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2화
232. 접근 1
성호준과의 전화를 마치자 곁에 있던 이영진이 다그치듯 묻는다.
“됐습니까 팀장님?”
“그래. 잘 됐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이영진이 조심스레 말한다.
“그리고 팀장님. 최성락이랑 박희태 두 사람. 요즘 지저분하게 놀던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생각나는 게 있었다.
“대마하고 있어?”
순간 이영진의 얼굴이 굳는다.
“그 그걸 어떻게 아세요?”
회귀 전 박희태와 최성락은 대마를 하다 내게 발각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하는지는 몰랐기에 이영진을 통해 알아보라 시켰었다.
“한 달 전에 했다던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알았어. 이제부터는 내가 처리할 게.”
이영진이 곤란한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설마······ 아니죠?”
난 이영진의 어깨를 두드렸다.
“넌 그냥 모른 척해. 괜히 끼어들면 피곤해지니까.”
이영진이 굳은 표정을 짓는다.
“그래도 제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하십쇼. 뭐가 됐든 돕겠습니다.”
난 이영진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어쨌건 이번 일. 우리 영진이 덕분인데 먹고 싶은 거 다 말해. 뭐 먹을래? 뭐 먹고 싶어?”
“한우요.”
얘가 도란희랑 같이 다니더니 한우병이 옮았나 보다.
“무한 소고기는 안 돼?”
이영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한우라니까요? 전 물 건너온 소고기는 취급 안 합니다.”
“잘만 먹더만?”
“한 달 전부터 끊었습니다! 몸에 안 좋대요 그거!”
“똑같을걸?”
하지만 이영진은 강짜를 부려댄다.
“다른 거라니까요?”
“알았어. 그럼 저녁때 먹으러 가자.”
그 순간 이영진이 슬그머니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꺼냈다.
“그리고 이왕이면 란희도 데리고 가죠. 우리끼리 가면 섭섭해할 텐데······.”
순간 이영진을 보는 내 두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란희는 왜~? 설마~?”
장난스레 말하자 이영진이 정색한다.
“아닙니다! 팀장님!”
이영진의 얼굴에 언뜻 당혹감이 스쳤지만 필사적으로 표정을 관리한다.
“그러면 왜 굳이 란희를 데리고 가려고 하는지나 좀 들어보자. 타당한 이유다 싶으면 데려가 줄게.”
“란희가 최근 고생이 심했잖아요. 매일 한우 타령하는 걸 뻔히 아는데 저만 가서 얻어먹기도 미안하고요.”
내일은 강하나의 너튜브로 뮤직비디오를 공개한 뒤 라이브 방송을 시작하는 날이다.
강하나가 데뷔를 앞두고 있었기에 담당인 도란희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밤샘을 밥 먹듯 하고 있었다.
원래 도란희는 별도로 챙겨주려 했건만 이영진은 마치 자기 여자 친구가 되는 것처럼 신경을 쓰고 있었다.
‘둘 사이가 꽤 진척된 건 틀림없는 것 같은데······.’
그런데 그 순간 이영진의 뒤편에서 도란희가 살금살금 다가오는 게 보였다.
도란희가 입술에 손가락을 대며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 순간 장난기가 발동했다.
“영진아. 그 정도로는 안 되겠다. 정~ 란희까지 데리고 가고 싶으면 한우 대신 명륜사또갈비에나 가자. 나 요즘 돈 없어.”
살금살금 다가오던 도란희가 발걸음을 멈추고 대답을 기다렸다.
‘영진아. 점수 딸 절호의 기회다. 한우를 버리고 란희를 택해야 한다?’
도란희의 얼굴에도 어떤 대답이 나올지 기대가 어리는 게 보였다.
하지만 이영진이 그릇된 선택지를 골랐다.
“에이~ 그건 아니죠. 그냥 저 혼자만 한우 사주십쇼.”
순간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야! 그게 아니지! 조금 전에는 란희도 챙기자며?”
