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8화
158. 영입 완료
골든로드의 활동 중단을 선언된 이후 가수 1실의 매니저들은 모두 전화기에 매달려 있었다.
광고주들이 너도나도 광고 해지 요청을 해댄 탓이었다.
“죄송합니다. 진 팀장님. 예. 예. 일주일 이내로 법무팀에서 위약금 조항 검토해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해체라뇨? 봉 팀장님. 일시 활동 중단이니까 너무 심려치 마시고······”
“아 아니 그러니까 제 말 좀 들어주십시오. 아닙니다. 그냥 제가 지금 회사 앞으로 찾아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한 실장님. 저희도 막는다고 막았는데······ ”
“김 팀장님! 저 좀 살려 주십시오. 일단 계약 기간 연장을 해놓고 애들 컴백하면 상황 봐서 조절하시죠.”
매니저들이 전화기를 붙들고 애걸복걸하는 걸 보던 차상진 실장이 후들거리는 다리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하루만 5개의 CF를 위약금을 내고 계약 해지를 당했다.
이런 속도라면 남은 15개의 CF를 모조리 해지당하는 건 시간 문제다 싶었다.
차상진 실장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휴게실로 향했다.
“어? 차 실장님? 커피 한잔하시겠습니까?”
때마침 휴게실에 있던 김동수가 인사를 한다.
차상진 실장은 구세주라도 만난 듯 애원하며 말했다.
“김 실장. 정말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거야? 골든로드 때문에 내가 피가 바짝바짝 마를 지경이라고.”
김동수가 자판기에서 뽑은 캔커피를 내밀자 차상진은 마지못한 듯 받아들었다.
“조금 기다려보십시오.”
“아니. 기다리라고만 말하지 말고. 이기철 이사님은 뭐 하고 계시는데? 대책부터 세워야 할 거 아냐?”
차상진의 재촉에 김동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강 대표가 복귀하기 전에 한 방을 준비하시느라 바쁘십니다.”
“그 그래?”
“그러니까 당분간은 죽었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참고 기다리세요. 골든로드도 다시 사고를 안 치면 6개월 정도 안에 복귀 가능할 겁니다.”
차상진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골든로드는 운이 좋아도 복귀까지 1년 정도는 너끈히 걸릴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김동수 말은 상황을 반전시킬 방법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 그렇지. 6개월이면 되겠지?”
“대신 한국에 있으면 통제가 힘들 겁니다. 괜히 클럽 같은 데서 사진이라도 찍히면 골치 아픈 일이니까 도쿄에 있는 지사장에게 미리 잘 보호하라고 전해 두겠습니다.”
“그 그래. 아예 걱정 없게 일본으로 보내지 신경 써줘서 고맙군. 김 실장.”
“감사는요. 동문끼리 돕고 살아야죠. 그리고 말입니다······”
차상진은 김동수가 말해주는 대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짜로 그렇게 말하면 돼?”
“예. 제가 예전에 신세 진 걸 안 잊겠다고만 말씀 전하면 됩니다.”
이미 계약이 취소된 5개의 CF를 되돌리진 못한다.
하지만 현재 위약금을 거론하며 계약 해지를 하자는 3곳 정도는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김동수가 박한철 실장과 계약 주선을 하면서 리베이트를 해준 덕분이다.
“고 고마워.”
“그리고 나머지 광고 해지 계약 문의가 들어오면 해지보다는 저희 3실의 배우들로 모델을 교체로 유도해 보십시오. 제 이름을 파셔도 되고요.”
“그 그래도 돼?”
“물론이죠. 저흰 같은 서예종 아닙니까?”
차상진이 웃으며 김동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하하. 역시 동문 챙기는 건 우리 김 실장이 최고지. 알았어. 그럼 나 먼저 가 볼게.”
“예. 차 실장님.”
차상진이 사라지자 김동수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차상진이 손댄 어깨를 털었다.
“능력도 없는 새X가 선배랍시고.”
김동수는 얼마 전 해고된 박한철 실장을 다시 차상진의 자리로 복귀시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골든로드 스캔들 하나를 관리하지 못해 날아간 돈이 어마어마했으니까.
“골든로드가 무대에 다시 오르는 날이 당신 제삿날이야 차 실장.”
경박하게 뛰어가는 차상진을 보자 김동수는 짜증이 가득 차올랐다.
순간 자연스레 분노를 풀 대상을 찾았다.
“날새 이 자식은 왜 여태 연락이 없어?”
보석으로 풀려난 날새에게 정윤호의 뒤를 캐고 협박할 거리를 찾으라고 지시를 내린 지가 이미 3주 전.
그런데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김동수는 날새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따지기 시작했다.
