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이프 플레이어 (980)
After Story 20· 귀국
마침내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은하는 막상 이날이 오자 마냥 좋아할 수가 없었다·
‘어떡하냐····’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로부터 어떻게 이리야와의 관계를 허락받을 것인가·
그 전에 얼마나 욕을 먹고 냉대를 당할 것인가·
생각만으로도 갑갑한 은하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수빈아 이제 어떡하지?”
“그걸 나한테 묻는다고 알겠어? 그러게 간수 좀 잘하지 쯧····”
이탈리아 로마 치비타베키아 항구·
은하는 씁쓸히 수평선을 바라보며 배수빈에게 하소연했다·
배수빈은 공감해 주지도 않고 혀를 툴툴 차 댔다·
“네가 왜 연애를 못 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뭐래? 이게 갑자기 시비야···· 나는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거든? 연애?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래 네 말이 다 맞아·”
“···진짜 죽여 버릴까· 연애는 인생에서 하등 쓸모없거든? 나는 너처럼 근심할 바에야 속 편하게 살 생각이거든? 마법이나 연구하면서!”
〈론리 퀸〉 배수빈·
그녀가 울컥한 반응을 보이며 연애 비관론을 펼친다·
회귀 전의 인연을 고려한 은하는 그녀를 더 자극하지 않고 너그럽게 듣는 시늉만 했다·
아리엘이 끼어든 것은 그때였다·
“은하은하! 많이 걱정이구나?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는데 한번 들어 볼래?”
“너한테 좋은 생각은 없겠지만 수빈이 얘기보다는 영양가 있겠지· 그래 어디 한번 들어 보자· 뭔데?”
“뭐? 내 얘기가 영양가 없어? 야 너는 인성이 진짜····”
“있지 더 큰 충격으로 덮어서 말도 못 하게 만드는 거야! 사람들이 경제사범의 범죄에 대단하다고 감탄하는 것처럼! 물론 나쁜 짓이지만!”
푸른 비늘 귀를 파닥이며 의견을 피력하는 아리엘·
은하는 그녀치고는 괜찮은 제안에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큰 충격으로 덮는다라···· 어떻게?”
“예를 들면 이리야 언니 말고 다른 사람들도 부인으로 들여서 벙찌게 만드는 것은 어때!?”
“뭐?”
“마침 나도 아라아라도 카에데도 연애를 안 하고 있으니 확 넣어 버려도 괜찮겠다!”
“····”
“아니다 넷으로는 부족하려나? 그럼 다른 애들도 더 넣어서 ‘쟤는 진짜 뭐 하는 놈이지? 던전을 공략한 게 아니라 여자들을 공략하고 온 건가? 진짜 하렘왕이 되려고 작정했나? 머리가 아래에 달린 건가?’라고 생각해 버리게 만드는 거야! 다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래 네가 늘 그렇지···· 잠시라도 믿은 내가 잘못이다·”
기각이다·
은하는 더 이상 듣지 않고 아리엘의 머리를 톡 때렸다·
“나는 괜찮은 것 같은데···· 일리 있어···· 원래 현실은 소설보다 굉장한 법이고····”
“뭐라고?”
“으응!? 아 아니···· 아야! 우이씨 아프잖아!”
“라라라♬ 라라····”
평소 아리엘과 어울리다 보니 그녀의 물이 들어 버린 듯한 조아라의 머리도 때렸다·
곁에 있던 라라의 경우에는 안타깝게도 별다른 이유 없이 은하의 새끼손가락에 맞아야 했다·
둘은 괜히 앓는 소리를 내며 아프지도 않은 머리를 주물렀다·
한편 은하는 끝에 서 있던 카에데에게로 눈길을 주었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
눈치 빠르게 경계심을 드러내는 호시미야 카에데·
걸음을 뒤로 물린 그녀가 방어 자세를 취했다·
은하는 피식 웃었다·
“나도 아는데?”
“그럼 왜····”
“너는 어떻게 생각하나 싶어서·”
“···그냥 잘못했다고 빌어야지· 괜히 머리 굴리지 말고·”
“역시 그래야겠지? 카에데 네가 제일 믿음직하다· 고마워·”
“그보다 이러고 있지 말고 이리야 언니나 챙기는 게 좋지 않겠어? 저 사람하고 뭔가 있기는 했던 것 같은데·”
카에데가 턱짓했다·
그곳으로 고개를 돌린 은하는 이리야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리야는 로베르토와 정답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앞으로 다시 만날 일도 없을 텐데 뭘·”
“그렇게 말하면서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이유는 뭐고?”
