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이프 플레이어 (955)
전투 준비 몬스터들을 섬멸한다·
텔레파시스트들의 텔레파시가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있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로베르토는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은하를 불렀다·
“노은하 플레이어·”
“네 무슨 일이죠·”
“놈들을 토벌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곳을 벗어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
로베르토가 건의했다·
가만히 그를 응시하던 은하는 짧게 물었다·
“이유는요?”
“군세의 규모가 너무 큽니다· 딥 서펀트만으로도 위험한데 비슷하게 생긴 놈들까지 있고····”
“그래서 물러나자는 건가요? 피해가 커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탈리아로 가려면 놈들을 지나쳐야만 할 텐데요· 아니면 다른 경로라도 있나요?”
“다른 이동 경로는 없지만 이곳은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 인접 국가의 해안 경비대가 활동하는 영역입니다· 그러니····”
“일단 몸부터 피한 다음에 근처에서 지원을 오는 경비대에게 도움을 받자는 거군요·”
“네 맞습니다·”
로베르토가 긍정한다·
은하는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그쪽이 안전하기는 해· 문제는····’
두 가지다·
배들이 놈들을 따돌릴 정도로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인가·
언제 올지도 모를 경비대에게 의지해도 될 것인가·
은하는 회의적이었다·
“아니요· 보나 마나 놈들이 얌전히 보내 주지도 않을 테고 경비대는 또 언제 기다리겠어요· 여기서 싸우는 게 나아요·”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도 토벌에 함께하죠· 미력하게나마 힘을 보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국 공략대에 대한 지휘권은 은하에게 있었다·
로베르토가 침해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현재 이탈리아 병력이 많지 않기도 했다·
결국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한국에 편승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위치를 이해하고 있는 로베르토는 더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이탈리아 측 배로 돌아갔다·
한편 은하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여기기로 했다·
‘어찌 보면 좋은 기회야·’
한국에서는 출몰하지 않는 몬스터들에게서 얻는 소득은 분명 값질 터였다·
국제마나관리기구 규정에 따라 영해권을 가지고 있는 국가에 일부를 납세해야 했지만 그래도 어디인가·
‘이탈리아 측도 참가한다니 그쪽으로도 떼 줘야겠지만····’
역시 그래도 어디인가·
무엇보다·
‘고위계 몬스터와 군단을 상대로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거야· 공략대가 합을 맞추는 데에도 분명 도움이 되겠고····’
지금까지 항해 도중 맞닥뜨린 몬스터들과의 수상전 수중전은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실전 경험을 쌓기에는 부족해서 내심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마침 잘된 셈이다·
은하는 프리시스 메모리에게 부탁했다·
“마녀님 배들이 난파되지 않게 지켜 줄 수 있을까요?”
“네 가능해요· 다만 전투는 보조하지 못할 것 같네요·”
“이리야가 있으니까 괜찮아요· 마녀님한테는 배들을 맡길게요·”
프리시스 메모리의 존재가 든든하다·
후방은 안심해도 되겠다·
은하는 그녀를 뒤로하며 진서나의 텔레파시를 이용해 공략대에 지시를 내렸다·
1조 판도라 클랜을 시작으로 배에서 뛰어내린 공략대원들이 수면 위에서 대형을 갖춘다·
그때 미래 유성이 다가왔다·
“아버지·”
“어 유성아·”
“제가 알기로 미래에서는 없었어요· 아무래도 저 때문에····”
자신이 미래에서 넘어온 탓에 인과가 작용한 것 같다·
은하는 슬쩍 귓속말하며 미안해하는 미래 유성의 말을 잘랐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
“저놈들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사실은 어차피 변하지 않는데·”
미래 유성의 아버지로서·
은하는 그가 책임을 느끼고 모든 문제를 자신에게 돌리며 홀로 떠안지 않기를 바랐다·
‘하여간 누구를 닮은 건지···· 안 닮아도 되는 것을 닮았네·’
미래 유성을 격려하기 위해 그의 어깨를 두드려 준다·
은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후딱 끝내고 뒤풀이나 하게 열심히 도와라 유성아·”
“····”
미래 유성이 눈을 깜빡인다·
이윽고·
“네 아버지!”
은하의 은근한 배려를 깨달은 미래 유성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가 의욕을 보였다·
* * *
바다가 거칠다·
사방에서 물과 피가 튀고 몬스터의 멱따는 소리와 금속음 폭발음이 들린다·
그만큼 전투는 치열했다·
“놈들이 또 물밑에서 접근한다!”
“발밑을 조심해! 빠지지 않게!”
“이놈들이 위아래에서 성가시게····”
군세는 전장의 이점을 살려 수면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공격해 왔다·
그러다 보니 공략대원들은 발밑에서의 기습에 대비하며 놈들을 상대해야 했다·
수면 위로 내딛는 걸음조차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 멀리 떨어지지 마! 반드시 대형을 유지해!”
“옆 사람이 있는지 잘 확인해! 빠진 사람 없지!?”
“놈들은 결국 머리부터 나온다! 나오는 순간 바로 노려!”
