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7화
167. 가사조사관
가사조사관이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판사의 지시가 없다면 이뤄질 수 없다.
양육권 소송에서 그들은 판사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다시 말해 가사조사관은 판사가 시키는 대로 하는 아바타나 다름없다.
그 탓에 난 판사의 신뢰도에도 의문을 표했다.
만약 판사는 그대로고 가사조사관만 바뀌었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니까.
“제 말 못 들으셨습니까? 판사 기피 신청할 테니까 나가시라고요!”
당황한 오민정 가사조사관이 버럭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두툼한 볼살을 부들부들 떨면서 말이다.
“가 감히! 우리 판사님을 걸고넘어지다니 당신 제정신이야? 가만 보니 진짜 안 되겠네. 가정환경도 엉망이고 매니저란 사람도 무례하기 짝이 없고! 여기는 진짜 아동이 제대로 생활할 곳이 아니네. 내가 이거는 꼭 판사님한테 이야기해서······.”
“아뇨. 귀찮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뭐 뭐라고요?”
“그리고 저기 CCTV도 보이죠? 저기에 한 달 치 분량의 가정환경이 녹화돼 있으니까 제가 직접 법원에 제출하겠습니다.”
커튼 위쪽에 설치된 CCTV를 가리키자 그제야 오민정 가사조사관도 내 말이 단순한 허세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아 아니 왜 집 안에 CCTV가 있는 거······야?”
“아 참. 지금 들고 계신 기록지와 영상을 비교하면 참 재미있을 것 같네요. 객관적으로 비교도 되고. 아 조금 전에 미소를 협박하신 것도 참~ 인상 깊었습니다.”
유진이의 큰아빠가 왔다 간 이후 1층부터 2층까지 모두 총 8대의 CCTV를 설치했다.
그 덕에 오늘 있었던 일은 모조리 다 녹화되고 있었다.
그리고 집 앞에서부터의 대화는 모조리 내 폰에 녹음되어 있었고.
유진이를 일방적으로 몰아세웠던 자신의 행동이 까발려지게 되자 오민정 가사조사관의 눈동자가 갈피를 잃었다.
그때였다.
덜컥.
2층 문이 활짝 열리며 곽무혁 법무팀장이 유진이의 집에 도착했다.
난 그를 보자마자 현재 어떤 상황인지 설명했다.
곽무혁 팀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절차 위반 강제 조사 위력적 행위 동원 등으로 정식으로 항의하겠습니다. 더불어 판사님과 가사조사관님께도 각각 항의 절차를 밟도록 하겠습니다. 일정 변경의 이유도 확실히 따져볼 거고요.”
대부분의 양육권 소송의 경우 가사조사관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쓴다.
그들이 작성하는 서류는 양육권의 행방을 가르는 법적 근거로 작동하니까.
하지만 곽무혁 법무팀장은 그 모든 서류를 무력화시켜 버리겠노라 선언했다.
심지어 판사와 가사조사관의 개개인에게도 직접적인 항의를 하겠다면서 말이다.
‘돈 받아먹었는지 확인하겠다는 거군.’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지 오민정 조사관은 유진이를 직접 공략하는 방법을 택했다.
“저 정유진 씨!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양육권 소송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겁니다. 잘 판단하세요!”
끝까지 협박이다.
하지만 이런 협박에 흔들릴 유진이가 아니다.
우리 유진이가 얼마나 당찬데.
아니나 다를까.
유진이는 오민정 가사조사관을 빤히 쳐다보며 대꾸했다.
“조사관님이 처음부터 저희를 몰아세운 거 잊지 않을게요. 그리고 지금 언론사 인터뷰가 잡혀 있는데 거기서 밝힐 거예요. 가사조사란 게 이런 건지 처음 알았다고요!”
언론을 끌고 들어오면 이 싸움은 진짜 진흙탕이 벌어진다.
