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6화
106. 차트 전쟁 2
회사 앞 커피숍.
전화를 받은 장문기 기자가 달려왔다.
“우리 정 대리가 먼저 보자고 연락을 하다니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혹시 유진 씨에 관한 건가? ”
은근슬쩍 말을 놓는 장문기의 태도가 거슬렸지만 오늘은 내가 아쉬운 처지니 넘어가기로 했다.
장문기 기자가 들뜬 표정으로 태블릿을 펼쳤다.
“체리블라썸의 음원 순위 문제로 제보할 게 있어서 뵙자고 했습니다.”
장문기 기자는 김이 샜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아······. 체리블라썸? 신곡 들어봤어. 잘 빠진 것 같긴 하더라. 그런데 난 기사 값이 좀 비싼데. 알지?”
장문기 기자가 실망한 표정을 짓기에 슬쩍 고삐를 쪼았다.
“TK 엔터가 음원 사재기를 하는 것 같아서 제보하려는데. 이것도 별론가요?”
장문기 기자가 화들짝 놀랬다.
“자 잠깐만. 사재기? TK 엔터가?”
장문기 기자가 자세를 바로 한 채 눈을 번뜩인다.
이제 좀 이야기를 들을 자세가 된 것 같다.
“그런 거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좀 자세히 이야기해 보자고.”
장문기 기자는 회귀 전에도 테디 킴의 음원 조작을 캐기 위해 몇 년에 걸쳐 자료를 모았었다.
그러니 지금쯤 어느 정도 정보는 가지고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테디 킴 아시죠? 그 인간이 이번 쁘띠모의 미니앨범을 프로듀싱했습니다.”
테디 킴의 이름이 나오자 장문기 기자가 움찔거린다.
딱 봐도 알고 있는 눈치다.
하지만 변검이라는 별명답게 빠르게 얼굴색을 바꾼 장문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도통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테디라는 사람이 쁘띠모를 맡은 거랑 TK 엔터의 사재기가 무슨 상관이지?”
일단 시치미를 떼고 정보만 쏙 빼먹으려는 것 같은데.
‘이 양반이 누구한테 덤탱이를 씌우려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미래를 알고 있는 내겐. 가소롭기 그지없는 짓이다.
안 되겠다.
이럴 땐 역시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다.
“장 기자님 정도면 알아들으실 줄 알았는데. 어쩔 수 없네요. 중간 일보 최소혜 팀장님이 기사를 참 잘 쓰시던데. 그냥 거기나 한번 연락해 봐야겠습니다. 살펴 가세요.”
자리에서 일어나자 장문기 기자가 내 팔뚝을 붙잡는다.
“이 친구. 왜 이렇게 성질이 급해? 일단 거기 좀 앉아 봐. 사실 나도 알고 있는 게 좀 있으니까.”
장문기는 애가 닳은 목소리로 다급히 외쳤다.
진즉에 그렇게 말하지.
“확실하지 않아서 그랬어. 하여간 좀 앉아 봐!”
난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장 기자님이 가진 소스는 뭡니까?”
장문기 기자는 자기가 먼저 말하는 게 께름칙한 듯 망설였지만 결국에는 정보를 불기 시작했다.
“난 테디 그놈이 거래하는 업체가 어디인지 알아. 예전부터 취재했지만 놈이 미국으로 튀는 바람에 취재를 중단했지.”
대박이다.
그런 핵심 정보라면 비싸게 굴만했다.
“그쪽이 가진 정보는 뭐지?”
먹튀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장문기 기자가 날 노려본다.
“이걸 좀 보시죠.”
난 스트리밍 조회 수가 급격히 변한 구간에 관한 자료를 건넸다.
거기에 더해 회귀 전 장문기가 보도했었던 ‘테디 킴의 음원 조작 사건’에 관여된 그룹들을 언급했다.
“이것 이외에도 빅스타 엔터의 럼블로즈 예화의 N.GO가 테디의 순위 조작에 관여되어 있습니다.”
