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화
105. 차트 전쟁 1
TK 엔터의 홍보실.
눈이 빠질 정도로 모니터링에 몰두하던 홍보팀장 유진명은 쁘띠모의 5집 전곡이 음원 차트 상위에 안착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본부장님! 다섯 곡 전부 차트 10위 안에 진입 성공했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TK 엔터는 쁘띠모의 신곡 <가면무도회>의 뮤직비디오뿐만 아니라 2차로 <한밤의 공주님>까지 2개의 뮤직비디오를 이틀 연속으로 업로드했다.
그 덕에 실시간 음원 사이트에 올린 다섯 곡을 모두 10위 안에 올리는 쾌거를 달성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마동팔의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고 있었다.
마동팔은 이번 쁘띠모 5집을 위해 테디 킴이라는 유명 프로듀서를 데리고 왔다.
하지만 마동팔이 테디 킴을 데리고 온 건 뛰어난 실력 이외에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테디 킴이 음원 순위 조작업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에 손쉽게 차트 1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안심할 때는 아냐. 당분간은 화력을 쏟아붓자고.”
“예. 알겠습니다.”
마동팔의 지시에 홍보팀장 유진명이 어딘가로 까톡을 날렸다.
그 모습을 보던 가수 1실의 지은학 실장이 슬그머니 곁으로 다가왔다.
“본부장님.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테디 같은 외부 인사가 날뛰는 것은 좀······.”
“위험하다고?”
“예. 책임은 결국 본부장님이 지게 되실 수도 있습니다.”
마동팔이 차가운 눈으로 지은학 실장을 주시했다.
“그러니까 안 알려지게 잘해야지. 안 그래?”
마동팔의 낮은 목소리에 지은학 실장이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음원 사재기는 브로커를 통해 음악 순위를 조작하는 행위.
일반적으로는 브로커에게 돈을 줘 수백 대의 휴대전화와 불법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음원 순위를 변경하는 걸 말한다.
대개 팬덤이 부족한 중소규모의 엔터 회사들이 음원 사재기를 한다.
하지만 TK 수준의 큰 회사가 이런 무리한 일을 벌이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였다.
민감한 내용이었기에 혹시 누가 들은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들 자기 할 일을 바쁘게 하느라 듣진 못한 눈치다.
아니면 듣고도 모른 척하고 있던지.
꿀꺽.
마른침을 삼킨 지은학 실장이 다시 한번 고언을 전했다.
“실장님도 아시다시피 저도 상황에 따라 사재기가 아니라 더 심한 일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경쟁 상대가 없어 음원을 독점할 수 있는 좋은 상황이 아닙니까? 도대체 왜 지금 같은 시점에 이런 무리수를 두시는 겁니까?”
오늘 런칭 하기로 했던 잠재적 경쟁자 걸프렌즈7은 작곡가의 표절 시비로 전면적인 재작업에 들어가 데뷔조차 기약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강력한 경쟁자인 골든로드도 한 달은 넘어야 신곡이 나온다고 하고.
그런데 왜 이런 무리수를 두는지 지은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야기를 듣던 마동팔이 인상을 굳혔다.
“지 실장. 체리블라썸은?”
마동팔이 체리블라썸 때문에 컴백 날짜를 바꿨다고 했다.
하지만 지은학은 믿지 않았다.
고작 2군 따위의 걸그룹을 밟겠다고 쁘띠모의 일정을 바꾸는 건 상식적이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자기가 모르는 마동팔의 다른 수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TK 엔터에서 지은학만이 가진 생각이 아니었다.
“걔들이 뭐가 특별하다고······.”
“허허. 이거 참. 지 실장은 내 말이 장난 같나?”
웃고 있던 마동팔의 표정이 싸늘히 굳었다.
그 순간 지은학이 주춤거렸다.
“그 그러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진짜로 체리블라썸 때문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마동팔은 혀를 차며 홍보팀장을 불렀다.
“유 팀장. 지금 체리블라썸 신곡은 몇 위야?”
모니터 앞에 있던 유진명 홍보팀장이 주춤거리며 대답을 망설였다.
“말해. 몇 위인데?”
두 상사의 눈치를 보던 유진명 홍보팀장이 결국 입을 열었다.
“7위입니다.”
“뭐? 7위?”
지은학이 깜짝 놀랐다.
순위 밖일 거로 생각한 체리블라썸의 신곡이 하루 만에 7위라니.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자 마동팔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X 됐다.’
침을 꼴딱 삼킨 지은학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잘난 척 떠들어댔지만 현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넌 가수 1실 실장이라는 놈이 예비 경쟁자들의 순위도 확인 안 하냐? 아주 배가 처불렀네.”
“죄 죄송합니다.”
“알았으면 저리 꺼져.”
마동팔이 당황한 지은학을 옆으로 밀쳤다.
조만간 가수 1실장을 갈아치우겠다 생각하면서.
“유 팀장. 그러면 지금 너튜브 추이는 어때? 조회수는 얼마나 올랐지?”
