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6화
166. 일거양득
연예인이 되기 위한 필수 요건을 물으면 대부분이 이렇게 대답한다.
-뭐니 뭐니 해도 외모지. 세상은 미남미녀를 중심으로 돌아가거든. 결과를 봐.
-가수는 역시 춤보다 노래야. 결국 오래 살아남는 건 실력파 보컬이지. 암.
-연기력! CG가 만능이 된 이 시대에도 역설적으로 빛나는 재능이거든!
-무슨 소리! 연예인은 역시 끼라고.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외부의 시선이다.
부족한 외모는 시술로 고치고 형편없는 가창력은 오토튠으로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연기 논란을 벗어나는 기술적인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욕심을 버리고 연기하기 쉬운 배역을 택하면 된다.
연기 고수들과 비교되기 쉬운 사극은 절대 금지.
초보자들과 경쟁하는 시트콤은 대환영이고.
그럼 내부인이 첫 번째로 뽑는 허들은?
-대중 앞에서 서는 것.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단순한 행위가 너무도 어렵고 적응하기 힘들다.
수십 명이 부산을 떨고 수백 명의 구경꾼이 지켜보는 현장에서 감정을 표출하고 연기를 하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니까.
그런 이유로 체계화된 엔터 회사들은 어렵게 발굴한 신인들이 적응할 수 있게 ‘적응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어떤 회사는 ‘자신감 증진 프로그램’이라고도 말하는데 지하철에 내보내서 노래하게 한다거나 홍대에 내보내 버스킹을 하게도 하는 식으로 소위 ‘깡’을 기를 수 있게 한다.
나 역시 하루의 깡을 키울 생각으로 지금 여기 천호동 ‘팔팔 노인정’으로 하루를 온 상황이었다.
이곳 팔팔 노인정은 정인지 주인아줌마가 평소에도 봉사활동을 하던 천호동 노인 녹지회관의 다른 이름.
그리고 유진이가 김수희 선생님에게 ‘만신 월아’의 연기를 위해 노인분의 관찰 숙제를 수행하는 곳이었다.
“형······ 이거 해야 해요?”
“꼭.”
하루가 날 보며 불안한 표정을 짓는다.
‘팔팔 노인정’의 거실에서 노래를 부르게 한 탓이다.
“잘하라는 건 아냐. 사람들 앞에 서는 데 익숙해지라는 거지.”
“저 노래 못하는데······.”
“괜찮아. 손주가 어르신들 적적함을 덜어드린다고 생각하면 돼.”
30평 정도의 넓은 거실에는 이미 어르신들이 동그랗게 둘러앉아 있었다.
노래방 기기에 전원을 넣은 채 언제 하루가 노래를 시작할 건지를 기다리면서.
난 망설이는 하루를 위해 미리 준비한 비밀 병기를 투입했다.
“미소야. 좀 도와줄래?”
“네!”
순간 미소가 앞으로 달려 나가 하루의 손을 붙잡았다.
“하루 오빠! 나랑 노래하자!”
미소는 엄마를 닮아서인지 카메라에 대한 거부감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뭐 가끔 이런 애들이 있다.
타고난 ‘무대 체질’인 극소수의 미소 같은 아이들에겐 적응 따위는 저 세상 이야기였다.
미소 덕분에 하루는 자신도 모르게 가장 힘든 첫 번째 고비를 넘겨버렸다.
원래라면 무대에 서는 것 자체도 엄청나게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말이다.
“하루 오빠. 체리블라썸 언니들 노래 찾아줘!”
“어? 그 그래.”
하루가 노래방 책자를 들고 체리블라썸의 의 번호를 꾹꾹 누른다.
이내 의 반주가 기계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미소는 들뜬 표정으로 2개의 마이크를 꺼내 하나를 하루에게 건넸다.
그리고 신이 나 먼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손을 위로~ Hurry Up!』
미소의 티 없이 맑은 웃음과 순수함이 물감에 염료를 탄 것처럼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미소의 댄스를 본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연신 손뼉을 친다.
“아이고. 목소리 고운 것 좀 봐라.”
