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4화
194. 내려오는 것도 즐겁게 3
MBS의 본관 앞.
체리블라썸을 찾아온 수많은 팬들이 사진을 찍느라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체리블라썸은 현재 샵에 갈 때의 복장 그대로였지만 한국 제일의 스타일리스트 이미리의 손길이 닿은 옷들이라 그냥 서 있기만 해도 화보 그 자체였다.
“꺄아아악! 연희야! 오늘도 내일도 우리 엄마!!”
“은비야! 이쪽 좀 봐줘! 달은비!”
“세리야. 애기롱! 김세리! 우리 애기!”
“은하 여신! 유은아!”
팬들이 네 사람의 별명과 호칭을 부르며 환호했다.
체리블라썸 멤버들이 마치 미스코리아라도 된 듯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환호에 답했다.
“감사합니다!”
“오늘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싸랑해요! 아름다운 아침이에요!”
세리는 도도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댔다.
몇몇 팬들이 키득거렸지만 이 또한 경험이었기에 그냥 내버려 뒀다.
너무 기뻐하는 순수한 표정이 그대로 묻어 나왔으니까.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대로.
팬들이 모인 오른쪽에는 우르르 모인 기자들이 연신 플래시를 터트리고 있었다.
“체리블라썸 멤버들 이쪽도 좀 봐주세요!”
“정 팀장! 팬들만 챙기지 말고 기자도 배려 좀 하자! 너무하다 정말.”
“정 팀장님! 제발요! 저 오늘 단독 샷 못 찍으면 잘려요!”
이기철 이사가 말했던 ‘접대’ 없이도 기자들은 이슈의 중심에 놓인 체리블라썸을 찍기 위해 팬들과의 사투를 불사했다.
10주 연속 음방 1위 도전.
대기록을 달성하려는 길이었으니까.
팬들 다음에는 기자들의 포토 타임이 이어졌다.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 순간 가슴이 뿌듯해져 왔다.
고생한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것으로도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 * *
정상봉과 도란희에게 도시락이 배달오는 대로 팬들에게 나눠 주라는 지시를 내렸다.
방청권을 구하지 못해 공개홀로 못 들어오는 팬들에게도 말이다.
150명 정도의 인원에게 2만 원짜리 도시락에 굿즈와 머리띠까지 해서 1인당 7만 원으로 예산을 잡은 역조공 선물이었지만 전혀 아깝지는 않았다.
역조공 선물을 받는 순간 스타그램을 사진으로 도배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사진으로 인해 발생하는 홍보 효과와 팬들의 충성심을 생각하면 이건 오히려 남는 장사.
그래서 난 내일 역시도 KBC와 SBC에서 각각 똑같은 이벤트를 벌일 생각이었다.
대기실에 도착하자 이미리 대리가 준비한 의상을 꺼내 들었다.
순간 체리블라썸 멤버들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우와. 이쁘다.”
분홍빛이 감도는 투피스 치마에 네 가지 색으로 된 실크 재질의 허리띠가 매어져 있었다.
덕분에 어떤 옷이 누구의 것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우리 잠깐 나가 있을 테니까 옷 갈아입어.”
대답조차 잊을 정도로 넋이 나간 체리블라썸을 대기실에 둔 채 남자 매니저들만 대기실 밖으로 나왔다.
지나가던 신인 아이돌들이 우리를 발견하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꾸벅 숙인다.
“안녕하세요! SB18입니다!”
“안녕하세요! 공작새입니다!”
“안녕하세요! 나팔배바지입니다!”
“안녕하세요! 토끼공쥬라고 합니다요!”
‘합니다요?’
‘토끼공쥬?’
핑크색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는 거대한 흰색 토끼 귀 머리띠를 한 4인조 걸그룹이 해맑게 인사한다.
어떻게든 떠보려고 특이한 짓을 해대면서 말이다.
하지만 의상에 팀명에.
