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이프 플레이어 (950)
〈심해의 던전〉 공략대 모집은 순탄히 진행되고 있었다·
은하가 공략에 참가한다는 소식이 사람들의 불안을 잠재운 한편 홍보 효과를 견인한 덕이다·
“너희 판도라 클랜 로드 몰라? 판도라 클랜 로드가 어떤 사람인데· 아무리 무모한 도전일지라도 기어코 성공해 내는 사람이란 말이야· 그러니 이번에는 또 어떻겠냐고·”
“설마 〈군주〉가 생각도 없이 던전 공략에 참가한다고 했겠어? 우리 〈군주〉한테는 다 생각이 있고 계획이 있고 확신이 있을 거란 말이야· 그러니까 의심하지 말고 믿어! 은하신을!”
“오오 진홍의 신이여·”
“뭐? 판도라 클랜 로드도 같이 던전에 들어갈 거라고? 그럼 해야지!”
“〈군주〉가 함께한다면···· 확실히 해 볼 만하겠는데?”
다수에 걸친 재앙을 막아 내고 제2차 의정부 탈환전을 완수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운 〈군주〉 노은하·
더욱이 그는 전 세계 최초로 흑색던전을 공략하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그를 무한히 신뢰하고 그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노은하라면 분명·
“이번에도 뭔가 보여 줄 거야·”
“〈심연의 던전〉도 공략한 마당에 〈심해의 던전〉이라고 못 하겠어?”
“이탈리아 놈들이 놀랄 정도로 크게 활약하겠지·”
“어디 이탈리아 놈들만 있나? 미국에 스페인에 포르투갈 그리스···· 지중해랑 북대서양 일대에 있는 나라들도 아주 깜짝 놀랄 거다·”
“이런 게 국뽕이지·”
그러한 믿음 아래·
사람들은 응원을 마다하지 않았고 플레이어들은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공략대에 지원하려고 들었다·
특히 지원한 플레이어 중에는 은하를 동경의 대상으로 삼아 공명심에 찬 혈기 왕성한 청년층의 비율이 상당했다·
판도라 클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아직 경험이 부족한 애들을 잘 이끌어 줄 간부진 지원율이 떨어진다는 거지·”
판도라 클랜회관 클랜 로드 집무실·
은하는 〈심해의 던전〉 공략에 지원한 클랜원들의 명단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쉬었다·
“구래 시형이 이리야 어베니어···· 어떻게 얘네밖에 없는 거냐 나랑 친한 사람 중에····”
나머지는 참 의리도 없다·
자신은 회귀를 고백할 정도로 그들을 소중히 아끼고 있거늘····
서운하고 또 서운했다·
사전에 자신에게 사정을 전하고 공략 참가를 포기하기로 한 류연화 노은아 한창진 진파랑 김메리 등은 빼고·
그러면서도·
‘〈심연의 던전〉에서 고생한 지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또 흑색던전을 공략하러 가자니 싫어할 만도 하지· 충분히····’
내심 이해는 갔다·
마냥 그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이제는 편히 좀 쉬고 싶으리라·
그렇다고 하나·
‘미안하지만 안 되겠다·’
자신의 판단을 이해해 주고 손발이 맞는 사람이 적어서야 자칫 〈심해의 던전〉 공략에 차질을 빚을지도 모를 일이다·
은하는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제일 먼저 향하는 곳은 가까이 있는····
‘하양이 얘는 무슨 일이지? 같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아직까지도 신청하지 않았다니···· 얘 성격상 까먹지는 않았을 텐데····’
연유를 물어봐야겠다·
은하는 정하양의 집무실을 찾았다·
그런데 안에는 그녀뿐만 아니라····
“아빠!”
노유란도 있었다·
정하양의 무릎에 앉아 있던 그녀가 쪼르르 은하에게 달려왔다·
은하는 그녀를 안아 올렸다·
“유란이도 있었구나· 엄마하고 놀고 있었던 거야?”
“네!”