방송 조회수보다 너튜브 조회수가 주말 음방 순위에 더 영향을 미치게 된 지 오래.
마동팔 본부장의 지시에 유진명 팀장이 급히 공식 두 뮤직비디오 조회수를 확인했다.
그 순간 다시 한번 마동팔과 TK 엔터 직원들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거 왜 이래!”
* * *
[체리블라썸 조회수 445320 좋아요 28564]
[쁘띠모 <가면무도회> 조회수 302128 좋아요 6720]
“아자! 역전이다!”
체리블라썸의 신곡 이 쁘띠모의 <가면무도회>를 앞질렀다.
좋아요의 비율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회사의 홍보와 너튜브의 화학작용으로 음원 순위도 단번에 7위까지 치솟아 올랐다.
[멜랑 차트]
1위 쁘띠모 <가면무도회>
2위 쁘띠모 <한밤의 공주님>
······
5위 쁘띠모 <매직 뮤직 마녀>
7위 체리블라썸
“뭐야? 진짜 7위야?”
이 빠르게 순위를 올리자 이동민 실장은 흐뭇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명호 팀장과 홍보팀 성민석 팀장이 급히 보도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루 만에 벌써 7위. 이러다가 진짜 사고 치겠는데요?”
“이야. 쭉쭉 올라가네.”
하지만 나는 전혀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회귀 전의 은 15위로 시작해 3일 만에 1위로 올라간 곡이니까.
아무리 쁘띠모가 팬덤의 힘을 총동원했다고 하더라도 너튜브 조회수가 이미 역전된 상황인데 아직 7위?
거기다 여전히 1위부터 5위까지는 쁘띠모의 이번 앨범 전곡이 줄 세우기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현재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는 ‘정유진 커버 영상’이다.
그리고 3위는 ‘미소 체리블라썸 커버 영상’이고.
거기다 ‘박선녀 에어로빅 원생들의 엽기 커버 영상’은 실검 2위로 또 다른 이슈를 일으키고 있었는데 말이다.
실검 순위가 높은데 음원 순위가 떨어진다?
이건 아무리 팬덤인 쁘띠 엔젤이 움직이고 있어도 불가능한 일이다.
실검 순위가 높다는 건 불특정 다수인 대중들의 관심이 더 높다는 뜻.
그리고 그 경우 반드시 음원 성적에도 반영된다.
어떤 곡인지 한번 들어보고 싶은 게 사람 심리니까.
의심이 생긴 난 곧장 성민석 팀장에게 물었다.
“저 팀장님. 혹시 Hurry UP이 진입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실시간 순위 그래프 표 좀 볼 수 있을까요?”
“어. 잠시만. 10분 단위로 기록해 둔 게 있을 텐데······. 박 대리. 파일 어디 있어?”
“예. 여기 있습니다.”
“그래? 그럼 회의실 벽면에 띄워 봐.”
홍보팀 박진성 대리가 실시간 그래프를 회의실 벽면 LCD에 띄웠다.
체리블라썸의 신곡 은 처음 진입은 15위.
그다음부터는 빠르게 순위가 올라갔다.
그런데 그래프 중에서 이상한 게 눈에 들어왔다.
“어? 저기 왜 저렇죠?”
어제 새벽 3시경.
쁘띠모의 다섯 곡 모두가 약 10분간 일시적으로 3위에서 10위 정도 밀려난 기록이 남아 있었다.
1위인 <가면무도회>는 4위로.
2위인 <한밤의 공주님>은 7위로.
그런데 그 타이밍에 은 5위로 올라가 있었다.
“글쎄다. 집계 오류인가 보지.”
딱 한 번 순위 역전을 한 그래프였지만 그 순간 내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음원 사재기.
믿기지 않지만 쁘띠모가 그 일을 벌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난 즉각 이동민 실장에게 의견을 전했다.
“실장님. 아무래도 이거 촉이 안 좋습니다.”
“왜? 지표 좋잖아? 혹시 네가 몰라서 그러나 본데 진입 차트 성적이 이 정도니까 3일만 지나도 5위는 충분히 찍을걸?”
“아니 우리가 아니라 쁘띠모요.”
체리블라썸이 1등을 할 거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다들 그건 내 희망 사항 정도로 여기나 보다.
난 곧장 지난 번 알아봐 달라고 한 상대 프로듀서의 이름을 물었다.
“혹시 저쪽 프로듀서가 누군지 알아봐 달라는 건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 그거? 테디 킴이라고 하던데?”
한동안 미국 레이블에서 작업하던 걸 TK 마동팔 본부장이 가서 직접 데리고 왔다고 한다.
테디 킴?
그제야 쁘띠모의 곡이 변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1년 뒤.
테디 킴은 장문기 기자의 음원 조작사건 보도로 구속되는 사람이니까.
[에브리데이 V10]
[날짜 : 2021년 12월 22일]
-PM 6:30 (보고 사항) 유명 프로듀서 테디 킴. 음원 조작사건으로 입건.
