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6화
196. 하루 vs 우성찬 1
매니저와 스타의 관계는 갑과 을이 아닌 파트너이자 가족이다.
한 번 인연을 맺으면 평생을 함께 가는 경우도 드물지 않고 매니저가 결혼하면 서울 중심가에 집을 사주는 스타도 있을 정도다.
그리고 매니저 역시 스타를 위해 모든 걸 다 바친다.
병든 부모의 수발은 남에게 맡기더라도 자기 스타 잔병치레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보살피는 게 매니저라는 직업이니까.
그런데 내가 호화 도시락으로 팬들을 대접한 역조공이 실검 1위에 오르자 회사가 뒤집혀버렸다.
정 팀장은 저렇게 푸시를 해주는데 당신은 왜 못하냐며 모든 스타들이 담당 매니저들을 닦달한다면서.
원래 옆집 아들이 전교 1등을 하면 동네 모든 학생이 고달픈 법.
나와 비교되면서 괴로운 처지가 된 매니저들이 비결을 물으러 나를 찾으면 나는 그들의 고민을 해소해 주면서 조금씩 편을 늘려갈 생각이었다.
‘내가 괜히 체리블라썸의 이벤트에 힘을 실은 게 아니지······’
“편히 말씀하세요. 팀장님.”
가수 1실의 양홍석 팀장이 헛기침하며 물었다.
“크흐흠. 정 팀장. 이번에 역조공 이벤트라는 걸 했던데······.”
“네.”
“비용이 얼마나 들었어?”
“왜 그러십니까?”
“아니 우리 이말순 여사께서 너무 궁금해하시길래.”
주춤거리며 묻는 양홍석 팀장에게 속 시원하게 말했다.
“7만 원 들었습니다. 토요일 음방에 한 번 일요일에 음방 두 번 해서 총 450명 기준으로요.”
“그래? 으흠. 7만 원이면 단가가 좀 센데. 디너쇼 티켓값이 15만 원인데······”
“혹시 이말순 선생님께서도 해 달라고 하시던가요?”
양홍석 팀장이 한숨을 푹 내쉰다.
“휴우~ 그래. 그놈의 도시락이 실검 1위라며 댓글 반응을 보여주시더라고. 막 팀장이 된 정 팀장도 하는 걸 나는 왜 못하냐며 따지시더라. 그것 때문에 지금 가수 1실이 다 난리야. 이 선생님 말고도 다른 중견 가수들이······”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내 생각보다 여파가 큰 까닭이다.
난 다시 한번 웃음을 감추고 언제 가수 1실과 다퉜냐는 듯 양홍석 팀장에게 해결책을 제시했다.
“어차피 디너쇼에 가면 식사가 나오잖아요. 보통 1인당 만오천 원 정도 잡으시죠?”
“어.”
“지금보다 5천 원만 더 쓰세요.”
“으흠······. 도시락이 2만 원이야? 사진을 보니 한 삼사만 원짜리로 보이던데?”
“제가 알려주는 업체로 전화해 보세요. 2만 원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응원봉은 1000개 단위로 주문하면 5천 원이면 되고요.”
양홍석 팀장이 눈을 휘둥그레 뜬다.
“그렇게 싸?”
“예. 그리고 발광 머리띠는 비싸니까 그건 티켓값에 포함시키지 말고 예약 주문받아서 공장에 직접 발주 넣으세요. 어차피 선생님도 실검 1위 한번 해 보시겠다고 저러시는 거니까 식사랑 응원봉만 해도 충분할 겁니다.”
양홍석 팀장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러면 지금보다 토탈 만 원만 더 쓰면 된다는 거지?”
“예. 그리고 원가 2천 원짜리 응원 스카프와 응원 풍선은 현장에서 조금만 마진 붙여 파시면 추가로 들어가는 돈도 거의 없을 겁니다.”
