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이프 플레이어 (963)
구름이 달을 가린 밤 아래 몬스터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코끼리 돼지 하마 개 등 여러 동물의 외형이 섞인 몽마들은 사람들의 꿈속을 드나들며 그들을 악몽에 빠뜨리고 있었으며·
박쥐를 연상케 하는 몬스터는 특수한 초음파를 퍼뜨려서는 사람들의 마나 감지 능력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었고·
각기 원숭이와 독수리를 닮은 몬스터들은 빠른 기동력으로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또한 웨어울프 부류에 속하는 몬스터는 어둠을 몸에 달고 기습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거기에 바다에서 올라오는 갑각류 몬스터들도 있으니····’
한밤중에 잠에서 깬 사람들은 그놈들 전부를 상대해야 했다·
피융! 퍼퍼펑! 화아악!
사람들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 연신 밤하늘에 섬광을 터뜨렸다·
섬광은 다른 곳에서도 솟구쳤다·
한국 공략대뿐만이 아니라 다른 공략대들도 몬스터들에게 습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다들 깨서 망정이지 아무것도 모르고 당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네·’
회귀 전에 2층에 진입한 공략대가 몽마에 대처하지 못한 채 몬스터들에게 야습을 당해 큰 타격을 입었을 만했다·
은하는 몬스터들을 상대하며 혀를 찼다·
한편으로는 공략대에 지시했다·
“몽마들을 우선해서 죽이도록 해!”
기껏 현실 세계로 끄집어낸 몽마들을 이대로 놓쳐 버렸다가는 추후에 화근을 남기고 말리라·
은하의 판단에 수긍한 공략대는 가급적 놈들을 토벌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이때 상성상 우위를 점하는 이리야와 서포터들이 크게 활약했다·
‘다음으로 쓰러뜨려야 할 건····’
은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박쥐를 연상케 하는 몬스터들과 여러 종류의 비행형 몬스터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밤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공략대의 부담은 더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공중전에 능한 사람들과 지상에서 요격 가능한 사람들이 놈들을 상대하고 있기는 했으나····
휘이익! 퍼퍼펑!
삐이이이익!
안타깝게도 성과는 시원치 않았다·
놈들이 워낙 재빨랐던 데다 제법 지능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배수빈이나 라라를 요정 환장으로 바꿔 장미꽃이 흩날리는 옷을 입고 놈들에게 대항하는 조아라 등 공중전에 힘쓰고 있는 사람들은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삭! 사사삭!
크르릉!
지상에서 공중전을 지원하는 봉구래나 손가연 같은 사람들도 처지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어둠을 몸에 두른 채 은밀하게 공격을 가해 오는 웨어울프형 몬스터들로부터 빈번히 방해를 받아야 했다·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러니·
‘몽마들은 이리야네한테 맡기고 나는 공중전을 지원해야 해·’
판단을 내린 은하는 당장 어깨에 두른 피닉스의 망토를 날개로 변환하려 했다·
시야 끝에 카에데가 걸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파샤샥! 휘이익!
춤을 추듯 스텝을 밟으며 긴 머리칼을 휘날리는 호시미야 카에데·
그녀는 신기에 가까운 속사로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상대하며 공중전을 지원하고 있었다·
은하는 그런 그녀에게 접근하는 웨어울프형 몬스터를 목격했다·
〈우보〉
소리를 쳐서 알리기에는 늦고 행여나 되레 카에데의 실수를 유도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은하는 지면을 박차 우보로 단숨에 거리를 좁혀 그녀의 뒤편으로 이동했다·
거의 동시에 웨어울프형 몬스터가 은신을 풀고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크르릉!
“···뭣!?”
휘익!
“···!”
카에데를 한쪽 팔로 감싸며 뒤로 잡아당긴다·
자연히 은하의 품속에 들어온 그녀는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 반사적으로 고개를 젖혀 은하를 올려다본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괜찮아 가만히 있어·”
“····”
카에데를 안심시키기 위해·
은하는 그녀의 머리 위에서 낮은 소리로 고했다·
한편으로는 몬스터를 주시했다·
은하로서는 그녀를 품에 안느라 달려드는 놈의 공격에 대응하기에는 늦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걱정하지는 않았다·
‘어둠은 너만 다룰 줄 알고?’
일전에 백서진의 신화를 흡수한 은하는 이제 자유자재로 어둠을 다룰 수 있었다·
마침 주위가 깜깜했다·
체내 마나를 발현한 은하는 어려움 없이 어둠을 불러와 자신과 카에데를 감쌌다·
크릉!?
