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이프 플레이어 (954)
부글부글! 부글부글!
‘무장 때문에 몸이 무거워· 자꾸 가라앉잖아····’
‘···바로 뒤까지 따라붙었잖아? 아···· 더 빨리 가야 하는데····’
‘앞사람이 방해야· 처질 거면 뒤로 빠져 줄 것이지···· 안 되겠다· 내가 앞으로 나가야지·’
‘내려가는 것은 그나마 편한데 올라가는 것은 왜 이리 어려운 거야!?’
‘숨차···· 물속에서 숨이 차다니· 아···· 그만 멈추고 싶은데···· 하지만 뒤에서····’
‘너만 힘드냐? 우리도 힘들다고! 빨리 좀 가라!’
‘대 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나 나는 네비게이터인데 왜····’
‘〈머메이드〉는 좋겠다· 부럽다·’
첫날 수조 속에서 이루어진 지그재그 왕복 100번 헤엄을 시작으로·
부글부글! 부글부글!
‘밤에도 훈련이냐· 진짜 미쳤다····’
‘그러지 않아도 어두운데 왜 암막 커튼까지 친 거야?’
‘···아무것도 안 보여· 깜깜해· 무서워····’
‘물이···· 이렇게 차가웠던가? 폐가 얼어붙는 기분이야·’
‘앞이 보이지 않는데 도대체 어떻게 움직이란 거지? 위가 어디고 아래가 어디야?’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나는 왜 여기 있는 거지? 나는 누구지?’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누가 빛 좀···!’
‘이러다 익사하는 건 아니겠지? 물에서도 숨을 쉴 수 있긴 한데· 아···· 앞으로 물에는 가지 말아야겠다· 이런 식으로 죽고 싶지 않아·’
‘앗! 방금 뭔가 얼굴을 쳤어· 이건···· 꼬리? 〈머메이드〉인가· 〈머메이드〉도 고생하는구만·’
한밤중에 암막 커튼이 쳐진 수조에서 다시 왕복 헤엄·
“물속에서 말을 어떠···· 푸헉!”
꼬르륵! 부글부글!
‘쟤 입에 물 들어갔다· 코에서 부글부글하는 것 봐·’
‘···괜찮은 거겠지? 지금 엄청 괴로워하는 것 같은데····’
‘물속에서 잘못 말했다가는 저렇게 되는 건가· 아 싫은데····’
‘텔레파시스트들은 좋겠다· 훈련에서 배제돼서·’
‘잘못하면 코로 숨을 쉬고 입으로 물이 들어가 버리는 경험을 느낄 수 있다니···· 굉장히 기분 나쁜 감각이야·’
‘〈머메이드〉는 좋겠다· 부럽다·’
수중에서 수신호를 교환하고 발성하기·
부이이익! 부글부글!
‘···느려· 물의 저항 때문에 팔이 잘 휘둘러지지 않아· 그런데도 판도라 클랜 로드는 어떻게 저렇게 잘하는 거지?’
‘달린다는 느낌으로 움직이라고? 그러면 잠시라도 육지에서처럼 달릴 수 있을 거라고? 머리로는 이해하겠는데 말이야 쉽지····’
‘발을 땅에 딛는다는 감각으로 물속에서 발판을 만들라니···· 어렵네· 수면 보행은 쉬웠던 거구나·’
‘윽! 거품 때문에 시야가···· 이런 식으로도 싸울 수 있구나·’
‘이 자식이 지금 쳤겠다? 좋아 어디 너도 맞아 봐라!’
‘물속만 아니었다면 업어치기로 냅다 끝내 버렸을 텐데···· 여기서는 잘 안 되는구나·’
‘물의 저항까지 계산해야 하느라 캐스팅이 어렵잖아· 아 머리 아파·’
‘아 머리끈이 풀려 버렸잖아·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리니 방해네· 이참에 확 잘라 버릴까····’
수중에서의 전투 방식 익히기·
풍덩! 푸헉!
“판도라 클랜 로드 진짜 미쳤어!? 어떻게 사람을 미끼로 쓸 수 있어!?”
“은하은하! 나는 루어가 아니야!”
“야 야 야 몬스터들 몰려든다· 다들 전부 준비!”