“작살은 너희만 쓸 줄 아냐!? 우리도 쓴다! 더 좋은 거로!”
마냥 고전하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실력에 자신이 있고 그동안 은하의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실전 경험을 쌓은 공략대였다·
그들은 혼란에 빠지는 일 없이 침착하게 놈들을 해치워 나갔다·
〈심해의 던전〉 공략에 대비한 여러 병기가 있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작살총이었다·
“다시 장전!”
각 조장의 지시에 따라·
작살총으로 전투를 보조하던 헌터와 레인저 스나이퍼들이 새로이 작살을 장전했다·
그리고 몬스터들이 수면 아래로 도망치려는 순간·
“발사!”
투두둑! 휘이익!
키에에엑!
수십 개의 작살이 쏘아졌다·
작살에 꿰뚫린 몬스터들은 공략대원들의 힘에 이끌려 다시 수면 위로 나와야 했다·
그렇게 죽음을 맞았다·
한편 전투는 다른 곳에서도 한창 진행 중이었다·
“놈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대형을 무너뜨리려는 것 같아요!”
“모두 중심으로 모여!”
“서포터 준비!”
“이리야 플레이어!”
수면 아래를 주시하고 있던 네비게이터의 외침에·
사람들은 밀집 대형으로 모이고 이리야를 비롯한 서포터들은 급히 대응에 나섰다·
“괜찮아요· 이 정도로는····”
절대 뚫지 못할 테니까·
로자리오를 쥐고 기도하던 이리야가 초록 눈을 떴다·
그녀가 보호 마법을 펼쳤다·
화아악!
발밑으로 퍼져 나간 빛이 장막을 형성한다·
물 밖으로 나오려던 몬스터들은 그 장막에 머리를 부딪쳐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혹은 아예 정신을 잃거나 머리가 깨진 것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고 말았다·
“발밑에 물고기들이 가득하네?”
배수빈이 히죽 입을 찢었다·
창처럼 뾰족한 날을 지닌 붉은 지팡이로 수면을 찍은 그녀가 마법을 발동했다·
직후·
“활활 타올라라·”
화르륵!
장막 아래에서 폭발이 일었다·
물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꽃이 몬스터들을 집어삼켰다·
바닷물은 순식간에 끓어올랐고 수면 위로 증기가 피어올랐으며 불꽃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된 몬스터들은 목숨을 면치 못했다·
그나마 사체가 남은 놈들은 불에 타서 까맣게 그을리거나 열에 빨갛게 익은 채로 둥둥 떠올랐다·
“역시 몰살이 최고야·”
배수빈이 흥겹게 콧바람을 분다·
반면 그녀의 무위를 목격한 사람들은 다소 거북한 심정이었다·
무의미한 가정이기는 했지만 만약 그녀가 마법을 펼칠 때 물속에 있었다면····
“····”
사람들은 상상을 포기했다·
한편 은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수빈이가 신이 났구만· 하긴 막상 항해를 시작하고 나서 제대로 싸운 적이 없었으니까·’
여하튼 작살을 쥔 몬스터들은 배수빈과 이리야 등에게 믿고 맡겨도 되겠다·
은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제3위계 오버 랭크 딥 서펀트와 그보다 하위 개체에 속하는 몬스터들을 상대하기로 했다·
바로 그때·
씨아아아아악!
딥 서펀트의 하위 개체가 선공을 가했다·
놈이 구불구불 수면을 기며 은하 일행에게로 달려든 것이다·
은하는 명했다·
“시형아 니어야· 막아·”
그 순간 강시형과 어베니어 그들과 합을 맞추는 가디언들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들이 방패를 들어 올리고 후방에서 전황을 보조하던 이리야와 서포터들이 마법으로 거들어 주었다·
───!!!
딥 서펀트의 하위 개체와 가디언 무리가 충돌했다·
“큭!”
힘의 차이는 명약관화했다·
가디언 무리는 힘에 부쳐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놈의 기세도 줄었다·
그때를 노려·
“후웁! 으라차차!”
한계까지 힘을 담은 주먹으로·
어베니어가 놈의 턱을 쳐올렸다·
쿠드득! 푸슈우욱!
공격은 성공했다·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놈이 마치 용이 승천하듯 하늘로 솟구쳤다·
그러자 조아라와 캐스터들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놈에게 포격을 가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환수 변환: 피닉스의 날개〉
“잘했어·”
진홍의 날개를 펼쳐 날아오른 은하가 놈의 목을 잘랐다·
순식간이었다·
딥 서펀트의 하위 개체 중 하나가 소멸을 맞이했다·
‘이 기세로 밀어붙여야 해·’
공략대의 사기가 올랐다·
은하는 아래에서 들려오는 함성에 호응하듯 공중을 누비며 추가로 하위 개체를 베었다·
다만 이로 인해·
씨아아아악!
