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이프 플레이어 (965)
〈심해의 던전〉 6층·
은하는 미래 유성을 비롯해 배를 지키는 사람들과 함께 낚시를 하고 있었다·
이는 다른 공략대의 배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평화롭구만·”
“그러게요· 앞으로 남은 공략도 이런 식이면 여한이 없겠어요· 불가능하겠지만····”
“아쉽게도 불가능하겠지·”
“그래도 나는 좋다····”
지금까지 공략한 층에 비해 한결 부담이 덜하다·
은하와 미래 유성 어베니어 등 사람들은 따스한 햇볕을 쬐며 누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까지 하니 기분이 더 좋아졌다·
“앗싸 또 월척이요! 구래야 그물 좀!”
“오 자기 꽤 하는데? 이게 벌써 몇 마리야?”
“훗 내가 좀 잘 낚지· 던지기만 하면 다 낚인다니까?”
한쪽에서는 대어를 낚은 강시형이 의기양양해하고 있었다·
그가 콧대를 높이 세우며 활짝 가슴을 폈다·
쌍둥이 자매 메이링 메이린은 그런 그를 놀려 댔다·
“시형이가 고기는 잘 낚네? 여자는 못 낚는 것 같지만·”
“언니 혹시 또 모르는 일이지· 시형이가 낚은 게 어쩌면 암컷 물고기일 수도 있잖아?”
“어머나 그건 생각 못 했네· 미안 내 생각이 짧았어· 여자 못 낚는다는 말은 취소·”
“언니 그래도 확인은 해야지· 언니 말이 맞을 수도 있잖아?”
“하지만 만약에 아니면 어쩌지? 그때는 우리가 시형이를 두 번 죽이게 되는 거잖아·”
“흑흑···· 그럼 우리 시형이 불쌍해서 어떡해····”
쌍둥이 자매가 눈가를 훔치며 우는 척 연기한다·
강시형은 토라진 얼굴로 받아쳤다·
“너희는 내 물고기 먹지 마라· 내가 진짜 주나 봐라····”
“아잉 시형아~ 그러지 마아~·”
“맞아 미안해· 우리 마음 알지?”
“응 너희는 가시도 없어~·”
아쉬운 사람이 매달리는 법이다·
강시형이 생선을 인질로 삼자 쌍둥이 자매는 태도를 바꿔 그에게 아양을 떨었다·
주위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에게는 나름 웃음이 나오는 볼거리였다·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온태희 선미예 손가연이 낚시를 하며 도란거리고 있었다·
“아 또 미끼만 먹고 빠졌네···· 너희는 어때?”
“저는 그럭저럭 잡히고 있어요· 이따 매운탕 해 먹어도 되겠어요· 그러고 보니 아빠 아니 아버지가 매운탕 좋아했는데····”
“나는 초밥 먹고 싶어····”
이렇듯 배를 지키는 사람들은 평화로이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러던 그때·
“은하은하! 지금 일 없다고 너무 팔자 좋게 놀고 있는 거 아니야? 우리는 일하느라 죽겠는데····”
바닷속을 탐사하던 아리엘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가 영 못마땅하다는 듯 한가득 볼을 부풀렸다·
머리 양옆에 난 푸른 비늘이 항의의 의미로 파닥거리기도 했다·
은하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우리가 놀고 있는 거로 보여? 지금 배 지키고 있잖아·”
“와 배를 지키는 게 아니라 태평하게 낚시나 하고 있으면서 너무 뻔뻔해! 은하은하 실망이야!”
“낚시야 저녁거리나 구하려고 겸사겸사 하고 있는 거고· 매일 보존식만 먹으면 질리잖아?”
“으음 그렇기는 한데····”
“이따 내가 라면 끓여 줄게· 해물라면 분명 맛있을 거야·”
“스읍·”
아리엘이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침을 삼킨다·
은하는 피식거렸다·
“이외에도 이것저것 잡았으니까 이따 저녁 기대해도 될 거야· 우리가 너희 고생을 아는데 이렇게라도 보답해야 하지 않겠어?”
“흐흥 이제 보니까 센스쟁이네· 역시 은하은하라니까!?”
“이제 알았어? 그러니까 이만 용건이나 말해 주지 않을래? 너 때문에 고기가 달아나잖아·”
“앗! 은하은하 지금 나보다 고기가 더 중요하다는 거야!?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너한테 맛있는 저녁을 주려면 고기를 잡아야 하니까 이해해 줘·”
“그럼 내가 더 중요해?”
“당연히 네가 더 중요하지·”
“아싸! 은하은하 그럼 있잖아· 이따가 해물라면 먹을 때 나 이슬도 조금만····”
“안 돼·”
“····”
화색이 돌던 아리엘의 얼굴에 우중충 먹구름이 낀다·
은하는 그녀를 달래····
“안 돼·”
···지 않았다·
그가 재차 강조했다·
아리엘은 배신감에 뾰로통해졌다·
“은하은하 나빠· 미워· 못됐어·”
“미안하게 됐다· 대신 나중에 던전을 공략하고 나가게 되면 원 없이 마시게 해 줄게·”
“흥! 그런 식으로 꼬드겨도····”
“밤새도록 술친구도 해 줄게· 네가 같이 노래 부르자고 하면 같이 노래도 불러 주고·”
“···정말이지?”