다이어리를 확인해 내 기억이 맞는다는 걸 확인한 뒤 이동민 실장에게 말을 걸었다.
“실장님. 잠깐만 저랑 이야기 좀 하시죠.”
“왜?”
“잠시만요. 이쪽으로요.”
난 이동민 실장의 팔을 이끌어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이동민 실장은 주변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왜? 무슨 비밀 이야기라도 하려고?”
“그게 아니라 아무래도 TK에서 음원 사재기를 하는 거 같아서요.”
이동민 실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이. 천하의 쁘띠모가 뭐가 아쉬워서 사재기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나갔다.”
“아까 그래프 꺾인 거 못 보셨습니까? 그거 분명히 음원 조작하다가 실수해서 생긴 겁니다.”
이동민 실장이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털었다.
쁘띠모같이 잘나가는 걸그룹이 음원을 조작할 리가 없다는 거다.
선입견이 이렇게나 무섭다.
“윤호야. 네가 열심히 한 건 나도 잘 아는데 7위면 잘한 거잖냐? 조금만 더 기다려 봐. 순위는 자연스럽게 올라갈 거니까.”
체리블라썸 2집은 차트 130위로 들어갔다가 30위를 찍은 게 끝이었다.
그때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라고 한다.
이동민 실장의 대꾸에 혹시나 하고 되물었다.
“실장님. 그러면 혹시 쁘띠모 이번 앨범 들어보셨어요?”
“들어봤지.”
“‘Hurry Up!’보다 좋던가요? 전 별로던데요.”
“솔직히 나도 별로긴 하지. 하지만 순위가 팩트를 말해주는 걸 난들 어쩌겠냐?”
“그러면 너튜브는 조회수는 왜 이렇습니까? 좋아요 숫자는요? 실검 순위 높은 것도 우리 애들이 관심도가 앞선다는 걸 증명하는 거잖습니까. 그리고 너튜브 댓글도 한번 보십시오.”
이동민 실장을 설득하기 위해 두 너튜브 뮤직비디오의 공식 채널의 댓글을 펼쳤다.
[체리블라썸 조회수 489540 좋아요 36564]
(댓글)
-춤이 따라 하기 엄청 쉽다.
-아침부터 허리 업 멜로디 라인이 계속 머리에서 맴돈다. 아 중독성 쩔어.
-유진이랑 미소 영상보고 링크 타고 왔는데 나가질 못하고 무한 재생 중.
-최고의 모닝콜!
[쁘띠모 <가면무도회> 조회수 322128 좋아요 7202]
(댓글)
-힙합 여전사? 쁘띠모의 이미지와는 좀 안 어울리는데······.
-나쁘지는 않은데 4집보다는 못한 듯.
-아이돌 힙합에 뭘 기대해?
-훈계질 ㄴㄴ 힙짤이들은 ㄲㅈ
이제 조회수는 1.5배 그리고 좋아요는 5배나 앞선다.
거기다 댓글 반응까지도 극단적으로 차이가 난다.
데이터를 본 이동민 실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설마······.”
“테디 킴에 관한 소문 못 들어보셨어요? 그 인간이 맡은 곡마다 순위가 높은 게 음원 순위를 조작해서 그렇다던데요.”
동시에 회귀 전부터 알고 있던 몇 가지 케이스를 언급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이동민 실장의 표정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아예 안 한 건 아닌데······.”
잠시 머뭇대던 이동민 실장이 굳은 표정을 지었다.
“따라와. 아무래도 이건 다 같이 이야기해 봐야겠다.”
이동민 실장과 함께 다시금 회의실로 들어갔다.
“다들 하던 일 멈추고 회의실로 모여.”
이내 테디 킴이 음원 사재기를 지시했을 거라는 주제로 회의가 벌어졌다.
갑론을박.
설마 TK 엔터가 그런 위험한 일을 하겠냐는 주장부터 예전부터 테디 킴에게 그런 쪽의 추문이 있었던 것 같다는 이야기까지.
하지만 결국엔 확인해 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이동민 실장이 다시 내 쪽을 바라본다.
“정 대리. 혹시 이거 파 볼 기자 아는 사람 있어? 없으면 내가 아는 사람한테 맡기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일단 그 기자한테 맡겨 봐. 후속 보고는 철저히 하고.”
“예. 실장님.”
음원 사재기는 확증을 잡지 못해도 그럴싸한 정황 증거만 나와도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는 의혹이다.
“다들 인맥 총동원해서 발로 뛰자. 쓸 만한 소스만 나오면 교차 확인 후 정 대리한테 토스 해줘.”
“예. 실장님!”
홍보팀과 가수 2실 구성원들의 눈빛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마동팔.
우리 체리블라썸을 밟으려고 음원 사재기까지 했다 이거지?
‘제대로 엿 한번 먹어봐라. 마동팔.’
난 곧바로 장문기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테디 킴의 음원 조작 사건을 밝혀낸 게 바로 장문기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