순간 장문기 기자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본인만 안다고 생각했을 텐데 허를 찔린 표정이다.
“크흠······ 마 많이 아는군. 걔들은 잔챙이들이니까 큰놈만 잡는 게 좋을 거 같네.”
장문기 기자는 쁘띠모에 집중하는 게 좋겠다며 보완 취재를 약속했다.
“그나저나 정 대리는 따로 정보원이라도 있나? 이런 고급 정보가 술자리에서 돌거나 하지는 않을 텐데?”
난 말 없이 웃음만 지었다.
회귀자라는 사실을 밝힐 수는 없고 밝혀봐야 믿지도 않을 게 뻔한 노릇이니까.
“뭐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것 같은데 대신 나중에 기사 하나만 받지. 특종으로.”
“생각해 보고요.”
“어허! 내 밑천 탈탈 털어갔으면 그 정도는 해줘야지.”
묵혀서 써먹으려는 기사를 빼냈으니 값을 내라는 거다.
“알겠습니다. 이번 일 잘 끝내주시면 기삿거리 하나 드리죠.”
“큰 거로.”
“아 거참 질기시네. 알았어요! 큰 거.”
장문기 기자의 얼굴에 기대가 어리기 시작했다.
* * *
음악방송인 MBS <쇼! 음악센터!>의 컴백까지는 앞으로 5일 남았다.
그 탓에 TK 엔터의 가수실은 비상 체제로 돌아가는 중이다.
곡의 승패는 앨범을 발매하고 2주 안에 결정 나니까.
회사 숙직실에서 잠시 눈을 붙인 마동팔이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정돈하며 가수 1실로 향했다.
“다들 수고 많다. 이것들 마시고 해라.”
마동팔은 탕비실에서 뽑아온 캔커피와 에너지 드링크가 든 봉지를 넘기며 직원들을 격려했다.
축 늘어진 직원들은 음료수를 받아들며 감사 인사를 한다.
“감사합니다. 본부장님.”
“그래. 피곤하겠지만 조금만 더 버티자. 월말에는 1실 전원에게 보너스 확실히 쏴 줄 테니까.”
마동팔은 유진명 홍보팀장에게 향했다.
그런데 유진명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유 팀장. 왜 그리 표정이 어두워? 무슨 일이야?”
“체리블라썸 너튜브 공식 뮤비가 이제 80만을 넘었습니다.”
“우리 애들은?”
“이제 막 50만 넘겼습니다.”
쁘띠 엔젤이라는 팬덤이 있는데도 조회수 차이가 30만이나 나다니.
“골치 아프네. 도대체 이유가 뭐야?”
유진명이 말없이 굴렁쇠 엔터의 너튜브 채널의 주소를 링크했다.
[체리블라썸 커버 영상 2탄 (FEAT. 정유진 정미소 그리고 얼짱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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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ㅋㅋ. 2탄은 매니저까지 출연했네.
-역시 정유진. 춤 선 완전 사기다. 연기에 댄스에 얼굴에 몸매까지. 인생 참 불공평하네.
-아 미소 귀염 뽀짝.
-ㅋㅋㅋ 미소 좀 봐. 인형 같다. 짧은 팔다리로 추니까 엄청 귀엽다.
-평생 소장각.
-근데 얼짱 매니저는 춤 못 춘다. ㅋㅋ. 두 사람이랑 너무 비교된다.
-그래도 열심히는 추네.
-박선녀 쌤 매니저한테 춤 못 춘다고 화내는 것 좀 봐. ㅋㅋ.
“굴렁쇠에서 계속 커버 영상을 올립니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반응이 좋습니다.”
마동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유진명 홍보팀장의 말대로 생각보다 댓글 반응이 좋았으니까.
“정윤호 저 자식은 매니저란 놈이 별짓을 다 하는군. 그런데 어제 올린 영상 조회수가 벌써 50만이라고?”