이건 소속사를 욕해도 될 정도인데?
솔직히 당황스러웠지만 이동민 실장과 난 아무렇지 않은 듯 파이팅을 건넸다.
“어 그래. 수고. 힘내라!”
웃으며 응원했지만 안타깝게도 성공하지 못할 아이들이다.
‘한때는 우리 체리블라썸도 저런 테크를 탈 뻔했는데.’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이동민 실장이 내 어깨를 툭 하고 건드렸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해?”
“아. 쟤들 보니까 작년의 체리블라썸이 생각나서요.”
“하긴. 우리 애들도 만년 2군 3군 언저리였는데······ 이래서 사람 팔자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치?”
“그렇죠.”
미래를 알고 있었기에 너무도 와닿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이동민 실장이 피식 웃는다.
“그렇긴 뭘 그래. 네가 다 바꿨으면서.”
“그런가요?”
“그래. 하여간 우리 체리블라썸 애들. 네 덕에 지금도 있는 거다. 윤호야. 고맙다. 우리 애들한테 손 뻗어줘서······.”
“아닙니다. 실장님.”
“아니긴. 하여튼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마무리 잘하자 우리.”
“네!”
그사이 안에서 옷을 다 갈아입었단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들어오세요.”
이주영 대리의 부름에 대기실로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복도를 걸어오던 구민지의 핑크다이아와 마동팔 본부장과 시선이 닿았다.
마동팔 본부장이 발걸음을 멈추고 함께 있던 매니저에게 핑크다이아를 데리고 가라고 지시하는 게 보인다.
“실장님. 먼저 들어가시죠.”
“왜?”
“마 본부장님이 저랑 할 이야기가 있나 보네요.”
“같이 있는 게 좋지 않겠냐?”
“괜찮습니다.”
이동민 실장과 한명호 팀장을 들여보낸 난 마동팔 본부장을 보고 인사를 건넸다.
“잘 지내셨습니까?”
“그럭저럭. 그나저나 오늘 막방이라며?”
“예. 그렇게 됐습니다.”
순간 마동팔 본부장이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이런 이런! 이번에 우리 핑크다이아 애들이 좋은 곡 받았는데 이렇게 붙어도 안 보고 가면 쓰나?”
쁘띠모가 없으니 핑크다이아로 돌려막기를 하는 TK 엔터였다.
현재 핑크다이아는 3주 전에 낸 곡으로 음악방송에서 순위 10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또 신곡을 받아서 우리 체리블라썸이랑 붙어 보려 했단다.
“어떤 곡을 받았길래요?”
“자식. 궁금은 한가 보네. 크흠. 놀라지 마라. 미국에 유명 작곡가 리치 데블스한테 받은 건데······”
순간 회귀 전 쁘띠모가 리치 데블스에게 받았던 <골든 샤워>란 떠올랐다.
쁘띠모 역시도 소화하지 못해서 음악방송에서 한 주를 보여주고 내린 그 곡을?
난 자랑스레 말하는 마동팔 본부장에게 말했다.
“그거 안 될 텐데요.”
“뭐?”
업계에서 박수무당 정스타라고 불리기 시작한 건 마동팔 본부장도 안다.
“너 혹시······”
“예. 촉이 오네요 촉이 와. 그거 안 됩니다. 대 폭망일 걸요?”
순간 마동팔 본부장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난 그 모습을 본 순간 잽싸게 대기실 안으로 향했다.
“그럼 수고하세요~.”
“야! 정윤호! 너 이 새x. 시작도 전에 초를 치려고 하는 거지? 엉? 야! 이리 안 와?”
닫히는 대기실 문틈으로 길길이 날뛰는 마동팔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 * *
음악방송 1위 후보 무대에 올라가 가기 직전.
본관 밖에서 팬들을 관리하던 정상봉과 도란희까지 모두 대기실에 모였다.
“자. 구호 외치고 올라갈까?”
