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0화
170. 팀장 승진 3
2020년 6월 17일.
팀장이 되어 주최한 첫 번째 회의에서 난 내년이 가기 전에 우리 팀을 실로 승급시키겠다고 선포했다.
충격적인 선언을 마친 난 얼어있는 팀원들과 눈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길에 여러분들이 함께해 주셨으면 합니다.”
꼴깍.
회의실에 모인 직원들이 힘들게 침을 삼켰다.
“질문 있습니까?”
이영진이 번쩍 손을 들었다.
“희망 사항인가요 아니면 현실적인······ 목표인가요?”
“당연히 현실적인 목표죠.”
“그런데 저희 매출로 실로 승격이 가능한가요?”
“좋은 질문이긴 한데 그전에 우리 영진 씨는 통상적으로 한 개의 실이 올리는 매출이 얼마인 줄 아십니까?”
“아뇨.”
이영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때 눈치를 보던 은지유 대리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최소 50억에서 많게는 200억까지 됩니다. 팀장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배우 1실의 작년 연 매출이 204억. 가수 1실이 132억 배우 3실이 85억. 그리고 안타깝게도 가수 2실과 배우 2실이 각각 50억이죠.”
내 이야기를 듣던 직원들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우리가 있는 4층의 배우 2실과 가수 2실 소속 연예인의 매출이 가장 뒤떨어졌으니까.
“즉 실 급으로 승급하기 위한 최소 기준은 50억부터라고 봐도 무관할 겁니다.”
나는 팀원들 하나하나와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그래서 저는 그 기준보다 조금 더 올려서 우리 팀의 올해 목표 매출을 70억으로 잡았습니다. 내년에는 그 두 배로 올려 잡을 거고요. 그러면 규모가 작아도 누구도 저희가 실로 승격하는 걸 거부하지 못할 겁니다.”
다시 한번 정팀의 팀원들이 경악했다.
“아 그리고. 매출 70억을 달성할 경우 정산액의 1%가 팀원들에게 돌아가니까······ 개인당 오백만 원에서 1천만 원 정도의 상여금을 가져가시겠네요. 저희는 팀원 수가 적잖습니까.”
믿을 수 없는 말이 이어지자 팀원들은 아예 혼이 나가버렸다.
내 경우에는 매출 70억을 달성하면 상여금이 무려 1억 정도가 추가로 나올 거고.
연신 눈알을 굴리는 직원들을 향해 말했다.
“제 말이 안 와닿는가 보네요. 그러면 영진 씨. 일단 배우 팀 목표 매출부터 잡아보죠.”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이영진이 정신을 차렸다.
이영진은 테이블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마신 뒤 배우 파트의 예상 매출을 말했다.
“일단 배우 파트의 예상 매출은 4분기 총합 22억으로 잡혀있습니다.”
“목표 매출을 거기서 조금 더 올리죠. 깔끔하게 한 40억 정도요?”
“40억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영진이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팀장님. 혹시 장준혁 씨를 우리 팀으로 데려오실 생각이신가요?”
“아뇨. 장준혁 씨는 박인기 팀장님이 관리하실 겁니다.”
“그럼 어떻게 그 매출을 달성하죠?”
내 해결책은 간단했다.
지금 있는 배우들의 몸값을 더 올리고 돈을 벌어다 줄 새로운 배우들을 영입하는 것.
“올 하반기는 현재 배우들의 몸값 올리기에 나설 겁니다. 그리고 또 새로운 배우 영입이 있을 겁니다.”
아직 영입하지 않은 정실모 멤버들과 새로운 배우들이 오면 그 정도는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거다.
“그러니 믿고 잘 따라만 와 주세요. 충분히 가능합니다.”
자신만만한 내 말에 팀원들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먼저 달려나가는 건 잘 못하지만 따라가는 건 잘하잖습니까?”
든든한 이영진의 말에 웃음으로 대꾸했다.
싱거운 성격이지만 일에 있어서만큼은 최선을 다하는 친구였으니까.
다음은 가수 파트.
팀 전체 매출 목표가 70억인데 배우 파트가 40억이라면 가수 파트는 30억의 매출을 달성해야 한단 소리였다.
그 탓에 아까부터 아예 넋을 놓은 상태다.
“란희 씨?”
얼어있던 도란희가 화들짝 놀란다.
“예. 예. 팀장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가수 2실에서 체리블라썸 매출의 20%를 우리 팀 매출로 인정해 주기로 했으니까요.”
도란희가 반색하며 묻는다.
“체리블라썸 예상 매출은 올해 얼마나 잡고 있대요?”
“체리블라썸은 올해 예상 매출을 50억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저흰 10억 정도 인정받겠죠.”
“하아. 10억을 인정받아도 가수 파트 목표치에 비하면 20억이나 부족한데요?”
“그 부분은 강하나 씨가 채워 줄 겁니다.”
“하나 씨가요?”
은지유 대리와 도란희의 표정이 울기 일보 직전으로 변했다.
신인인 강하나 한 명으로 무슨 수로 20억을 채우냐는 걱정이다.