순간 양홍석 팀장이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의 생각이 훤히 보였기에 다급히 말을 꺼냈다.
“팀장님. 그렇다고 마진 크게 남기거나 티켓값 올리시면 큰일 납니다. 이벤트는 이벤트대로 하고 욕만 먹을 테니까요.”
“아 아냐! 누 누가 그런데?”
딱 보면 아는데 시치미를 떼기는.
양홍석 팀장이 이렇게 욕심을 내는 건 현재 이말순이 디너쇼에서 관객석을 50% 정도밖에 채우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다.
난 아쉬운 표정을 짓는 양홍석 팀장을 달랬다.
“팀장님. 이 이벤트를 제대로 해드리면 이말순 선생님의 이번 곡도 반드시 반향 크게 올 겁니다.”
“그 그래?”
“예. 제 별명 모르세요? 박수무당 정 스타.”
이벤트 덕분이라고 말은 했지만 실은 내 다이어리에 남은 일정을 믿고 내지르는 말이다.
[에브리데이 V10]
[날짜 : 2020년 7월 17일]
-PM 03:00 (회의 사항) 이말순 12집 <누나 한번 믿어봐!> 대박 행진. 디너쇼 매진! 스케줄 회의. 가수 1실 회의실.
이말순의 이번 앨범 타이틀곡인 <누나 한번 믿어봐!>는 ‘오룡 도사’가 작곡 작사해 대히트를 치게 된다.
그 결과 이말순은 5년간 모든 디너쇼 티켓을 매진시키는 기염을 토한다.
양홍석 팀장이 환한 얼굴로 재차 물었다.
“진짜지? 진짜 맞지?”
“예. 맞다니까요?”
“오케이! 그럼 내가 이번에 정 스타 말 들어볼게. 저기 그러면 혹시······ 업체 전화번호 좀 줄 수 있어?”
“물론이죠.”
‘봉봉 응원봉’이랑 ‘마니마니 도시락’은 신생업체였기에 우리 회사에서는 나만이 알고 있다.
그러나 난 두 업체를 숨길 생각이 없었다.
두 업체를 혼자 알고 있는 것보다 회사 내 매니저들과의 관계가 중요한 까닭이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다른 매니저들에게 영향력을 미칠수록 회사가 반으로 쪼개지는 걸 막을 확률이 높아지니까.
“팀장님만 특별히 알려드리겠습니다. 대신 이말순 선생님께는 제 이야기 잘 좀 해주십시오.”
양홍석 팀장이 씩 하고 웃는다.
“그거야 당연하지. 그리고 고마워. 내가 밥 한번 살게.”
“예. 팀장님.”
“그럼 수고!”
양홍석 팀장이 손을 흔들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 순간 김동수와 서예종 라인이 쌓아놓은 공든 탑이 아래서부터 조금씩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 * *
한영예술중학교의 교복을 입은 하루가 학교에 갈 준비를 마쳤다.
한영예술중학교는 한영예고와 같은 부지 안에 있는 예술 중학교로써 주로 굴렁쇠 출신 배우와 연습생들이 다니는 학교다.
압구정에 있어 회사에서도 가깝고 중 고등학교가 같은 부지 안에 있기에 픽업하기 쉬웠다.
앞으로는 통학용 버스를 타고 가겠지만 오늘은 편입 절차 때문에 보호자인 내가 함께 갈 예정이다.
다만 내가 출근하는 시간이 훨씬 일렀기에 하루와 함께 회사로 향했다.
사무실에 하루를 데리고 가자 직원들이 하나둘 출근하면서 하루에게 인사를 건넨다.
“하루. 학교 가니? 교복이 멋지네.”
“영진 매니저님. 안녕하세요?”
“정 없게 웬 매니저님이냐. 형이라 불러!”
하루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근데 형은······ 왜 그렇게 탔어요?”
“말도 마라. 필리핀에서 혼자서 일을 하다가 이렇게 된 거니까.”