“···작별 인사나 해 두려고·”
카에데가 코웃음을 친다·
그녀에게 멋쩍게 대답한 은하는 이리야와 로베르토에게 다가갔다·
“이리야·”
“아 주님·”
“바닷바람이 찬데 이제 그만 선실로 들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이리야가 환한 얼굴로 반긴다·
은하는 그녀의 상태를 살피며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로베르토는 쓴웃음을 지은 뒤 그에게 말을 걸었다·
“노은하 플레이어·”
“네·”
“이리야를···· 잘 부탁드립니다·”
“····”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결국 해야 할 말은 하나였다·
나머지는 사족에 불과하다·
그렇게 판단한 로베르토는 고심 끝에 말을 꺼냈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네 걱정하지 말아요·”
로베르토의 감정을 헤아린 은하는 최대한 절제해서 답했다·
이어서 그의 손을 맞잡는다·
두 사람은 서로 쥔 손에 잠시 세게 힘을 주었다 풀었다·
* * *
승선 시간이다·
사람들이 하나둘 배에 오른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나라였어·’
이탈리아에서 보낸 나날을 회고한 어베니어도 배에 타기 위해 줄을 서려 몸을 돌렸다·
이름이 불린 것은 그때였다·
“어베니어 플레이어·”
“아···· 네 알버트 플레이어!”
철가면을 쓴 알버트가 다가왔다·
〈심해의 던전〉 공략 과정에서 나름 친분이 쌓인 어베니어는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모쪼록 무사히 돌아가길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따로 준비한 선물이 있는데 이것도 같이 받아 주면 좋겠군요·”
“네? 따로요? 아····”
알버트가 캐리어 손잡이를 건넨다·
눈으로 캐리어의 크기를 확인한 어베니어는 적잖은 부담을 표현했다·
“감사하지만 이건 너무···· 많은 것 같은데요····”
“그래도 괜찮으니 받아 주세요·”
“····”
“줄리가···· 줄리에타와 브루노가 좋아할 만한 것들로 채워 넣었습니다· 그러니 두 사람한테도···· 전해 주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중한 어조로 부탁하는 알버트·
말없이 자신의 삼촌을 바라보던 어베니어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캐리어 손잡이를 받아 쥐며 씩씩하게 화답했다·
“네! 그럼 감사히 받을게요! 한국에 있을 어머니랑 아버지도 분명 기뻐할 거예요·”
“···감사합니다· 조심히 돌아가고 언제나 건강에 유념하기를 바랍니다·”
“네 삼촌도요!”
“····”
예상치 못한 호칭을 들은 알버트가 멈칫했다·
이내 그는 입가에 호를 그렸다·
“그래 잘 가렴· 언젠가···· 기회가 되면 또 봤으면 좋겠구나·”
“저도요· 언젠가 또 봐요! 분명 그럴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어베니어가 캐리어를 끌고 등을 돌려 떠나간다·
알버트는 가만히 그를 배웅했다·
한편 기쁜 마음으로 배에 탄 어베니어는 콧노래를 불렀다·
“이제 돌아가는구나· 돌아가면····”
은애 누나가 기다리고 있다!
은애 누나의 뽀뽀를 받을 수 있다!
어베니어는 싱글벙글했다·
* * *
부우우!
치비타베키아에 정박해 있던 배가 고동을 울리며 출항했다·
항구 도시의 전경이 멀어지며 한국으로의 여정에 오른다·
“····”
마지막으로라도·
사람들은 이탈리아를 눈에 담으려 갑판 위로 나왔다·
“몇 개월 동안 지냈더니 정이 들기는 했었나 보네····”
“살면서 한국이랑 맞지 않아 불편한 점이 많았었는데····”
“그리워질 것 같아요·”
“남자들이 참 정열적이었는데···· 평생 잊지 못할 거야·”
“그래 맞···· 응?”
“····”
온태희 선미예 손가연 봉구래 강시형 등 사람들은 제각기 감상에 젖었다·
진서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상 깊은 곳이었어 정말· 나중에 또 오고 싶네····”
햇빛에 반짝이는 푸른 바다와 항구 도시의 전경이 아름답다·
진서나는 이 순간을 기억하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내 사진을 확인한 그녀는 만족스럽게 입가를 끌어 올렸다·
“응 잘 나왔네· 이 정도면 은우 솜씨에도 지지 않겠어· 이따 은하랑 애들한테 자랑해야지·”
차은우는 잘 지내고 있을까·
목민호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신혼 생활을 보내는 중일까?
돌아가는 대로 찬찬히 듣고 즐겁게 수다를 떨어야겠다·
그녀뿐만 아니라 정하양 김민지 노은아 진파랑 등 다른 사람들하고도·
“얼른 보고 싶다·”
그리고····
“아 은혁이한테도 보여 줘야겠다·”
문득 생각이 떠오른 진서나는 삼각 귀를 쫑긋 세웠다·
그녀는 최은혁에게 톡을 보냈다·
[나]: 잘 지내고 있지?