“야! 날새!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김동수의 호통에 날새가 기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정윤호 뒤 캐고 있는데.
“누가 그걸 몰라? 넉넉잡아 사흘이면 정권 실세 비리도 다 캔다며?”
-······시X. 이렇게 꽉 막히게 살 줄 알았나? 그놈 보육원 출신이라며?
“왜? 나오는 게 없어?”
-그래. 없어. 아무것도. 코찔찔이 시절 때 싸운 거 말고는 별일 없고 중학교 때부터는 국대 된다고 복싱 엘리트 코스를 밟았어 “엘리트 코스? 그런다고 뭐 달라져? 주먹질하는 놈이 사고를 안 쳤을 리가 없잖아!”
-모르는 소리 하네. 엘리트 코스 밟는 애들은 동네 양아치랑은 사는 게 달라. 코치랑 감독이 얼마나 싸고돌았었는지 걸리는 게 하나도 없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고등학교 때는? 그때도 없어?”
-이제 막 고등학교 시절 뒤지고 있어. 보육원 출신에 스포츠 엘리트는 지역 건달들이 스카우트를 시도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 그럼 그쪽을 집중적으로 좀 파봐.”
-근데 말이야······. 만약에 이것도 안 나오면 어떻게 해?
김동수는 약한 소리를 하는 날새에게 고함을 질렀다.
“없으면 만들어 내기라도 하든지 정윤호 그놈이 데리고 있는 연예인들 뒤라도 탈탈 털어 봐!”
-끄응. 알았어. 좀 더 파 볼게.
날새를 믿지 못한 김동수가 다시 한번 외쳤다.
“그리고 만약 이번에 못 찾으면 다시 교도소로 보내버릴 거야. 알아?”
-아 알았다고! 씨X.
날새는 쌍욕을 한바탕하더니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화를 끊은 김동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인간들은 조금만 풀어주면 이래요. 풀어주면 뭐든 시키는 대로 한다더니 일하는 꼴 하고는.”
사람이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더니 역시 옛말이 틀린 게 없다고 생각하는 김동수였다.
그런데 그 순간.
김동수가 가장 어려워하는 상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연락을 먼저 하는 일이 없이 늘 보고만 받던 뒷배가 직접 연락을 해 오다니.
김동수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예. 대표님. 예? 정 대리와······ 자리를 마련하라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전화를 받는 김동수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묻지 말고 시키는 것만 해.
굴렁쇠 엔터의 주주 사인방 중 한 명인 최만식 대표가 정윤호에게 관심을 드러낼 줄이야.
“아 알겠습니다. 조만간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라는 나지막한 경고에 김동수는 알겠다고 하고선 전화를 끊었다.
그 순간 김동수는 곧장 이기철 이사에게 향했다.
최만식 대표가 정윤호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건 심각한 일이었으니까.
한시라도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 김동수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 * *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다이어리를 계속 확인했다.
그런데 골든로드의 12월 12일 컴백 일정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김동수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려는 것 같은데.’
김동수의 뒤에 있는 서예종 라인이 본격적으로 돈을 풀고 로비를 하면 골든로드를 다시 살리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하고도 남을 수 있다.
‘쉽지 않네.’
물론 골든로드가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그냥은 당할 생각이 없다.
그때가 되면 난 지금보다 더 많은 힘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혹시······ 저 때문에 그러세요?”
하루의 떨리는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응? 너 때문이라니?”
“저 영입한다고 무리하셨잖아요.”
날 올려다보는 하루의 눈에 걱정이 가득했다.
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뒤 얼굴에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하루야.”
“예.”
“앞으론 절대 누구한테도 그런 말은 하지 마. 그 돈은 네 가치에 비하면 말도 안 되게 적은 돈이니까.”
아무래도 당장 하루를 데뷔시켜야겠다 싶었다.
그래야 이 낮은 자존감과 자신감을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쉽진 않겠지만 회귀 전 하루가 보였던 재능이라면 충분히 도전할 만했다.
가만히 내 말을 곱씹어 보던 하루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앞으로는 약한 소리 안 할게요.”
자신의 앞에 놓인 장벽을 마주하는 하루의 두 눈엔 용기와 희망이 맴도는 게 보였다.
“그럼 본부장님에게 인사드리러 갈까?”
“네!”
조금은 밝아진 하루와 함께 힘찬 발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 * *
띵.
LED가 요란하게 번쩍이며 엘리베이터가 강지영 본부장이 있는 6층에 도달했다.
본부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구성철 실장도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를 시키고 소파에 앉자 강지영 본부장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사진으로 본 것보다 훨씬 잘생겼네요. 그런데 머리카락 색이 특이한데 염색한 건가요?”
