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화
151.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1
퍼억.
“끄으윽!”
딱 한 대만 때렸을 뿐인데 박현우는 정신을 놓고 바닥에 대자로 뻗어 버렸다.
“······내가 좀 심했나?”
우연희와 양은비에게 하려던 짓을 들었기에 주먹에 힘이 조금 세게 들어가 버렸나 보다.
“인마 정신 차려. 난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정신을 잃은 박현우의 뺨을 툭툭 건드리자 박현우의 고개가 좌우로 힘없이 흔들렸다.
이내 박현우의 눈이 번쩍 떠졌다.
“으으으 그······ 그만.”
몸을 반쯤 일으킨 박현우는 두 발로 땅을 밀며 뒤로 물러났다.
엉금엉금.
공포에 질린 박현우는 소파에 등이 닿을 때까지 도망쳐갔다.
박현우가 두 손을 저으며 그만하라고 하고 있었지만 전혀 불쌍하다는 감정은 들지 않았다.
내가 없었다면 우연희와 양은비가 어떤 심한 일을 당했을지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현재 기분으로 더 때렸다간 송장을 치울 것 같아 가까스로 분노를 억눌렀다.
경고는 되었으니 이제는 목표로 한 일을 할 차례였다.
“폰 내놔 봐.”
“포 폰이라니?”
“우연희랑 양은비랑 찍은 사진. 네가 가지고 있다며?”
소파에 기댄 박현우가 다급히 외친다.
“그 그건 은영이 스타그램에 있어! 진짜야! 내 내가 보여줄게!”
박현우가 얼굴을 찌푸리며 폰을 꺼냈다.
“시끄러워. 그러다 전화하면 어떻게 하려고. 폰 내놔.”
“여 여기.”
나는 박현우에게 폰을 받은 뒤 비밀 계정을 물었다.
“EY100479.”
“은영 천사 친구?”
“······어.”
“천사가 다 죽었냐?”
투덜대는 내 말에 박현우가 고개를 푹하고 숙였다.
그리고 링크를 누르는 순간.
장은영의 비밀 계정이 드러났다.
* * *
[전송이 완료되었습니다.]
[정윤호 매니저 : 이 실장님. 방금 넘긴 자료는 우선 먼저 보시기 바랍니다. 나머지는 가서 말씀드릴게요.]
이동민 실장에게 장은영의 비밀 계정 주소와 박현우의 폰에서 캡처한 사진을 보냈다.
폰을 돌려받은 박현우는 옆구리를 만지작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프냐?”
“아 아니.”
“아니······라고? 위아래를 몰라보는 걸 보니까 많이 아픈 것 같은데?”
말이 짧아지기에 주먹을 살짝 쥐었다.
우두둑하는 소리에 박현우의 말투가 단번에 변했다.
“아닙니다. 형님.”
“아무튼 오늘 일은 서로 없던 일로 하자. 내가 얼굴은 안 다치게 신경 썼잖아. 안 그래?”
박현우의 눈빛에 언뜻 고민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비굴하게 웃으며 시선을 회피했다.
“눈알 굴리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상황 파악은 빠르네. 앞으로도 오늘 일은 잊는 게 좋을 거야.”
“예! 형님!”
대답은 빠르지만 난 녀석을 믿지 않는다.
이 자리만 벗어나면 오늘 일을 200% 정도 부풀려서 회사에 일러바치겠지.
하지만 애당초 그게 내가 바란 거다.
가만히 당하고 있지는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수고를 덜 수 있으니까.
에이스 엔터가 귀찮게 굴 수도 있겠지만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해결책이 있었고.
그때 내 까톡을 확인한 이동민 실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괜찮냐? 윤호야?
“예.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제 걱정은 하지 마시라고 했잖아요.”
-야 어떻게 걱정을 안 해! 아는 형사에게 연락해서 찾아갈까 하던 참이었다고!
이 정도로 걱정할 줄은 몰랐는데.
이동민 실장에게 죄송하다고 한 뒤 한 가지를 부탁했다.
“실장님. 일단 제가 드린 사진은 본부장님한테 알리지 말고 가지고만 있으세요.”
-왜? 이거면 충분히 가수 1실과 골든로드를 뒤엎을 수 있을 것 같던데? 본부장님도 적극적으로 나서실 거고.
“자세한 건 가서 말씀드릴게요.”
골든로드의 리더 장은영이 한 짓을 알게 된 이상 그냥은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보낸 자료를 강지영 본부장이 보고 받는다면 가수 1실을 뒤집고 장은영과 골든로드에게는 엄청난 징계를 할 게 뻔했다.
대신에 ‘스타 패치’의 비밀 계정 보도 사건도 역사에서 사라지겠지.
‘그렇게는 못 하지.’
장은영이 우연희와 양은비를 건드리려고 한 이상 이 사건을 이대로 마무리할 생각은 없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무슨 짓을 하려고? 말을 해봐!
“가서 말씀드릴게요. 끊습니다.”