“하나같이 위계가 높은 놈들이네· 갑자기 한국이 그리워진다····”
바닷속에 빠뜨린 사람들을 이용해 몬스터들을 유인 토벌하기·
그 밖에 등등·
뚝뚝···· 철퍼덕!
“내 내가 왜 지원한 거지···· 그놈의 공에 눈이 멀어서····”
“배 돌려 제발···· 나 그냥 집에 갈 거니까····”
“쿨럭쿨럭! 우웩! 퉤! 우웨엑···· 어우 짜! 누가 물 좀!”
“역시···· 사람은 땅을 밟고 살아야 하는 존재인 거구나···· 다시는 바다로 여행 안 갈지도····”
“춥고 어둡고 무섭고···· 끔찍해·”
〈군주〉 노은하의 지도 아래·
〈심해의 던전〉 한국 공략대는 여유를 부릴 틈이라고는 없이 매일같이 훈련에 시달려야 했다·
이 과정에서·
“저렇게 계속하다가는 죽겠다· 미안하지만 나는 째야겠다· 어딘가 눈에 안 띄는 곳에서 조용히 바람이나 쐐야지·”
십이좌 〈풍술사〉 채선우처럼 고된 훈련을 버티지 못하고 탈주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전부 실패에 그치고 말았다·
은하가 이탈리아의 정세를 파악하러 신분을 위장해 데려온 이십오가 그들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주인님! 〈풍술사〉 여기 있어요!”
“젠장···· 저놈은 정체가 뭐길래 내 은신술을 간파한 거야? 그런데도 네임드가 아니라니····”
채선우는 대번에 얼굴을 구겼다·
그리고·
“이 정도 쉬었으면 됐겠죠? 채선우 플레이어·”
뒤이어 등장한 은하로 인해 낭패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채선우는 벅벅 머리를 털었다·
은하는 그런 그를 타박했다·
“아니 명색이 십이좌란 사람이 남들한테 모범이 되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도망치면 어떡해요?”
“누구는 원해서 된 줄 아나···· 나도 때려치울 수만 있다면 때려치우고 탱자탱자 놀면서 살고 싶거든요?”
“됐고 훈련이나 하러 가죠·”
“하 씨···· 〈군주〉 님아아····”
이제는 채선우를 대하는 방식을 나름 정립한 은하였다·
은하는 그가 무어라고 투정하든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손가락을 튕겨 아공간을 열어 다짜고짜 그를 집어넣었다·
“다음은 〈시간의 마녀〉 님인가· 이 사람은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은하는 한숨을 쉬었다·
이내 그는 훈련에 나오지 않은 〈시간의 마녀〉 프리시스 메모리를 찾으러 다녔다·
이번에도 이십오가 활약했다·
머지않아 식자재 창고에서·
“어디에 숨어 있나 했더니만 여기서 핫도그나 먹고 있었던 거예요?”
“파 판도라 클랜 로드····”
은하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궁상맞게 핫도그를 우물거리고 있던 프리시스 메모리를 검거할 수 있었다·
프리시스 메모리는 우울해했다·
그녀가 나직이 말을 붙였다·
“저 판도라 클랜 로드· 어차피 저는 서포터인데····”
“안 돼요·”
“마법으로 대응할 수 있어서 수중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안 돼요·”
“판도라 클랜 로드도 알잖아요· 저 안 죽는 거····”
“그래도 안 돼요·”
“···판도라 클랜 로드는 꽉 막혔군요· 융통성도 없고···· 유성이랑 아이들이 판도라 클랜 로드처럼 크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자신의 정체가 밝혀진 후로 감정 표현이 보다 다채로워진 〈시간의 마녀〉 프리시스 메모리·
명예 판도라 클랜원이기도 한 그녀가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은하는 가볍게 웃어넘기며 그녀를 데리고 수조로 향했다·
자신보다 공간 제어에 능한 그녀를 아공간에 넣어 보내기에는 다소 불안했기 때문이다·
‘이 마녀님이 나를 속여서 도중에 좌표를 바꾸고 도망칠지 어떻게 알아? 차라리 내가 직접 데려다주는 게 속 편하지·’
그리하여·
“잠깐만요 판도라 클랜 로드· 일단 머리부터 묶···! 꺄아악!”
풍덩!