이동민 실장의 지시에 모두가 대기실 중간에 모여 손을 뻗었다.
“경쟁자들 음원 순위 봤지?”
“네.”
“그럼 우리가 무난하게 이길 거라는 건 알지?”
“네!”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그게 체리블라썸이잖아. 안 그래?”
“네!”
“그리고 그동안 수고······했다.”
이동민 실장이 울컥한 심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순간 대기실에 있던 모두가 감정이 벅차오른 표정을 지었다.
그때였다.
“체리블라썸. 이제 올라갈 시간입니다.”
문밖에서 AD의 재촉이 들려왔다.
그 순간 우린 짧은 감상에서 깨어났다.
“자자~ 그럼 올라가 볼까?”
이동민 실장의 말에 다들 구호를 외칠 준비를 마쳤다.
“연희야?”
순간 우연희가 심호흡을 하고 구호의 시작을 외쳤다.
“포에버~”
“체리블라써~엄!”
우연희를 뺀 나머지 모두가 대기실이 떠나가라 구호를 외쳤다.
그렇게 체리블라썸 마지막 무대의 막이 올랐다.
* * *
MBS <쇼! 음악센터>의 1위 후보 무대.
체리블라썸이 핀 조명 아래에서 핸드마이크를 들고 칼군무를 추고 있다.
분홍빛 플레어 치마는 꽃이 피어나듯 연신 펄럭이고 있었고.
그러다 후렴구가 되면 체리블라썸은 가사를 읊고 마이크를 관객석으로 내밀었다.
『손을 위로~』
“Hurry Up!”
방청석 가장 앞 열에 선 횡성여고 4인방이 큰 소리로 후렴구를 따라 부른다.
그때마다 체리블라썸의 춤과 노래에는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팬들의 응원만큼 연예인들에게 힘이 되는 건 없었으니까.
그런데 2절을 부를 때였다.
10주간의 강행군을 한 여파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얘들아.’
아이들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오늘 방송은 10분 정도의 딜레이가 있는 지연 생방송.
최악의 경우 커트를 할 수 있긴 했지만 편집할 시간 따윈 없었기에 커트와 동시에 무대는 그대로 끝나버리게 될 거다.
방송에는 1절만 나가게 될 거고.
‘이대로 애들을 내려야 하나?’
심장이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
난 즉각 이동민 실장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실장님. 애들 상태가 영 안 좋은데요?”
곁에 있던 이동민 실장도 아이들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 보고 있다. 아까보다 상태가 더 안 좋아졌네. 하아~.”
네 사람의 귀밑머리까지 땀이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네 사람은 생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올해 나이 22살에서 16살.
동년배들은 한창 떡볶이와 순대 튀김에 열광하고 청춘을 즐길 나이였지만 무대에 선 체리블라썸은 그 모든 걸 참고 버텨내고 있었다.
무대에 선 이상 그녀들은 프로여야 했으니까.
‘세리야······ 힘내!’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아주고 싶었다.
지친 몸을 기댈 수 있게 말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대가 끝날 때까지 힘을 내라고 속으로 응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우주 최강! 우연희!”
“섹시 달댕! 양은비!”
“은하 여신! 유은아!”
“애기 센터! 김세리!”
마치 익룡이 울 듯 횡성여고 4인방의 목소리가 공개홀을 쩌렁쩌렁 울렸다.
횡성여고 4인방도 내가 본 걸 알아차린 게 확실했다.
성지연이 가장 앞서 외치면 나머지 셋이 따라 했다.
그리고 나머지 팬카페 아이들이 목청이 떠나가라 힘을 불어 넣어주고 있었다.
그 순간 체리블라썸의 춤에 힘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허리를 튕기는 허리 업 댄스에는 힘이 들어가고 있었고 마이크를 든 손 역시 더욱 힘차게 뻗어진다.
『손을 위로~ Hurry Up!』
‘고맙다 얘들아.’