“그래 정말·”
“좋아 약속한 거야!”
아리엘이 금세 기운을 되찾는다·
은하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반면 옆에 있던 미래 유성은 “정말이지···· 아리엘 이모는 아버지 말에 금세 넘어가네요·”라고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쓴웃음을 흘렸다·
여하간·
“그래서 탐사는 어떻게 됐어? 조개들 서식지는 찾았어?”
은하는 화제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에 얼굴을 활짝 편 아리엘이 손가락을 V 자로 내밀며 답했다·
“응 찾았어! 그런데 문제가 있어·”
“문제가 뭔데?”
“조개들을 지키는 몬스터들이 꽤 많더라고· 그래서 우리 말고도 따로 지원이 필요할 것 같아· 은하은하 같이 가자!”
“어쩔 수 없네·”
* * *
6층에서 주어진 미션은 사실상 개인 미션이나 다름없었다·
다음 층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6층 어딘가에 있는 섬의 재단에 제6위계 산호 대왕조개의 진주를 인수분만큼 바쳐야 했으니까·
그래서 공략대는 역할을 나누어 누군가는 배를 지키기로 하고 다른 누군가는 놈들을 찾으러 바닷속을 탐사한 것이다·
“그런데 기껏 조개들을 찾았더니 주위에 다른 몬스터들이 있어서 접근할 수가 없었다는 거지?”
“응응! 아주 우글우글하더라고· 은하은하가 귀띔해 주지 않았다면 멋모르고 서식지 가까이 다가갔다가 큰일 날 뻔했지 뭐야·”
“다친 사람은?”
“다행히 없어! 지금은 다들 멀리서 대기 중이야·”
바닷속을 헤엄 중인 가운데 은하 일행에게 길을 안내하는 아리엘이 간략히 상황을 전달했다·
그녀가 숨을 쉬고 말할 때마다 입과 코에서는 공기 방울이 보글보글 떠올랐다·
그것은 비단 그녀뿐만 아니라 은하와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머지않아·
“다 왔어! 저기야!”
은한 일행은 해저 협곡에 다다랐다·
산호 대왕조개를 찾던 사람들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위 지형지물에 숨어 있던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산호 대왕조개들은 저곳에 있어·”
카에데가 다소 거리가 떨어져 있는 산호초 일대를 가리켰다·
“····”
마나로 안력을 키운 은하는 그 속에서 입을 뻐끔거리고 있는 거대한 조개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시에 인간의 혀를 연상케 하는 살점 위에 얹혀 있는 존재를 유인하는 마나를 내뿜는 진주 또한·
“잘 찾았네· 조개들 숫자는?”
“정확히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족히 50개는 되는 것 같더라·”
“50개라···· 처음 찾은 것치고는 제법 많기도 하네· 운이 좋은걸?”
“그래서 놈들을 지키고 있는 몬스터들도 만만치 않은 거겠지·”
“그놈들은 어디에 있는데?”
“주위 바닥이랑 협곡 벽면을 자세히 보도록 해· 조개들 때문에 시선이 잘 가지 않기도 하고 주변이 어두워 놓치기에 십상이겠지만 자세히 보면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거야·”
“확실히···· 그러네·”
마침 해저 벽면에 난 구멍에서 곰치를 연상케 하는 몬스터가 고개를 내밀었다·
제4위계 몬스터 어비스 모레이(Abyss moray)였다·
“그리고 바닥에 드문드문 있는 바위들 보이지? 잘 보면 저것들 중에 주위 환경과 미묘하게 동떨어져 있는 바위들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카에데가 언급한 바위 속에는 소라게를 연상케 하는 몬스터가 살고 있었다·
제5위계 몬스터 트렌치 퍼그리드(Trench pagurid)였다·
“그런데 저놈들로 끝이 아니야· 아까 이곳에서 은신하고 있자니 청새치같이 생긴 몬스터들이 수시로 들락날락하더라고·”
“아마 제5위계 패트롤 마린(Patrol Marlin)일 거야· 무리를 지었다면 높은 확률로 상위 개체도 있겠고·”
아무래도 쉽지 않은 전투가 되겠다·
하지만 해야 한다·
은하는 사람들에게 지시했다·
“인원을 두 그룹으로 나누자· 한 그룹은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다른 한 그룹은 그사이에 진주들을 빼 오는 거야·”
이때 절대 산호 대왕조개를 토벌해서는 안 됐다·
놈들이 소멸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같은 존재에 속하는 진주 또한 소멸해 버릴 수 있으니까·
그러니 놈들을 토벌하지 않고 진주만을 손에 넣어야 했다·
은하의 의견에 동의한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패트롤 마린들도 없는 김에 바로 시작하자·”
직후 은하를 비롯한 사람들은 목적지로 향했다·
그렇게 진주를 훔치기 위한 전투가 벌어졌다·
* * *
몬스터들은 진주를 뺏기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덤벼들었다·
그러다 보니 은하 일행은 어찌어찌 진주를 훔치고 나서도 배로 돌아갈 때까지 내내 놈들의 추적에 시달려야 했다·
아니 돌아오고 나서도 문제였다·
‘진주의 마나에 홀린 몬스터들이 계속 위해를 가해 오느라 긴장을 놓을 수 없었지····’
나름대로 쉴 수 있었던 것도 진주를 얻기 전까지였다·
이후로 공략대는 편할 새 없이 피로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다행히 오늘로 끝이지만·’
필요한 진주는 모두 모았다·
이제는 6층에서의 생활과 작별할 때다·
잠시 지난날을 회고한 은하는 상념을 깨고 고개를 들었다·
섬의 산길을 오른 끝에는 거대한 철문이 세워져 있었다·
7층으로 가기 위한 문이다·
문을 지날 사람의 수만큼 제단에 진주를 바쳐 주세요!
