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이프 플레이어 (966)
〈심해의 던전〉 7층·
공략대는 벼랑 위에 서 있었다·
휘이잉!
“····”
높은 곳에서 부는 바람은 무척이나 쌀쌀했다·
공략대는 그 바람을 맞으며 벼랑 아래 세상을 내다보았다·
우거진 밀림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저것들이 다음 층으로 가는 게이트란 건가·’
밀림에 걸치거나 상공에 떠 있는 형형색색의 빛을 머금은 원형문들이 눈에 들어온다·
원형문의 중심부에는 각기 다른 숫자가 떠올라 있었다·
그때 던전 가이드가 나타났다·
7층에 진입한 것을 축하합니다! 이러다 정말 최심부까지 가겠는데요? 과연 여러분이 어디까지 공략할 수 있을지 굉장히 기대····
“잡설은 됐고 미션이나 설명해·”
은하가 대뜸 말을 끊었다·
던전 가이드는 불쾌해하면서도 이제는 익숙해졌다는 양 한숨을 쉬었다·
참 무슨 말도 못 하겠네요···· 알았어요· 본론으로 넘어갈게요·
던전 가이드가 시선을 모으며 높이 날아올랐다·
저기 있는 원형 문들 보이죠? 저것들을 게이트(Gate)라고 해요· 게이트는 8층으로 이어져 있어요· 그러니 여러분은 밀림을 지나 저 중에 마음에 드는 게이트를 선택해 8층으로 넘어가면 돼요· 어때요? 별거 없죠? 7층은 사실상 중간 쉼터이자 8층 공략 난이도를 고르기 위한 세상이라 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
어느 게이트를 지나느냐에 따라 8층을 구성하는 세상도 주어지는 미션도 달라지니까요· 모든 게이트가 똑같은 8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중하게 고르도록 해요·
“게이트를 통해 입장한 8층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는 겁니까?”
이탈리아의 트레디치 중 한 명 로베르토가 손을 들고 물었다·
던전 가이드는 좋은 질문이라며 발랄한 어조로 답했다·
게이트 너머의 8층을 알고 싶다면 게이트 주변에 출몰하는 몬스터나 환경을 파악해 보는 게 좋을 거예요· 그것으로 대략적으로나마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되겠죠· 그런데 게이트마다 입장 가능한 인원이 제한돼 있어요·
“····”
게이트 중심부에 나타나 있는 숫자가 보이죠? 그 숫자가 바로 입장 가능한 인원수예요· 즉····
모든 공략대가 한 게이트만 골라 8층에 입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던전 가이드가 뒷말을 이었다·
그러니 신중히 고르란 거예요· 인원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어느 게이트에 들어갈 것인지· 아무튼 지금부터 미션을 시작할게요!
* * *
게이트 너머의 8층에 대해 최대한 정확히 알아내기 위해·
공략대는 밀림을 돌아다니며 게이트 주위의 환경을 조사했다·
그리하여 시간이 흘러·
“한국 공략대는 6 7 8 9 13 15 16번 게이트를 공략하겠습니다·”
공략대 대표들은 회의 끝에 입장할 게이트를 선택했다·
이때 은하는 속으로 안도했다·
‘진짜 힘든 시간이었다····’
회귀 전의 기억이 있었기에·
은하는 회귀 전에 공략대가 어느 게이트에 입장했었는지 8층에서 어떤 미션을 받고 결과가 어떻게 되었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최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여론을 조장하고 흐름을 틀고 대표들을 설득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친구들 또한 열심히 힘을 보탰다·
그로 인해 은하와 친구들은 여러모로 진을 빼야 했었다·
여하간·
“〈풍술사〉 님· 6 7 8 9번 공략대를 부탁할게요·”
“하아 이끄는 건 질색인데···· 알았어요 할게요·”
목적은 달성했다·
원하는 바를 이룬 은하는 십이좌 〈풍술사〉 채선우에게 인원을 나눈 병력을 맡기고 자신은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행동하기로 했다·
그때 알버트가 말을 걸어왔다·
“노은하 플레이어· 마침 저희랑 도중까지 가는 길이 겹치는데 같이 움직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네 좋아요· 그래요·”
고민할 필요도 없는 제안이었다·
은하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길로 은하와 알버트의 공략대는 함께 밀림을 나아갔다·
노정은 별다른 이상이나 위험 없이 순탄하게 흘렀다·
그러던 중·
“내가 마법 하나 알려 줄까? 당신한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됐네요· 그리고 언제 봤다고 나한테 반말이야?”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낀 건데 굉장히 미인이네요· 눈도 보석 같고· 아 아인이라고 비하하는 거 아니에요· 진심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아 네에···· 감사합니다·”
이탈리아 남자 두 명이 슬그머니 배수빈과 진서나에게 치근덕거렸다·
배수빈은 대뜸 불쾌한 티를 냈고 진서나는 힐끗 시선을 주었을 뿐 무심하게 받아넘겼다·
그런데도 두 남자는 끈질기다시피 그녀들의 관심을 사려 했고····
차츰 네 사람을 둘러싼 분위기가 험악해지려 하고 있었다·
‘자칫하면 한국과 이탈리아 간의 분란을 유도하겠는데···· 그보다 저놈들이 수빈이랑 서나를 건드려?’