내 뒤편에는 눈치를 살피는 박현우가 있었기에 더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전화를 끊은 뒤 주춤대는 박현우에게 말했다.
“일단 은영이부터 불러내.”
“은영······이를요?”
“싫으면 내가 7번 방으로 들어가서 다 뒤집어엎고.”
박현우의 눈빛에 여러 명이 덤비면 ‘혹시 날 때려눕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어리는 게 보인다.
“눈알 굴리지 마라. 너희 멤버들이 다 덤벼도 10초 컷이니까.”
한 발 앞으로 슬쩍 다가가자 박현우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외쳤다.
“으 은영이 불러낼게요. 잠시만요!”
박현우가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장은영을 불러냈다.
-왜?
“으뇽~. 우연희랑 양은비가 화장실에 들어가서 안 나와서. 은영이 네가 좀 와 봐야겠다. 다른 애들 데리고 오지 말고. 너랑 얘랑 둘이서 할 이야기도 있지 않아?”
-호호. 알았어. 바로 갈게.
으뇽?
도룡뇽도 아니고.
이 와중에 혀 짧은 말투로 애칭을 부르는 걸 듣고 있으니 먹은 것도 없는데 위가 쏠리는 기분이다.
* * *
또각또각.
구두 소리와 함께 1번 방 앞으로 장은영이 나타났다.
살짝 열린 방문의 틈 사이로 몸에 쫙 달라붙은 드레스를 입은 장은영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 현우랑~. 어디 있어?”
현우랑?
박현우가 신라 시대 화랑도 아닌데 아주 잘들 논다.
“여기 있어.”
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깜짝 놀란 장은영이 뒷걸음질 쳤다.
“다 당신이 여기 왜······?”
난 저항할 틈도 주지 않고 그녀를 방 안으로 잡아끌었다.
“꺄아악!”
비명을 지르며 저항하던 장은영이 소파에 털썩 쓰러졌다.
몸을 일으키며 내게 덤비려던 장은영은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박현우를 발견했다.
“뭐 뭐야? 저 인간이 오빠를 때렸어? 다친 거야?”
박현우가 그녀를 속여 불러냈지만 남자 친구를 탓하기는커녕 날 원망하다니.
열녀비라도 세워줘야겠다.
방문을 닫고는 장은영에게 말했다.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고. 폰 내놔.”
“당신이 뭔데 내 폰을 달라 말라야?”
“네 남친이 다 불었으니까 시건방 떨지 말고 내놓으라고. 우리 애들 사진만 지우면 돼.”
장은영이 박현우를 힐끗 쳐다본다.
박현우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그녀의 시선을 외면했다.
순간 장은영의 눈에 서려 있던 독기가 더욱 짙어졌다.
“오빠. 일단 경호원들부터 불러.”
“으 은영아. 이 방에는 경호원이 안 와. 저 인간이 이미 손 썼어.”
“장난해? 그러면 경찰이라도 불러! 맞았으면 고소해야 할 거 아냐!”
박현우가 내 눈치를 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아 아니. 그냥 폰 내 줘.”
“아 왜? 고소하면 이 인간 콩밥 먹일 수 있다니까?”
그게 통하겠니?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데.
박현우가 내 눈치를 힐끔 보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좀! 그냥 주라면 줘! 체리블라썸 사진만 지우면 된다잖아!”
나이스 어시스트.
장은영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결국 폰을 꺼내 들었다.
장은영의 성격에 남친 말은 잘 듣는 게 신기하다.
비밀 계정에 접속한 장은영은 액정을 내 쪽으로 돌려 우연희와 양은비가 있는 사진을 보였다.
“여기 사진 3개 보이지? 이것만 지울 거야.”
ZIZAK 멤버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 3장.
별 게 아니긴 하지만 함께 있는 ZIZAK 멤버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술에 취해 있었다.
이대로 공개했다간 자칫 추문에 싸일 수도 있는 수위였다.
“지워.”
“알았다고!”
장은영이 사진을 지우고 폰을 내게 내밀었다.
사진이 삭제되었다는 걸 확인한 후 다시금 내 다이어리를 확인했다. 역시나 이틀 후에 일어날 스타 패치의 폭로 일정은 그대로.
안도한 나는 두 사람을 향해 손을 저었다.
“됐어. 이제 네 남친 데리고 돌아가도 좋아. 더 혼나기 싫으면 가소로운 수작 그만두고.”
장은영이 날 표독하게 쳐다보다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오빠. 가자.”
“어······ 어.”
박현우를 부축해 나가는 장은영이 뾰족한 말투로 내게 말한다.
“두고 봐. 이 일. 절대로 안 잊을 테니까.”
장은영이 씩씩거리며 문밖으로 나가자 입구 쪽에 한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너희들 보기 좋다?”
언제 왔는지 1번 방 앞에 팔짱을 낀 김종훈이 서 있었다.
“김종훈······ 선배? 선배가 여긴 왜?”
경계를 풀지 못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김종훈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나? 윤호 쟤랑 일행.”
