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화
150. 비밀 스타그램 5
클럽 BLUE의 입구를 보자 자연스레 한숨이 흘러나왔다.
과거 최준우가 사고를 쳤던 그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난 탓이다.
“왜?”
“아니. 그냥. 예전에도 한 번 왔었거든.”
“아. 최준우 사건?”
“너 그걸 어떻게 알아?”
“선우가 말해주더라.”
람보르기니의 운전석에 앉은 김종훈은 이미 나에 관해 모르는 게 없었다.
“거참. 지하실에 박혀서 왜 안 나오나 했더니 곡은 안 만들고 내 이야기만 듣고 있었어?”
“흐흐. 몇 안 되는 친구가 생겼는데 알아는 봐야지.”
“니가 스토커냐?”
김종훈이 피식 웃는다.
“그러는 넌? 너도 나 스토킹했잖아.”
지난번 호텔로 자신을 구하러 왔던 때를 말하는 김종훈이다.
난 헛기침을 하고 대답을 피한 뒤 호텔 입구에서 내렸다.
김종훈이 차 발렛을 맡기고 난 뒤 그와 난 클럽 입구가 아닌 호텔 데스크로 향했다.
그곳에 지하 클럽으로 향하는 별도의 출입구가 있었으니까.
탑 아이돌인 김종훈이 나타나자 먼저 온 호텔 고객들이 웅성대는 소란이 잠깐 일었다.
그 순간 가슴팍에 강무정 부장이라는 이름표를 붙인 40대의 호텔리어가 뛰쳐나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VIP 룸 있죠?”
“물론입니다. 오래간만에 오셨으니 없어도 만들어야죠.”
김종훈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늘 하던 대로 아무도 들이지 마세요.”
“물론입니다.”
강무정 부장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 날 힐끗 쳐다본다.
“함께 오신 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알려고 하지 말고 안내나 해요.”
“아 예. 제가 실수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우연희가 호텔에 오면 찾으라고 한 사람이 바로 이 사람 강무정 부장이었다.
지역 경찰서장과 호형호제하면서 클럽 BLUE의 VIP를 관리하는 매니저이고.
강 부장을 따라가자 호텔에서 지하 클럽 BLUE로 내려가는 별도의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김종훈이 주머니에서 5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 들었다.
“오늘 ZIZAK 애들 왔다면서요?”
강무정이 돈을 받으며 대답했다.
“예. 골든로드 멤버들과 함께 있습니다.”
잘됐다 싶었다.
안 그래도 장은영도 손봐줘야 했으니까.
슬그머니 스마트워치의 녹음 기능을 켜는 사이 김종훈이 5만 원짜리 2장을 더 꺼내 들며 질문을 이어갔다.
“오늘 ZIZAK 멤버들이 체리블라썸과 약속을 잡았다던데 맞습니까?”
강 부장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런 것까지 말씀드리기는 좀······.”
그 순간 김종훈이 수표를 몇 장 더 꺼내 들었다.
“선택 잘하세요. 제가 발길 끊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강무정 부장이 어색하게 웃으며 수표를 받았다.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무슨 짓을 하려고······.”
“그것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시잖습니까? VIP는 뭐든 가능하다는 것을.”
클럽 BLUE의 VIP 룸에는 CCTV도 없기에 막말로 사람이 죽어 나가도 알 수가 없다.
강 부장의 말을 듣는 순간 다시 한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띵!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시끄러운 클럽의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강무정 부장은 무전기로 연락을 주고받더니 우릴 안내했다.
“늘 가시던 1번 방이 비어 있다네요. 그쪽으로 가시죠.”
클럽 BLUE에는 플로어에서 노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통유리가 있는 방과 사방이 벽으로 방이 존재한다.
김종훈은 1번 방은 사방이 벽으로 된 방이란 걸 귀띔했다.
1번 방에 도착하자 김종훈이 입구에서 다시금 돈을 건넸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들어오지 마세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애들한테 긴급 콜 사인 들어와도 무시하라 단단히 일러두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강무정 부장은 수표를 받아들며 허리를 굽혔다.
“술은 늘 드시던 것으로 내오겠습니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강무정 부장이 허리를 굽히고 나가며 문을 닫았다.
순간 VIP 1번 방은 마치 녹음실 부스 안으로 들어온 것처럼 조용해졌다.
동시에 김종훈의 쌍욕이 터져 나왔다.
“XX 놈들이······.”
김종훈이 씩씩거리며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종훈아.”
낮은 내 목소리에 김종훈이 고개를 돌렸다.
“술 들어오고 나면 잠깐만 자리 좀 비워 줘.”
“뭐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잘 생각하고 처리해. 니네 회사 이런 뒤처리는 잘 못 한다던데.”
더러운 일을 처리하는 데는 나름 전문가가 필요하다.
굴렁쇠에서는 김동수 정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지만 더러운 일은 하지도 말고 감추지도 말자는 강감찬 대표의 뜻대로 돌아가는 터라 외부에는 뒤처리가 서툰 회사로 알려져 있었다.
내가 씩 웃자 김종훈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하긴 죽으려던 나도 구한 넌데 알아서 잘하겠지. 난 플로어 구경이나 할 테니까 마무리되면 전화해.”