하루의 머리카락 색은 갈색보다 조금 더 옅은 황색에 가깝다.
“아뇨. 엄마가 러시아 혼혈이라서요.”
“그래서였구나. 컬러렌즈 낀 줄 알았어요.”
하루의 이목구비뿐 아니라 눈동자 색깔도 인기의 요인 중 하나였다.
그래서 묘하게 빨려 들어가는 눈빛을 가진 남자란 뜻의 ‘묘빨남’이란 별명도 있었다.
하루가 바싹 얼어붙어 있었기에 강지영 본부장에게 말을 편히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럴까?”
“예!”
그제야 하루의 얼굴이 밝아진다.
“그나저나 이름이 이쁜데 앞으로도 그 이름으로 연예인 생활을 할 거야?”
하루가 조심스레 묻는다.
“저기 예명 같은 거 써도 되나요?”
“왜? 따로 생각한 거라도 있어?”
“네.”
대충 예상했던 바였다.
회귀 전에도 그랬었으니까.
“그러면 뭐로 하고 싶은데?”
“하루.”
“응?”
“제 예명은 그냥 하루라고 했으면 좋겠어요. 이하루가 아니라요.”
“성은 빼고?”
“네. 엄마가 지어준 하루라는 이름까지는 버리고 싶지 않아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라고 지어줬거든요.”
지금에서야 하루가 지은 예명 ‘하루’에 담긴 뜻을 온전히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하루의 엄마부터 빨리 찾아야 할 거 같다.
아빠와는 달리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한 듯했으니까.
엄마 쪽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정이 남아 있다면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생각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미리 만나 교통정리를 하는 게 더 편했다.
하루의 아빠처럼 말이다.
강지영 본부장이 큰 거부감없이 하루의 예명 변경을 받아들였다.
“알겠어. 그럼 프로필에도 그렇게 올려줄게.”
“예. 열심히 할게요!”
그렇게 이하루는 회귀 전과 같이 ‘하루’가 되었다.
* * *
정상봉을 불러 하루에게 회사를 구경시켜주라 말했다.
그리고 난 본부장실에 남아 강지영 본부장과 회의를 하는 중이다.
“실제로 보니 어떻습니까?”
강지영 본부장이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목소리도 좋고 마스크도 괜찮네요. 연기력이야 어떨지는 몰라도 제대로 된 스타일리스트만 붙여도 팬덤 만드는 건 일도 아니겠어요.”
구성철 실장도 그 말에 동의했다.
“올해 16살이니까 나이도 아주 좋아.”
하지만 역시나 강지영 본부장이 한 가지 걱정거리를 말했다.
“그나저나 남자치고는 좀 작은 게 마음에 걸리네요. 16살에 160cm 정도면 다 커도 키가 좀 작을 거 같은데······”
구성철 실장이 고개를 젓는다.
“본부장이 잘 모르나 본데 남자애들은 늦게 크는 애들도 흔해. 이제 중학교 3학년이니 앞으로 확 클걸?”
하지만 난 강지영 본부장의 말이 맞다는 걸 안다.
“그래서 말인데 하루를 성장 클리닉에 데려가서 직접 확인해보는 게 어떨까 합니다만.”
강지영 본부장이 말실수했다는 듯 두 손을 젓는다.
“아 이거 제가 괜히 걱정을 끼쳤나? 미안해요.”
“아뇨. 제가 들어도 충분히 일리가 있는 것 같아서요. 일단 검사라도 좀 받아보고 싶습니다.”
강지영 본부장이 미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검사받아보고 문제가 있으면?”
역시 감이 살아 있네.
“제 눈을 믿으시면 투자를 좀 하셔야죠.”
키?
요즘은 돈만 있으면 키울 수 있다.
살아 있는 축구의 신 바르셀로나의 리오날 메시.
그도 집중적인 성장 치료 덕에 키를 키울 수가 있었으니까.
“알았어요. 검사하고 문제 있으면 성장 클리닉에 들어가는 비용을 모두 회사에서 지불할게요. 됐죠?”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대신에 해줘야 하는 게 있지 않아요?”
더는 피할 수가 없는 선택지가 눈앞에 나타나 버렸다.
팀장 승진.
일반적인 직장인이라면 날 듯이 기분 좋은 일일 거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엔 거대한 태풍의 소용돌이가 놓여 있었다.
강감찬 대표가 없는 상태의 두 파벌의 충돌이 극심해지고 있었고.
하루를 영입하기 위해 내건 제안이었지만 내 배우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굴렁쇠를 지키기 위해선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할 시기가 왔다.
‘해 보자. 윤호야.’
난 단단히 각오를 다지고 강지영 본부장을 향해 말했다.
“팀장 승진. 받아들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