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이프 플레이어 (971)
적들의 수성은 무척 견고했다·
그들이 지상전 공중전 심지어 땅굴 속에서 싸우는 갱도전까지 단단히 방비해 놓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적들이 야간을 틈타 되레 기습을 가해 오기도 했으니····
공략대는 좀처럼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공성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회귀 전에 읽은 일지에서는 적성의 문을 여는 데 거의 한 달이나 걸렸다지·’
하지만 지지부진하던 공성도 오늘로 끝나리라·
회귀 전처럼 식량을 소진하고 지칠 대로 싸워야 할 정도로 긴 시간이 필요치는 않았다·
은하는 자신할 수 있었다·
“클랜 로드! 저 발 아파요· 이러다 종아리도 퉁퉁 붓겠어요· 흑흑 진짜 클랜 로드 만나서 이게 대체 무슨 고생이에요?”
적들의 후방을 공략하기 위해 일부러 그들의 눈을 피해 산길을 오른 은하 일행은 현재 적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바위에 앉아 다리를 주무르던 메이링이 은하에게 투정을 부렸다·
쌍둥이 동생 메이린도 거들었다·
“맞아요! 맨날 일만 시키고 남자도 못 만나게 하고 그러면서 우리는 건드리지도 않고 이렇게 산이나 오르게 하고!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막 부려 먹는 게 아니라면 끝나고 뭐라도 좀 해 줘요! 저 발이나 주물러 주든가!”
“거기에 종아리도요! 아니면 다른 곳도 좋고요!”
“어머 동생· 어디?”
“에이 언니도 다 알면서·”
“····”
쌍둥이 자매가 깔깔거린다·
그녀들에게 적응한 사람들은 가볍게 어깨를 들썩였다·
한편으로 그들 역시 특히 은하의 회귀에 대해 모르는 그들도 불만이 없지는 않았다·
이에 성문 공략을 맡은 알버트를 대신해 이탈리아인들을 이끌고 동행한 로베르토가 대표로 물었다·
“노은하 플레이어 정말 근방에 비밀 통로가 있는 게 확실합니까?”
“네 조사한 바에 따르면요· 로베르토 플레이어도 확인했잖아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무작정 산에 올라서는 대원들의 사기가····”
로베르토가 안색을 흐렸다·
은하는 우려를 표하는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반응은 태연했다·
“괜찮아요· 걱정 안 해도 돼요· 저희가 찾는 비밀 통로는 분명 근방에 있을 테니까요·”
은하가 회귀 전에 읽은 〈심해의 던전〉 공략 일지에 따르면·
적성의 수성에 지쳐 가던 공략대는 본진으로 삼은 성에서 우연히 어떤 자료를 발견한다·
그 자료에는 적성을 공략할 중대한 단서가 기록되어 있었다·
바로 비밀 통로에 관한 것이었다·
‘문제는 그 통로가 어디 있는지 산속에 있는 우물들을 뒤지다시피 찾아 헤매야 했다는 거지만····’
그러나 공략 일지를 접한 은하는 굳이 고생할 필요 없이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도 염려하지 않고 로베르토에게 장담한 것이다·
“노은하·”
“어 찾았어?”
때마침 은하의 조언을 받아 탐색을 나갔던 카에데가 귀환했다·
그가 마시던 수통을 건네자 그녀는 개의치 않는 기색으로 남아 있는 물을 마셨다·
이내 손등으로 입가를 훔친 그녀가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네 말이 맞았어· 찾았어·”
“잘했어· 그럼 다 쉬는 대로 일어나도록 할까?”
은하는 입가를 끌어 올렸다·
* * *
“여기라는 거지?”
“그래·”
은하가 찾고자 하던 우물은 음습한 곳에 있었다·
카에데의 안내에 따라 이동한 일행은 우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둠이 들어차 있어 깜깜했다·
“에잇!”
아리엘이 손에 쥔 횃불을 우물 속으로 던졌다·
어둠을 밝히며 떨어진 횃불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짠! 보다시피 마른 우물이야! 카에데랑 내가 들어가 봤는데 안에 수로처럼 난 길이 있었어!”