“오케이. 그리고······. 고맙다.”
“별말을 다 한다. 아 그리고 여기 CCTV는 없는 거 알지? 방음도 잘 되고.”
“당연히.”
“어련하려고.”
돈 많은 친구가 한 명 생기니 여러모로 편리했다.
문이 열리고 웨이터가 술을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김종훈은 그와 함께 나섰다.
다시금 조용해진 방 안에서 난 우연희의 폰을 꺼내 들고 문자를 보냈다.
7번 방에 있을 박현우에게.
* * *
시끌벅적한 음악이 내부 스피커로 울리는 VIP 7번 방.
“자자! 마셔! 쭉쭉!”
“호호호! 원샷!”
ZIZAK 멤버들이 골든로드 애들과 떠들썩하게 놀고 있었다.
메인 상석에는 리더인 박현우가 골든로드의 리더 장은영을 껴안은 채 앉아 있었다.
박현우가 빈 글라스에 양주를 따르며 입을 열었다.
“자자. 다들 잠시만 집중. 오늘 물주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단다.”
장은영이 이내 절반 정도 채운 글라스를 들어 올렸다.
“오늘 다들 고생 많았어. 즐겁게 놀되 내일 스케줄 있으니까 과음은 하지 말고.”
“에이. 술 한잔에 무슨 과음까지. 우리가 어디 신참이야?”
“정 안 되면 펑크내면 되는 거지 뭔 걱정이야?”
벌써 데뷔한 지 몇 년이나 된 ZIZAK과 골든로드였기에 이 정도 음주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반응이었다.
“오빠. 우리는 오늘 컴백했거든? 펑크는 절대 안 돼.”
박현우가 피식 웃으며 장은영의 코끝을 꼬집었다.
“야. 컴백 날 여기로 날 부른 건 누구더라?”
“아 몰라. 하여간 3잔 이상은 안 마실 거야.”
“물주님 마음대로 하셔야지. 네~ 알아서 받잡겠사옵니다.”
박현우가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머리를 숙였다.
장은영이 킥킥대며 박현우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에게 안긴 채 윤지희를 쳐다봤다.
“막내. 넌 한 잔만 마셔. 클럽 처음이잖니.”
윤지희가 피식 웃는다.
“처음은 무슨 몰래 몇 번은 왔었어. 그리고 언니. 나 소주를 궤짝으로 마셔도 멀쩡해. 양주 한 잔가지고 끄떡도 안 해.”
“기집애가 뭔 궤짝 타령이야?”
“언니만 하게? 언니는 예전에 일진 시절 때······.”
윤지희가 장난스레 하던 말이 장은영의 짜증에 끊겨버렸다.
“야! 너 그딴 소리 할 거면 숙소에나 가!”
“왜 열을 올리고 그래? 지난 일인데. 암튼 미안. 건배나 해. 쨍.”
박현우가 키득대며 두 사람의 다툼을 말렸다.
그때였다.
위잉!
박현우의 폰이 울렸다.
“뭐지?”
폰을 들어보니 우연희에게서 온 문자였다.
[저예요. 우연희. 강 부장이 급한 일이 있어서 VIP 구역까지 데려다주고 사라졌어요. 1번 방 앞인데 7번 방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문자를 본 박현우가 군침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군데?”
“우연희.”
장은영이 뽀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애들 보내지 왜 오빠가 가?”
“야. 괜히 남 시켰다가 소문나게? 걱정하지 마. 가서 조용히 데리고 올게.”
박현우가 장은영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장은영이 피식 웃으며 혀 짧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알았어. 빨리 데리고 와?”
박현우가 씩 웃으면서 일어나며 멤버들에게 준비하라 일렀다.
“인성이랑 상준이는 우연희랑 은비 데리고 오면 사진 찍을 준비 해. 알았지?”
같은 멤버인 최인성과 차상준이 음흉하게 웃으며 잔을 내려놓았다.
“예. 잘 준비하고 있을게요.”
미리 계획된 대로.
박현우가 우연희와 양은비를 데려오면 7번 방에서 사진을 찍을 생각이었다.
같은 소속사인 골든로드가 있었지만 그중 아무도 체리블라썸이 당할 일을 신경 쓰지 않았다.
골든로드는 체리블라썸이 당장이라도 눈앞에서 사라지기를 바랐으니까.
박현우는 시간이 조금 걸릴지도 모른다고 말한 뒤 7번 방을 나섰다.
* * *
1번 룸의 방문을 살짝 열어둔 채로 박현우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뚜벅뚜벅.
얼마 지나지 않아 또각대는 구두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 X은 어딜 간 거야? 이 앞에 있다더니.”
박현우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문 앞에서 들려왔다.
어두운 조명에 비친 박현우를 본 순간 녀석의 옷깃을 붙잡아 방 안으로 끌어들였다.
박현우가 휘청대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헉! 누 누구?”
곧장 문을 걸어 잠그고 박현우를 벽에다 밀쳤다.
쾅!
“끄으으윽! 뭐 뭐야?”
