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이프 플레이어 (960)
After Story 12· 심해의 던전
선력 24년 12월·
마침내 〈심해의 던전〉 공략일이 밝았다·
이날 공략에 참가하는 한국과 이탈리아의 플레이어들은 로마현 치비타베키아 항구에 집결했다·
“짐 제대로 실었는지 마지막까지 수시로 확인해!”
“배에 이상은? 조금이라도 신경 쓰이는 점이 있다면 반드시 상급자에게 보고하도록!”
짐을 싣고 배를 점검하는 인부들이 이탈리아어로 말하며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뒤로한 은하는 한국 측의 상태를 확인했다·
“태희야 미예야· 적재 작업은 지금 어디까지 진행됐어?”
“거의 다 됐어요· 90% 정도?”
“중장비는 이미 모두 실었고 지금은 건조식을 싣는 중이에요·”
“작업은 제시간에 완료되겠네· 음 그런데 식량은···· 혹시 모르니 상태를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미예야 네가 시간 남는 애들 좀 데리고 가서 재차 확인해 주고 오지 않을래?”
“안 그래도 그럴까 했어요· 클랜 로드 말대로 할게요·”
“고마워· 태희는 배 수리가 제대로 끝났는지 이상은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 주고·”
“네 그럴게요· 맡겨 주세요·”
은하의 참모 역할을 수행하는 온태희 선미예가 자리를 떠난다·
은하는 또 다른 참모를 맡은 진서나에게 지시했다·
“서나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각 조장들한테 사람들 컨디션을 확인해 줘·”
“알았어· 텔레파시를 보내 볼게· 10분이면 될 거야·”
진서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삼각 귀 사이로 스파크를 튕긴다·
그대로 텔레파시스트들과 텔레파시를 주고받기 시작한다·
은하는 괜히 그녀를 건드려 집중을 방해하지 않게 주의했다·
‘따로 신경 써야 할 일은···· 일단 이걸로 다 한 셈인가·’
나머지는 참모진에게 믿고 맡기기로 한다·
은하는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며 숨을 내뱉었다·
공략대를 배웅하러 나온 송윤서 헤르미트 벽해수 백현율 등이 다가온 것은 그때였다·
“판도라 클랜 로드가 바쁘겠어요· 준비는 잘되고 있나요?”
“클랜 로드 몸조심하기 바랍니다·”
“너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래도 몸 성히 돌아와라·”
“우움···· 다치지 마· 후암·”
저마다 응원의 말을 건네는 사람들·
은하는 피식 웃는 한편 그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 무사히 잘 다녀올게· 그러니까 다들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별헤는 마녀〉 님·”
“네 판도라 클랜 로드·”
“별점은 어떻게 나왔나요?”
“왜요? 공략 성패가 궁금해요? 천하에 판도라 클랜 로드라도 걱정이 없지는 않나 보네요·”
송윤서가 피식거린다·
은하는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저야 왜 걱정이 안 되겠어요· 그러니 마녀님한테 들어야겠네요· 공략대의 사기 증진을 위해서라도·”
“그러다 결과가 나쁘게 나왔다면 어쩌려고요?”
“어쩌긴요 못 들은 셈 쳐야죠· 여차하면 공략을 포기하고요·”
“확정된 미래니까요?”
“아니요 희생이 클 테니까요· 그럼 수지가 안 맞잖아요·”
“···꼭 확정된 미래는 상관없다는 말투 같네요·”
“상관없죠· 무슨 상관이겠어요? 운명이야 극복하면 되는 거지· 지금까지 그래 왔듯·”
“···그랬죠· 판도라 클랜 로드는 언제나 제가 보던 미래에 변수로 작용했었죠·”
순간적으로 숨을 삼킨 송윤서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제가 여기에 있는 걸 보면 답은 나와 있지 않나요? 괜찮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별은 미래는 이번에는 우리 편이니까·”
그렇다고 방심하지는 말고요·
송윤서가 충고했다·
이에 은하는 화답했다·
“네 방심 안 해요·”
* * *
곧 출항 준비가 완료된다·
진서나에게 보고받은 은하는 이탈리아 공략대의 상황을 살피러 알버트 발렌타인을 찾았다·
알버트는 이탈리아 측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알버트 플레이어·”
“아 노은하 플레이어· 여기는 어쩐 일입니까·”
“저희 쪽 상황을 알리려고요· 적재 작업은 다 끝났고 배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네요· 그쪽은 어때요?”