결과 몬스터가 휘두른 공격은 물질로 변해 단단해진 어둠에 튕겨나 버렸다·
은하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내 차례다·’
방어에서 공격으로 전환한다·
은하는 주위를 감싼 어둠을 날카로운 송곳으로 변환시켜 몬스터를 꿰뚫어 버렸다·
깨갱!
저항할 새도 없이 가슴을 찔린 놈은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은하는 입자로 변해 사라지는 놈에게는 관심도 두지 않고 품 안에 있는 카에데를 살폈다·
“괜찮아? 조심해·”
“어····”
일부러 은하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푹 수그린 호시미야 카에데·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리고 말을 더듬었다·
“저 저기···· 고 고····”
“고?”
“고····”
카에데가 자꾸 부끄러워한다·
자신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려는 그녀의 심정을 눈치챈 은하는 짓궂은 얼굴로 기다렸다·
이윽고 귀 끝이 빨개진 그녀가 몸을 홱 돌리며·
“아리가또우····”
일본어로 고맙다고 말했다·
은하는 절로 웃음을 터뜨렸다·
“한국어로 말하면 되지 왜 일본어로 말하는 거야?”
“시 시끄러· 내 마음이야····”
* * *
공략대가 분발해서 싸운 결과 어느덧 상황이 정리되고 있었다·
비행형 몬스터들을 쓰러뜨리던 은하는 공중에서 전황을 파악했다·
‘나머지는 아라랑 수빈이네한테 맡겨도 되겠지·’
이제는 지상전을 돕기로 한다·
밤하늘을 한 바퀴 돌며 하강한 은하는 불꽃의 날개를 펴고 바닥에 착지했다·
그러고는 지상전을 벌이고 있던 사람들에게 가세했다·
끼끽끼끼끽! 끼기···익?
“숫자로 밀어붙이면 뭐 해? 상대가 안 되는데·”
다수의 힘을 믿고 덤벼드는 원숭이형 몬스터들을 베어 낸다·
어렵지 않게 놈들을 처리한 은하는 가볍게 홍화검을 휘둘러 칼날에 묻은 피를 흩뿌렸다·
몬스터 특유의 푸른 피가 주위로 후두둑 떨어져 나갔다·
“···응?”
기척을 느낀 것은 그때였다·
은하는 어둠이 짙게 깔린 숲속으로 시선을 향했다·
사그락사그락! 타닥! 사삭!
“····”
살기가 뚜렷한 다수의 기척이 공략대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이 움직임은····’
몬스터는 아닌 듯했다·
그렇다는 뜻은····
바로 그때·
“Woooaaaaaaah!”
[은하야! 미국 공략대 대표 에제키엘 플레이어의 전언이야!]
다른 국가의 공략대 사람들이 숲속에서 함성을 지르며 튀어나왔다·
동시에 진서나의 다급한 목소리가 텔레파시를 통해 전해지기도 했다·
[몽마의 세뇌에 당한 사람들이 우리 진영으로 도망쳐 오고 있대! 미안하지만 가능한 그들을 인도적으로 대우해 달란 전언이야·]
그제야 은하는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몽마의 세뇌에 당해 버린 미국 공략대의 플레이어들이다·
‘어쩔 수 없네!’
세차게 혀를 찬 은하는 즉각 한국 공략대에 지시했다·
“미국 공략대 쪽 사람들입니다! 세뇌에 걸려 제정신이 아니니 최대한 주의해서 제압하도록 해요!”
미국 공략대 사람들을 제압하라니 몬스터들을 쓰러뜨리는 것보다 더 까다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국 공략대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그럼에도 그들은 지시에 따라 서슴없이 무기를 휘둘러 대는 미국인들을 제압하러 나섰다·
“이 사람은 제가 맡을게요!”
“아 알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당연히 은하도 함께했다·
한국 공략대의 피해를 우려한 은하는 주로 제압하기 버거운 상대를 전담했다·
현재 마주하고 있는 상대 대검을 쥔 남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Monster····”
남성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실핏줄이 돋아날 정도로 충혈된 눈동자에서는 살기가 가득했고 목소리에서는 증오가 묻어났다·
다짜고짜 증오의 상대가 돼 버린 은하는 코웃음을 쳤다·
“사람을 보고 몬스터라니···· 완전히 정신이 나갔군·”
조금 전 대검을 휘둘러 대며 사람들을 위협하던 것을 볼 때 상당한 실력자다·
이대로 뒀다가는 위험하다·
얼른 기절시켜야겠다·
은하는 남자를 제압하기 위해 전투에 들어갔다·
“Fuuuccckkk!”