“예. 정유진 팬카페랑 체리블라썸 공식 팬카페에서 어찌나 퍼 나르는지 단숨에 50만을 찍더라고요. 영상이 재미있기도 하고요.”
으드득!
이빨이 으스러질 정도로 꽉 깨무는 마동팔의 모습에 직원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눈이라도 마주쳤다가는 불똥이 튈 것 같았으니까.
“빌어먹을······.”
거금을 들인 뮤직비디오를 연속으로 공개했는데도 차이가 나버렸다.
‘도대체 테디 이 자식은 뭘 하는 거야? 너튜브도 신경 써야 한댔는데 음원만 신경 쓰는 거 아냐?’
마동팔이 테디 킴에게 항의 전화를 걸기 위해 폰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그때 유진명 홍보팀장이 핏기가 가신 표정으로 재차 외쳤다.
“보 본부장님.”
“왜? 또?”
“그 그게 Hurry Up!이 멜랑차트 3위까지 올라왔습니다.”
“뭐? 어떻게?”
유진명이 고개를 저었다.
당황한 마동팔은 홍보팀을 바라보며 외쳤다.
“다들 기자들에게 전화부터 돌려! 앞으로 TK 엔터에서 기삿거리라도 받고 싶으면 쁘띠모 기사로 도배를 하라고 전해!”
홍보팀 직원들이 다들 기자들에게 전화하려 허둥거렸다.
그 순간 마동팔이 다시 한번 외쳤다.
“전화만 하지 말고 뛰어나가서 기자들 직접 만나! 밥을 사 먹이든 술을 사 먹이든 어떻게든 하란 말이야!”
“에!”
홍보팀원들은 벌떡 일어나 사무실을 뛰어나갔다.
씩씩대던 마동팔은 홍보팀의 사무실을 떠나 자기 방으로 향했다.
딸칵!
문을 걸어 잠근 마동팔은 테디 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테디 이 새X야! 너 지금 삥땅치는 거 아냐? 우리 애들이 순위에서 밀렸잖아! 그리고 너튜브 조회수는 왜 그래? 거기도 돈 쓰라고 했잖아!”
테디 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니. 돈을 퍼붓고 있는데도 순위에서 밀리는 걸 저보고 어쩌라고요? 지금은 1 2위 두 곡의 순위를 지키는 것만 해도 벅차요! 너튜브 조회수까지 올리는 건 불가능하단 말입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내가 돈을 준 게 얼마인데? 그 돈 빼돌려서 뭐 했어?”
-제가 죽고 싶어서 환장한 게 아니면 어떻게 본부장님을 속입니까? 돈 한 푼도 빼돌린 적 없으니까 직접 와서 확인해 보세요.
“끄응.”
마동팔 본부장의 입에서 저절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보다 오늘 점심도 가기 전에 주신 실탄이 다 떨어지는데 어떻게 하죠? 체리블라썸의 이번 신곡. 진짜 만만치 않아요.
쁘띠모 5집 그리고 뮤직비디오 2편을 제작하는데 들어가는 돈만 무려 100억이다.
쁘띠모가 입고 있는 의상도 협찬이 아니라 모두 유럽 최고급 명품 디자이너들이 만든 옷이다.
한 벌에 2억씩.
그것도 한 사람당 네 세트씩 만들어둔 상황이다.
거기다 테디 킴에게 10억을 퍼부었기에 이리저리 합치면 토탈 100억이 훨씬 넘어가는 돈을 쓴 상황이다.
그런데 체리블라썸의 신곡에 밀린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만약 쁘띠모가 체리블라썸에게 뒤진다면 TK 엔터 대표인 김태권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무슨 수를 쓰더라도 1위만큼은 꼭 지켜! 총알은 지금 바로 채워 줄 테니까.”
전화를 끊은 마동팔이 의자에 몸을 기댔다.
“정윤호. 이 자식이······.”
체리블라썸을 밟기 위해 처음부터 총력전을 가했다.