“저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역적들만 태우면 됩니다·”
“역적이라고요?”
“네 저기를 보십시오·”
은하가 잘못 들었다는 양 눈을 깜빡이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알버트가 손을 들어 부두에 정박한 선박 하나를 가리켰다·
정확히는 선박 짐칸을·
그곳으로·
찰그락 찰그락·
죄수복을 입고 수갑을 찬 사람들이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그들의 정체를 눈치챈 은하는 말을 흐렸다·
알버트는 긍정하듯 설명했다·
“이탈리아의 역적들입니다· 대부분 큰 죄를 저질렀거나 빅 마마님에게 반기를 들었거나 마피아 간의 정쟁에서 패한 이들이죠·”
“저들을 왜 태우냐고 묻는다면···· 〈심연의 던전〉 때문이겠군요·”
“네 〈심연의 던전〉 1층에서 참가자들 중 절반이 죽어야 했다는 이야기를 참고했습니다· 그때 노은하 플레이어가 기지를 발휘해 혹시 몰라서 데려간 범죄자들로 대신했다지요?”
“····”
알버트의 언급대로 당시 은하는 〈심연의 던전〉 1층을 공략하기 위해 수백에 달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비록 그들이 범죄자였다고 한들 선뜻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은하는 얼굴을 굳힐 뿐 답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럼에도 알버트는 개의치 않고 설명을 이어 나갔다·
“혹시 모르는 일이잖습니까· 어쩌면 〈심해의 던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지·”
“그래서 만에 하나에 대비해 저들을 데려가기로 했다는 거군요·”
“네 맞습니다· 저희뿐만 아니라 다른 참가국들도 동반해 올 겁니다· 아 이 문제로 노은하 플레이어가 걱정할 일은 없을 겁니다· 한국 공략대의 몫은 저희가 대신 내 주기로 했으니까요· 빅 마마님의 뜻입니다·”
“···배려는 감사합니다·”
회귀 전의 기억이 있기에·
은하는 〈심해의 던전〉에서 저들이 필요치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사정이고 각국의 사정이다·
함부로 회귀 전의 기억을 말할 수도 없는 데다 자칫 던전 공략 과정에서 마찰을 빚을 수도 있는 만큼 은하는 괜히 간여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던 그때였다·
“알버트으으 발렌타이이인!”
선박 짐칸으로 걸어 들어가던 죄수 하나가 별안간 소리쳤다·
고된 생활 탓인지 머리가 희고 턱수염이 가득하고 뺨이 홀쭉한 남자 죄수가 알버트를 향해 고래고래 악을 써 대고 있었다·
충혈된 눈에서는 살기가 흘렀다·
안력을 키워 얼굴을 확인한 은하는 알버트를 곁눈질했다·
“제법 원한을 샀나 보네요·”
“저 중에 제가 원한을 산 적들이 꽤 많을 겁니다·”
알버트는 태연하게 받아넘겼다·
그러고는 은하가 흠칫할 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젠코 마이론이라고 기억합니까? 20년 전에 이-한 회담 때 저와 같이 한국을 방문한 트레디치였는데· 그리고 노은하 플레이어한테····”
“기억해요· 모를 수가 없죠·”
“저놈은 그놈이 속해 있던 마이론 패밀리의 보스입니다· 죽은 선대를 이어 2대죠·”
“···그런가요·”
즉 회귀 전의 세상에서는 줄리에타를 도구로 삼았던 악인이었다는 뜻이다·
은하는 눈매를 좁혔다·
간수들에게 억지로 끌려가는 남자 죄수를 보던 시선이 고울 수가 없었다·
“저놈은 던전에서 처리할 건가요?”