팬들 덕분에 체리블라썸은 끝끝내 흐트러짐 없이 무대를 마칠 수가 있었다.
그렇게 의 곡 마지막 음표의 연주가 끝난 순간 네 사람은 엔딩 포지션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팔다리가 잔잔히 떨리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본 순간 난 이동민 실장과 함께 최인석 AD를 향해 뛰었다.
“최 AD님.”
“예?”
“1위 발표 무대. 5분만 있다가 시작하면 안 되겠습니까?”
“10분 지연 생방송이라서 5분을 뺄 수는 있는데······ 왜요?”
난 급히 무대 위의 아이들을 가리켰다.
“애들 쓰러지기 직전입니다. 이대로면 방송사고 납니다. 5분만. 딱 5분만 주시면 애들 정신 들게 해서 데리고 오겠습니다.”
“어 어. 그러······네? 잠시만요.”
최인석 AD가 당황한 표정으로 무선 인터컴에다 대고 외쳤다.
“PD님. 굴렁쇠에서 5분만 달랍니다. 애들 쓰러지겠는데요?”
잠시 후.
최인석 AD가 고개를 끄덕인다.
“5분 끊고 갈 테니까 대기실에서 애들 정신 차리게 해서 데리고 오세요. 최악이래도 7분까지는 오셔야 합니다. 그게 아니면 이 실장님이라도 대신 나오세요.”
“네! 감사합니다.”
최인석 AD에게 인사하고 곧장 무대 아래로 달렸다.
“상봉아. 란희야! 뛰어! 팀장님! 이 대리님도요!”
잠시 후.
무대 위 조명이 꺼졌다.
급하게 내려오라고 손짓하자 체리블라썸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느릿느릿 무대 뒤편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선 무대 위로 올라가 업고 나오고 싶었다.
하지만 방청객 석에서 여전히 보고 있기에 우리가 있는 무대 아래로 내려오는 계단까지는 와야 했다.
‘힘내!’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네 사람 탓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나마 체력이 있는 우연희와 양은비가 은아와 세리를 다독이며 힘을 낸다.
가장 약한 체력을 가진 은아와 가장 어린 세리가 숨을 몰아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고.
당장이라도 쓰러지고 싶을 테지만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 광경에 매니저들 모두가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주먹을 쥐었다.
“힘내. 얘들아.”
이제 남은 거리 2m.
“조금만 더······”
그때였다.
아이들을 향해 나지막이 외쳤다.
“얘들아. 소원 하나씩 들어줄게!”
순간 체리블라썸의 눈이 번뜩인다.
꺼져가던 장작에 불이 타오르듯 네 사람이 힘을 내서 걸어오기 시작했다.
조금은 빨라진 걸음걸이로 네 사람은 무대 아래로 내려오는 계단에 도착했다.
그와 동시에 우린 계단을 반 정도 올라가 쓰러지듯 안기는 네 사람을 받아 들었다.
한명호 팀장이 우연희를 이주영 대리가 양은비를 도란희가 유은아를 그리고 세리는 내가.
뼈밖에 없어 너무도 마른 세리가 내게 안겨 헤헤거리고 있었다.
얼굴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채 말이다.
“유노 오빠. 소원 약속······한 거예여?”
“그래. 들어줄 수 있는 건 들어 줄게.”
“히히히. 아싸. 근데 유노 오빠. 나 졸려요.”
“너무 에너지를 써서 그래. 잠깐만 눈 감고 있어. 대기실까지 운반해 줄게.”
“네.”
“이대로 등에 업혀.”
세리가 말없이 눈을 감으며 두 손을 내민다.
기절한 거나 다를 바 없는 아이들을 등에 업고서 곧장 대기실로 달렸다.
‘수고했어 얘들아.’
하지만 아직 무대는 완전히 끝난 게 아니었다.
남은 시간 4분 30초.
어떻게든 체리블라썸을 순위 결정 무대에 설 수 있게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