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3화
133. 강하나 영입 3
주차장에 홀로 있던 강하나를 태워 가면서 사정을 들을 수가 있었다.
홀로 남겨진 강하나는 무려 20km나 되는 거리를 걸어가려 했단다.
밤 10시에 지갑도 폰도 없는 여자를 홀로 버려두고 간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남자라고 해도 밤이 되면 얼마나 무서운데!
강하나가 부끄러운 표정을 짓는다.
“어쩌다 보니 회사 험담을 했네요. 창피하게.”
그 말에 잠자코 듣고 있던 이동민 실장이 벌컥 화를 냈다.
“그딴 회사는 험담 좀 해도 돼. 아무리 계약이 6개월밖에 안 남아도 그렇지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강하나가 머리를 긁적이자 이동민 실장이 안 되겠다는 듯 말했다.
“하나 씨.”
“예?”
“혹시 오늘 보컬 테스트 받아 볼 생각 없어?”
“오늘요? 벌써 10시가 넘었는데요?”
이동민 실장이 날 가리켰다.
“그래. 이 친구가 그러더라고. 아이스톤에 강하나라고 노래를 정말 잘하는 연습생이 있다고.”
“예? 절 어떻게 잘 아셨어요?”
미래에서 알고 왔다고는 말할 수 없는 일.
다행히 이동민 실장이 나를 대신해 대답했다.
“원래 엔터 회사들은 싹수 있는 타사의 연습생들에 대해 알음알음 조사해 두거든. 매니저들이 쉬는 날 무슨 이야기를 하겠어? 다 연예인 이야기지. 다른 회사 연습생 중에 눈여겨봐야 할 인재가 있나 들여다보기도 하고.”
강하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오늘 하나 씨 보러 왔거든. 어차피 하나 씨 신사동 숙소가 우리 회사랑 가까우니까 녹음실에서 보컬 테스트 한 번만 해보자고. 테스트하고서 회사에 데려다줄게.”
“저기 테스트라면 혹시······.”
“그래. 잘하면 스카웃하려고.”
뒷좌석에 앉은 강하나가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갑작스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행운인가 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 * *
굴렁쇠 엔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피곤하지 않아요?”
“가난한 연습생이 내세울 건 체력뿐이잖아요. 지금부터 밤을 새워도 괜찮아요.”
회사에서 걱정할지도 모르니 연락이라도 해보라고 폰을 건넸다.
하지만 강하나는 고개를 저었다.
“신경 써 주신 건 감사하지만 안 그래도 돼요.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고.”
처음이 아니라고?
회귀 전 강하나는 과거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었다.
이제야 그 이유가 이해가 간다.
좋았던 기억이 없었으니 말하기 싫었겠지.
‘걱정하지 마. 하나야. 이제는 좋은 일만 있게 해줄게.’
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폰을 집어넣었다.
지하 녹음실로 내려가자 언제나 그렇듯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선우야! 방금 1차 수정 끝났으니까 한번 올려보자.”
“가이드 가수도 없는데 올리긴 뭘 올려?”
“가이드는 내가 하면 되지 뭐.”
“누나. 제발 좀! 누나 목소리 완전 별로거든? 그리고 나 어제부터 한숨도 못 잤어. 이제 좀 쉬자.”
천재 작곡가 방선우와 그의 곡에 가사를 붙이는 장예빈이 티격태격하는 소리다.
현재 두 사람의 시너지는 내 예상을 웃돌아 새로 완성된 곡만 30곡이 넘어간다.
내가 직접 확인했지만 한 곡 한 곡이 모두 음원 올킬을 달성한 것들이다.
체리블라썸이 다 소화하지도 못할 만큼 돈 되는 곡이 쏟아지고 있었기에 가수 2실에는 완전 노다지가 터진 셈이다.
똑똑똑.
노크를 하고 들어가자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실장님! 윤호 형!”
“어머! 두 분이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두 사람이 익숙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지만 뒤따라오는 강하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분은 처음 보는 분 같은데 누구······세요?”
“앞으로 우리와 함께할 가수.”
순간 방선우와 장예빈의 눈이 반달로 휘어졌다.
“윤호 형! 그럼 저희 곡 가이드 불러줄 사람 좀 찾아주시면 안 돼요? 곡은 나왔는데 가수가 없어요. 세리는 너무 바빠서 못 온대요.”
“세리 고게 좀 컸다고 튕기는 거 있죠!”
방선우와 장예빈은 곡을 만들어도 부를 사람이 없다며 투덜거렸었다.
난 한껏 들뜬 두 사람을 진정시켰다.
“니들이 이해해. 세리 말로는 자긴 한창 성장기라서 잠을 많이 자야 해서 어쩔 수 없다더라.”
방선우가 피식 웃는다.
