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이프 플레이어 (956)
After Story 11· 아드리아의 보옥
딥 서펀트의 군세를 토벌했다·
피해는 경미한 수준에 그쳤다·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으며 부상자만 조금 있었을 뿐이다·
‘그마저도 이미 완치했다지· 이리야와 서포터들의 마법으로····’
은하는 흡족할 따름이었다·
딥 서펀트의 군세로부터 얻은 소득을 고려하면 더더욱·
한편·
“저 정말····”
상황이 일단락되고 나서야 현장에 도착한 이탈리아 소속 카타니아 해안 경비대는 경악을 금하지 못했다·
멍하니 바다 위를 떠다니는 몬스터들의 사체를 본 경비대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베니어가 통역을 도왔다·
“여러분끼리 해치웠다고요?”
“네·”
은하는 즉답했다·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눈앞에 결과가 있었으니까·
“····”
경비대장의 얼굴은 묘해졌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이탈리아어로 무어라 웅얼거리던 그는 곧 한숨을 쉬었다·
체념한 것이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경비대장이 물러난다·
그를 떠나보낸 은하는 마저 전리품을 수거하기로 했다·
아리엘을 재촉해서·
“리엘아 바닷속 구석구석 잘 찾아보도록 해·”
“은하은하! 요즘 날 너무 부려 먹는 거 아니야!? 나 이러면 서운해!?”
한창 바닷속을 뒤지던 아리엘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가 불만스레 항의했다·
은하는 그녀를 달래기 위해 당근을 제시했다·
“이따 실컷 마셔·”
“진짜?”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아리엘·
그녀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은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진짜· 대신에 정신을 잃거나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마시지 말고· 혹시 모르니까 우리 옆에서만 마시도록 해·”
“좋아 좋아! 그 정도쯤이야 약속 못 할 것도 없지!”
“그럼 잘 부탁한다·”
“응! 나한테 다 맡기라구! 입수!”
아리엘이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수면 위에 앉았던 은하는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피식 입가가 올라갔다·
‘이럴 때는 참 쓸 만하다니까· 고생해라 리엘아·’
* * *
카타니아 해안 경비대의 합류로 남은 여정은 순항을 이었다·
은하 일행은 별다른 이변 없이 이탈리아 영해에 진입했다·
그리고 시러큐스 카타니아 메시나 나폴리 등을 지나 마침내 로마현의 항구 도시 치비타베키아에 다다랐다·
“와아 도시가 운치 있다!”
조아라를 비롯해 사람들은 갑판에서 보이는 도시 전경에 탄성을 터뜨렸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선실 생활도 이제 끝이네· 돌아갈 때도 타야겠지만····’
은하 일행은 선착장에 내렸다·
오랜만에 육지를 밟은 사람들은 저마다 들뜬 반응을 보이며 이국의 경치를 눈에 담았다·
은하도 가볍게 기지개를 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편으로는 마침 곁에 있던 로베르토에게 물었다·
“여기서부터 어떻게 가죠?”
“곧 차가 올 겁니···· 아 마침 저기 오는군요·”
로베르토가 눈짓했다·
그를 따라 시선을 돌린 은하는 도로 저편에서 오는 차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수가 긴 줄을 이뤘다·
‘많기도 하네···· 하긴 당연한가? 우리 인원이 많으니····’
은하는 납득했다·
이윽고 부두에 들어선 차들이 하나둘 일행 앞으로 멈춰 섰다·
끼이익!
“····”
은하는 자신 앞에서 멈춘 선두에 있던 차를 쳐다보았다·
곧이어 뒷좌석 문이 열리고·
‘···가면?’
콧등 위부터 얼굴을 덮는 철가면을 쓴 정장을 입은 남자가 걸어 나왔다·
척 보기에도 존재감이 남다른 남자였다·
‘이 사람이····’
은하는 단번에 남자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바로 그때·
“반갑습니다 한국인 여러분· 그리고····”
남자가 한국어로 유창하게 말했다·
시선은 처음부터·
“노은하 플레이어·”
은하에게 고정한 채로·
“이탈리아의 트레디치 필두 알버트 발렌타인이라고 합니다·”
“····”
알버트 발렌타인이 악수를 청한다·
은하는 그가 내민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만날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마중을 나올 줄은 몰랐네·’
알버트 발렌타인·
그 이름을 모를 리 없던 은하는 빠르게 상념을 정리했다·
‘벌써 20년 전의 일인걸? 그때 아홉 살에 지나지 않았던 나를 알아볼 리가 없지· 알아봐도 문제고····’
그러니 지난 일은 굳이 언급하지 않기로 하며·
은하는 알버트의 손을 맞잡았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알버트는 알고 있던 눈치였다·
“오랜만입니다· 이렇게 보니 새삼 나이를 실감하겠군요·”
“···어떻게 안 거죠? 제 정보는 모를 줄 알았는데····”
“나중에 따로 조사했으니까요· 그때 그 아이가 누구인지 줄리에타의 주위를 파 보니 쉽게 알 수 있더군요·”
“그래서 복수라도 하게요?”