“욕하지 마·”
남자는 저돌적인 면모를 보이며 은하를 죽이려 들었다·
하지만 남자가 휘두른 대검은 은하의 옷깃도 스치지 못하고 번번이 홍화검과 황혼검에 가로막혔다·
오히려 은하의 힘을 이기지 못해 뒤로 밀려나거나 품을 내주고는 했다·
그러는가 싶더니····
‘뭐지? 이 사람····’
상대할수록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은하는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기분 탓이 아니야·’
남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강해지고 있었다·
은하와의 전투를 밑바탕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이건····’
학습하고 있다·
그 표현이 더 정확하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은하는 깨달았다·
‘틀림없어· 〈버서크〉가 분명해·’
기프트 〈버서크〉·
정확히는 〈엔들리스(버서크)〉·
한 번 발동하면 정신을 잃을 때까지 이성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는 대신 마나 소모량과 발동 시간에 비례해 학습 능력을 증대하는 기프트·
그것은 〈버서커〉란 이명으로 불린 회귀 전의 노은하를 상징한 기프트이기도 했다·
남자는 그 기프트에 사로잡혀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에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미국에 나와 같은 기프트 보유자가 있기는 했었어·’
회귀 전의 은하가 대체 어떻게 자신의 기프트를 〈버서크〉라고 정의할 수 있었던가·
바로 미국에 같은 기프트를 지닌 플레이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였다·
‘이름이 아마····’
블레이크 파커·
이제는 희미해진 기억 속에서 남자의 이름을 떠올린 은하는 처음으로 거리를 벌렸다·
〈버서크〉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전법을 바꿔야 했으니까·
‘설마 공략에 참가했을 줄은···· 회귀 전에는 없던 일이야· 나비 효과라도 일어난 건가? 잠깐 그런데 나랑 같은 기프트면 세뇌에 당했을 리 없는데···· 세뇌에 당한 게 아니라 순전히 〈버서크〉 기프트 때문에 이성을 잃은 건가?’
하지만 아무렴 상관없다·
잡념을 배제한다·
‘단숨에 끝낼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섭하지· 배울 기회야·’
은하는 자세를 낮게 숙이며 금방이라도 돌격할 태세를 취했다·
“Monster···· Monsteeerrr! I’m gonna kill them all!”
한편 광기에 휩싸인 블레이크는 조금도 주저하는 일 없이 냅다 은하에게 향하고 있었다·
은하는 입가를 끌어 올렸다·
“글쎄 난 몬스터 아니라니까?”
차분히 호흡을 고르는 한편 체내 마나를 발현한다·
분노와 증오 후회를 곱씹으며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회귀 전의 기억을 돌이킨다·
‘〈버서크〉에는····’
그것을 심장과 영혼을 태우는 불씨로 만든다·
발동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잠들어 있는 상태의 기프트를 강제로 깨운다·
“〈버서크〉지·”
은하는 기프트를 발동했다·
〈기프트: 엔들리스(버서크)〉
심장이 급격히 뛰기 시작한다·
피가 끓고 전신에서 힘이 넘친다·
시야가 붉어지고 좁아진다·
그러나·
“까불지 마·”
의식을 잃지는 않았다·
은하는 곧장 걸음을 내디뎌 블레이크에게 돌진했다·
충돌한다·
───!!
두 자루의 검과 대검이 부딪치며 금속음을 퍼뜨린다·
허공에 빠르고 현란한 궤적을 느리고 묵직한 궤적을 남긴다·
소리와 빛이 쉴 새 없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리고 점점····
“Damn it!”
격차가 벌어진다·
어느 순간 블레이크 파커는 은하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힘으로 우위를 차지하지도 못했다·
그가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검은 너무나 우스울 정도로 쉽게 은하의 검에 튕겨 났다·
급기야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기우뚱거리기도 했다·
은하는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지금이다!’
앞발을 내디뎌 품속으로 파고든다·
그사이 블레이크가 본능적으로 오른손에 쥔 대검을 움직였다·
은하는 왼손에 쥔 황혼검을 들어 머리 위로 떨어지는 공격에 대비하며····
휘이익!
일찍이 오른손으로 거꾸로 쥔 홍화검의 포멜 칼머리를 올려쳤다·
그대로 블레이크의 턱을 쳐서 두개골에 충격을 주었다·
“···커헉!”
블레이크가 발을 접질렸다·
완전히 균형을 잃고 무너진다·
아니 기절한다·
“덕분에 잘 배웠네· 땡큐·”
다소 장난스러운 어조로·
은하는 바닥에 철퍼덕 쓰러진 블레이크에게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