“세리는 성장기 다 끝난 거 같던데요?”
그 말을 들은 장예빈이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세리한테 다 일러줘야지. 선우가 성장 끝났다고 했다고~오.”
“아 예빈 누나. 그러지 마. 세리한테 꼬집히면 얼마나 아픈지 알아?”
세리는 종종 틈을 내서 두 사람이 만든 곡의 가이드 보컬을 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워낙 바쁜 스케줄 때문에 일정을 맞출 수가 없었다.
“가이드는 차후에 하자.”
지금은 강하나를 이동민 실장에게 어필하는 게 먼저니까.
“지금은 하나 씨 테스트가 먼저니까 본인에게 가장 익숙한 곡으로 부르게 할 거야.”
그런데 그 순간 강하나의 입이 열렸다.
“저 가이드도 자신 있는데요.”
난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는 강하나를 만류했다.
“하나 씨. 이거 정식 테스트예요. 가장 익숙하고 연습 많이 해본 곡으로 하세요.”
이왕이면 이미 만든 자작곡으로 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는 걸 간신히 막았다.
기회를 잡으려 하는 사람들은 때론 과한 도전을 한다.
어떻게든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서.
강하나를 영입하기 위해 좋은 말이란 좋은 말은 다 해뒀는데 혹시나 이동민 실장의 눈앞에서 실수라도 하면 어쩔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이동민 실장이 날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 나도 처음 부른다는 거 고려해서 들을 테니까.”
그 말에 난 테이블에 놓인 생수병을 강하나에게 내밀었다.
“하나 씨. 일단 목이나 좀 축이시고 하세요.”
강하나가 생수병을 받아들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내 본능적인 행동을 본 이동민 실장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대체 넌 매니저 안 했으면 뭐 하려고 그랬냐?”
그러게.
그러니 회귀해서도 매니저를 하고 있나?
장예빈은 가사가 적힌 메모 앱을 켜 강하나에게 내밀었다.
“가사는 이걸로 보시고요.”
“예.”
“선우야 일단 곡부터 틀어.”
“알았어. 누나.”
장예빈의 신호에 방선우는 녹음실 스피커로 자신이 작곡한 <이별 아픔>을 틀었다.
바이올린 전주로 시작되는 잔잔하고 서정적인 멜로디 라인이 심장을 두근대게 한다.
역시나 방선우의 곡이다 싶은 순간 강하나는 음악을 즐기며 눈을 감은 채 허밍을 하고 있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바이올린 소리와 강하나의 허밍이 하모니를 이루기 시작했다.
눈 깜빡할 사이에 3분 50초의 시간이 지나갔다.
곡이 끝나자 그제야 강하나가 찬찬히 눈을 뜬다.
그리고 웅얼대며 몇 번 더 가사를 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이제 할게요.”
“하나 씨. 가사를 좀 더 숙지하고 부르는 게 어때요?”
순간 이동민 실장이 끼어들었다.
“지금은 노래 실력보다는 보컬 톤이랑 감성만 볼 거니까 바로 들어보자.”
결국 나도 오케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강하나가 녹음실 부스로 들어갔다.
“선우야. 시작하자.”
“예. 실장님.”
방선우가 녹음된 트랙을 재생시키자 조금 전 들었던 <이별 아픔>이 다시 한번 녹음실에 흘러나왔다.
그리고 연이어 회귀 전 내가 들었던 강하나의 독특한 음색이 녹음실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기 시작했다.
『텅 빈 가슴이 채워지질 않네요.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고운 사포로 심장을 살살 갈아내는 느낌이 이럴까.
심장에서 시작된 간질간질한 느낌이 온몸을 타고 도는 것 같다.
마치 약한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것 마냥.
곁을 슬쩍 쳐다보니 이동민 실장과 방선우는 강하나의 노래에 빠져 있었고 작사가인 장예빈도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와~ 진짜. 마치 수백 번은 차여 본 이별 장인 같은데?”
차여 본 사람이 차여 본 사람의 심정을 가장 잘 아는 거라나.
‘모태솔로 주제에 저런 가사를 쓴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닌 거 같은데······’
난 떠오른 생각을 억누른 채 강하나의 노래에 빠져들었다.
3분 50초의 시간이 지나자 컨트롤 패널에 눌러져 있던 [재생] 버튼이 위로 튀어 오르며 곡이 끝나 버렸다.
딸칵!
부스 안의 강하나가 노래를 끝내고 우리 쪽을 본다.
하지만 모두가 여운에 빠져 있어 입을 열지 못했다.
우리 넷 중 방선우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와! 대박! 진짜 미쳤는데요? 지적할 게 없어요. 생각했던 보이스 컬러는 아닌데 이게 제 생각보다 더 좋은 거 같아요!”
