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0화
200. 하루 vs 우성찬 5
“오디션 당일까지 최선을 다해 준비시키겠습니다.”
<먹방의 대가>를 연출하는 유현지 PD의 방.
총연출자인 김태촌 CP를 어떻게 설득할 거냐는 말에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뭐야? 그것밖에 없어?”
자신도 이렇게 끔뻑 넘어가게 해놓고도 김 CP를 상대로는 별다른 대책이 없냐는 눈빛이다.
사실 김태촌 CP를 설득할 방법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접대를 해야만 했다.
회귀 전 우성찬이 <먹방의 대가>의 주인공이 된 건 빼어난 마스크와 잠실 최고의 한정식집인 ‘우선재’의 아들이라는 것 말고도 김동수의 접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럴 필요는 없다.
잠시 후 최소혜 기자가 기사를 터트리면 끝이니까.
유현지 PD는 그런 내 속내를 모른 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술이라도 대접할 거라고 말할 줄 알았나 본데 천만의 말씀이다.
“하아. 알았어. 일단 내가 최선을 다해볼 테니까 정 팀장도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 우리 CP님. 어지간해서는 마음 안 바꾸니까.”
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아뇨. 바꾸게 될 겁니다. 조금 있다가 핵폭탄이 터질 거거든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유현지 PD가 한 가지 걱정이 더 있다고 털어놓았다.
“근데 말이야. 드라마 설정상 하루의 나이가 안 맞는데······”
<먹방의 대가>는 대학교 1학년인 주인공이 홀로 자취를 하면서 근처 맛집에서 먹어본 요리를 집에서 요리해 먹는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하루의 나이가 16살이라 그 설정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미성년자인 하루는 혼자 자취를 할 수 없으니까.
“키가 작아서 대학생이라고 하면 아무도 안 믿을 거고······ 어떻게 한다?”
“나이가 어려서 혼자 사는 게 설정과 충돌한다면 삼촌이나 큰 형 역할의 배우를 한 명 넣는 건 어떻습니까? 그러면 설정 붕괴에서 벗어날 수 있잖습니까?”
“나도 그거야 알지. 그런데 제작비가 낮아서 배우 한 명을 더 넣을 돈 없어.”
“까메오를 쓰시면 되죠.”
유현지 PD의 눈이 반짝거렸다.
“뭐야. 생각해 둔 사람이 있네. 어서 말해봐.”
“이태풍 씨 정도면 괜찮을 것 같지 않습니까?”
유현지 PD가 날 빤히 쳐다본다.
이태풍이 최성문 감독의 <경계 너머로>의 주연이 된 건 방송계에서도 유명한 일이다.
천하의 최성문 감독이 얼굴만 보고 배우를 뽑을 리는 없었으니까.
“나도 소문은 들었어. 태풍 씨 연기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던데?”
“직접 보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하여간 최성문 감독님께서도 까메오로 출연하는 정도는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유현지 PD의 얼굴이 밝아진다.
“우리 정 팀장이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니 당할 수가 없네. 오케이. 그러면 하루 오디션 때 연기 연습이나 잘 시켜 와. 큰 문제만 없으면 난 하루를 주연으로 밀어줄 테니까.”
하루와 함께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PD님!”
유현지 PD가 깔깔대며 웃는다.
“그럼 나 이제 남은 거 마저 먹어도 되지?”
유현지 PD가 아직 밥과 반찬이 가득한 찬합을 가리킨다.
“예. 저흰 먼저 일어날 테니 식사 편히 하십시오.”
유현지 PD가 고개를 끄덕인 뒤 하루에게 미소를 보였다.
“어머 이제 보니 눈동자가 참 특이하네. 화제가 되겠어?”
묘빨남.
하루는 생글대는 눈웃음을 지으며 다시 한번 감사하다 말했다.
하루와 함께 유현지 PD의 방을 나왔다.
