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7화
207. <먹방의 대가> 오디션 1
“안녕하세요. 한국조리영재고등학교 3학년 이진택이라고 합니다.”
‘한국조리영재고등학교’는 프로를 지망하는 예비 요리사들이 치열한 입학 경쟁을 하는 학교다.
입학 시점에서 이미 호텔급 요리를 만들 수 있어야지 입학할 수 있다고 들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고등학교 3학년?
그렇다면 어지간한 레스토랑 쉐프급 실력이라는 소리다.
심지어 전용 칼까지 챙겨왔다고 한다.
“아마추어들 노는 판에 프로가 왔네.”
“프로라뇨. 당치 않으세요.”
이진택이 손을 휘휘 젓는다.
마동팔 본부장도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더라니 이제야 이유를 알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쩍 하루를 쳐다봤다.
하지만 다행히 하루는 기가 죽지 않고 있다.
‘기특한 녀석.’
지난번 우성찬과의 일 이후 하루는 정신적으로 성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하루가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보였다.
“한영예중 3학년 하루입니다. 요리는 급식 아주머님께 배웠습니다.”
“풉. 급식······ 흠흠. 미안 미안. 설마 예상하지는 못해서.”
당당한 하루의 대답에 이진택이 갑자기 빵하고 터져버렸다.
‘왜? 급식 아주머님께 배운 게 어디가 어때서?’
하루가 떳떳한데 내가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이진택은 괜히 긴장했다는 듯 느긋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유현지 PD가 오디션의 시작을 알렸다.
“자자. 올 사람들은 다들 온 것 같네. 매니저들은 다 뒤로 빠지시고 연기자들만 앞으로 나와요.”
그와 동시에 배우들이 매니저들과 떨어져 우르르 앞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럼 나중에 보지.”
마동팔 본부장이 손을 흔든 뒤 이진택을 데리고 한쪽으로 이동했다.
하루 역시도 심사위원들 앞에 나설 준비를 마쳤다.
난 앞으로 나가려는 하루를 잡고 마지막 조언을 시작했다.
“하루야 잘 들어. 이건 요리 경연대회가 아니라 ‘먹방의 대가’ 주인공인 박일식을 뽑는 오디션이야. 알겠지?”
하루가 고개를 끄덕인다.
“예. 요리만 아니라 연기에도 신경을 쓸게요.”
“아니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신경 써야 해. 저 앞으로 나가는 순간 카메라가 돌 테니까. 양쪽에 카메라 감독님들 보이지?”
심사위원석 양쪽에 서 있는 두 대의 카메라를 가리켰다.
“예. 보여요.”
“긴장될 수도 있겠지만 심사위원들 앞에 서는 순간 넌 이제 요리 경연대회에 나온 주인공 박일식이라고 생각해. 막힐 때면 대본을 떠올리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를 알려준 순간 하루의 얼굴이 조금은 밝아졌다.
“네. 형. 저 잘하고 올게요.”
“믿는다.”
하루의 든든한 대답을 듣고는 살짝 등을 밀었다.
“파이팅!”
하루가 심사위원들 앞으로 걸어 나갔다.
* * *
심사위원석에는 음식 프랜차이즈 전문가인 백종석 대표와 세계적인 요리사인 에릭 박 쉐프 그리고 유현지 PD와 김태촌 CP가 앉아 있었다.
“자 오디션 첫 번째는 백 대표님과 에릭 쉐프님이 해주는 계란말이와 된장찌개를 재현해 주시면 됩니다.”
그 순간 이진택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PD님. 밥은 어떻게 하나요?”
“아 그걸 깜박했네. 밥도 배우분들이 직접 지어야 합니다.”
현재 맛볼 요리는 <먹방의 대가> 1화에서 주인공이 집 근처 백반집에서 먹은 된장찌개와 계란말이였다.
그렇다면 밥 또한 1화를 기준으로 잡아야 했다.
그리고 그 밥을 만드는 방법은 분명히 대본상에 나와 있었다.
‘유 PD. 꽤 짓궂은 데가 있네.’
유현지 PD는 이 기회에 대본을 얼마큼 숙지하고 있는지를 체크 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때 이진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 솥은 자유롭게 선택해도 되나요? 양은냄비 전기밥솥 돌솥이 다 있는 것 같은데요.”
“물론입니다.”
그런데 이진택의 질문이 마음에 들었는지 유현지 PD가 이진택을 관심 있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내가 말한 대로 양쪽 카메라 REC의 붉은 버튼이 켜지는 게 보였다.
‘이제 시작이군.’
심사위원 백종석이 된장찌개를 만들고 또 다른 심사위원 에릭 박은 계란말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 우리 둘이 하는 거 잘 보세유. 알았쥬~?”
백종석은 뚝배기에 된장찌개를 끓이고 에릭 박은 프라이팬으로 계란말이를 구웠다.
두 사람은 대략 15분 만에 마무리 지었다.
요리를 끝낸 백종석이 뒤로 빠지며 말했다.