이 자식.
날조하는 거 보게.
슬쩍 째려봤더니 이영진은 내 눈을 피했다.
하루가 날 힐끔 쳐다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윤호 형 진짜예요?”
하지만 의심하기보다는 이해 가지 않는 듯한 표정이다.
“아냐. 쟤가 날조하는 거야.”
하루가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을 짓자 이영진이 투덜거린다.
“와 팀장님. 날조가 뭡니까? 날조가? 참 위트가 없으시네······”
“위트 같은 소리 한다. 선크림 바르라고 몇 번이고 이야기했는데 괜찮다고 한 건 너거든요! 그나저나 ‘먹방의 대가’ 유 PD랑은 이야기해봤어?”
이영진이 장난을 거두고 대답했다.
“예. 이야기는 해봤는데. 사전 미팅 약속을 안 잡아주시던데요.”
하루는 앞으로 며칠 뒤에 있을 TVM의 12부작 <먹방의 대가>에 오디션을 볼 예정이다.
그런데 그 프로의 PD인 유현지 PD는 능력은 있지만 갑질을 하는 거로 유명했다.
“유 PD는 아무한테나 그래. 아마 내가 연락했어도 그랬을걸? 그분 무조건 처음 연락한 사람보다 더 상급자가 연락해야 약속 잡아 줘.”
우뚝.
이영진의 발걸음이 멈췄다.
“잠깐만요. 팀장님. 아무래도 제가 총알받이가 된 거 같은데······요?”
“어. 맞아.”
이영진이 배신당했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괴팍한 유현지 PD랑 대화를 쉽게 풀려면 누군가 한 명은 화풀이로 희생해야 했으니까.
“점심 쏠 테니까. 화 풀어.”
이영진이 대뜸 외쳤다.
“장어요.”
“그래. 장어든 고래든 상어든 우리 영진이 먹고 싶은 거 다 먹어.”
“설마 바다는 아니죠?”
바닷장어를 사주려고 했는데 눈치 한번 빠르네.
“장어는······ 민물이지.”
“콜!”
점심 한 끼가 졸지에 민물장어 덮밥 한 끼가 되었다.
이영진을 달랜 뒤 옆자리에 앉은 하루에게 <먹방의 대가> 대본 책을 건넸다.
처음 대본을 받은 하루가 들뜬 표정으로 조심스레 첫 장을 넘긴다.
대본을 읽는 법을 가르쳐줄까 싶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하루는 빡빡한 글만 적힌 대본 책에 순식간에 빠져들더니 마치 만화책을 보듯 즐겁게 보고 있었으니까.
재능이 괜히 재능이 아니었다.
그사이 난 다이어리를 확인했다.
[에브리데이 V10.1]
[날짜 : 2020년 7월 3일]
-PM 05:20 <먹방의 대가> 우성찬 오디션.
[날짜 : 2020년 7월 31일]
-PM 06:30 TVM <먹방의 대가> 1화 우성찬 모니터링 (시청률 2.3%)
‘역시나 아직은 변함은 없군.’
우성찬은 <먹방의 대가>의 원 주인공이자 올해 19살의 한영예고 3학년.
키가 185cm를 넘어가는 장신에 또렷한 콧날과 짙은 눈썹 그리고 선명한 이목구비를 가진 터라 혼혈인 하루보다 더 외국인 같은 외모를 가진 회사의 기대주였다.
회사에 온 지는 대략 1년 정도 되었는데 몇몇 프로의 조연으로 얼굴을 알린 상황이다.
하지만 워낙 강렬한 인상 탓에 업계나 팬들에게서나 관심을 받고 있었다.
그 덕에 우성찬의 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주연 한번 못한 지금도 22만 명이 넘을 정도였다.
‘그러면 뭐 해. 인성이 쓰레기인데······.’