상황을 파악한 장은영의 눈에 다시 독기가 어렸다.
“선배도 한패라 이거지?”
“한패라······. 뭐 그렇긴 하지. 그런데 장은영. 뒤지고 싶냐? 어디서 그렇게 선배를 꼬나봐?”
그러고 보니 김종훈도 한 성깔 하는 거로 유명했었지.
장은영은 슬그머니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더니 자기 남자 친구와 함께 빠르게 사라져갔다.
두 사람이 사라지는 걸 보던 김종훈이 내 곁에 달라붙었다.
“바로 나가자. 빨리.”
김종훈의 표정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두 사람이 돌아가서 경찰을 부르기라도 하면 여러 사람이 곤란해질 테니까.
“걱정하지 마. 경찰 안 불러. 아니 못 불러. 불러봐야 쟤들이 더 곤란해질걸?”
“속 좋은 소리 한다. 쟤들이 그걸 판단할 머리가 있으면 이런 사고도 쳤겠냐?”
설령 신고를 당해도 몰래 나갈 방법이 있지만 김종훈이 워낙 성화라 못 이기는 척 그를 따라나섰다.
* * *
회사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이동민 실장이 급히 다가왔다.
“너희들 괜찮냐? 다친 데는 없고?”
“괜찮다니까요.”
이동민 실장이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하더니 곧장 내 목에 헤드락을 걸었다.
“야 인마! 내가 얼마나 걱정한 줄이나 알아? 요게 이쁘다 이쁘다 했더니 갈수록 뺀질거리기만 하고!”
“시 실장님! 저 목 부러져요. 아 아······.”
“안 부러져! 너 때문에 내가 수명이 준다 줄어!”
한참이나 잔소리를 하던 이동민 실장이 김종훈에게 자리를 비켜달라 말했다.
“예. 그러세요. 전 선우나 보러 갈게요.”
김종훈이 웃으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단둘만 남자 이동민 실장이 진지하게 묻는다.
“그래. 어떻게 할 거냐?”
“일단 비밀 계정에서 저희 애들 사진은 지웠습니다.”
“잠깐. 그러면 은영이 계정은 그대로야?”
“예. 저희 애들 사진만 지웠습니다.”
이동민 실장의 눈썹이 미묘하게 찌푸려졌다.
“그러면 설마 걔들 스캔들이 그냥 터지게 두려고? 그래서 본부장님한테 사진 보내지 말라고 한 거냐?”
“예. 그러려고요.”
잠깐 고민하던 이동민 실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다. 이만하면 우리도 할 만큼 했지 뭐.”
“그리고 실장님은 모른 척하십시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동민 실장이 피식 웃는다.
“쪽팔리게 실장이 뒤로 숨는다고? 턱도 없는 소리 하지 마.”
새삼 내 주위에는 좋은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도 피해를 볼지 모르는데 날 먼저 생각해주는 상사도 있고.
이동민 실장과 함께 지하 녹음실로 향하며 다이어리를 확인했다.
‘역시 장은영. 그럼 그렇지. 네가 그 계정을 지울 리가 없지.’
[에브리데이 V10]
[날짜 : 2020년 6월 16일]
-PM 11:30 골든로드 장은영. 스타그램 비밀 계정 발각 ‘스타 패치’ 기사 대책 회의 5F 소회의실
이제 12시가 넘은 시각.
골든로드의 스캔들이 터지기까지는 이제 24시간도 남지 않았다.
* * *
압구정에 있는 골든로드의 숙소.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골든로드 멤버들이 붉은 이태리제 소파에 둘러앉아 있다.
다섯 명의 멤버들은 클럽에 간 복장 그대로 씩씩대고 있었다.
정윤호에게 혼이 난 박현우가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모임을 파투낸 까닭이다.
“아 짱나! 은영 언니. 이대로 가만히 있을 거야? 정윤호 그 인간. 보고만 있을 거냐고?”
막내 윤지희가 날이 잔뜩 선 말투로 묻는다.
장은영은 올이 나가 버린 스타킹을 벗으며 대답했다.
“가만히 있긴 뭘 가만히 있어!”
“그럼 어떻게 하려고? 차 실장한테 이르게?”
장은영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당연한 거고.”
“그러면 또 뭘 어쩌려고?”
장은영이 메인 보컬인 박수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수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날 봐? 어쩌라고?”
“너 체리블라썸 스타일리스트 연락처 알지?”
“어.”
“전화번호 좀 줘 봐.”
순간 박수진이 씩 하고 웃는다.
“그럼. 그렇지. 우리 언니가 그냥 당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지?”
장은영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하면 체리블라썸 걔들 활동 오래 했어. 그치?”
그 순간 골든로드 멤버들의 얼굴에 웃음이 퍼져 나갔다.
“역시 은영 언니가 우리 리더라니까.”
“장은영을 국회로!”
“호호호. 얘들도 참.”
이럴 때만 단합이 잘되는 골든로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