딥 서펀트와 하위 개체들은 은하를 위협으로 인식하고는 우선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상관없어·’
오히려 잘된 일이다·
공략대의 부담이 한결 덜해진다는 뜻이었으니까·
은하는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놈들을 피했다·
진서나의 텔레파시가 온 것은 그때였다·
[은하야 미예의 전언이야· 지금부터 따라 움직여 달래·]
“····”
십이좌 〈거목〉 선기준의 딸 선미예·
그녀의 작전을 이해한 은하는 곧장 방향을 선회했다·
놈들을 피하며 유인한다·
그리하여·
씨에엑에에엑····
‘이게 되네?’
놈들은 저희끼리 엉키고 말았다·
은하는 선미예의 계책에 감탄했다·
여하간 이것으로·
[은하야 나와· 공격할 거니까·]
놈들에 대한 위협은 사라졌다·
공략대는 놈들이 몸을 추스를세라 인정사정없이 화력을 퍼부었다·
폭발과 함께 비명이 터졌다·
“화끈하네·”
은하는 폭발 속에서 꿈틀거리는 놈들을 보며 피식거렸다·
아마 이것으로 대다수는····
바로 그때·
“···!”
키시아아악!
열기로 장갑이 녹아 내린 딥 서펀트가 폭발 속에서 튀어나왔다·
놈이 은하를 덮쳤다·
졸지에 놈의 머리에 달라붙은 은하는 이를 악물었다·
‘이놈이····’
물속으로 끌고 갈 속셈이다·
그렇다면·
‘좋아 원하는 대로 해 줄게·’
이미 대처하기에는 늦었거니와 어울려 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은하는 놈과 함께 입수했다·
부글부글!
공기 방울이 시야를 가리고 수면 위로 빛이 아른거린다·
그 광경을 뒤로한 은하는 바다의 숨결의 섭리를 통해 호흡했다·
“여명검이 힘을 잃었어도·”
화아악!
여명검에 마나가 깃든다·
새하얀 검신이 빛을 발했다·
은하는 빛이 닿지도 않는 깊은 곳으로 끌고 가려는 놈에게·
“베지 못하는 건 아니거든?”
여명검을 휘둘렀다·
빛이 놈의 장갑을 찢고 그대로 눈동자를 가로지른다·
푸른 피가 터져 나왔다·
───!!!
놈이 괴성을 토했다·
격하게 몸부림친다·
〈환수 변환: 라이거 블래스터〉
한편 놈에게서 떨어진 은하는 왼손에 블래스터를 둘렀다·
놈을 겨냥한다·
씨아아아악!
“알아서 입을 벌려 주는구나·”
고통 속에서 자신을 포착한 놈이 죽일 기세로 달려드는 타이밍에 맞춰·
“고맙다 잘 가라·”
은하는 블래스터에 응축된 전격을 내쏘았다·
어둠 속에서 바다가 번쩍였다·
───!!!
푸른 섬광이 놈을 꿰뚫는다·
직격을 허용하고 만 놈이 그대로 입자로 변해 산화한다·
* * *
이탈리아 소속 카타니아 해안 경비대는 지중해를 순찰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소식을 접했다·
“경비대장님 모니카호로부터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모니카호라면···· 얼마 전에 한국으로 떠났다는 배인가· 내용은?”
“조금 전 지중해에 진입· 현재 한국 선박과 함께 귀항 중이라고 합니다·”
“흠 그런가·”
한국 공략대가 오고 있다·
정보에 따르면 그들 중에는 최초로 흑색던전을 공략한 플레이어들도 있다고 한다·
‘특히 〈군주〉···라고 했던가?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하군·’
호기심이 동할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턱수염을 쓰다듬던 경비대장은 입가를 끌어 올렸다·
“먼 곳에서 온 이들인데 우리가 마중을 나가 줘야겠군· 모니카호에서 전보가 들어온 시간과 위치를 파악해라· 이동 경로를 알 수 있을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길로·
카타니아 해안 경비대는 직접 한국 공략대를 맞이하러 나섰는데····
“겨 경비대장님 이건···!”
“어서 정확한 위치와 거리 위험도를 파악해라!”
어느 시점에 이르러 돌연 대규모 편재가 관측됐다·
편재에서 출몰할 몬스터의 위험도가 제3위계 오버 랭크까지 수렴하는····
경비대는 발칵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아무 징조도 없이 군단장급 편재가 발생했다고?’
비상 상황이었다·
하필 한국 공략대의 진로상에 편재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아니 어쩌면····
‘운이 나쁘게 편재에 휘말려 지금 위기에 처했을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도 고려해야 했다·
침음을 흘린 경비대장은 속히 편재를 해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편재를 처리하러 간다· 그러니 근처에 있을 경비대에게도 지원을 바란다고 전해라·”
안타깝게도 현재 병력으로는 군세를 상대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그러니 타국의 협조를 구해 병력을 보강하기로 한다·
‘부디 무사하길····’
경비대장은 속으로 빌었다·
최대한 속도를 높여 달라고 대원들을 닦달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카타니아 해안 경비대는 편재의 근원지에 도착했건만·
“····”
상황은 이미 종결된 뒤였다·
위험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고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몬스터들의 사체가 전투의 흔적을 알려 주었을 뿐이다·
“다··· 끝났다고?”
“····”
경비대장을 비롯해·
카라티라 해안 경비대는 모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