ‘돈의 축제’ 시나리오를 봤습니까?”
“네. 봤어요.”
“저도 봤는데. 초반부터 빠른 템포로 몰아붙이더군요. 하지만 중반에도 텐션이 안 떨어지니까 매 순간 죽을힘을 다해 연기를 펼쳐야 할 겁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변한다.
“오빠가 나긋나긋하게 말해주니까 좋은데요? 그리고 또요?”
“소이영이랑 한세화 대표 둘 다 언론 플레이에 능합니다. 붙어서 못 이길 것 같으면 싸우질 마십시오. 그리고 에이스 엔터한테는 홍보비 좀 많이 써달라고도 하고요.”
주영인이 연신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요. 우리 실장님한테도 홍보비 왕창 쓰라고 할게요.”
그런데 그때였다.
“영인 선배. 지금 우리 오빠랑 뭐 하고 있어요?”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유진이가 우리 둘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