“흐음···· 아래로 떨어진 시간이나 불빛이 작게 보이는 걸 보면 깊이가 꽤 깊은 모양이네·”
우물 속을 유심히 관찰하던 네비게이터 메이링이 말했다·
그녀의 쌍둥이 여동생이자 레인저 메이린은 카에데에게 물었다·
“몬스터는 없었어?”
“도중까지 탐사해 본 바로는 웬 점액 괴물이랑 쥐새끼 놈들이 덤벼들긴 하더라· 걱정할 만큼 강한 놈들은 아니었지만···· 그렇더라도 안에 들어가면 조심해야 할 거야·”
“흐음···· 점액 괴물이라니 끌리는데? 촉수는 없었어?”
“뭐?”
메이린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카에데가 무슨 소리냐는 듯 반문했다·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은하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메이린을 응징하기 위해 그녀의 머리를 톡 때렸다·
“아야! 클랜 로드 왜 그래요!?”
“이 상황에서 장난치지 마· 카에데 안에서도 앞장설 수 있지?” “가능해· 길을 뚫어 줄 사람과 불을 비춰 줄 사람만 있다면·”
“알았어· 어베니어 그리고 로베르토 플레이어 들었죠? 부탁할게요·”
“오케이! 내가 도울게!”
“알겠습니다·”
어베니어 로베르토는 은하의 지시에 군말을 표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이 카에데와 함께 우물 속으로 앞장섰다·
은하는 나머지 일행을 이끌고 그들의 뒤를 따랐다·
또강또강····
우물 벽면에 난 사다리를 밟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간다·
발아래에서는 먼저 바닥에 도달한 사람들이 몬스터들과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은하가 내려섰을 때쯤에는 주위가 이미 정리된 상태였다·
마나의 입자로 변해 소멸하는 몬스터들을 훑어본 은하는 입을 열었다·
“쉬지 말고 계속 가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법으로 어둠을 밝힌 공략대는 수로처럼 이어진 길을 나아갔다·
도중에 맞닥뜨리는 몬스터들은 지체 없이 모조리 해치웠다·
그리하여 쉼 없이 나아간 끝에·
“저기인가·”
“····”
공략대는 계단을 마주할 수 있었다·
계단 위에 문이 있었다·
필시 적성으로 통하는·
“메이링 좌표상으로는····”
“좌표상으로도 확실해요·”
“잘 찾아온 것 같네·”
“····”
이제 저 문을 열고 나가면 셀 수 없이 많은 적들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공략대는 그들을 상대할 생각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공략대를 격려한 은하는 차분히 작전을 지시했다·
“우리의 침입 사실을 모르는 적들은 아마 지금쯤 야음을 틈타 우리 성을 공격하고 있을 거야· 그러니 적들의 모든 병력이 성에서 대기하고 있지는 않겠지· 우리한테는 좋은 기회야· 이 틈에 적성의 성문을 비롯해 각종 방어 장치를 파괴한다· 그 후에는 지휘관급 요인들을 처리하고·”
“····”
“메이링 메이린·”
“네 클랜 로드·”
“너희는 문을 나가는 대로 공략대를 성문으로 인도하도록 해· 카에데는 독자적으로 행동하면서 우리를 보조해 주고· 되도록 적들이 낌새를 알아채지 못하게 시간을 끌어 줘·”
“알았어 그렇게 할게·”
“어베니어는 성문을 열어 주고· 로베르토 플레이어도 도와주세요· 아리엘은 성문이 열리는 대로 곧장 서나나 다른 텔레파시스트들한테 소식을 알리고·”
“오케이 은하은하! 통신은 나한테 맡겨!”
“그리고 수빈이는····”
“····”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략대는 은하의 지시에 따라 문을 박차고 나갔다·
이제부터 적들의 허를 찔러 성문을 파괴한다·
* * *
작전에 이변은 없었다·
적성에 침투한 은하 일행은 도중에 발각당하는 일 없이 성공적으로 성문을 열 수 있었다·
성벽 밖에서 대기하던 공략대는 즉각 반응했다·
“성문이 열렸다! 전군 돌입하라!”