뒤에서 벌어지는 낌새를 눈치챈 은하는 즉각 조치를 취했다·
그가 알버트에게 말을 붙였다·
“알버트 플레이어 저희 쪽은 제가 챙길 테니 그쪽은 맡길게요· 가능하면 주의라도 주면 좋겠네요· 따지고 보면 시비는 저들이 먼저 걸었으니까요·”
“면목이 없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따끔하게 일러 두겠습니다·”
알버트는 순순히 따라 주었다·
그에게 고맙다고 답한 은하는 이내 뒤에서 눈초리를 세우고 있던 배수빈과 진서나를 불렀다·
“수빈아 서나야· 거기 있지 말고 이쪽으로 와·”
“····”
은하에게로 고개를 돌린 두 사람·
두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을 풀었다·
“흥· 알았어 갈게·”
“응 지금 갈게!”
배수빈과 진서나는 걸음을 옮겨 은하에게로 향했다·
두 사람을 곁으로 불러들인 은하는 마저 길을 앞장섰다·
그렇게 한국과 이탈리아 공략대는 계속 밀림을 나아갔다·
그로부터 어느덧 시간이 흘러 두 공략대의 길이 갈라질 때쯤·
쿠구구구구!
“····”
음모오오오!
사람들은 진로 방향을 지나며 모래바람을 몰고 다니는 물소를 연상케 하는 몬스터 떼를 조우하고 말았다·
“저놈들이 하필 여기로 오다니····”
“한동안 거처로 사용할 것 같은데 토벌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가뜩이나 놈들을 쓰러뜨린 후에는 제3위계 리자드맨 로드의 군세와 전투를 벌여야 하는 판이다·
나직이 탄식한 알버트와 은하는 공략대에 전투 준비를 지시했다·
“먼저 무리를 흩트려 놔!”
즉각 마법을 준비하고 있던 캐스터들이 반응했다·
그들이 초목을 짓밟고 다니는 몬스터들 위로 포격을 가했다·
콰콰쾅!
모오오오!
놈들은 난데없이 떨어진 공격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통일된 움직임을 보이던 무리에 혼란이 발생한 것이다·
공략대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무리 속으로 파고들었다·
“위험하니까 가급적 정면에서 싸우지 마! 측면이나 후면을 노려!”
자칫 놈들의 뿔에 치이거나 직통으로 들이박혔다가는 목숨을 장담할 수 없었다·
공략대는 은하의 지시에 수긍하며 침착하게 흥분한 몬스터들을 상대해 나갔다·
이변이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화륵!
“···!?”
돌연 상공에서 불길이 피어올랐다·
머리 위에서 느껴진 열기에 고개를 든 공략대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직후 불길이 폭포처럼 떨어졌다·
화르륵! 쏴아악····
“부 불이다! 피해! 아니 막아!”
화아악!
공략대는 예측지 못한 상황에 당혹감을 금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행히 정신을 차린 서포터들이 대응에 나섬으로써 불길을 떨칠 수 있었다·
한편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은하는 불꽃의 망토를 펼쳐 근처에 있던 온태희와 선미예를 감쌌다·
“으 은하 오빠····”
“괜찮아· 태희랑 미예는 얼른 마녀님 곁으로 가 있어· 거기가 제일 안전할 거야·”
“네에····”
“지켜 줘서 고마워요 클랜 로드·”
온태희와 선미예가 급히 물러난다·
그녀들을 떠나보낸 은하는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까운 거리에서 접근해 오는 다수의 기척이 느껴지고 있었다·
‘우리가 전투에 집중한 사이 몰래 다가오고 있었던 건가· 대체 어떤 놈들인 거지? 무엇보다 방금 마법은····’
몬스터들이 쓰는 마법과 달리 정제된 면이 있었다·
마치 플레이어들의 마법처럼·
‘설마 내분이라도 일어난 건가? 회귀 전에는 없었는데····’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다·
불안한 가정을 떠올린 은하는 숲속을 주시했다·
곧이어·
“Uwaaaaahhh!”
누더기를 걸치고 무기를 든 존재들이 고함과 함께 튀어나왔다·
인간이었다·
그러나 공략대는 아니었다·
‘저놈들이 어떻게····’
던전을 공략하는 과정에서 버린 죄인들이 틀림없었다·
이내 그들의 붉은 눈을 확인한 은하는 깨달았다·
‘〈심해의 던전〉에 귀속된 거야·’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필시 던전 가이드가 꾀했으리라·
속으로 던전 가이드를 욕한 은하는 공략대에 전파했다·
“적이다! 절대 봐주지 마!”
* * *
던전에 귀속돼 마인으로 변한 죄인들이 습격을 가해 왔다·
회귀 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은하는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놈 때문이야!’
