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3화
223. 가족 5
“아무래도 보험 해지해야겠다. 최강한이 날 배신했다.”
강은기도 맹탕은 아닌지 혹시나 최강한 대표에게 당할까 봐 준비를 해 둔 모양이다.
“어. 어. 그래. 현민이는 사업장에 나간 애들 불러 모으고 동오한테는 강한 엔터 주차장에 다 모이라고 해. 막는 놈들 있으면 내가 시켰다고 하고. 그러면 대부분 돌아설 거다. 어. 그래. 그리고 우리 집 앞으로 지원조 몇 명 보내서 쓰레기 수거해가라.”
전화를 끊은 강은기는 함께 있던 두 사람을 향해 지시를 내렸다.
“수찬이는 여기 남아서 지원조 올 때까지 지키고 있고 동혁이는 나 따라와.”
형형한 눈빛을 뿜어내는 강은기가 차 쪽으로 가려 했다.
그때였다.
“야. 강은기. 잠깐 스톱.”
강은기가 인상을 찌푸린다.
“왜? 시간 없어.”
“시간이 없든 말든. 이거부터 차고 가.”
난 내가 차고 있던 보호대와 방검복을 강은기에게 넘겼다.
“괜찮아.”
“시끄럽고. 빨리 착용해. 나한테 뒤지기 싫으면.”
강은기가 혀를 내두른다.
“가끔 이럴 때면 내가 깡팬지 니가 깡팬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강은기가 어색하게 웃으며 내가 건네준 장비를 빠르게 착용했다.
잠시 후.
“그럼 갔다 올게.”
“그래 티끌만큼이라도 다치면 넌 나한테 죽는다.”
“걱정하지 마라. 나 그렇게 호락호락한 놈 아니니까.”
“걱정 안 해 인마.”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건 강은기가 창문을 내리고 내게 말했다.
“그리고 윤호야. 혹시나 무슨 일 생기면······ 연실이랑 네 조카 부탁한다.”
순간 강은기를 향해 외쳤다.
“네 새끼는 네가 키워! 우리처럼 애비 없는 자식 만들지 말고!”
어색하게 웃던 강은기가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수찬아.”
“예. 형님.”
“은기가 그 회장이라는 인간 제칠 수 있냐?”
이수찬이 부동자세를 한 채 고개를 젓는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투조 애들이 다 저희 쪽 애들이라서 싸움에서는 안 밀립니다.”
“자랑이다 이 자식아.”
이수찬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리고 일 끝날 때까지는 연실이 전화는 받지 마. 대신에 내가 연실이 곁에 있을 테니까 끝나는 대로 나한테 전화해.”
“예. 형님.”
“그리고 네 전화번호 좀 찍어주라.”
폰을 내밀자 이수찬이 자신의 번호를 눌러준다.
통화를 눌러 발신 기록을 남긴 뒤 다시 한번 이수찬에게 당부했다.
“은기 잘 지켜.”
“예. 형님.”
이수찬이 허리를 반으로 굽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원조가 와서 나머지 애들을 챙겼다.
그런데 역시 아는 놈들이다.
“미치겠네. 니들 다 은기 밑에 있었냐?”
천사 보육원 동생들과 내가 있던 근처 보육원 동생들이 힐끔힐끔 내 눈치를 살핀다.
“예. 형님. 은기 형님이 거둬주셨습니다.”
“어서 가봐. 그리고 오늘을 끝으로 손 씻어.”
순간 지원조라는 녀석들이 허리를 반으로 굽힌다.
“알겠습니다. 형님!”
“조폭한테 형님이라 불릴 생각 없어. 나중에 손 씻고 나면 그때 형이라 불러.”
지원조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중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지원조는 급히 쓰러져 있던 칼잡이와 태촌파 똘마니들을 차에 태워 사라져버렸다.
모두가 사라진 후.
심호흡을 마치고 조심스레 다이어리를 펼쳤다.
[에브리데이 V10.1]
[날짜 : 2020년 7월 17일]
-AM 08:00 강북삼성병원 강은기 발인.
아직도 다리어리의 일정이 지워지지 않고 있다.
‘쫓아가서 말려야 되나?’
일반적으로 발인은 사망한 뒤 3일째 되는 날 아침에 하게 된다.
즉 7월 15일 오늘이 강은기가 죽는 날이란 소리다.
현재 시각은 7월 15일 밤 9시 30분.
오늘이 지나가기까지는 아직 2시간 반이나 남았다.
회귀 전 은기가 밤늦게 죽었다는 사실만 알 뿐 정확한 시간을 몰라 마음이 초조해 왔다.
“은기야. 제발 죽지 마라.”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한때는 강은기에 대한 원망과 폭력 조직에 몸담은 녀석에 대한 혐오 덕에 다시는 보지 않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강은기가 살아오기만을 바랐다.