은하는 기어코 프리시스 메모리를 수조에 빠뜨렸다·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한 그녀는 비명을 내질러야 했다·
분수가 높이 튀었다·
잠시 후·
“판도라 클랜 로드으으···· 이건 너무하는 거 아닌가요? 머리 묶을 시간은 줬어야죠·”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프리시스 메모리·
물에 젖은 머리카락으로 인해 얼굴 절반이 넘게 가려진 그녀가 서운하다는 투로 항의했다·
은하는 멋쩍게 사과를 건넸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신경 쓸게요·”
“몰라요 됐어요·”
프리시스 메모리가 부루퉁해하며 고개를 홱 젖힌다·
이내 그녀는 훈련에 참여하러 물속으로 사라졌다·
은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한편 탈주자가 누구든 간에 거리낌 없이 잡아들여 오는 은하의 이러한 행보에····
“····”
사람들은 곧 탈주를 포기하며 제 신세나 한탄하게 됐다·
은하에 대한 항의도 줄었다·
채선우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처음부터 거의 없기는 했지만····
다들 아는 것이다·
훈련을 가장 열심히 하는 사람이 바로 노은하임을·
‘저건···· 뭐 하는 놈이지? 괴물인가? 또 한다고?’
‘우리는 돌아가면서 하느라 잠깐 쉴 시간이라도 있는데···· 판도라 클랜 로드는 끝나자마자 바로 다음 조로 들어가서 훈련하네····’
‘분신체를 쓴다 해도 그렇지 저건 좀···· 힘들 텐데····’
‘사람이 저래서 강한 건가? 저러면 질투할 수도 없잖아·’
‘나는 저렇게는 못 하겠다· 그냥 쟤 말이나 잘 들어야지·’
‘아 눈치 보이네···· 우리도 같이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간부들도 안 나가는데 뭘· 하지 마 하다가 죽는다····’
자신을 닮은 분신체를 만드는 도플갱어 마법을 사용함으로써 은하는 탈주자들을 체포하고 모든 조의 공략대원들과 함께 훈련을 진행하고는 했다·
그러다 보니 공략대원들은 그를 탓할 수가 없었다·
간혹 기가 질려 할지언정 오히려 경외했다·
호기심에 훈련을 구경하던 트레디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말···· 대단하네요·”
“흑색던전을 공략한 사람은 과연 달라도 다르다는 건가? 진짜 장난이 아니기는 하네· 아 끓어올라· 판도라 클랜 로드! 가만히 보고 있기도 심심한데 나도 끼워 주라! 나도 할래!”
나디아는 혀를 내둘렀다·
피에트로는 휘파람을 불더니 흥미가 동한 듯 눈을 빛냈다·
그날부로 그는 한국 공략대와 함께 훈련에 임하고는 했다·
졸지에·
“꺄악! 저는 왜요!?”
“하는 김에 너도 같이 하자!”
피에트로의 손에 붙잡힌 나디아도 동참하게 됐다·
그리고 로베르토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요· 저도 같이 하겠습니다·”
은하에게 존경을 표한 그는 그대로 긴 머리를 묶고 수조로 향했다·
한편 공략에 참가하지 않는 송윤서 헤르미트 벽해수 백현율 등은 매우 안도했다·
“휴우···· 나는 참가하지 않아 정말 다행이야· 저러다 죽지····”
“저도···· 안 할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나는 낚시나 가야겠다· 야 현율이 너도 갈 거지?”
“나는 안에서 자고 싶은데····”
* * *
이탈리아로의 항해는 순조로웠다·
인도와 수에즈 운하를 지난 공략대는 어느덧 지중해에 진입했다·
이대로 조금 더 나아가면 며칠 안으로 이탈리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대략···· 3주쯤 걸린 건가? 예상보다는 빠르네·”
“네 날씨가 좋기도 했고 무엇보다 운이 좋았습니다· 몬스터를 별로 마주치지도 않았으니까요·”
저 멀리 섬이 하나 보인다·
로베르토의 설명에 따르면 그리스의 크레타섬이라고 한다·
은하는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갑판 위를 둘러보았다·
갑판에 나온 사람들은 한창 기뻐하고 있었다·
“아싸! 훈련 1주 줄었다!”
“하느님 부처님 공자님 아무튼 제가 아는 모든 신님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세상에 신은 무슨···· 그냥 행운에 감사해야지·”
“이제는 좀 쉴 수 있겠구나!”