“그래야지요· 입장이 반대였다면 저놈도 분명 그랬을 테니까요· 이참에 조직원들도 함께 없애 마이론 패밀리를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 버릴 겁니다·”
알버트가 단호한 어조로 답했다·
은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줄리에타 누나랑 브루노 아저씨 어베니어는 이제 정말 괜찮은 거구나· 다행이야·’
새삼 자신으로 인해 바뀐 미래를 깨달은 은하는 속으로 안도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이탈리아와 한국 공략대의 무운을 빌겠습니다·”
빅 마마의 격려사를 받은 한국과 이탈리아 공략대는 바다로 나아갔다·
〈심해의 던전〉으로 향한다·
* * *
북대서양 중심부·
한국과 이탈리아 공략대는 모두 갑판 위로 나와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저게 〈심해의 던전〉인가····”
“····”
검은 안개가 가득히 드리운 바다는 마치 먹물처럼 까맸다·
그곳에서 풍겨 오는 기운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소름을 돋게 하는 듯했다·
사람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심해의 던전〉을 앞두고 다른 공략대의 도착을 기다렸다·
머지않아·
부우우····
공략 참가국의 배들이 각기 고동을 울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배들은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북대서양과 〈심해의 던전〉 경계선에 자리를 잡았다·
한편으로는 서로 빛을 반짝이고 텔레파시스트를 통해 교신했다·
“스페인 도착! 언제든 준비 완료!”
“포르투갈도 마찬가지래요!”
[은하야 프랑스랑 독일 그리스도· 아 지금 스위스도 도착했대·]
“클랜 로드 영국이랑 모로코도요·”
온태희 선미예 진서나 메이링 등 네비게이터와 텔레파시스트들은 열심히 정보를 취합했다·
이윽고·
“은하 오빠 지금 막 미국에서 플레이어 라이브러리로 연락이 들어왔어요· 거기도 도착해서 던전 진입을 기다리고 있다고 해요·”
[은하야 이탈리아 본대에서 연락이야· 각국 공략대 현황 파악 완료· 10분 뒤 오후 2시 30분에 〈심해의 던전〉으로 진입 개시·]
모든 공략대가 모였다·
온태희 진서나에게 보고를 받은 은하는 대원들에게 지시했다·
“10분 뒤 오후 2시 30분에 〈심해의 던전〉으로 진입한다·”
“····”
이때를 기점으로 사람들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남은 시간을 셌다·
시간은 금세 흘러갔다·
배들이 크게 고동을 불었다·
부우우!
고동 소리가 바다를 뒤덮고 파도 소리를 덧씌운다·
한국 공략대의 배를 비롯해 모든 배들은 경계선을 넘어 〈심해의 던전〉으로 들어갔다·
검은 안개가 시야를 가린다·
사람들은 안개를 몰아내기 위해 마법으로 바람을 일으키고 빛과 불을 밝혔다·
휘이잉!
“····”
하지만 안개는 걷히지 않았고 안개 너머를 들여다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사람들은 오감에 의지해 주위를 경계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쏴아악!
별안간 검은 안개가 옅어지며 너머가 보이기 시작했다·
은하는 이 현상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1층에 도착한 거야·’
곧이어 안개가 완전히 걷힌다·
〈심해의 던전〉에 진입한 배들은 어느새 푸른 하늘 아래 잔잔한 푸른 바다 위를 지나고 있었다·
“····”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바뀐 풍경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그때·
짜잔!
돌연 허공에 빛에 휩싸인 언뜻 요정의 실루엣만 보이는 존재가 나타났다·
그 존재가 밝고 어린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심해의 던전〉에 어서 오세요! 저는 공략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분의 길잡이가 되어 드릴 던전 가이드라고 합니다! 잘 부탁해요!