“그럴까 했는데 역시 오늘은 한우가 땡기네요. 하하하.”
넉살 좋게 웃는 이영진의 모습에 도란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안타까운 마음에 한숨을 내쉬자 이영진이 뚱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설마 한우 사주기 싫어서 그래요? 사준다고 했잖아요.”
“하아~. 영진아~.”
내 한숨에 이영진이 고개를 갸웃한다.
“왜요?”
난 한숨을 쉬며 턱짓으로 뒤를 가리켰다.
“뒤에서 누가 널 찢어 죽일 것 같은 눈빛으로 보고 있다. 내가 잘못 본 것이었으면 좋겠지만.”
이영진의 뒤에 선 도란희가 주먹을 꼭 쥔 채 웃고 있었다.
순간 이영진이 침을 꼴딱 삼킨다.
“아니죠? 아니라고 말 좀 해주세요!”
난 안타까운 마음으로 합장하듯 손을 모았다.
그 순간 도란희의 웃음 섞인 싸늘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영진 오빠~ 나 말고 한우를 택했다 이거죠? 그렇구나~ 우리 영진 오빠는 나보다 한우가 좋구나아~”
이영진이 연신 찡그리며 내게 SOS를 요청했다.
‘도와줘.’
미안 영진아.
늦은 것 같다.
난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영진이 갈피 잃은 눈으로 날 쳐다보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오늘 저녁은 혼자 짜장면이나 먹어야겠네.”
현재 시각 오후 6시.
딱 밥 시간이었다.
“팀장님은 먼저 사라져 주세요?”
이를 가는 도란희의 말에 난 깍듯하게 대답했다.
“예. 란희 씨!”
난 높임말로 대답한 뒤 뒤도 보지 않고 사무실에서 도망쳐 나왔다.
* * *
경기도 광주.
검은 정장을 입은 건장한 세 명의 남자들이 벤츠 S650을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이들은 한국 최고의 사채업자 최은태 회장의 밑에서 자금의 회수를 맡은 대호파의 수뇌부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대흥 저축은행의 임원이라는 번듯한 신분 역시 가지고 있었다.
뒷좌석에 앉은 대호파의 보스 최영호는 현재 대흥 저축은행의 은행장이다.
그리고 조수석에 앉은 주진호은 대호파의 넘버 2이자 대흥 저축은행의 부은행장이었고.
심지어 운전대를 잡은 행동 대장 장기호는 대흥 저축은행의 상무였다.
은행에 남아서 일 처리를 도맡아 하는 넘버 3인 박정호 전무를 두고 나머지 셋은 시간이 나면 이렇게 최은태 회장의 아들을 찾으러 다니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주진호가 뒷좌석에 앉아 있는 최영호에게 말을 걸었다.
“영호 형님. 이러다 어느 세월에 회장님 아들을 찾습니까?”
뒷좌석에 앉은 최영호가 창문 밖을 쳐다보며 말한다.
“단서가 없는 것도 아니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발품을 팔면 팔수록 기간이 짧아지겠지.”
26년에서 27년 전 경기도 광주에서 2년간 출생자 등록 인원은 대략 1만3천 명.
그중 아버지가 없는 사람으로 파악되는 건 대략 913명 정도였다.
그중에 이미 4백 명 정도를 추적했고 후보자를 12명으로 추렸다.
최영호가 최은태 회장의 아들 후보자를 추리는 방법은 단순했다.
몰래 구한 출생자 기록을 가지고서 보육원이나 위탁 가정 혹은 편모 가정을 중심으로 직접 만나 확인했다.
친부가 있는지 그리고 그 친모는 26년 전 어디 살았었는지 같은 것들의 정보를 물어보면 후보를 쉽게 거를 수 있었다.
그리고 913명을 모두 뒤진 후에 후보자들을 직접 만나 2차 조사를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조수석에 앉은 주진호는 이런 조사 방법이 답답한 듯 말했다.