“방공망도 더는 기능하지 않아! 공중 부대는 당장 출격하라!”
“얼른 성으로도 연락을 보내!”
알버트를 필두로 한 공략대가 창 대형으로 적성으로 달려들고 공중전이 가능한 사람들이 그들의 머리 위를 지나쳤다·
키에에엑!
“저 저것들이 어떻게···!”
“놈들이 온다! 다 쏴 버려!”
돌연 성문이 열린 상황에 놀란 적성 성곽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몬스터들과 범죄자들은 허겁지겁 공략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방공망이 뚫린 그들에게 공중에서 떨어지는 화살 세례와 마법 포격에 대처할 만한 수단은 제한돼 있었다·
그들은 제대로 방어할 새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은하 일행이 본격적으로 날뛰기까지 했다·
“나는 요인들을 암살할 테니까 너희는 방어 장치를 맡아 줘·”
“알았어 그렇게 할게·”
“공중에서 중요한 시설로 보이는 건 다 파괴해 버리면 되는 거지? 어려운 일도 아니지· 맡겨 둬·”
은하는 어둠을 몸에 두른 채로 은밀히 적성을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적군 지휘관들을 암살해 지휘 계통에 혼란을 주었다·
카에데나 배수빈을 비롯한 일행은 주요 시설 파격에 주력했으며 때에 따라 유동적으로 행동했다·
“적들을 섬멸하라!”
“한 놈도 남기지 마! 다 죽여!”
이윽고 알버트가 이끄는 공략대가 성문을 넘어 적성에 들어왔다·
7 8층에서 앙심을 품었던 그들은 조금의 자비도 주지 않고 범죄자들의 숨통을 끊었다·
당연히 몬스터들에게도 가차 없었다·
곳곳에서 놈들의 피가 튀고 머리와 팔다리가 날아가고 비명이 울려 퍼졌다·
‘승기는 확실히 잡았어·’
지붕 위에서 전투를 벌이던 은하는 불꽃의 날개를 펼쳐 첨탑 꼭대기에 올랐다·
공략대 본영 방향을 내다보니 성에서 추가 파견이 오고 있었다·
저들까지 전장에 가세한다면 적들의 패색은 더더욱 짙어지리라·
전황을 파악한 은하는 자신했다·
“여기에서 적장을 쓰러뜨린다면 더 빨리 끝낼 수 있을 텐데····”
적장 로렌조 마이론은 어디에 있는가·
전장을 둘러보던 은하는 머지않아 놈을 찾을 수 있었다·
성곽 위를 무대로 삼은 놈은 알버트 발렌타인 어베니어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알버트 발렌타인···· 저번에는 운 좋게 도망칠 수 있었겠지만 이번에는 절대 그러지 못할 거다· 이번에야말로 네놈을 죽여 주마·”
“기습했었던 놈이 말은 잘하는군· 저번처럼 내가 호락호락하게 당해 줄 것 같으냐· 오히려 죽는 것은 내가 아니라 네놈이 될 거다·”
“···오냐· 어디 두고 보자!”
“입만 살았나· 닥치고 덤벼라·”
고함을 지르고 피눈물을 흘리며 마구잡이로 손도끼를 휘두르는 로렌조 마이론·
어베니어는 공격을 막는 한편 수시로 놈에게 강타를 먹였다·
그리고 어베니어를 방패로 쓴 알버트는 빈틈이 생길 때마다 총탄을 쏘았다·
‘···딱히 돕지 않아도 되겠네·’
로렌조는 죽어 가고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그의 동작이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은하는 곧 다가올 전투의 끝을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
이윽고·
“제기···랄····”
어베니어가 로렌조의 발을 걸어 뒤로 넘어뜨렸다·
동시에 그가 건틀릿을 장비한 오른손 주먹을 내리찍었다·
휘이이익! 화르륵! 퍽!