내 여동생을 위해 병원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굶주린 배를 잡고 있는 엄마를 위해 그리고 광주에서 애들을 돌보고 있는 누나를 위해 말이다.
내가 회귀를 하면서 두 번째 기회를 받았듯 강은기에게도 두 번째 기회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저지른 일을 돌이킬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자신의 죗값을 죽음이 아닌 다른 걸로 치를 수 있게 말이다.
“휴우.”
온몸을 적신 땀이 한여름의 바람에 말라가자 서늘한 기분이 느껴진다.
“일단은 연실이부터 달래야겠다.”
강은기와 연락이 닿지 않아 당황하고 있을 이연실이 걱정되었다.
‘아기까지 가졌는데 혼자서 얼마나 불안할까.’
난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레 이연실의 집으로 향했다.
띵동.
초인종을 누르자 놀라는 이연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호 오빠? 여긴 어떻게?
인터폰을 쳐다보며 태연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너랑 은기가 안 올 거 같아서 직접 데리러 왔어.”
-자 잠깐만! 오빠.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난 길게 심호흡을 한 뒤 집 안으로 향했다.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하며.
* * *
내 여동생.
한때 내가 사랑했던 여자.
그리고 이제는 한 남자의 여자이자 아이의 엄마가 된 이연실이 눈앞에 서 있다.
하지만 난 과거 따위는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를 지었다.
“우리 연실이. 여전히 이쁜네?”
이연실이 얼굴을 감싼다.
“아 아냐. 나 지금 화장도 안 했는데······”
“괜찮아. 화장 안 해도 이쁘니까 안 가려도 돼.”
그녀의 모습은 헤어질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제는 그 시절의 어린 연실이 아닌 어른이 다 되었지만.
“오빠······.”
“다 지나간 이야기니까 옛날이야기는 하지 말자. 앞으로의 좋은 일만 이야기하자고. 알겠지?”
“흐흑.”
“또 운다 태어나는 아기가 너 닮아 울보 되면 어쩌려고?”
아이를 언급한 순간 눈물을 글썽대던 이연실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와 동시에 이연실은 본능적으로 아랫배로 손을 가져다 댔다.
“미 미안.”
“괜찮아. 그런데 왜 그렇게 병원에 못 온다고 한 건데?”
“아까 놀랐는지 배가 좀 땅겨서 못 움직였어. 아 맞다. 일단 은기 오빠 올 때까지 여기 앉아서 좀 기다려. 내가 음료수 가져올게.”
이연실이 소파를 가리킨 뒤 종종걸음으로 주방으로 향했다.
그사이 이연실과 강은기의 집 안을 살폈다.
돈은 많이 번다고 들었지만 보육원을 먹여 살리는 데 돈을 써서 그런지 집 자체는 크지가 않았다.
하지만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따뜻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연실이가 꾸몄나 보네.’
음료수를 가져온 이연실이 내 곁에 앉아 조심스레 말한다.
“근데 은기 오빠가 생각보다 늦어. 전화도 안 받고.”
이연실이 거실에 걸린 시계를 쳐다본다.
“차가 막히는 거겠지. 전화야 배터리가 다 됐을 수도 있고.”
하지만 말과는 달리 내 입술은 바짝바짝 말라가기 시작했다.
아직도 다이어리의 일정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으니까.
난 강은기에 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일부러 근황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이연실이 묻는다.
“그런데 오빠는 사귀는 사람 없어? 예전에도 오빠 좋다고 대시하는 여자가 한둘이 아니었잖아.”
“나한테? 에이. 누가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고.”
피식하고 웃음을 짓자 이연실이 어이없다며 웃는다.
“이 오빠 또 이러네. 그렇게 눈웃음 좀 치지 마. 그러니까 여자들이 꼬이지.”
그러고 보니 카페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여자 손님들이 음료수나 초콜릿 그리고 도시락을 주곤 했었다.
덕분에 식비를 아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건 내가 워낙에 없어 보여서 그런다고 생각했는데?”
“이것 봐. 이렇게 무신경하니 여자들이 애가 닳지. 누가 데려갈지 몰라도 내가 걱정이라니까.”
이연실의 잔소리가 이어지자 그제야 옛날로 돌아간 거 같다.
“은기가 참 고달프겠다.”
“뭐?”
이연실이 날 샐쭉이 째려본다.
“아 아냐.”
몸을 부르르 떨자 이연실이 피식 웃는다.
“하긴 은기 오빠도 내 잔소리에 귀를 막긴 하더라.”
“어. 인정. 너 잔소리 엄청 심해.”
“두 사람 다 걱정을 어지간히 시켰어야지!”
여자에 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기에 여자의 마음도 몰랐다.
그러다 보니 결국 결혼도 주영인이 적극적으로 진행했었다.
물론 그 결과로 실패한 인생을 겪었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연실도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는지 목소리의 떨림이 사라졌다.