그와 동시에 난 다이어리를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0.1]
[날짜 : 2020년 7월 31일]
-PM 06:30 TVM <먹방의 대가> 1화 우성찬 모니터링 (시청률 2.3%)
‘아직은 안 변한다 이거지.’
김태촌 CP가 김동수에게 어지간히 많이 받아먹었나 보다.
하지만 최소혜 기자가 기사를 터트리면 절대 막을 수 없을 거다.
방송국은 여론에 가장 민감한 곳 중 하나였으니까.
* * *
굴렁쇠 엔터의 6층에 있는 대회의실에 배우 파트 팀장급 이상이 모두 모였다.
오늘 회의의 주요 안건은 우성찬의 전폭적인 푸시 계획.
이기철 이사가 성민석 홍보팀장에게 말했다.
“성 팀장. 오늘 홍보팀에서 돌린 우성찬 기사가 얼마큼 떴는지 띄워 봐.”
“예. 이사님.”
성민석 홍보팀장이 회의실에 있는 대형 LCD에 기사를 띄웠다.
[화제의 인물. 굴렁쇠 엔터 우성찬!]
[우성찬. 차세대 굴렁쇠 엔터의 만찢남.]
[우성찬. 차기작으로는 TVM의 <먹방의 대가>를 노리는 중?]
[우성찬. 자체 발광 꽃남 아우라!]
얼마나 돈을 썼는지 연예 기사면이 잔뜩 도배되어 있다.
그 순간 강지영 본부장이 인상을 찌푸린다.
“이 이사님. 그런데 이번 ‘먹방의 대가’에는 배우 2실의 하루도 지원한 거 아시죠?”
“당연히 알지.”
“그런데 이렇게 한쪽만 미는 건 너무한 거 아니에요?”
이기철 이사가 빙긋이 웃더니 자신의 앞에 놓인 우성찬의 프로필을 읽기 시작했다.
“우성찬. 1년간 트레이닝도 잘 됐고 먹방 프로에 알맞게 잠실 한정식집 ‘우선재’네 집안 아들이고. 요리도 잘하고 모델 같은 기럭지와 남자다운 외모로 10대 20대 여성들에게 어필 가능. 본부장 여기에다 하루를 붙이는 건 좀 양심이 없다고 생각 안 해?”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이기철 이사의 목청이 높아졌다.
순간 강지영 본부장이 입을 닫아 버렸다.
객관적인 회사 내 프로필 파일에 따르면 이기철 이사의 말이 100% 맞으니까.
이기철에 이어 김동수는 들뜬 표정으로 우성찬을 배우 3실의 주요 배우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때였다.
기사 반응을 확인하던 성민석 홍보팀장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떴군.’
브리핑하던 김동수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왜 그래요? 성 팀장님?”
“우 우성찬. 학폭 기사 떴는데요? 실장님.”
순간 이기철 이사의 표정이 싸하게 변했다.
“뭐라고?”
“이 이걸 보십시오.”
성민석 홍보팀장이 침을 꼴딱 삼키고 LCD에 기사를 띄웠다.
[우성찬. 학폭 가해자! 피해자 인터뷰! “그놈은 악마였어요.”]
“어 어떻게 이런 일이······”
김동수를 비롯해 주호성 팀장의 얼굴이 사색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우성찬에 관한 기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동시다발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잠실 최대 한정식 ‘우선재’의 장남 우성찬. 학폭 사건에 연루!]
[<먹방의 대가> 출연 예정인 우성찬. 끔찍한 일진 놀이의 증거!]
······
우성찬을 <먹방의 대가>의 주연으로 푸시하고 앞으로 어떻게 키울까에 관한 회의는 순식간에 ‘우성찬 학폭 사건 대비’로 바뀌어 버렸다.
그와 동시에 유현지 PD의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 : 유현지 PD]
안 받아도 뻔했다.
주연 낙점에 대한 전화일 테니까.