공기 마찰을 일으킨 주먹이 순식간에 활활 타오른다·
그 주먹이 로렌조의 안면부를 정확히 강타했다·
콰직 하고 코뼈를 시작으로 안면골이 부서지는 소리가 울리고·
───!!!
지축이 흔들리는 충격과 함께 놈이 돌바닥에 파묻혔다·
“아 아 아····”
얼굴이 뭉개지고 박살이 난 정신이 혼미한 놈이 무의식적으로 부들부들 힘겹게 손을 뻗는다·
그 끝에 알버트가 있었다·
“아 알···버····”
로렌조의 치아가 후두둑 떨어져 입속으로 들어간다·
알버트는 손에 쥔 총으로 그곳을 겨눴다·
“가라 이제는·”
탕! 탕! 탕····
중간에 놈의 숨이 끊기든 말든 알버트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총탄을 모두 소진할 때까지 방아쇠를 당겼다·
그렇게 로렌조는 입자로 변해 소멸을 맞이했다·
“끝났네·”
적장이 사망했다·
알버트 어베니어에게서 눈을 뗀 은하는 잔당들을 처리하러 떠났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9층 미션 완수를 축하합니다! 설마 저희가 숨겨 놓은 정보를 바로 찾아낼 줄은 몰랐네요· 진짜 어떻게 찾았대····
공략대는 적들의 성을 함락했다·
* * *
한동안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완전히 정비를 마친 공략대는 적성의 지하로 내려갔다·
그곳에 거대한 철문이 있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심해의 던전〉 10층 다시 말해 최심부로 향하는 문·
마지막 공략을 목전에 둔 공략대는 각기 감상에 젖었다·
어떤 이는 지난 여정을 돌이켰고 어떤 이는 각오를 다졌으며 어떤 이는 불안을 억눌렀다·
그때 철문 앞으로 날아간 던전 가이드가 말했다·
여기까지 도달한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존경을 표할게요· 대단해요· 하지만 이 문 너머에서 기다리는 우리는 절대 만만치 않을 거예요· 지금까지 겪은 어떤 고난과도 공포와도 비교할 수 없겠죠· 여러분은 가장 끔찍한 형태로 죽음을 맞이할 거예요·
“····”
그런 여러분에게 제안할게요· 죽어서도 미치고 싶지 않다면 공략을 포기하고 던전에 귀속되세요· 결국에는 죽을 수밖에 없다면 현명하게 가장 편안한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하세요· 이건 우리가 여러분에게 베푸는 마지막 자비가 될 거예요·
던전 가이드가 공포를 조장한다·
은하는 개의치 않고 코웃음을 쳤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닥쳐·”
····
“이제 와서 우리가 두렵나 보지?”
···이게 여러분의 선택인가요?
“아무렴·”
은하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자 한국 공략대를 비롯해 다른 국가의 공략대도 동의한다는 듯 비웃음을 흘렸다·
····
던전 가이드는 말없이 한참 공략대를 노려보았다·
이내 설득을 포기한 놈이 비아냥거리듯 경고했다·
그래요 마음대로 해요· 나중에 후회나 하지 말고요· 그때는 이미 늦은 거니까·
“뉘에뉘에~·”
····
몇몇 사람들이 우습게 대꾸했다·
공략대는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죽여 버릴 것들····
“저리 비키기나 해·”
던전 가이드는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은하는 그런 놈을 무시하며 철문에 손을 댔다·
이내 알버트 에제키엘을 비롯해 다른 국가의 공략대 대표들도 철문에 손을 댔다·
그들이 입가를 끌어 올렸다·
“그럼 밉니다·”
서로 동시에 철문을 민다·
바닥을 끄는 소리를 내며 철문이 안으로 젖혀진다·
문틈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아무것도 없이 새까맸다·
이윽고 문이 완전히 젖혀지자·
콸콸!
“···!”
별안간 어둠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물이 쏟아져 나왔다·
삽시간에 세상에 물이 차 버리고·
부글부글!
공략대는 어느새 심해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