물소를 연상케 하는 몬스터들과 소란을 듣고 나타난 리자드맨들 그 밖에 여러 종류의 몬스터들·
거기에 공략대와 죄인들이 섞여 난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알버트는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와 치열하게 싸우는 중이었다·
눈을 부릅뜨고 손도끼를 휘두르는 남자는 알버트에 대한 적개심을 명확히 드러냈다·
“알버트 발렌타이이인!”
“큭!”
회귀 전과 달리 운명이 바뀐 로렌조 마이론·
은하는 죄수들을 이끌고 있는 그가 원흉이라고 판단했다·
‘저놈을 처리해야 해·’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알버트를 지원하러 가기 위해서는 혼란스러운 전장을 뚫어야 하는 데다 마인으로 변한 죄인들이 유독 은하에게 덤벼들었기 때문이다·
연유는 간간이 들려오는 영어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He is Eunha No!”
“Don’t let him go!”
“Hold him! Hold him!”
“Kill 〈Overlord〉! We have to kill him!”
죄인들도 〈심연의 던전〉을 공략한 은하에 대한 소문은 들었으며 〈심해의 던전〉에 입장한 후로는 직접 그의 실력을 목격한 상태이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그들이 은하에게 경계심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은하는 혀를 찼다·
“이런 인기는 바라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다·
은하는 죄인들을 상대하기로 하며 알버트와 다른 트레디치들에게 로렌조를 맡기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냉정하게 전황을 살폈다·
‘이대로 싸우기만 할 수는 없어· 갈수록 몬스터는 많아질 테고 전세는 우리한테 불리해질 거야·’
단기에 끝낼 수 없는 전투라면 공략대의 전력 소모가 심하리라·
그런데 마침 멀지 않은 거리에서 당초 목표로 한 게이트들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이놈들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몬스터들이 우리를 따라 게이트를 넘어오지는 않겠지·’
은하는 결론을 내렸다·
“서나야·”
“응 말만 해· 텔레파시라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으니까·”
은하와 등을 맞대고 있던 진서나가 믿음직스럽게 말했다·
그녀가 삼각 귀를 쫑긋 세웠다·
“일단 서포터들한테 전해 줘· 내가 신호하면 적들 눈이 멀게 섬광탄을 터뜨려 달라고·”
“그리고?”
“다음에는 대원들한테 전해 줘· 섬광탄을 터뜨리는 시기에 맞춰 각자 정해진 게이트로 뛰어가라고·”
“괜히 전력 소모를 할 바에는 8층으로 이동하겠다는 거구나· 알았어 좋은 생각이야·”
“이탈리아 공략대에도 부탁할게·”
“오케이·”
대화를 마친 직후 진서나는 사람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그렇게 작전을 들은 사람들은 때를 기다리기로 했는데····
바로 그때·
끼루룩! 끼루룩! 휘이익!
“···어?”
탁!
“···!”
상공에서 급강하한 비행형 몬스터가 부지불식간에 이리야를 낚아챘다·
맹금류를 연상케 하는 놈은 곧장 지면에서 수직으로 급상승했다·
“꺄아아악!”
눈 깜짝할 사이에 놈의 발에 챈 이리야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비명이 울려 퍼진다·
은하는 즉시 불꽃의 날개를 펼쳤다·
“이리야!”
놈의 비행로를 답습해 날아오른다·
중력에 저항해 수직으로 상승한 은하는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놈의 속도가 워낙 빨라 좀처럼 따라붙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환수 변환: 라이거 블래스터〉
블래스터로 저격한다·
은하는 오른팔로 블래스터를 고정했다·
전격을 모으고····
‘맞아라!’
쏜다·
푸른 섬광이 하늘을 가로지른다·
이윽고 섬광은 은하의 의도대로 놈의 하체를 스쳤다·
화들짝 놀란 놈이 반사적으로 발에 준 힘을 풀었다·
“꺄아아악!”
이리야가 추락한다·
은하는 최대 속도로 날아가 떨어지는 그녀를 받아 냈다·
그의 두 팔에 안긴 채로 눈을 질끈 감고 있던 그녀가 조심스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주님?”
“괜찮아?”
“네 네에···· 고마워요 주님·”
이리야가 진정한다·
그녀가 부드럽게 미소 짓는다·
은하는 안심했다·
하지만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끼루룩! 끼이아아악!
이리야를 빼앗긴 비행형 몬스터가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다른 몬스터들도 은하와 이리야를 표적으로 인식했다·
은하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정신없을 거야· 놓치지 않게 꽉 잡아·”
“네 주님·”
이리야를 지키며 싸울 수는 없으니 지상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그런데····
‘끈질기네·’
워낙 놈들의 추격이 집요했다·
이래서는 공략대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지상에서의 지원은 없는 건가····’
안타깝게도 지상에 있는 공략대도 상당히 분주한 모양이다·
어쩌면 자신의 작전을 실행해 벌써 게이트로 대피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은하는 마음을 정했다·
‘이판사판이다·’
근처에 가까운 게이트가 있었다·
은하는 이리야를 세게 껴안고 냅다 게이트 속으로 들어갔다·
시야가 빛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