그래도 확실히 하자 싶어 다이어리부터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0.1]
[날짜 : 2020년 7월 31일]
-PM 06:30 <일정 삭제>
(삭제된 일정 : TVM <먹방의 대가> 1화 우성찬 모니터링 (시청률 2.3%))
‘끝났네.’
다이어리의 일정이 지워졌다는 걸 확인한 순간 곧장 강지영 본부장에게 말했다.
“본부장님. 유 PD님. 전화인데요?”
순간 우성찬의 학폭 사건을 어떻게 막냐고 시끌벅적하던 회의실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그 순간 김동수가 날 노려보며 말했다.
“받지 마!”
우성찬의 학폭 사건이 터진 이후 <먹방의 대가> CP는 김동수에게 전화를 걸어댔을 거다.
하지만 김동수는 사태를 수습할 때까지 전화를 피하는 중이었다.
그 순간 이기철 이사가 날 빤히 쳐다보며 묻는다.
“설마 이거. 네가······ 한 거 아니지?”
“이사님. 우성찬이 이렇게 된 것 때문에 열 받은 건 알겠는데 너무 비약이 심하신 건 아닙니까? 성찬이 그 자식이 중학교 때 학폭 사건을 일으킨 거랑 저랑 무슨 상관입니까?”
“네가 기자들한테 이른 걸 수도 있잖아.”
예리한데?
하지만 끝까지 시치미 작전이다.
“이사님. 너무 그렇게 의심하시면 건강에 해롭습니다. 그리고 이런 폭탄을 마음대로 터트릴 능력이 있으면 제가 독립하지 왜 여기 있겠습니까?”
다행히 최소혜 기자는 내가 의심을 피할 수 있게 공을 들여놓았다.
자기 혼자서 기사를 독식하는 게 아니라 우성찬의 피해자들 각각의 자료를 다른 언론사에게 넘겨서 연쇄적인 기사를 터트리는 방식으로.
대신 가장 많은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 이시윤의 인터뷰는 최소혜 기자가 단독으로 다루고 있었다.
이기철 이사가 10년 치 변비를 밀어내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끄응······.”
김동수가 씩씩대며 한마디를 하려는 순간 강지영 본부장이 막아주며 말했다.
“일단 전화부터 받아봐요. 이랬든 저랬든 계속 피할 순 없잖아.”
“예.”
순간 회의실에 모인 모두가 숨을 죽였다.
그리고 난 스피커 폰으로 통화하라는 지시에 대화를 스피커로 돌렸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날 선 유현지 PD의 목소리가 들린다.
“죄송합니다. 회의 때문에 폰을 놓아두고 들어갔습니다.”
-빨리 김 실장 바꿔! 지금 이게 피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계속 전화를 안 받아서 우리 CP님 폭발 일보 직전이란 말이야!
김동수에게 갈 화가 내게로 향한다.
하지만 내게 화를 내는 것도 아니었기에 난 아무렇지 않게 대꾸할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언론 대응 때문에 받을 시간이 없으십니다.”
-좋아. 그럼 우린 우성찬 그놈 주연 후보에서 뺀다? 그렇게 알아!
순간 김동수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이라도 유현지 PD에게 말을 하려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제껏 전화를 피한 터라 지금 와서 말을 붙일 수 있을 리가 없다.
“알겠습니다. 대신 전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CP님이 지금 당장 방송국으로 들어오래.
“예? 누굴요?”
-누구긴 누구야. 정 팀장이지. 하루 주연 문제로 상의할 문제가 태산이야. 왜? 싫어?
순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점프를 하려는 마음을 참았다.
일그러지는 배우 3실과 이기철의 표정을 본 순간 휘파람을 불고 싶었다.
그 순간 구성철 실장이 어서 빨리 대답하라며 어깨를 툭 하고 두드렸다.
“아. 아닙니다.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당장 들어와. 그리고 실장급도 한 명 데리고 들어오고.