가만히 듣고 있던 은지유 대리가 조심스레 물었다.
“팀장님. 하나 씨가 노래를 잘하는 건 사실이지만 여자 싱글 가수 한 명 데리고 무슨 수로 20억을 벌죠?”
음원 순위 TOP 10을 걸그룹과 보이그룹이 채운다.
인지도와 홍보가 그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뜻이다.
신인에다 싱어송라이터인 강하나가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갈 수 있겠냐며 다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앞으로 하나 너튜브 전용 채널을 열 겁니다. 매일 라이브 방송을 하고 간단한 토크도 하면서 홍보도 하고 광고도 붙일 거고요. 그 수익이 부가 수익이 될 겁니다. 아 그리고 스트립터는 방송 작가 출신보다는 유튜버 경력 있는 분으로 찾아봐 주세요. 채널 담당 PD는 방송 쪽도 상관없고요.”
곰곰이 생각하던 은지유 대리가 되묻는다.
“전용 채널을 연다면 설마 회사 너튜브 채널과 별개인가요?”
“예. 저희 팀은 독립 채널을 열 수 있도록 허락받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영입할 다른 배우와 가수들의 채널도 다 독립시킬 예정입니다.”
“개인 유튜버처럼요?”
“그렇죠.”
아직은 일부의 이야기지만 이미 연예인들은 단독 너튜브 채널을 관리하며 부가 수입을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앞으로 10년이 지나기 전 연예인들이 유튜버로서 벌어들이는 돈은 엔터 업계의 가장 큰 수익 모델이 된다.
나는 강지영 본부장에게 그 점을 설득했고 온전히 ‘정 팀’의 매출로 잡아줄 수 있게 독립 채널을 개설하라는 허락을 받았다.
‘정 팀’이 커지고 활약을 펼칠수록 강감찬 대표 라인의 힘이 더욱 커지는 거니까.
대신 콘텐츠 기획과 홍보는 우리 ‘정 팀’이 알아서 해야만 했다.
“매니지먼트사는 말 그대로 연예인의 모든 것을 매니지먼트 합니다. 수익이 나는 거라면 당연히 저희가 할 일이죠.”
팀원들의 얼굴에는 고심이 가득했지만 결국 이영진이 총대를 메고 외쳤다.
“까짓것 해봅시다! 하다 보면 뭐든 결과가 나오겠죠.”
이영진의 격려에 다른 팀원들의 얼굴에서 조금씩 자신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매출 70억 달성.
‘정 팀’의 ‘실’로의 승격.
회사 내 중요 매니저들을 내 팀으로 하나둘 끌어오면서 규모를 늘리는 것.
그리고 돈을 모아 굴렁쇠 엔터의 상장 시에 전쟁에 뛰어드는 것까지.
남은 2년 반 동안 굴렁쇠 엔터가 쪼개지는 걸 막기 위한 모든 걸 할 생각이다.
회귀 전 그랬던 것처럼 한국 최고의 매니저가 되는 건 덤이었고.
* * *
<파란 하늘>의 최종화가 방송되는 날.
유진이네 집에서 다 같이 최종화를 시청하기로 한 터라 음료수를 사서 하루와 함께 찾아갔다.
1층 거실로 들어가자 정인지 주인아줌마가 푸짐하게 간식거리를 준비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 자. 여기들 앉아. 유진이도 곧 내려올 거야.”
정인지 주인아줌마가 환하게 웃으며 미리 준비된 방석을 가리켰다.
하루와 함께 자리에 앉자 3층의 리모델링은 2주 정도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그러면 이달 말에는 이사 올 수 있겠네요.”
정인지 주인아줌마가 기분 좋게 웃었다.
“앞으로는 북적대는 게 사람 살맛이 나겠어.”
“저희도 들어오게 되어서 설렙니다.”
“네! 저도요!”
정인지 주인아줌마가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하여간 내가 이런 복이 다 있나 싶어. 우리 아들 수원 가고 혼자 적적했었는데······”
“왜 우세요. 아줌마.”
“아이고. 내가 주책이네. 미안해.”
그 순간 1층 현관문이 열리며 유진이가 미소와 함께 들어왔다.
그런데 두 사람의 손에는 커다란 박스가 들려 있었다.
“짠!”
분홍색에 알록달록한 꽃무늬가 그려진 포장지 박스에 내 머리통만 한 노란 리본이 매여 있다.
“유진아. 이게 뭐야?”
“선물이요! 오빠 팀장 승진하셨잖아요.”
“삼촌. 포장은 내가 했어요!”
유진이와 미소가 동시에 말한다.
웅크리면 사람 하나가 들어갈 사이즈의 큰 박스를 받아들며 고맙다고 말했다.
“삼촌. 빨리 풀어봐요. 네? 네?”
미소가 들뜬 표정으로 재촉한다.
“그러면 미소랑 같이 풀어볼까?”
“네!”
미소만 아니었으면 박스를 그냥 북하고 뜯었을 거다.
원래 포장지에 큰 의미를 두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직접 포장한 당사자인 미소가 보고 있는 터라 함부로 뜯을 수가 없었다.