“아니요 그때 일로 앙갚음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때는 피차 사정이 있었으니까요· 오히려 만약 앙갚음해도 제 얼굴을 이렇게 만든 브루노에게 하지 당신에게 할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
“····”
“그때 일에 연연하지 말고 함께 공략에 힘썼으면 합니다·”
알버트가 제안했다·
은하야말로 바라던 바였다·
그에 대한 경계심을 거둔 은하는 맞잡은 손을 흔들었다·
“좋아요 괜히 다투지는 말죠·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어서 타시죠· 빅 마마님을 뵈러 가야 하니·”
그렇게 은하를 차에 태우며·
“····”
알버트는 조금 전부터 느껴지던 시선의 주인을 힐끗했다·
사람들 속에 가려지지 않는 유달리 덩치가 큰 남자·
남자의 머리카락은 노랗고 눈은 녹빛을 띄고 있었다·
‘···저 아이인가·’
알버트는 보는 순간 깨달았다·
줄리에타와 브루노의 자식이다·
그리고····
‘희망이란 뜻에서 어베니어라고 했나· 성이 노고···· 애 이름을 왜 그렇게 지은 건지····’
자신의 조카다·
알버트는 묘한 정감을 느꼈다·
‘확실히 줄리를 닮기는 했군· 브루노 그놈도 조금····’
한편으로는 그리움이 들었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을 또한 결코 보아서도 안 될 제 여동생에 대한·
“····”
알버트의 입가가 호를 그린다·
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잘 살고 있나 보구나·”
* * *
이탈리아의 국가 원수 빅 마마·
그녀는 수도 로마에 위치한 퀴리날레 궁전에 거주하고 있었다·
은하 일행은 차를 타고 그곳으로 이동했다·
‘엄청 넓고 화려하네·’
로베르토와 알버트를 따라 르네상스 양식이 반영된 복도를 걷는다·
머지않아 안내를 받은 곳은 화려한 샹들리에와 벽화가 인상적인 어느 응접실이었다·
은하 일행은 자리에 앉았다·
“곧 빅 마마님께서 오실 겁니다·”
알버트가 양해를 구했다·
그로부터 잠시 후·
“Buon giorno·”
“····”
문이 벌컥 열린 것과 함께·
노출이 과한 의상을 입은 여성이 이탈리아어로 인사를 건네며 안으로 들어왔다·
빅 마마였다·
그녀가 예의를 차리러 일어난 은하 일행에게 다가가며 눈웃음을 지었다·
“먼 곳에서 오느라 고생했겠어요· 부디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푹 쉴 수 있길 바랄게요· 저희도 최대한 편의를 봐줄 테니·”
“····”
통역이 필요 없을 정도로 능숙하게 한국어로 말하는 빅 마마·
그녀가 한국 공략대 대표이자 사절단 대표이기도 한 은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만나서 반가워요· 빅 마마 엘레오노라라고 해요· 성은 따로 없어요· 빅 마마란 그런 존재니까·”
“안녕하세요· 노은하라고 합니다·”
“당신이 흑색던전을 공략했다는 그 영웅이로군요· 잘 왔어요·”
은하는 빅 마마와 악수했다·
그러자 그녀가 손을 더 포개 은하의 손을 주물렀다·
손길이 다소 노골적이었다·
‘이 사람 왜 이래?’
은하의 눈썹이 꿈틀했다·
꺼림칙한 기분을 느낀 그는 슬쩍 손을 빼냈다·
빅 마마는 개의치 않아 하며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러더니 운을 뗐다·
“이제 앉을까요? 앉죠 우리·”
빅 마마가 상석에 앉는다·
뒤이어 알버트와 로베르토 은하 일행은 마주 보는 형태로 자리에 앉았다·
빅 마마는 일부러 과시하듯 다리를 꼬았다·
‘왜 저러지? 창피하지도 않나? 입고 있는 곳도 그렇고····’
은하는 속으로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조금 이해도 갔다·
한국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빅 마마는····
‘〈백은〉을 각성하기 전에는 호스티스로 일했다지· 그러다가 〈백은〉을 각성하고 나서는 마피아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려 교묘하게 세력 균형을 꾀해 지금과 같은 체재를 만들었다고····’
툭하면 정치적 견제에 시달리고 여론의 욕받이가 되어야 했던 선녀 임가을이나·
정치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고 천왕의 아내란 상징으로 존재하는 일본의 카구야·
도구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중국의 항아들·
그들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빅 마마는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인물이라 평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제는 전처럼 하지 않아도 굳건한 위치에 있는 데다 무엇보다 나이도 있지 않나?’