“구 실장님이랑 같이 들어가겠습니다.”
-오케이. 김 CP님한테 말해둘게. 그리고 올 때 CP님 좋아하는 커피도 사 와. 지금 꼭지까지 스팀 돌아서 시원한 게 필요해.
“저희만 믿으십시오.”
구성철 실장과 난 눈빛을 마주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한 가지 걱정이 샘솟았다.
‘우성찬. 이 자식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텐데······.’
* * *
[우성찬. 굴렁쇠 엔터에서 퇴출! 학폭 사건의 피해자에 대해서는 전액 배상.]
학교폭력 사건이 공개된 지 24시간 만에 우성찬은 굴렁쇠 엔터에서 퇴출 통보를 받았다.
“씨X. 천하의 우성찬이 이대로 죽어줄 순 없지. 으흐흐.”
술에 진탕 취한 우성찬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잠실 임대 아파트를 찾아왔다.
이시윤.
오늘 터진 기사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한 놈이다.
평범한 호구라고 생각했더니 지난 3년간 맞았던 사진들을 날짜별로 사진을 찍어두고 음성 녹취까지 해두는 지독한 놈일 줄은 몰랐다.
이제 막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려던 찰나에 과거의 일을 들춰 모든 것을 망치다니.
“병신같은 새X가 감히 내 인생에 똥물을 뿌렸겠다?”
놈을 잡으러 단짝 친구인 이세명과 함께 오려 했지만 자신이 연예계에서 퇴출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아예 연락조차 받지 않았다.
하늘에서는 추적추적 부슬비가 내리고 있어 우성찬은 검은 우비를 푹 뒤집어쓴 채 힘들게 발걸음을 옮겼다.
우비 속으로 차가운 빗방울이 타고 들어 왔지만 분노 탓에 추위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다음은 정윤호 그 새X를······”
홀로 중얼거리던 우성찬은 품속에 숨긴 칼을 만지작거렸다.
혹여 경비에게 들킬까 봐 걱정했지만 1층 아파트 입구에 있는 경비실에는 순찰을 갔는지 사람이 없었다.
하늘이 돕는다는 생각을 한 우성찬이 천천히 엘리베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허름한 임대 아파트라 CCTV는 없었기에 우성찬은 웃음을 머금기 시작했다.
“흐흐. 이것 봐. 하늘도 내 복수를 돕잖아?”
띵.
7층에 도착해 내리자 임대 아파트의 긴 복도로 어둑어둑해진 백열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어둠침침한 복도를 지나며 우성찬은 결의를 다졌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았고 CCTV도 없었다.
우성찬은 휘청휘청 걸어서 이시윤의 집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누구세요?
현관문 너머로 이시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성찬이 떨리는 목소리로 연기를 시작했다.
“시윤아 나야 성찬이.”
-가! 그냥.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이시윤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벌벌 떨던 호구에게서 이런 대접이라니.
하지만 이 정도 냉대는 각오했었다.
우성찬은 이시윤이 문을 열어주지 않을까 싶어 기죽은 목소리로 연기를 시작했다.
“미안해 시윤아. 제발 얼굴만 보여줘. 응? 사과만 하고 바로 돌아갈게.”
-너랑은 할 말 없다니까. 가.
털썩.
우성찬은 비에 젖어 질척거리는 복도에 무릎을 꿇었다.
“문 열 때까지 여기서 무릎 꿇고 있을게.”
우성찬은 어떤 때보다 진지한 말투로 연기를 이어갔다.
오로지 이시윤에게 현관문을 열게 하려고.
-아 알았어. 일단 일어나. 나갈 테니까.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이시윤의 말이 끊겼다.
순간 우성찬은 품속에 넣은 칼을 꺼내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흐흐흐. 나오기만 해봐라.’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달칵.
문이 열렸다.
그 순간 우성찬은 냅다 일어나 안으로 뛰어들며 외쳤다.
“죽어. 이 새X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