“어찌 저리 귀엽게 생겼누.”
흥겨운 분위기가 이어지기 시작한 탓에 하루가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붙잡은 하루가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런데.
『손~을~ 위로~오~』
‘내가 잘못 들었나 음정이랑 박자가······ 왜 저래?’
목소리가 좋아서 노래도 잘할 줄 알았건만 실수였다.
‘그래서 회귀 전에 노래를 안 불렀구나.’
회귀 전 하루는 연기력만큼이나 대사 전달력이 뛰어났던 배우였다.
그러나 예능에서 일절 노래를 부르지 않았었다.
그 이유가 지금에서야 드러나고 있었다.
음치에 박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대에서 내릴 수는 없었다.
이 같은 돌발상황에서도 버텨내는 멘탈을 길러내는 게 이 프로그램의 주목적이니까.
‘하루야. 힘내라.’
그런데 우려와 달리 노인정 어르신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허허허. 큰 아이 작은 아이 할 것 없이 어쩜 저리 이쁠꼬.”
“우리 손녀사위로 삼았으면 좋겠어.”
“어이구 잘한다~. 어이구 잘해.”
‘응?’
잠시나마 적적함을 잊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어르신들은 손뼉을 치며 즐거워하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그 순간 눈알이 튀어나올 만한 일이 벌어져 버렸다.
슬슬 자신감과 함께 흥이 오른 하루는 미소와 함께 춤까지 추기 시작해 버렸다.
‘하 하루야!’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하루는 흡사 바람 반쯤 빠진 공기 인형이 흔들거리는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음치와 박치로도 모자라 몸치.
역시 신은 공정한가 보다.
외모와 연기력을 주고 음악에 대한 모든 걸 앗아가 버렸으니까.
하지만 이 모든 약점을 채워줄 방법은 있었다.
음치와 박치는 보컬 트레이닝으로 같은 곡을 수천 번 부르게 하면 된다.
그리고 몸치는······.
‘하루야. 나랑 같이 박선녀 안무가한테 레슨 받자.’
호우 소리와 함께 내게도 강제로 박자 감각을 심어준 박선녀 안무가라면 하루도 충분히 나아질 수 있었다.
쫄쫄이 에어로빅 복장은 입어야겠지만.
* * *
팔팔노인정에 마련된 임시(?) 무대를 마친 하루가 상기된 표정으로 내려왔다.
땀 때문에 앞머리가 젖어 찰랑거리는데 역시나 묘한 분위기가 풍기고 있다.
“저 잘했어요?”
빈말로라도 잘했다고는 못하겠다.
“수 수고했어. 어르신들이 많이들 좋아하시더라.”
미소가 생글대며 엄지를 치켜든다.
“하루 오빠. 짱! 짱! 하루 오빠 목소리 진짜 좋아. 노래 대땅 잘해.”
“아 아냐. 미소야. 그 정도는 아닌데······.”
모든 걸 좋게 보는 미소의 마구잡이 칭찬에 하루가 부끄럽다는 듯 머리를 긁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둘을 붙여 둬야 할 것 같다.
자신감 증진에 멘탈 치료까지 일거양득이니까.
유진이가 흐뭇한 표정을 짓더니 하루에게 부탁했다.
“하루야. 이제 어르신들 식사 준비를 할 텐데 수저 놓는 것 좀 도와줄래?”
“예. 누나.”
미소가 곁에서 손을 번쩍 든다.
“삼촌 나도! 나도!”
“그래. 우리 미소도.”
미소가 테이블로 도도도 달려가 조그마한 손으로 수저와 젓가락을 세팅했다.
한결 밝아진 하루도 미소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 바삐 움직였고.
난 쟁반을 든 채로 유진이가 떠주는 밥그릇을 받으며 물었다.
“유진아. 그런데 김수희 선생님이 시킨 숙제는 어때? 잘 되어가고 있어?”
만신 월아를 연기하기 위해 노인의 모습을 관찰해야 하는 유진이다.
하지만 유진이는 노인정에 오고서부터 끊임없이 일만 하고 있었다.