“영호 형님. 아무리 회장님 지시라지만 저희가 그딴 애새X나 찾으러 다닐 군번은 아니잖습니까? 우리가 이러고 다니는 걸 알면 세상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 겁니다!”
그 순간 뒷좌석에 앉은 최영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최영호는 명동에 버려져 앵벌이 노숙자 집단에서 키워졌다.
성도 이름도 없이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큰놈 곰 새끼 등등으로 불리면서.
그런 최영호는 일곱 살 때 최은태 회장에게 소매치기하다 붙잡혔다.
하지만 최은태 회장은 최영호를 용서해주며 성과 이름을 선물했다.
그 이후 최영호는 최은태 회장을 위해 살게 되었다.
따뜻한 밥을 먹고 사람의 온기를 느낀 게 얼마나 기뻤던가.
남들이 사채꾼이라 비난하고 손가락질해도 그에게 최은태 회장은 아버지였고 구세주였고 은인이었다.
그리고 그건 앞 좌석에 앉은 주진호나 장기호도 크게 다르지가 않았다.
그 탓에 최영호가 낮은 목소리로 주진호를 나무랐다.
“어르신이 길바닥에서 얼어 죽을 뻔한 우리를 거둬주신 은혜를 잊었나?”
“누 누가 그 은혜를 잊는답니까? 죽어도 못 잊죠. 그래도 형님. 영호 형님도 이제 저축은행장을 겸하고 계신데 회장님 말 한마디에 이렇게 필드를 직접 뛰는 건 좀 아닌 거 아닙니까?”
주상호의 질문에 최영호가 대답했다.
“내가 자처했다. 믿을 만한 사람들을 데리고 찾겠다고. 그리고 입이 무거운 사람들을 추리다 보니 너희들만한 사람들도 없더라.”
“형님이 자처했다고요? 하여간 진~짜 어지간하십니다.”
주진호가 가슴을 두드렸다.
그 순간 운전대를 잡은 장기호가 묻는다.
“형님. 그냥 흥신소 애들을 풀어서 찾게 하면 되잖습니까?”
뒷좌석에 앉은 최영호가 장기호를 나무란다.
“흥신소? 만약 이 정보가 최만식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보장을 할 수 있냐?”
“그 그건······.”
사채업자들은 돈을 빌리고 도망치는 사람들을 잡기 위해 흥신소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특히 종로 사채시장을 꽉 잡은 최만식이라면 흥신소 소장들을 전국 단위로 부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최은태 회장과 최영호가 걱정하는 건 단 하나.
만약 흥신소를 이용하거나 다른 아랫놈들을 시키면 최만식이 중간에 손을 쓸 수도 있었다.
가령 사고를 위장해 처리해버린다거나 하는.
그래서 최영호는 자신이 직접 찾겠노라 말했다.
자신이 나서면 최만식도 함부로 손을 쓰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주진호의 불만은 사실 다른 데 있었다.
“그래요. 다 좋아요. 좋습니다. 그런데 왜 회장님은 형님을 양자로 안 삼고 그딴 최만식 양아치 새끼를······.”
순간 최영호가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감히 내가 어찌 그분의 아들을 자처해?”
“혀 형님.”
“다시 한번 그딴 소리를 입에 올리면 진호 너 혼날 줄 알아라.”
최영호가 주먹을 주억거리자 주진호가 입술을 삐죽이며 시트에 몸을 기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제 제 나이가 몇인데 혼을 내신다고······.”
“올해 고작 37살이 된 놈이 무슨 나이 타령이야?”
올해 42살의 최영호는 고작 다섯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은 주진호를 애 다루듯 취했다.
하지만 3살 때 명동 골목에 버려진 주진호를 발견해 살려 준 게 최영호였기에 감히 덤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그사이 오늘 들를 경기도 광주의 천사 보육원에 도착했다.
허름한 보육원의 건물을 본 최영호는 주진호에게 물었다.
“여기는 몇 명이나 있었지?”
“두 명입니다. 강은기 정윤호라고 하네요. 얼른 가시죠. 형님.”