“참 쉽쥬~?”
몇몇 배우들이 긴장감이 풀려 킬킬대며 웃어댄다.
“그만 웃고 배우들은 앞으로 나가서 음식 맛보세요.”
“예! PD님.”
유현지 PD가 지시하자 배우들이 우르르 앞으로 뛰쳐나갔다.
심사위원석의 테이블에는 뚝배기에 끓여진 된장찌개와 넓은 사기 접시에 담긴 계란말이가 먹음직스럽게 놓여 있었다.
깍둑썰기한 애호박과 감자 그리고 두부들이 잔뜩 들어간 된장찌개에서 나온 구수한 냄새는 세트장 끝까지 풍겼다.
그리고 계란말이에는 잘게 잘린 당근과 대파가 알알이 박혀 있었는데 선명한 노란색이라 더욱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냄새만 맡아도 입맛이 도네.’
그 순간 이곳저곳에서 꿀꺽하고 군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해요? 안 먹어보고?”
유현지 PD의 말에 주춤거리던 배우들이 앞접시를 이용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와 맛있다.”
“끝내주는데요?”
된장찌개와 계란말이를 먹은 배우들은 오디션 중이라는 사실을 잊고 환호를 질렀다.
하루는 형들을 가만히 지켜보다 맨 뒤에 맛을 보기 시작했다.
하루는 계란말이를 조금 떼서 우물거리며 맛을 본 뒤 곁에 있는 생수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물로 입을 씻은 뒤 이번에는 된장찌개를 떠서 후루룩하고 들이켰다.
순간 하루가 흐뭇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유현지 PD의 얼굴이 흐뭇하게 변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잘하고 있어 하루야.’
다른 배우들은 요리를 재현해야 한다는 데 정신이 팔려 지금이 <먹방의 대가> 오디션이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먹방의 대가>의 남자 주인공 박일식은 어떤 음식이든지 분석하는 성격.
그래서 음식을 먹을 때 꼭 하루처럼 조금씩 맛을 본 다음 식사를 시작한다.
그런데 오직 하루만이 내가 조언한 대로 ‘박일식’처럼 음식 맛을 보고 있었다.
하루를 마지막으로 음식 맛보기가 끝이 나자 유현지 PD가 외쳤다.
“자! 그럼 지금부터 요리 만드는 데까지 30분입니다. 시~작!”
유현지 PD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세트장에 있는 거대한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배우들은 자신이 요리할 주방 테이블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순간 하루도 자신의 테이블로 향했다.
주연 배역을 반드시 가져오겠다는 각오가 담긴 표정으로 말이다.
* * *
모든 배우가 뒤쪽 선반에서 압력밥솥을 가지고 와 밥 짓기를 준비했다.
이진택만이 잠깐 돌솥을 만지작거렸지만 결국 그 역시 압력밥솥을 골랐다.
연이어 배우들이 쌀 씻기를 시작하려는 순간 유현지 PD가 대뜸 큰 소리로 외쳤다.
“25분 남았습니다. 시간 봐 가면서 하세요.”
배우들이 고개를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시간이 꽤 남았지만 시간을 인지한 순간 다들 조급함이 생겨버렸다.
덕분에 꽤 많은 배우가 쌀을 제대로 씻지도 않은 채 허둥지둥 대며 밥을 안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진택과 하루는 흔들리지 않고 제대로 된 쌀 씻기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두 사람은 뽀얀 쌀뜨물을 따로 뜨기까지 했다.
잠시 후 된장찌개에 사용하기 위해서.
거기다 밥을 안치는 순간 이진택과 하루만이 ‘대본에 있는 대로’ 쌀 위에 다시마를 한 장 넣었다.
그 순간 심사위원들의 시선은 이진택과 하루에게 집중되어 버렸다.
다른 배우들을 보는 게 큰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압력밥솥에 밥을 안쳐둔 두 사람은 요리 실력을 뽐내기라도 하듯 재료 준비를 시작했다.
도마를 내려치는 칼 소리가 일정하게 들려왔다.
톡톡톡.
경쾌한 칼 소리와 함께 애호박이 각을 뽐내며 잘리고 있었고 대파와 감자 그리고 양파들도 각이 잡혀 주방 테이블 위의 접시에 놓이기 시작했다.
재료 손질에 걸리는 시간부터 재료의 모양까지.
두 사람은 특별히 빠지는 게 없는 요리를 이어갔다.
“15분 남았습니다.”
이진택이 여유로운 웃음을 보이며 요리를 이어갔다.
사실 전문 프로가 하기에는 솔직히 난이도가 낮은 음식들이었으니까.
덕분에 이진택은 주변을 살피는 여유까지 보였다.
하지만 하루는 달랐다.
집중해서 차근차근 재료 손질을 하고 음식을 만들면서도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먹방의 대가>의 주인공인 ‘박일식’처럼 요리 그 자체를 즐기면서 말이다.
하루가 내 조언을 까먹지 않았다는 사실에 결과를 떠나 뿌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매니저의 조언을 새겨듣는다는 그 자체로도 내게는 큰 기쁨이었으니까.