판사가 제일 꺼리는 일이 자신이 담당하는 사건을 언론이 떠들어대는 거다.
내가 써먹으려는 카드 중 하나였지만 유진이는 알아서 그 카드를 꺼내 들고 있었다.
‘나이스. 정유진.’
유진이가 제대로 한 방 먹였다.
오민정 가사조사관은 우리를 무섭게 쏘아보다 홱 하고 몸을 돌려 현관으로 향했다.
* * *
쾅!
오민정 가사조사관이 나가며 거칠게 2층 현관문을 닫았다.
한숨을 내쉰 유진이의 어깨가 파르르 떨린다.
하지만 미소의 앞이라 애써 당당한 척 미소 짓고 있었다.
“미소야. 놀랐지?”
“아니. 엄마! 나 안 놀랐어!”
“우리 미소 씩씩하네?”
유진이는 미소의 볼을 어루만져준 뒤 내 쪽을 쳐다본다.
“오빠. 괜······찮겠죠?”
“당연하지.”
곽무혁 법무팀장 역시 유진이를 달랬다.
“유진 씨. 판사 기피 신청을 하고 따로 뒷돈을 받은 건 아닌지 별도로 조사도 해 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잘 좀 부탁드릴게요. 팀장님.”
엄마가 인사하자 미소 역시 곽무혁 법무팀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부탁해요 팀장 아저씨!”
“우리 미소는 하나도 걱정할 필요 없어. 알았지?”
“그러면······ 이거 선물이에요!”
미소가 뇌물을 내민다.
파워터프걸 캐릭터 눈깔사탕이다.
그것도 무려 2개나.
이 정도면 미소 수준에서는 엄청난 뇌물이다.
곽무혁 팀장은 흐뭇한 아빠 표정으로 뇌물을 받아들였다.
“허허. 고맙구나. 아저씨가 아껴 먹을게.”
“어? 그거 먹는 거 아닌데요?”
“그러면?”
“색깔별로 5개 모아서 가지고 있어야 해요. 근데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은 나도 하나밖에 없어서 못 드려요.”
“그 그래? 언제까지 가지고 있을까?”
“다섯 개 다 모을 때까지요! 그러면 먹어도 돼요.”
왜 그래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거래 성립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정인지 주인아줌마가 하루의 도움을 받아 잡채를 잔뜩 만들어 가지고 왔다.
“조사관이라는 그 여자는 어디 갔어?”
“벌써 갔어요.”
“가다니. 어머. 내가 많이 늦었나 봐?”
“아뇨. 그게 아니라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말한 순간 정인지 주인아줌마가 잡채를 내려놓은 다음 두 팔을 걷어붙였다.
“뭐라고? 그 여편네가! 내가 지금이라도 쫓아가서 확!”
정인지 주인아줌마는 조사관의 머리털을 다 뽑아버리겠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덕분에 유진이도 긴장이 풀려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 * *
곽무혁 법무팀장에게 준비한 모든 자료를 건네자 그는 당일로 법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 날.
속전속결로 판사 변경과 가사조사관의 변경이 일어났다.
연이은 두 번째 조사 날에 맞춰 새롭게 온 가사조사관 이문희는 오자마자 자기 소속을 밝힌 뒤 유진이와 미소와의 개인 면담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마쳤다.
-미소가 엄마랑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네요. 저라도 이런 엄마랑 함께 살고 싶을 거 같아요. 호호.
가사조사는 단 한 번으로 끝났고 집을 떠나던 이문희 가사조사관은 담당 판사가 유진이의 팬이라고 귀띔을 해 줬다.
그리고 다음 날.
곽무혁 법무팀장이 해 줄 말이 있다며 자신의 사무실로 불렀다.
어찌나 마음이 급했던지 연락을 받자마자 비상계단으로 한달음에 6층 곽무혁 팀장의 사무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곽무혁 팀장이 흐뭇한 표정으로 날 반겼다.