우성찬은 중학교 시절부터 같이 어울리던 무리와 함께 3년 동안 학교 친구들을 지능적으로 괴롭힌 악질 양아치였다.
그런데 <먹방의 대가>가 대박이 나서 라이징 스타가 되었을 때 피해자 중 한 명인 이시윤이 학창 시절에 당한 증거를 단번에 인터넷에 풀어버린다.
그와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다른 피해자들 예닐곱 명도 동시에 자료를 올려 버리고.
한순간에 라이징 스타에서 학폭 가해자로 추락한 우성찬은 경찰 조사를 받은 뒤 연예계에서 은퇴하게 된다.
난 그런 양아치를 가만히 두고 볼 생각은 없었다.
우성찬에게 당한 피해자의 고통은 차마 입에 올릴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우선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사전 미팅을 잡고 하루를 유현지 PD에게 어필해야 우성찬이 사라졌을 때 주연 후보 1위로 만들 수 있는 까닭이다.
난 런던바게트의 케이크 기프티콘을 유현지 PD에게 전송한 뒤 조심스레 까톡을 보냈다.
그러자 곧바로 사전 미팅을 잡자는 전화가 걸려왔다.
“아 예. 유 PD님. 굴렁쇠 정 팀장입니다. 케이크 잘 받으셨다고요? 하하하. 예. 하루 데리고 내일쯤 회사로 들어가겠습니다.”
* * *
8시가 되었다.
이주영 대리가 세리를 데리고 회사에 도착했다.
“하루야~!”
세리가 소꿉친구인 하루를 향해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대본 책을 보고 있던 하루가 환한 얼굴로 세리를 반겼다.
“어. 왔어?”
“이야. 벌써 데뷔 준비하는 거야?”
“아니. 오디션만······”
나와 며칠을 살면서 예전보다 밝아지고 당당해지고 있는 하루였다.
수명 클리닉을 꾸준히 다니며 성장판 확인을 하는 데다 ‘자신감 증진 트레이닝’도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세리만 보면 어린아이처럼 변했다.
마치 ‘소나기’에나 나올 법한 남자 주인공처럼.
생글생글 웃는 하루를 보자 피식하고 웃음이 나온다.
‘하루야. 첫사랑 티 내니?’
아직 스캔들을 신경 쓸 나이는 아니었기에 당분간은 모른 척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럴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 팀장님. 그럼 전 가볼게요.”
이주영 대리가 다른 스케줄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예. 이따가 세리 병원은 제가 데리고 갈게요.”
“아 그래 주시겠어요? 안 그래도 나머지 애들도 병원에 가야 하거든요. 잘 됐다.”
체리블라썸은 거의 녹초가 되어 매일 병원에 가는 중이었다.
세리는 출석 일수 부족으로 당분간은 오전 수업이라도 나가야 했고.
그래서 점심때나 수명 클리닉에 데려갈 수 있었다.
세리를 인계받은 난 세리와 하루를 학교에 데려다주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세리가 종알종알 쉬지 않고 수다를 떤다.
“하루야. 우리 학교에서 내가 제일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누구냐면······”
귀가 아플 텐데도 하루는 뭐가 좋은지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정 팀장. 애들 학교 데려가?”
“예. 팀장님.”
지하주차장에 있던 주호성 팀장이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그 곁에는 한영예고 교복을 입은 우성찬이 씩 하고 웃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정 팀장님.”
“어. 그래.”
인사를 하자 두 사람이 다가왔다.
키가 185cm나 되는 모델 체형의 우성찬이 하루를 빤히 내려 본다.
“하루야. 배우 3실 소속에 우성찬 선배. 인사드려.”
하루가 급히 허리를 반으로 굽혔다.
“안녕하세요! 하루라고 합니다.”
하루가 공손히 인사했다.
하지만 우성찬이 거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닥이며 인사를 받았다.
‘싸가지 없는 자식.’
그런데 그때였다.
우성찬이 하루를 향해 어이없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