“일하는 틈틈이 곁눈질로 보고 배우고 하고 있어요.”
“그 정도로 돼?”
“네. 김수희 선생님이 말한 게 조금씩 감이 오는 것 같아요.”
그때였다.
일하는 동안 맡고 있던 유진이의 폰이 울렸다.
‘누구지?’
모르는 번호라 수신 거부를 하려고 했는데 알아서 먼저 끊겨버렸다.
“잘못 걸었나?”
그런데 이내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서울가정법원 오민정 가사조사관입니다. 집에 안 계시는군요. 30분 이내에 조사에 응하지 않으시면 방문 시 부재중으로 판단······.]
‘뭐야? 이건?’
유진이는 현재 큰아빠 정학제와 미소의 양육권을 놓고 소송을 벌이는 중이다.
미소의 친아빠 정성한이 작고하기 전 만약에 자기에게 문제가 생기면 남을 아이들을 돌봐달라는 유언장을 남겼기 때문이다.
일가친척이 없는 정성한은 유언장의 일 순위를 장인 장모로 해뒀었다.
하지만 이 순위로 정학제의 이름을 올려놓은 게 문제였다.
정성한이 왜 정학제 같은 쓰레기에게 유언장을 남겼는지 궁금했지만 의외로 그 대답은 간단했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두 사람이 너무 친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막상 끔찍한 일이 생기자 정학제는 안면을 몰수해 버렸다.
정학제는 정성한이 남긴 재산에 욕심이 난 까닭에 유진이에게 정성한의 유언장을 숨기고 미소를 보육원에 보내버릴 생각마저 했었다.
하지만 그 사정을 몰랐던 유진이는 당시 2살이던 미소를 잉얍해 버렸다.
때마침 특별법으로 친족에 한해서는 독신자 입양조건이 완화된 까닭이었다.
아무튼 그런 사정으로.
유언장을 들고 있는 정학제와 정식으로 미소를 입양한 유진이가 서로 맞서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주에 오기로 한 가사조사관이 유진이의 집 앞이란다.
법적인 일정은 고무줄처럼 당겨지는 일이 흔치 않다.
심지어 공문도 받았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이건 누군가가 수작을 부린 게 확실했다.
그 순간 난 곧장 곽무혁 법무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 지금 난 구로인데 곧바로 그리 가도록 하지. 하지만 절대로 그냥 돌아가게 둬선 안 돼. 방문 시 부재중으로 기록에 남으면 나중에 처리하기 까다롭거든.
“알겠습니다. 전 천호동이니까 바로 집으로 이동하겠습니다.”
팔팔노인정은 유진이의 집에서 5분 거리에 있었기에 봉사를 나온 여사님들에게 뒤를 맡기고 빠르게 집으로 향했다.
폰의 녹음 기능부터 켜고 말이다.
* * *
집으로 돌아간 우리 일행은 삭막한 표정의 중년 여성 조사관을 마주했다.
“가사조사관 오민정입니다.”
금테 안경 아래에서 반짝이는 작은 눈과 미간의 깊은 주름을 보니 확실히 만만한 성격은 아닌 것 같다.
“다음번 조사 기간에도 집에 없으시면 조사에 불응했다고 기록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오시는 줄 몰랐습니다.”
“법원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했을 텐데요?”
“어제 확인했을 땐 분명히 일주일 뒤로 적혀 있었습니다. 지난주에 받은 등기 서류에도요.”
오민정 가사조사관이 피식 웃으며 말한다.
“전산팀에서 실수했나 보네요. 그리고 변경 등기는 발송했으니 확인해 보세요. 사람이 없어서 못 받으셨나 보네.”
순간 유진이가 고개를 저었다.
“전 등기는 새로 받은 적이 없어요.”
“그런 건 전 모르겠고. 하여간 제가 가진 기록에는 발송됐다고 나왔어요. 그리고 제가 나왔으니 조사는 될 거예요. 보호자님. 앞서세요.”
쌀쌀맞은 태도로 일관한 오민정 조사관은 유진이와 미소와 함께 2층으로 향했다.
그 모습에 주인아줌마가 불안한 듯 물었다.