나는 커터칼을 빌려 마치 집도를 하듯 조심스레 스카치테이프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훼손하지 않고 잘라내는 게 어찌나 힘들던지.
마지막 스카치테이프를 벗기자마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휴우~.”
소매로 이마를 닦았더니 미소가 똑같이 따라 한다.
“후아~.”
벗겨낸 포장지를 조심스레 미소에게 건넸다.
“미소야 여기 포장지.”
“아싸!”
미소가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자 그럼 열어볼까?”
“네!”
이제는 박스에 붙어 있는 황색 테이프를 걷어낼 차례.
하지만 다행히 유진이가 더는 안 그래도 된다며 웃었다.
“호호호. 오빠. 그건 그냥 뜯어요.”
“그래도 돼?”
갑갑했던 심정을 담아 북하고 테이프를 뜯었다.
그런데 박스 안을 여는 순간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게 들어 있었다.
“이건······”
조르지오 아르마니 네이비 블루 슈트.
최고급 남자 정장인 아르마니 세트가 무려 두 세트나 포장되어 있었다.
하필이면 회귀 전 즐겨 입던 옷과 똑같은 거다.
고개를 힐끗 들자 유진이가 싱글대며 웃는다.
“오빠는 늘 양복만 입고 다니잖아요. 오빠한테 제일 필요한 게 뭘까 했는데 양복 말고는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이 비싼 걸······”
“에이. 안 비싸요.”
유진이가 눈을 찡긋거렸다.
사람들이 있는 데서 가격을 말하지 말라는 거다.
‘백화점에서 샀으면 한 벌에 최소 300만 원은 넘을 텐데······’
놀란 내 얼굴을 본 미소가 신이 나 두 손을 치켜들었다.
“이거 엄마랑 내가 백화점에 놀러 가서 진짜 열심히 고른 거예요!”
정작 유진이는 명품 가방 하나 없다.
아니 명품 가방은커녕 메이커 가방도 없다.
심지어 이지연 작가가 화룡에서 사 준 밥도 국밥과 비교할 정도로 절약 정신이 뛰어나고.
그런데 이런 비싼 걸 선물로 해 줄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도 두 벌이나.
“유진아. 이거 두 세트까지는 필요 없어. 하나는 반품······”
유진이가 두 손으로 X자를 그렸다.
“이미 오빠 몸에 맞게 수선 다 해뒀거든요? 반품 안 돼요.”
“수선도 했다고? 내 사이즈는 어떻게 알고?”
“오빠 지금 입고 있는 정장 가져다주니까 알아서 다 해주던데요?”
유진이 집 앞 세탁소에 맡긴 정장을 백화점에 들고 가 똑같은 사이즈로 수선해 달라고 했단다.
‘언제 그랬지?’
어쩔 도리가 없다.
주는 건 고맙게 받고 더 크게 돌려주는 수밖에.
“고마워. 진짜 잘 입을게.”
그때였다.
정인지 주인아줌마와 하루도 조심스레 검은 비닐봉지에 든 박스를 내밀었다.
“우리는 비싼 건 아냐. 그래도 마음은 듬뿍 담았어.”
두 사람이 준 선물은 영양제와 간장약 우루사다.
“이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되는데······”
가슴이 뭉클해져 왔다.
난 언제나 선물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이었다.
상사들과의 관계를 도모하는 건 물론이고 방송국과 투자자들에게도 늘 선물을 했었다.
입봉 기념 천만 달성 기념 영화제 수상 같은 것을 축하하며 스타들과 그 가족들에게도 그들이 좋아하는 뇌물성 선물을 뿌렸었다.
하지만 이번 삶은 반대였다.
더러운 뇌물을 뿌리던 내가 따듯한 선물을 받는 입장이 되다니.
사극의 대사로 널리 쓰이는 황송하다는 표현이 있는데 지금 내 기분이 딱 그렇다.
황송하다.
난 받은 선물을 손에 들고 멍하니 있었다.
가슴이 간질간질하고 눈가가 시큰거린다.
회귀 전에는 이런 경험이 적었기에 어떻게 해야 이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 순간 정인지 아줌마가 내 정신을 일깨웠다.
“정 팀장. 드라마 시작할 시간이야. 이제 드라마나 보자.”
“아 예.”
정신을 차린 나는 네 사람에게 다시 한번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잘 입고 잘 먹겠습니다.”
“에이. 저희가 감사하죠. 오빠 아니었으면 전 아직 단역 자리나 찾고 있었을 텐데.”
유진이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고마움을 알고 또 서로 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 덕에 돈보다 더 큰 충만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무래도 이 빚은 나중에 제대로(?) 갚아줘야겠다 싶다.
“어 시작한다!”
미소가 TV를 가리켰다.
화면에서는 광고가 끝나고 <파란 하늘> 24화의 시작되었다.
자세를 바로 하고 앉은 우린 주인아줌마가 준비한 주전부리를 먹으며 <파란 하늘>의 최종화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와. 이거 내일 난리 나겠는데?’
유진이의 연기가 가득한 마지막 화를 보는 순간 내일 반응이 벌써 기대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