은하가 알기로 빅 마마는 임가을보다 훨씬····
‘그만하자·’
물론 〈백은〉의 기프트를 지닌 사람들은 노화가 느린 탓에 나이에 비해 동안을 자랑한다지만····
실제로 노랗고 긴 머리칼을 한쪽 어깨에 얹은 빅 마마는 30대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만하자·’
이러다 무심코 임가을의 나이까지 세어 버릴 판이다·
은하는 생각을 중단하고는 회담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송윤서가 눈치껏 화제를 꺼냈다·
“노은하 플레이어에게 약속한 보물은 언제쯤 얻을 수 있을까요?”
“····”
마침 은하도 궁금하던 차였다·
은하는 빅 마마의 답변을 기다렸다·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로베르토에게 들었어요· 이탈리아의 보물로 만든 검으로 〈심해의 던전〉을 공략하겠다고요?”
에스프레소 찻잔을 내려놓는 빅 마마·
그녀가 빙그레 웃었다·
“안 그래도 보물을 넘긴대서 민심이 좋지 않았는데 잘됐네요· 제가 의도한 거기는 하지만···· 어쨌든 선전에 도움이 되겠어요·”
“····”
한국에 보물을 넘기는 데에는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존재를 물색하기 위함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그 속내를 읽은 은하와 송윤서는 빅 마마의 꾀에 혀를 내둘렀다·
한편 빅 마마는 계속 말했다·
“〈심해의 던전〉에 들어가기 전까지 무기를 만들어야 하는 만큼 보물은 빨리 가져가는 게 좋겠죠· 그러니 언제든 가져가도록 해요· 다만····”
“····”
“오늘은 노고를 풀기로 하고 내일 아침으로 하는 것은 어떨까요?”
“네 좋아요·”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빅 마마가 물었다·
“듣기로는 약속한 두 점 중 하나만 먼저 받겠다고 했다던데 의견에 변화는 없나요? 원한다면 두 점 모두 가져가도 되는데·”
“아니요 한 점만 받아 갈게요· 나머지 한 점은 던전을 공략하고 가져가기로 하고·”
여명검을 대신할 검을 만들 보물은 하나로 족했다·
괜히 다른 보물이 더해졌다가는 서로 성질이 어우러지지 못해 아무것도 건지지 못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미래 유성과 합의한 사항이기도 했다·
‘그 보물의 용도는 달리 있으니까·’
그래서 은하는 고개를 저었다·
빅 마마는 말리지 않았다·
“그래요· 원하는 대로 해요·”
“아 그리고 용광로를····”
“그것도 이야기는 들었어요· 이탈리아에서 최고로 좋은 용광로를 빌려드리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빅 마마의 호의에 은하는 예를 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나저나·”
“····”
빅 마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바로 가까이에 있던 은하가 앉은 소파 팔걸이에 걸터앉아 은하에게 몸을 기울인다·
“노은하 플레이어·”
“···네?”
은하는 당황스러웠다·
그는 최대한 몸을 빼며 빅 마마를 피하려 들었다·
그런 가운데 빅 마마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고했다·
“이참에 귀화하는 것은 어때요? 다시 돌아가는 것도 번거롭고 귀찮을 텐데····”
“····”
“원하는 조건이 있으면 말해요· 최대한 들어줄 테니까· 적어도 한국에서 받는 대우보다는 후하게 쳐줄 거라고 약속해요·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은하는 빅 마마를 올려다보았다·
이탈리아에서 눈독을 들이고 자신이나 다른 한국인들에게 귀화를 제안할 것은 예상한 바였다·
‘설마 빅 마마가 이렇게 직접 공개 석상에서 권할 줄은 몰랐지만····’
하지만 은하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저는 한국이 더 좋아서요· 소중한 가족들이 있기도 하고요· 그러니 귀화는 거절할게요·”
“빅 마마님? 지금 이게 무슨 결례인 거죠? 한국 정부는 정식으로 항의하겠습니다·”
“판도라 클랜 로드는 안 돼요·”
송윤서 프리시스 메모리도 얼른 은하를 두둔해 주며 눈초리까지 세웠다·
결국 빅 마마는 별수 없이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은근한 여지를 남기면서····
“어머 그런가요? 아쉽네요· 그래도 기회는 열려 있으니 찬찬히 생각해 보도록 해요· 한동안 이 나라에 머무르면서···· 이탈리아의 좋은 점을 알기에 충분한 시간이 될 거예요·”
교태를 부리듯·
빅 마마가 코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