[나]: 짜잔!
[나]: (사진)
[나]: 이탈리아를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이야!
[나]: 우리 이제 돌아가
[나]: 돌아가면 밥이나 먹자!
당연하게도·
통신이 연결되지 않은 관계로 톡은 보내지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난 후에 그때 다시 보내면 되니까·
“왜 텔레파시는 일방향인 걸까· 한국까지 뻗지도 못하고···· 아쉽네·”
진서나는 쓸쓸히 중얼거렸다·
곧 기분을 전환하기로 했다·
“에이 심심한데 오래간만에 애들이랑 낚시나 해야겠다!”
[나랑 같이 낚시할 사람은 낚싯대 들고 갑판으로 집합! 아 은하는 필참인 거 알지? 클랜 로드가 내빼면 안 되지!]
친구들에게 텔레파시를 쏜다·
진서나는 킥킥 어깨를 들썩였다·
* * *
〈심해의 던전〉을 공략하러 떠난 한국 공략대가 돌아오고 있다·
최근에 전해진 소식에 따르면 필리핀해를 지나는 중이라고····
이에 선녀 임가을은 지시했다·
“국가의 위상을 높인 이들이에요· 그러니 반드시 환영 인사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하세요·”
〈심해의 던전〉 공략과 더불어 한국과 이탈리아의 협약으로 두둑한 성과를 거둔 임가을은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직접 한국 공략대를 마중 나갈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한편 마찬가지로 소식을 접한 판도라 클랜도 그들을 환영하려 준비에 나섰는데····
“····”
현재 중역 간부들 사이에서는 찬바람만 불고 있었다·
〈그림자의 왕〉 한창진의 보고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보세요 아주버님· 아니 한창진 서브 로드· 지금 뭐라고 했나요?”
“····”
한서현이 다른 사람들을 대표해 한창진에게 질문했다·
서늘한 칼날 같은 목소리였다·
한창진은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괜히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위안이라도 삼기 위해 노은아를 찾았더니만····
“뭐 해? 왜 안 말하고 있어? 어서 말하라니까?”
“···크흑·”
노은아는 편을 들어 주지 않았다·
한창진은 서운하기만 했다·
한편으로는 이 상황을 초래한 노은하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한창진은 결국 입을 열었다·
“은하랑 이리야 누나 사이가 워낙 각별한 것 같다는 모양이더라고····”
“····”
쏟아지는 시선이 무섭다·
특히 은하의 아내들 그리고 노은아의 시선이····
한창진은 울고 싶기만 했다·
한서현이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한숨을 쉰 것은 그때였다·
“어쩐지 영 불안하더라니···· 결국 말이 씨가 됐구나·”
“내가 한눈팔지 말라고 했는데····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냥 나도 따라갈 걸 그랬어····”
“나도 은하를 믿고는 싶지만···· 아무래도 믿을 수가 있어야지····”
“너희가 이런 기분이었구나· 이제야 알 것 같아·”
한서현 정하양 이유정 류연화·
그들은 한탄을 금하지 못했다·
“던전에서 사달이 난 거겠지?”
“백 프로야· 분명해· 촉이 와· 문제는 먼저 선을 넘은 사람이 누구냐는 건데···· 후후후····”
“누가 먼저가 무슨 상관이겠어· 두 사람 다 잘못한 셈이지· 그보다 다들 어떻게 할 거야?”
“은하 생각이 궁금하기는 하네· 어떻게 하고 싶은지·”
“····”
네 사람이 저희끼리 대화한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로서는 행여나 욕을 먹지 않기 위해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한편 류연화는 품에 안고 있던 아들에게 말을 붙였다·
“이제 곧 아빠를 볼 텐데···· 아빠가 우리를 잊지 않아 줬으면 좋겠네· 그치 유설아?”
“응애?”
“걱정 안 해도 될 거라고?”
류연화의 아이임을 증명하듯 많은 부분을 빼닮은 노유설·
다만 아이의 머리칼과 눈은 류연화의 것보다 조금 짙은 푸르스름한 색을 품고 있었다·
“유설이도 아빠 보고 싶니?”
“응애·”
“응 엄마도 보고 싶어·”
노유설이 류연화에게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만진다·
그러고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배시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류연화는 까르르 웃은 아이가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우리 착하고 예쁜 아기· 엄마가 사랑해·”
“····”
한편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한창진은 고민 끝에 결정했다·
‘응 눈치 없이 이리야 누나가 임신한 것 같다는 이야기는 밝히지 말아야겠다·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니까····’
어차피 은하 일행이 귀국하면 어떤 식으로든 정리될 일이다·
한창진은 말을 삼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