운전하던 장기호를 둔 채 최영호와 주진호는 천사 보육원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천사 보육원에는 밭을 매던 수녀 한 명과 젊은 여자가 기분 좋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최영호가 조심스레 인기척을 내었다.
“저기 잠시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최영호의 말에 미카엘라 수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곁에 있던 이연실도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미카엘라 수녀의 말에 최영호가 빙긋이 미소 지었다.
“저희는 대흥 저축은행 쪽에서 나왔습니다. 보육원에 기부를 좀 하고자 찾아왔습니다.”
그 순간 미카엘라 수녀님이 환하게 두 사람을 반겼다.
“독지가님이셨구나. 안으로 들어오세요.”
미카엘라 수녀와 이연실이 앞장서자 그 뒤를 최영호와 주진호가 따랐다.
조그만 접객실에 앉은 네 사람이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최영호의 입에서 강은기와 정윤호에 관한 질문이 나온 순간 미카엘라 수녀가 안색을 바꾸었다.
“아빠가 없는 게 맞냐니 그게 무슨 말이죠?”
“너무 경계 안 하셔도 됩니다. 저희가 기부를 하는 것도 맞고 엄청난 독지가분께서 오래전에 잃어버린 친아들을 애타게 찾고 있어서 그걸 좀 확인하려는 것뿐입니다.”
잠깐 멍하니 있던 미카엘라 수녀가 표정을 굳혔다.
“강은기. 정윤호. 두 사람 모두 부모님들이 너무 사는 게 힘들어서 저희에게 잠시 맡겨진 겁니다 그쪽이 말씀한 대로 아빠가 없는 애들이 아니에요. 그리고 지금 걔들 부모님이랑 같이 살고 있어요!”
순간 주진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수녀님. 저희가 미리 알아보고······.”
최영호가 손을 들었다.
“그렇습니까? 저희가 큰 결례를 범했습니다.”
최영호는 실례했다면서 품속에서 수표를 꺼내 들었다.
“그래도 기부금은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미카엘라 수녀가 고개를 저었다.
“어떤 돈인지도 모르는데 쓸 수가 없겠네요. 돌아가세요.”
최영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수표를 챙겼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는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거로 보내겠습니다.”
최영호가 허리를 반으로 굽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 보겠습니다.”
최영호가 인사를 한 뒤 주진호와 함께 천사 보육원 밖으로 나왔다.
주진호가 이해가 가지 않아 물었다.
“형님. 왜 자세히 알아보지 않으십니까? ”
“아까 그 수녀. 거짓말을 정말 못 하더구나.”
“예?”
“두 사람 모두 후보군에 올려. 아마 두 사람 모두 아버지는 없을 거다.”
“정말입니까?”
“그래.”
최영호가 사람을 보는 눈은 틀린 적이 거의 없었다.
“자 그러면 다음 갈 곳은 어디라고?”
“예천 보육원이랑 알라딘 보육원입니다.”
“바로 가자.”
최영호는 앞으로 2주 안에 모든 보육원을 돌자는 말을 남긴 채 차에 올랐다.
* * *
짜장면을 먹고 나오는데 이연실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보육원으로 강은기와 날 찾는 인상 나쁜 조폭들이 찾아왔다고.
“응?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엄마가 둘러댔어. 은기 오빠나 오빠를 노리는 사람들인가 싶어서.
“잘했어. 그리고 수찬이한테는 연락했어?”
강은기가 검찰에 자수한 뒤 남은 조직과 기업들은 천사 보육원 출신의 후배 이수찬이 이끌고 있었다.
-응. 수찬 오빠한테 이야기했더니 사람들을 보내준대.
“다행이네.”
그런데 그 순간 이연실의 걱정스러운 말이 들려왔다.
-근데 오빠. 만약에······ 그 사람들이 진짜 은기 오빠나 오빠네 아빠가 보낸 사람이면 어떻게 해?
나에게 아버지라고?
그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강렬한 적개심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