공략대는 철문 근처에 위치한 잔처럼 움푹 파여 있는 제단을 찾았다·
은하를 비롯해 공략대 대표들은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리부터 하지·”
알버트 발렌타인을 시작으로 공략대 대표들은 가져온 진주들을 제단에 부었다·
이내 진주들이 활활 타오르며·
화아악! 끼이익····
별안간 진주와 같은 색의 빛이 철문 전체에 퍼졌다·
철문이 열린다·
원래라면 대해(大海)가 담겼을 문 너머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한꺼번에 들어갈 수는 없으니 국가별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저희 이탈리아부터····”
던전 가이드의 보장에 따르면 7층부터는 배가 필요치 않았다·
애초 눈앞에 있는 철문으로 배를 끌고 산길을 오르기에는 막대한 수고를 필요로 했다·
그렇기에 공략대는 안타깝지만 그동안 정든 배를 버리고 필요한 짐을 꾸려 이동하기로 협의한 상태였다·
“····”
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몰랐다·
저마다 굳은 표정을 지은 사람들은 문을 지나기 위해 걸음을 나아갔다·
그러던 그때·
“Pleaaaasssseeeee!”
“Take uuuussssss!”
“····”
철문이 세워진 벼랑 아래에서 정확히는 정박해 있는 배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여러 요건을 고려한 과정에서 6층에 버리고 가기로 한 죄인들이 지르는 소리였다·
“····”
제발 우리도 데리고 가 우리를 버리지 마 살려 줘····
공략대는 저 아래에서 들려오는 간절함이 묻어나는 절규에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안 오고 뭐 하나? 들어간다·”
저들에게 부족한 식량을 주고 저들을 위해 진주를 모아 주는 등 자비를 베풀 수는 없었다·
철문 앞에서 공략대를 인도하던 알버트는 냉정한 목소리로 그들을 일깨웠다·
“····”
그들 또한 알고 있었다·
그들은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문 너머로 발을 들였다·
이후로 나아가는 다른 공략대도 은하가 이끄는 한국 공략대도 죄인들을 외면했다·
시간이 흘러·
화아악····
“아아····”
철문에 깃든 빛이 꺼지며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제단에 바친 진주 개수만큼 사람들을 7층으로 보내는 역할을 마친 것이다·
배 위에서 그 사실을 깨달은 죄인들은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목메어 우는 소리가 섬에 울려 퍼졌다·
“빌어먹을 자식들····”
“····”
공략대를 향한 설움이 분함이 증오심이 적개심이 차오른다·
죄인들은 눈이 벌게질 정도로 굵직한 눈물을 흘려 대고 목에 핏줄이 돋을 정도로 악에 받쳐 소리를 치고 무심코 피가 날 정도로 세게 주먹을 쥐고 또 입술을 깨물었다·
별안간 허공이 세로로 갈라져 누더기 망토를 걸친 사람들과 던전 가이드가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버려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네요· 흑흑····
“····”
그런 여러분에게 기회를 줄게요·
던전 가이드가 키득거렸다·
죄인들은 흐느끼던 것도 잊고 멍하니 던전 가이드를 바라보았다·
살고 싶죠? 죽고 싶지 않죠? 그리고····
“····”
여러분을 버리고 간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싶죠?
당연하다·
죄인들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던 것밖에 모르던 그들의 눈동자에 의지가 맺혔다·
의지는 곧 살기로 변했다·
좋아요· 여러분의 귀속을 환영할게요·
던전 가이드는 기꺼워했다·
그러고는 누더기 망토를 걸친 한 남자의 어깨에 앉았다·
망토 속에서 붉은 눈을 발한 남자 로렌조 마이론이 입을 열었다·
“함께하자 나를 따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