“하긴 오빠처럼 똑 부러지게 사는 사람에게 나 같은 허당이 잔소리하는 것도 참 우습다. 그치?”
지난 과거를 마주하는 건 처음이 힘들었지 그다음부터는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이연실은 날 보더니 나와 헤어진 후의 이야기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강은기가 자신을 잡기 위해 두 사람 사이에서 수작을 부렸다는 걸 뒤늦게 알고 헤어지려 했다는 것부터 강은기가 무릎을 꿇고 울며불며 매달린 일까지.
대신 그때부터 강은기를 꽉 쥐고 살고 있다고 하니 잘된 일이다.
“하여간 은기는 예전부터 너한테는 물렁했어. 자식이 너만 보면 헤벌레해서는······”
이연실이 씨익 웃는다.
“오빠.”
“응?”
“그런데 앞으로도 우리 이렇게 자주 보는 거지? 혹시 심각한 병에 걸려 죽기 전에 우리와 화해하려는 건 아니지?”
얘가 드라마를 너무 본 모양이다.
난 고개를 저으며 이연실의 질문에 답했다.
“아냐. 얼마 전에 우리 회사로 은기가 찾아왔더라고. 그때부터 화해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뒤로도 한참을 망설이다 이제야 온 거야.”
“그랬구나. 난 또······ 우리가 헤어지기 전이랑 오빠 인상이 너무 달라져서 뭔가 다른 이유가 있나 했어.”
회귀한 이후 내 주변의 평가는 극단적으로 달라졌다.
이연실 역시도 내 인상이 부드러워졌다며 다행이라 말한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우린 그렇게 옛날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이야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이제는 밤 10시.
이연실은 강은기가 왜 이리 안 오냐며 걱정하기 시작했다.
“오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지금쯤은 와야 했는데······.”
강은기가 폰이 부서진 건 이연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중간중간 이수찬에게 전화를 걸어댔지만 이수찬은 내가 시킨 대로 이연실의 전화를 받지 않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 폰으로 이수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연실아. 잠깐만.”
“왜? 은기 오빠야?”
“아냐. 회사 전화야. 잠시만 나 전화 좀 할게.”
난 벌떡 일어나 이연실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여보세요?”
-예. 형님. 수찬입니다.
보육원 동생 이수찬이 턱까지 차오른 거친 호흡을 숨기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어 말해.”
-방금 정리 다 끝났습니다.
“진짜야?”
-예.
“잠깐만. 전화 끊지 말고 기다려 봐.”
난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게 폰의 스피커를 막았다.
“연실아. 오빠가 갑자기 배가 아픈데. 화장실은 어디야?”
“아. 저기.”
이연실이 한쪽을 가리킨다.
“오케이. 생큐.”
난 화장실로 향하며 다이어리를 확인했다.
그런데 일정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에브리데이 V10.1]
[날짜 : 2020년 7월 17일]
-AM 08:00 강북삼성병원 강은기 발인.
‘설마 아직 위협이 남아 있는 건가?’
덕분에 화장실로 가는 내 발걸음이 빨라졌다.
화장실의 문을 닫자마자 급히 지시를 내렸다.
“지금 당장 은기 주위에 사람들 둘러싸서 보호해. 안 그러면 은기 죽어!”
-예?
“아직 은기를 노리는 놈이 있다고! 지금부터 오늘 12시까지는 은기 옆으로 아무도 못 오게 해. 내 말 안 듣다 사고 터지면 니들 싹 다 나한테 죽을 줄 알아! 그리고 은기가 싫다고 하면 내가 시켰다고 하고.”
-예. 예. 형님. 바로 은기 형님한테 전하겠습니다.
순간 전화가 끊겼다.
강은기의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라 가슴이 쿵쾅거렸다.
하지만 티를 내선 안 된다.
이 일이 끝날 때까지 이연실이만은 몰라야 했으니까.
‘아냐. 잘 될 거야. 잘 될 거야.’
그렇게 속으로 외치며 일정이 지워지기만을 간절히 빌었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연실이가 문을 톡톡 두드렸다.
“오빠······ 혹시 변비야?”
순간 나도 모르게 입에서 힘을 주는 소리가 나왔다.
“어······ 어. 으으으.”
그와 동시에 강은기에 대한 지독한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강은기.
너 때문에 내가 없던 변비도 생겼어.
넌 오면 나한테 뒤졌다.
그러니까 살아만 와라.
제발 살아와서 나한테 좀 맞자.
그렇게 간절히 빌며 긴장을 억누르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1분.
‘됐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일정이 사라지고 있었다.
[에브리데이 V10.1]
[날짜 : 2020년 7월 17일]
-AM 08:00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강북삼성병원 강은기 발인.)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은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야 야! 정윤호. 너 너······ 대체······
어찌나 놀랐는지 강은기의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