소심한 방선우지만 음악에 대해서만큼은 양보가 없었다.
그 방선우가 이렇게 단언할 정도라면 말 다 한 거다.
팔짱을 끼고 노래를 듣던 이동민 실장도 이젠 하염없이 너털웃음을 짓고 있었다.
“뺄 것도 없고 더할 것도 없고. 이대로 음원을 올려도 되겠다.”
녹음실 부스 안에서는 밖에서 소리를 들을 수 없었기에 강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제 말 맞죠?”
이동민 실장이 무안한 듯 코끝을 찡긋거렸다.
“하여튼 어디서 저런 금송아지를 발견해서는.”
이동민 실장의 영입 허락에 난 강하나를 보며 두 손으로 크게 O자를 그렸다.
그 순간 부스 안에 있던 강하나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강하나가 눈물을 닦으려 애를 쓴다.
하지만 닦는 족족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려 얼굴이 마스카라 범벅이 되고 말았다.
난 녹음실 부스의 문을 열고 들어가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흐흑. 화장 묻으면 잘 안 지워질 텐데······.”
“예비용이니까 괜찮아요. 어서 눈물 닦으세요. 울지 말고.”
내 손수건을 받아든 강하나는 눈물을 닦는 것도 잊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 대리님. 저 진짜 열심히 할게요.”
테스트를 통과했으니 이젠 그녀를 영입할 차례.
앞으로 6개월 동안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이동민 실장도 마찬가지였다.
* * *
이동민 실장은 즉시 아이스톤의 양은철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디션 대책으로 날밤을 세우던 아이스톤 측에서도 일단 만나서 협의를 해보자는 뜻을 밝혔다.
“시간 끌 거 없이 바로 만나보자. 어차피 저쪽 양은철 실장과는 아는 사이니까 이야기만 잘 되면 바로 데리고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동민 실장의 말에 곧장 신사동에 있는 아이스톤 엔터로 향했다.
아이스톤으로 가는 차 안에서 강하나가 자신의 집안 사정을 밝히기 시작했다.
엄마는 김현지라는 분으로 당대의 유명 트로트 가수 ‘김현자’의 카피 가수였고 아빠는 그녀의 매니저라는 걸.
나야 회귀 전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모른 척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동민 실장은 백미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역시 피는 못 속이나 보네.”
강하나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회사에서는 트로트를 한다고 하면 곧바로 앨범을 내준다고 하셨는데 엄마가 엄청 반대하셔서요.”
“왜? 요즘은 트로트도 괜찮은데? 아니 솔직한 말로는 돈은 트로트가 더 돼. 혼자 다 먹을 수도 있고.”
강하나가 고개를 저었다.
“회사에서 밤무대를 뛰게 할까 걱정하세요. 하나뿐인 딸이 그렇게 사는 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못 본다고 하시면서요.”
시대가 변해서 트로트 가수라고 꼭 밤무대를 뛰는 건 아니다.
지방 행사도 많고 트로트 자체 음원 수익도 꽤 되고.
하지만 소속사가 가수의 이미지보다 돈을 우선할 때는 히트곡 하나로 계약 기간 내내 밤무대를 돌게 할 가능성이 높은 것 또한 사실이었다.
밤무대 행사에서 온갖 험한 꼴을 본 강하나의 엄마는 그래서 처음부터 강하나가 가수가 되는 걸 극구 반대했단다.
그나마 아이돌을 한다고 해서 허락을 받았다면서.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신사동 아이스톤 뮤직 엔터테인먼트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댄 순간.
한 사람이 다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하나야!”
출발하기 전 통화했었던 매니저인 양은철 실장이다.
“이 실장님. 밤늦은 시간에 우리 하나까지 데리고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시에 양은철 실장은 급히 강하나에게도 사과했다.
“하나야. 조금 전에는 미안하다. 예슬이 레슨 스케줄이 너무 급해서 일단 이동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넌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고 연락하려 해도 폰은 차에 있고.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괜찮니?”
양은철 실장이 강하나의 위아래를 쳐다보며 다친 데는 없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하지만 양은철 실장이 어떤 인간인지 아는 나로서는 분노를 참느라 애를 써야 했다.
철저히 회사의 편에서 움직이면서 강하나 앞에서만 착한 척하는 인간이었으니까.
강하나가 아무 말이 없자 양은철 실장은 헛기침하며 회사를 가리켰다.
“자 들어오세요.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시죠. 이 실장님.”
“그래. 은철아.”
이동민 실장은 양은철 실장을 알고 있었기에 편하게 대답했다.
“정 대리도 가시죠.”
“예.”
양은철 실장이 먼저 회사로 향했다.
난 그 뒷모습을 보며 심호흡을 시작했다.
이제 강하나를 데려오기 위한 전쟁을 벌여야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