그렇게 오디션의 1부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 * *
“그만!”
유현지 PD의 말과 동시에 배우들이 음식에서 손을 뗐다.
30분이 총알같이 지나가고 이제 요리를 선보일 시간.
내 곁으로 다가온 마동팔 본부장이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을 걸어왔다.
“괜히 시간 끌 거 없이 지금이라도 포기시키는 게 어때? 딱 봐도 우리 진택이 요리가 한 수 위잖아. 안 그래?”
백종석과 에릭 박의 요리를 맛보고 재현한 요리가 배우들의 주방 테이블에 올라와 있었다.
마동팔의 호언장담처럼 그중 눈에 가장 눈에 띄는 건 이진택의 요리였다.
프로의 수준을 가진 이진택이다 보니 차림새부터 차원이 달랐다.
호텔 레스토랑 수준의 데코레이션.
다 같은 계란말이지만 어떻게 내어놓느냐에 따라 다른 음식으로 보인다.
심지어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의 두부마저 각이 살아 있다.
그에 비해 하루의 요리는 겉으로 볼 땐 조금은 평범했다.
“요리가 무슨 공예품입니까? 먹어봐야 알죠.”
마동팔 본부장이 피식 웃는다.
“하여튼 한 번을 안 져요. 하지만 그놈의 자신감도 한번 꺾여봐야지. 두고 봐라. 이번에는 아무리 해도 안 될 거다.”
마동팔 본부장과 내가 티격태격하는 사이 심사위원들이 음식을 맛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심사위원들이 결과를 발표할 순간이 되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김태촌 CP와 유현지 PD가 심각한 표정으로 속삭이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왜 그러지?’
잠시 후 백종석과 에릭 박과도 대화를 나눈 유현지 PD가 배우들에게 오디션 종료를 선언했다.
“저희 ‘먹방의 대가’의 주연은 굴렁쇠 엔터의 하루로 선정했습니다. 다들 고생 많으셨고 정 팀장님은 좀 남으세요.”
그 순간 배우들과 매니저들이 술렁이며 항의를 시작했다.
오디션의 1부 요리하기가 끝나면 2부 먹방 연기를 보고서 주연배우를 결정하기로 했는데 그 과정이 생략된 까닭이다.
“아니 PD님. 이런 게 어디 있습니까?”
“PD님. 요리만이 아니라 복스럽게 먹는 사람에게 가산점을 준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우리 준식이가 얼마나 잘 먹는데요!”
“우리 동인이가 뭐가 부족합니까? 우리 동인이 어머님이 수원에서 제일가는 통닭집 집을 운영하십니다! 실력은 자신 있으니 한 번만 더 드셔 보세요!”
“이건 아니죠. 우리 용진이가 저 녀석보다 못한 게 뭡니까?”
매니저들은 어지간히 당황했는지 평소에는 PD에게 하지 못할 항의까지 해댔다.
물론 마동팔 본부장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분풀이 대상은 PD가 아닌 나였다.
“정 팀장. 너 대체 CP한테 얼마나 처먹였냐? 얼마나 먹였기에 이런 결과가 나와?”
나는 마동팔 본부장의 말에 피식하고 웃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당신 같은 줄 아십니까?”
“뭐? 당신?”
“전 접대 같은 거 안 합니다. 하루가 그만큼 잘했으니까 뽑힌 거겠죠.”
그런데 그때였다.
도저히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이진택이 심사위원들에게 항의를 시작했다.
“PD님! 제가 요리로 졌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납득할 수 있게 설명이라도 해 주셨으면 합니다.”
순간 유현지 PD의 인상이 와락 하고 찌푸려졌다.
‘미친······’
방송국 PD의 힘은 막강하다.
더군다나 특히 <먹방의 대가>처럼 PD가 직접 기획한 작품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기획 드라마에서 작가의 위치는 PD의 기획 의도를 반영하는 수족일 뿐이었으니까.
한마디로 유현지 PD는 <먹방의 대가>에 한해서는 왕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아직 데뷔도 못 한 새파란 신인 배우가 PD에게 직접 해명을 요구한다?
그것만으로도 앞으로 유현지 PD의 드라마뿐 아니라 TVM 방송국의 드라마에는 얼굴도 비추지 못할 행동이다.
순간 마동팔 본부장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저 저 녀석이 미쳤나!”
마동팔 본부장이 대경실색하며 이진택의 곁으로 뛰어나갔다.
그러나 유현지 PD가 화를 내는 게 더 빨랐다.
“하여간 요즘 애들 참 개념이 없네. PD한테 설명? 납득?”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던 유현지 PD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너보다 하루가 더 나았으니까 뽑은 거라고는 생각 안 해?”
하지만 이진택은 물러서지 않고 답했다.
“예! PD님. 요리로서 저 어린 녀석에게 졌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니까요.”
두 사람이 팽팽히 대치한 순간 오디션장에는 싸늘한 기운이 맴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