“····”
어라? 별로 놀라지 않네요? 아 하긴···· 이미 저희에 대해 어느 정도 알려졌을 테니 놀라지 않을 만도 하네요· 게다가 여기에는 〈심연의 던전〉을 공략한 분들이 있기도 하고요· 반가워요! 아니 사실 안 반가워요· 〈심연의 던전〉을 공략했으면 됐지 여기는 왜 또 들어온 건가요? 대체 왜? 이곳에서 죽기라도 하게요? 죽고 싶어 환장했어요? 제발! 목숨을 소중히 여겨 주세요! 여러분의 목숨은 하나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여기가 무슨 자····
던전 가이드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쫑알거린다·
〈심연의 던전〉 일지를 통해 놈의 존재를 숙지한 사람들은 성가시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은하는 그런 그들을 대표해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자꾸 시끄럽게 굴지 말고 네 할 일에나 충실하도록 해·”
····
“던전 설명이나 하라고·”
던전 가이드가 우뚝 멈춘다·
이내 놈이 호기심을 보이며 은하에게로 날아왔다·
과연 〈심연의 던전〉을 공략한 인간이라고 할까요? 정말이지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네요· 하지만 좋아요· 당신이라면 그래도 될 자격은 충분하죠·
빛에 휩싸인 요정의 실루엣이 입가를 길게 찢는다·
던전 가이드는 높이 날아올라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좋아요! 여러분의 마음에 부응해 〈심해의 던전〉에 대해 설명하도록 할게요· 〈심해의 던전〉은 총 10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각 층에서 주어지는 미션을 해결해야 해요·
“····”
아 설마 지금 〈심해의 던전〉이 10층밖에 되지 않는다고 우리를 얕본 건 아니겠죠? 당신들이 공략한 〈심연의 던전〉은 30층짜리 던전이었으니까? 흥! 미리 말해 두겠는데 얕보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대신 우리는 내실이 튼튼하니까요!?
던전 가이드가 경고한다·
하지만 은하는 코웃음을 칠 뿐 조금도 겁먹지 않았다·
회귀 전의 기억을 통해서 〈심연의 던전〉과 비교했을 때 〈심해의 던전〉의 공략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였지만·
그때 던전 가이드가 화제를 돌렸다·
그럼 1층 미션을 진행하려는데···· 이거 사람이 너무 많은데요? 거기에 수갑을 찬 사람들도 아주 많이 데리고 왔네요? 저기요 여러분? 우리 던전을 당신들 정적을 처리하는 용도로 사용하지 말아 줄래요? 아무튼!
“····”
워낙에 인원이 많은 만큼 미션 난이도를 조정해야겠네요· 당신들 정적들도 포함해서요! 후후 보나 마나 〈심연의 던전〉 1층을 편히 공략했을 때처럼 저들을 제물로 바치려 데려온 듯한데 그렇게는 안 되죠! 아이구 고소해라· 어때요?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감상은?
“됐고 미션이나 얘기해·”
쳇!
행여나 공략대의 사기가 저하할까 은하는 단칼에 맥을 끊었다·
던전 가이드는 기분이 상한다는 듯 세게 혀를 찼다·
1층에서의 미션은 간단해요! 저희는 여러분의 자격을 시험할 거예요·
바로 그 순간·
쿠구구!
“···!”
잔잔하고 고요하던 바다에 대뜸 거센 파문이 일었다·
사람들은 뒤이어 느껴지는 기척에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몬스터들이 바닷속에서 모습은 드러낸 것은 직후였다·
───!!!
물 분수가 드높이 치솟고 물방울이 억수로 쏟아져 내린다·
바다가 거세게 흔들린 탓에 배들도 거세게 흔들린다·
“····”
사람들은 충격에 휩쓸리지 않으려 어떻게든 몸을 지탱하려 했다·
한편으로는 대처할 새도 없이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에 이를 악물었다·
그런 가운데 던전 가이드가 발랄한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부터 모든 몬스터를 토벌하세요! 어때요 참 간단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