하지만 며칠 만에 그 계획은 모조리 일그러졌다.
고작 커버 영상이 뭐라고 이 난리가 벌어지는 건지.
실은 의 곡과 안무가 잘 만들어진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콘텐츠를 모르는 마동팔은 영문을 몰라 발을 동동 굴릴 뿐이었다.
결국 마동팔은 기자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어. 김 기자. 나 마동팔인데 기사 하나만 써 줘!”
마동팔에게 남은 수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 * *
4월 24일.
새로이 편성된 KBC 음악나라에 출연한 체리블라썸은 성공적인 컴백 무대를 마쳤다.
하지만 쁘띠모도 그에 질세라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수많은 기자단을 대동한 대규모 쇼케이스로 화력을 과시했다.
덕분에 3위까지 올라갔던 순위는 다시 한 계단 내려가 4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 4월 25일.
가요계가 ‘쁘띠모 vs 체리블라섬’이라는 대립 구도로 뜨거워지자 굳이 돈을 쓰지 않아도 기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체리블라썸의 노출도를 올려주고 있었다.
[지키려는 쁘띠모 VS 빼앗으려는 체리블라썸!]
[무서운 상승세의 체리블라썸. MBS <쇼! 음악센터>로 쁘띠모와 동시 컴백!]
[4월 음원 전쟁의 승자는 누구?]
MBS <쇼! 음악센터>로 향하는 차 안에서 기다리던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발신자 : 장문기 기자]
벌써 찾은 건가?
“예. 정윤홉니다.”
-정 대리! 방금 테디 킴이 거래하던 업체 사장과 만났어.
들뜬 장문기 기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증거는요!”
-흐흐. 뭘 뻔한 걸 묻고 그래? 당연히 찾았지.
매번 느끼는 거지만 장문기 기자의 정보력은 꽤 쓸만했다.
“오늘 기사 터트릴 수 있습니까?”
-오늘까지는 좀 무리고 내일 터트리자고. 아직 크로스 체크가 덜 돼서. 협력할 기자들도 선별해야 하니까.
“최대한 빨리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정 대리. 혹시 다른 기자에게 이 이야기 흘린 적 없지?
“다른 기자와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하하하. 좋아. 그럼 내일 기사 1면 기대해 보라고.
같은 기사라도 어떤 기자가 터트리느냐에 따라 묻히기도 하고 흥하기도 한다.
장문기 정도면 뻔한 기사도 빵빵 터트려 줄 파워가 있다.
적이 되면 피곤하지만 아군일 때는 참 든든하다.
끼이익.
이주영 대리가 MBS의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뒷좌석을 향해 외쳤다.
“자! 얘들아. 오늘 힘내서 잘 해 보자!”
“네!”
상기된 표정으로 차에서 내린 체리블라썸 멤버들이 서로 손을 맞잡았다.
순간 세리가 외쳤다.
“연희 언니! 나 오늘 진짜 감이 좋아! 이러다가 진짜 사고 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왜? 좋은 꿈이라도 꿨어?”
“응! 금돼지 두 마리! 금돼지면 좋잖아! 그러니까 우리 1등 하는 거 아닐까? 그치?”
양은비가 근거 없는 미신을 들먹이지 말라며 세리의 머리를 콩 하고 쥐어박았다.
“아야! 진짜라니까?”
“근데 왜 하필 두 마리야?”
“그러게?”
그때 은아가 조곤조곤 말했다.
“돼지가 두 마리니까 우리 2등 하는 걸지도······.”
“어? 하긴 그것도 그렇네?”
세리는 곰곰이 생각하다 2위만 해도 좋을 것 같단다.
“자자. 몇 등이 되었든 간에 최선을 다하자. 그럼 좋은 결과 있을 거야!”
이주영 대리의 외침에 체리블라썸이 환한 미소로 답했다.
이제 대중들 앞에 서서 신곡의 평가를 받을 시간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