“뭘 또 이렇게 뛰어오나? 그러다 넘어지면 어쩌려고.”
“팀장님. 판사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정식 판결은 아니지만 비공식적으로 판사의 언질을 들었다고 했기에 마음이 급해졌다.
“우리 정 대리가 흥분할 때도 있군. 하하하. 내가 좋은 구경을 하네.”
“팀장님!”
“김 판사님이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더군. 허허.”
“그 말씀은······.”
“그래. 제정신 박힌 판사라면 누가 온다고 해도 미소가 유진이의 딸이란 걸 부인하지 못할 거라 하시더군.”
“정말입니까?”
“그래. 그리고 정 대리가 준비한 모든 자료는 법원에서 받아주기로 했어. 이제 안심해도 좋아.”
순간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아자!”
곽무혁 법무팀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팀장님. 잠시만 전화 좀 하겠습니다.”
“그래.”
유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곧장 전화를 걸었다.
연기 연습을 하고 있던 유진이는 전화를 받자마자 환호를 내질렀다.
-오 오빠. 정말이에요?
“어. 그러니까 안심해. 앞으로 2주에서 3주 정도 지나면 판결도 날 거래.”
-다행이다······.
유진이가 울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기쁜 소식을 나누고 전화를 끊은 뒤 뒤늦게 곽무혁 법무팀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내가 CCTV를 준비하고 녹음을 했다지만 그 이외에 모든 걸 실제로 처리한 건 곽무혁 팀장의 공이었으니까.
“감사합니다. 팀장님.”
“감사는 무슨. 이게 내가 해야 하는 일인데.”
“그래도요.”
그때였다.
곽무혁 팀장이 목을 좌우로 흔들며 우두둑 소리를 낸다.
“아직 감사할 거리가 조금 남았어.”
“그게 무슨······.”
“감히 우리 미소를 건드렸으니 상대를 탈~탈 털어야지. 안 그런가?”
나 역시 정학제를 그냥 놓아둘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곽무혁 팀장의 말부터 들어보자 싶었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정학제 그 인간이 유진이와 미소에게서 가로챈 재산을 이번 기회에 모조리 되찾을 걸세.”
“그게 가능합니까?”
“그럼! 유진 씨가 살던 원래 집이랑 다른 재산까지 얹어서 그동안 고통스러워했던 것까지! 모조리 다 계산해서 십 원짜리 한 장 빼놓지 않고 다 뱉어내도록 할걸세!”
곽무혁 팀장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분노로 붉게 달아오른 그의 얼굴을 본 순간 굳이 내가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미소가 준 사탕이 엄청 비싼 거였군요?”
곽무혁 팀장이 굳은 얼굴을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평생 가장 비싼 의뢰비였다네.”
정학제.
유진이의 큰아빠인 그는 미소가 준 사탕 2개 때문에 아마도 파산을 면치 못할 것 같다.
물론 사탕 한 개라도 같은 결과를 얻었겠지만 말이다.
* * *
곽무혁 법무팀장의 방을 나와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난 다이어리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10분 정도 지났을 무렵 난 진소미가 벌였던 일들을 모조리 머리에 담았다.
그 순간 진소미를 가장 뼈아프게 할 만한 일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변호사로 사는 게 인생의 목표랬지?’
진소미의 꿈은 음지를 벗어나 변호사가 되는 것.
하지만 그녀가 변호사가 되려는 건 사람들을 변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신분을 세탁하고 법조계 로비스트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변호사로 살고 싶다고? 누구 마음대로?’
변호사법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의 경우 5년간 집행 유예의 경우 2년간 변호사로 활동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법적인 사고를 치면 몇 년간은 변호사 자격이 정지된다.
그리고 난 그녀가 로비로 아슬아슬하게 무마시킨 그녀의 몇 가지 범죄 사실을 알고 있었다.