방음이 꽤 잘 되는 공간이라 밖으로 소리가 새나갈 염려는 없다.
“누군지 몰라도 사람을 잘못 본······”
박현우가 입을 연 순간 녀석의 복부에 첫 번째 주먹을 날렸다.
뻐억!
주먹에 복부를 맞은 박현우의 몸이 새우처럼 앞으로 꺾여버렸다.
“커헉!”
UFC 매니아다 보니 복근에서 느껴지는 반발감이 꽤 있었다.
“제법 단단한데? 아 맞다. 너 운동했다고 했었지?”
두 번째 주먹을 복부에 꽂으려는 순간 박현우가 두 손을 들어 주먹을 막았다.
빡.
뼈와 뼈가 부딪치는 소음이 울려 퍼졌다.
“어쭈? 이걸 막네? 그러면 이번에는 제대로 간다.”
난 조금 더 강한 힘을 실어 다시금 주먹을 꽂아 넣었다.
콰직!
연속되는 주먹에 박현우의 가드가 풀렸다.
그러자 내 주먹이 다시금 녀석의 복부에 꽂히기 시작했다.
퍽퍽.
“끄으윽!”
아무리 운동광이니 뭐니 하더라도 아마추어 수준.
이 정도 수준으로는 내 주먹을 못 막는다.
복부와 옆구리에 각각 한 방씩의 정타를 맞은 녀석이 무릎을 바닥에 꿇었다.
“끄으으윽. 너 도대체 뭐야?”
고통에 신음하는 박현우를 보며 손에 든 쪽지를 내밀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딴 쪽지를 보낸 거냐? 박현우.”
그제야 내 얼굴을 알아본 박현우가 숨을 헉헉대며 인상을 찌푸렸다.
“잠깐만 헉헉. 설마 너는 체리블라썸 매니저?”
“잘 아네.”
박현우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로 욕설을 퍼부었다.
“X발! 말단 매니저 새X가 미쳤나 진짜! 다 당장 우연희 불러와!”
“그래. 계속 떠들어 봐.”
박현우는 분위기 파악을 못 했는지 또다시 협박해 왔다.
“이 새X야! 넌 이제 인생 종 쳤어! 우리 회사가 어떤 덴데 겁도 없이 연예인을 패?”
빡!
난 불량한 태도를 보이는 박현우의 복부에 다시 한번 주먹을 꽂아 넣었다.
“꺼억!”
박현우가 복부를 부여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끄으으. 이 미친놈이······.”
그런 난 박현우를 보며 다시 한번 친절하게 말했다.
“계속 정신 못 차리지?”
얄미우니까 다시 한 대 더.
퍼억.
박현우는 더는 안 되겠다는 듯 앉은 채로 뒷걸음질을 쳤다.
“자 잠깐. 잠깐만! 마 말로 해! 말로!”
“어디서 개가 짖나?”
우연희랑 양은비에게 하려고 한 짓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약과였다.
박현우가 다급히 두 손을 젓는다.
“아 아냐! 그건 진짜 오해야! 아무 짓도 할 생각 없었다고! 그냥 은영이 부탁으로 겁 좀 주려고 한 것뿐인데······.”
장은영이 시킨 일이라고?
거짓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놈들이라지만 통증으로 일그러진 녀석의 얼굴에서 진심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모두 장은영이 꾸민 계획이란 뜻인데?
감히 쌍으로 우리 체리블라썸을 노려?
그때였다.
박현우가 갑작스레 곁에 있던 테이블 밑으로 손을 뻗어 붉은 버튼을 눌렀다.
삑 하는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경호원들을 방으로 부르는 긴급 콜 사인이었다.
“크크크!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아냐?”
“뭔데?”
“가드 부르는 소리. 넌 이제 뒤졌어. 감히 매니저 새X가 연예인 몸에 손을 대?”
복부를 움켜쥔 박현우가 킥킥대며 웃는다.
조만간 자기를 도울 사람들이 들이닥칠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서.
그대로 몇 대 더 패버릴까 하다 녹음하는 중이란 걸 깨닫고 슬그머니 미끼를 던졌다.
“뒤질 때 뒤지더라도 그전에 하나만 묻자. 연희를 불러서 뭘 하려고 그랬는지.”
박현우가 거침없이 말한다.
“킥킥. 이거 병X 아냐? 진짜 몰라서 묻냐? 남자들 있는 방에 여자가 찾아오면 뻔한 거지.”
“그랬다······ 이거지?”
“그래! 은영이 부탁이 아니더라도 체리블라썸 정도면 데리고 놀만 하지. 아 근데 이것들은 왜 안 와?”
박현우가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생각보다 가드들이 늦게 오는 터라 불안한 기색이다.
당황한 기색을 띠는 박현우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걔들 안 와. 오지 말라고 미리 말해뒀거든.”
“뭐? 어 어떻게?”
“돈이 참 좋더라? 안 그러냐? 여긴 돈이면 뭐든 다 되더라고.”
꽉 쥔 내 주먹을 본 박현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리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자 잠깐! 잠깐만!”
“2라운드 시작이다! 이 새X야!”
거친 욕설과 함께 박현우를 향해 거침없이 주먹을 내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