“정 대리. 어떻게 해?”
“제가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주인아줌마가 안도의 한숨을 내 쉰다.
“하긴. 우리 정 대리가 있는데 내가 무슨 걱정이람. 그럼 난 하루랑 1층에서 요깃거리 좀 만들어 갈게. 맛난 걸 먹이면 저 여편네도 기분이 좀 풀리겠지.”
“하하. 오늘은 왠지 잡채가 당기는데요?”
“하여간 너스레는.”
정인지 주인아줌마는 조금은 편해진 얼굴로 1층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난 한 번에 세 계단씩 뛰어올라 2층으로 향했다.
* * *
양육권 다툼으로 파견되는 가사조사관은 보통 한 달에 1회에서 2회 정도 방문하고 총 4회에서 5회 정도를 방문해 조사를 마친다.
이들의 주 조사 내용은 양육권의 대상이 되는 아동의 생활 환경이 어떠한가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오민정 조사관의 행동은 내가 아는 것과는 달랐다.
찰칵.
오민정 조사관이 집안 여기저기의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지저분한 곳을 집중적으로 찾아내고 있었다.
‘역시······.’
일정을 급히 바꾸면서까지 온 이유가 있었다.
이건 어떻게든 흠을 잡으려고 하는 조사다.
촬영을 마친 오민정 조사관이 생뚱맞은 질문을 하며 몰아세웠다.
“아동의 하루 평균 TV 시청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예? 그게 저······ 정확히는 모르지만 하루에 두 시간 정도는 안 넘게 하고 있어요.”
“정확히 모르신다는 거죠?”
“아니 그게······.”
오민정 가사조사관이 가지고 온 파일에다 뭔가를 기록한다.
“방치의 정황이 보임······.”
순간 미소가 빠르게 대답했다.
“저 텔레비전은 2시간 이상 안 봐요! 엄마가 눈 나빠진다고 했거든요!”
오민정 조사관이 인상을 찌푸렸다.
“미소 양. 어른들 대화에 끼어드는 건 실례예요. 가정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네요. 어디서 버릇없게······ 쯧. 감점!”
미소가 목을 움츠리자 유진이가 대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조사관님.”
“죄송하실 게 있나요. 저야 본 대로 판사님께 알려드리는 사람인데. 그보다 아이 가방을 좀 봐도 될까요?”
미소가 버릇이 없다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아무래도 지켜보는 건 여기까지인 거 같다.
이런 식으로 위법한 조사라면 더 받을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이건 보나마나 법조계에 손이 닿아 있는 진소미 때문에 발생한 일일 테고.
‘진소미. 미소와 유진이를 건드리지 말라는 내 경고를 무시했다 이거지?’
이 일은 반드시 갚아줄 생각이지만 당장은 눈앞의 일부터 처리하는 게 우선이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곧장 오민정 가사조사관의 앞을 가로막았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오민정 가사조사관이 날 째려본다.
“뭐하다뇨? 보면 몰라요? 가사조사 하잖아요.”
“아이의 가방을 뒤지고 일부러 집 안의 허름한 곳을 뒤져서 사진 찍는 게 가사조사라고요? 장난해요?”
오민정 가사조사관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더니 기록지에 뭔가를 쓱쓱 적는다.
“조사에 비협조적임.”
“어이가 없네.”
순간 기록을 멈춘 오민정 가사조사관이 날 향해 고음을 내질렀다.
“뭐라고요? 다 당신 아무래도 조사관을 우습게 보나 본데 전요! 판사님이 시키는 대로 조사하고 직접 보고를 하는 사람이거든요?”
“아 그러세요? 그러면 판사 기피 신청을 해야겠네요. 제대로 된 판사라면 이딴 조사를 허락했을 리가 없을 테니까요.”
순간 오민정 가사조사관이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조사 대상이 설마 이렇게 강경하게 대응할 줄은 몰랐나 보다.
하지만 난 정학제와 소송을 벌이면서부터 모든 경우를 대비해 놓았었다.
그 덕에 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그녀를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당장 이 집에서 나가시죠. 오민정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