즉 내가 그녀의 범죄 사실을 언론에 터트리게 되면 진소미는 변호사로 살아갈 수가 없다.
아니면 변호사 시험 자체를 못 치게 하는 수도 있고.
“진소미. 양지로 나올 생각 따윈 하지 마. 당신은 로비스트 그게 딱 어울려. 변호사는 무슨······.”
쌓아놓은 인맥이 있으니 로비스트로 움직이는 것까지야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가 변호사가 되어 움직이는 건 막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건.
진소미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할 일임이 틀림없었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남은 일들을 마무리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퇴근하기 전.
강지영 본부장에게 내일 팀장 발령이 정식으로 난다는 소식을 받았다.
드디어 ‘정 팀’을 꾸릴 수 있게 되었다.
* * *
강남 룸살롱 로즈 블랑.
진소미의 로비를 받았다가 혼쭐이 난 최태송 가정 법원 판사가 씩씩거리고 있었다.
와이셔츠를 풀어 헤친 최태송 판사는 룸에 들어서자마자 단숨에 위스키를 반 병이나 비웠다.
곁에서 연신 술을 따라 주던 진소미는 로비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이야기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최 판사님이 징계를 먹으셨다고요? 겨우 그까짓 일로요?”
최태송 판사가 술에 잔뜩 취해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겨우? 야! 진 마담! ‘겨우’라고 했냐? 이 X이 미쳤나······.”
최태송의 거친 말에 진소미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게 아니라요. 판사님······.”
“야! 쉬운 일이라며! 앙? 그렇게 쉬운 일인데 상대는 완벽하게 준비를 해 두고 있어? 너 나 엿 먹이려고 작정했냐? 아니다 너 혹시 내 라이벌인 강 판사한테 나 죽이라고 뒷돈 받았어?”
“아 아니에요. 제가 언제 어르신들 싸움에 끼어드는 거 봤어요?”
진소미는 절대 법조인들의 권력 다툼에는 끼어들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자신이 제일 먼저 감옥에 가게 될 테니까.
“그런데 왜 그딴 일로 내가 감사까지 받아야 해? 앙?”
최태송 판사는 접대를 기대하며 로비를 들어줬다.
하지만 그 결과는 모든 업무의 배제였다.
그리고 감사실에서 자신의 뒤를 캐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으니 눈이 돌아갈 수밖에.
최태송 판사가 다시 위스키 한잔을 단숨에 비웠다.
“크으~. 하여간 너 때문에 지금 난 X 됐어.”
그 순간 진소미는 룸살롱의 차가운 바닥으로 내려가 무릎을 꿇었다.
몸에 짝 달라붙은 옷이 불편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법조계의 어르신’들 눈 밖에 나면 자신의 모든 기반이 사라지니까.
“죄 죄송해요. 판사님. 용서해 주세요.”
“죄송? 이게 죄송으로 될 일이야?”
“제 제가 강 부장판사님께 연락해서 징계를 취소해 달라고 부탁드려 볼게요.”
그 순간 최태송 판사가 오른손을 들었다.
그대로 진소미의 뺨을 때리려던 걸 가까스로 참아낸 그가 한숨을 쉬며 손을 내렸다.
“아오~ 이걸 진짜. 잘 들어! 진소미! 당분간은 법조계에서 네 연락 받는 사람 없을 거다. 그러니까 당분간은 쥐 죽은 듯이 있어. 안 그러면 너부터 죽을 테니까!”
최태송 판사의 경고에 진소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밤새도록 최태송 판사의 술 상대를 해 주며 1년 치 욕을 다 먹어야 했다.
새벽 6시 정도가 되어서 끝난 술자리.
녹초가 되어 룸에서 나온 진소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윤호. 당신 대체······ 뭐 하는 인간이야?’
악의(惡意)로 물들었던 진소미의 생각이 공포로 변하는 데까지는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제야 정유진과 정미소를 건드린 사실을 후회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