얼굴에 함박웃음이 걸린 채로 덩실덩실 춤을 추며 뛰어다니는 공략대원들·
은하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그들을 살피고는 실소를 흘렸다·
‘뭐 이해는 되지만·’
자신이 혹사시키기는 했다·
아주 조금·
공략대원들은 그 표현에 절대 동의하지 않겠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로 한 은하는 공략대원들에게 알렸다·
“다들 주목! 이제 며칠 안으로 이탈리아에 들어간다고 하니까 컨디션 관리에 신경 쓰도록 해· 그런 의미에서 오늘부터 훈련은 줄인다!”
그 순간·
공략대원들은 일제히 함성을 터뜨렸다·
이어서 저녁마다 풀던 술을 조금 더 늘리겠다고 선언하자 함성은 더욱 커졌다·
“아싸! 술이다! 소주다! 이슬이다! 아 얼른 마시고 싶다!”
“아리엘은 기본 주량 준수하고·”
“엑···· 은하은하! 이럴 때는 좀 봐줘야 하는 거 아냐!?”
“카에데 리엘이 잘 감시해 줘·”
“알았어· 아리엘 들었겠지?”
“카에데 미워···· 아라아라! 아라아라는 내 편이지!? 응!?”
“그러엄! 한 병만 마시기야?”
“라라라♬”
“히잉···· 다들 나빴어····”
소주 1병이란 제한이 붙은 아리엘을 제외하고·
공략대의 사기는 충만했다·
이변이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
돌연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기운이 빠른 속도로 배 밑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몬스터다·
판단을 마친 은하는 외쳤다·
“다들 뭐라도 붙잡아! 충돌한다! 이리야 마녀님! 서포터들은 얼른 마법으로···!”
공략대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은 제 분야에서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은하가 말을 끝맺을 필요도 없이 이리야와 프리시스 메모리를 비롯한 서포터들은 곧장 조치를 취했다·
그들이 보호 마법을 전개해 구체 형태로 배를 둘러싸는 방벽을 만든 것이다·
직후·
쏴아아악! 쿵!
“···!”
구체 방벽에 충격이 전해지고 배가 크게 흔들렸다·
그대로 하늘로 떠오른다·
사람들은 날아가지 않기 위해 뭐라도 붙잡고 버티려 들었다·
다행히 날아간 사람은 없었다·
서포터들이 추가로 전개한 마법 덕분이다·
“갑자기 뭐야····”
“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다들 괜찮아!? 무사해!?”
배가 수면 위로 떨어졌다·
출렁거림이 잦아든 사람들은 서로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바닷속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씨아아아악!!!
키륵키륵·
용을 연상케 하는 머리에 뱀처럼 긴 몸을 지닌 군단장으로 보이는 몬스터·
놈보다는 덩치가 작은 외형이 비슷한 몬스터들·
그리고 손에 작살을 쥔 어인(魚人)형 몬스터들·
어느새 바다는 놈들로 들끓고 있었다·
“····”
사람들은 침음했다·
그런 가운데·
“저건····”
“로베르토 저놈 설마····”
“····”
바다 위로 나왔다 사라진 군단장의 얼굴을 본 트레디치들은 눈을 의심했다·
로베르토는 나직이 토했다·
“···레비아탄· 아니 그놈의 하위 개체인가·”
“····”
20년 전 북대서양에 군림하며 주위 국가를 공포에 떨게 한 제2위계 오버 랭크 몬스터 레비아탄·
그 악명을 잘 알고 있는 트레디치들은 하위 개체일지라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은하는 혀를 찼다·
“어째 잘 흘러가나 싶더니만····”
정말이지 좋다 말았다·
아무래도 싸우는 수밖에 없겠다·
여명검과 황혼검을 뽑아 든 은하는 공략대에 지시했다·
직후 진서나와 아리엘이 텔레파시를 퍼뜨렸다·
[〈군주〉의 전언입니다· 전원 전투 준비· 놈들을 섬멸한다· 이상 판도라 클랜 진서나였습니다·]
[온태희 플레이어의 전언입니다! 군단장은 제3위계 오버 랭크 딥 서펀트(Deep Serpent)로 확인됐습니다· 딥 서펀트는 독과 화염을 내뿜는 것으로···· 이상! 판도라 클랜 섹시 디바! 아리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