은하의 목을 꼭 끌어안고 씩씩하게 답하는 노유란·
은하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정하양은 그런 그와 딸아이를 흐뭇한 시선으로 올려다보았다·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 있어서 온 거야?”
“아 그게 있지····”
되도록 부담을 느끼지 않게·
은하는 최대한 가벼운 어조로 정하양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정하양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아····”
정하양의 눈꼬리가 아래로 휜다·
이내 그녀가 주눅 든 채로 사과했다·
“요 며칠 고민해 봤는데···· 아무래도 이번에는 힘들 것 같아· 도중에 말을 바꾸게 돼서 정말 미안해·”
* * *
〈심연의 던전〉을 공략한 이후로도 정하양은 여러모로 바쁜 나머지 다소 육아에 소홀해지고 말았다·
자연히 노유란은 정하양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늘게 됐고····
대신 은하에 의해 졸지에 보모 역할을 맡게 된 진서나와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게 됐다·
―엄마는 언제 와요?
―글쎄 조금 늦을 것 같은데···· 유란아 엄마가 보고 싶으면 이모랑 같이 마중 나갈까?
―네!
그러던 중 사달이 일어났다·
얼마 전이었다·
―유란아 엄마 왔다! 오늘은 하던 일도 미루고 일찍 끝냈지롱! 우리 유란이가 너무 보고 싶었거든!
정하양과 진서나는 시간이 맞아 함께 노유란을 보러 갔고····
환한 얼굴로 반기러 나온 노유란은·
―엄마아아아아!
―유란아아아···· 어?
―응?
정하양은 쌩하니 무시해 버리고 대뜸 진서나에게 안겨 들었다·
그러고는 애교를 부리듯 말했다·
―엄마 유란이가 보고 싶었어요·
―어···· 유란아? 나는 이모잖니· 서나 이모· 엄마는 내가 아니라····
―유 유란아····
당연히 정하양은 충격에 빠졌다·
노유란이 자신을 못 알아본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이모는 누구세요?
―이 이모라고···? 유란아····
―아! 하양 이모다!
―····
노유란은 해맑은 얼굴로 웃으며 추가타를 가했다·
―어 어떻게 나한테···· 이모라고···· 유란아 내가 엄마야· 엄마라고····
―아하하···· 하양아 유란이가 장난치는 거잖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
정하양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인해 바닥에 주저앉아 버릴 정도였다·
진서나의 위로는 도움이 못 됐다·
노유란의 장난임에는 동의했으나 그러한 장난의 배경과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으니까·
자신을 소홀히 여기지 말라는 그녀 딴의 시위인 것이다·
―내가 요즘 신경을 못 썼구나···· 엄마가 미안해 유란아·
정하양은 크게 후회했다·
그날부로 그녀는 가급적이라도 노유란에게 시간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내 딸이지만 똑똑하네· 아직 두 살인데···· 은하를 닮아서 그런가? 은하도 성장이 빨랐다잖아·
―글쎄···· 똑똑한 게 아니라 영악한 게 아닐까 싶은데···· 뭐 아무렴 어때· 유란이는 귀엽고 깜찍하고 사랑스럽기만 하면 됐지·
그렇기에·
“〈심연의 던전〉 공략도 길었지만 〈심해의 던전〉 공략은 더 길 거잖아· 가는 데 한 달 거기서 머무르는 데 한 달 공략이 끝나고 정비하는 데 한 달 돌아오는 데 한 달이니까· 최소 4개월· 공략 기간까지 포함하면 족히 반년은 넘게 걸릴 텐데 그랬다가는 유란이가 진짜 나를 잊어버릴 것 같아서····”
고심 끝에 〈심해의 던전〉 공략에 참가하지 않기로 했다고·
정하양이 사연을 이야기했다·
“아이와의 애착 관계 형성은 어릴 때가 중요하다잖아· 그래서 한동안은 유란이랑 보내는 시간에 집중하고 싶어·”
“그래···· 유란이 때문이라면 어쩔 수 없지·”
“응···· 대신에 태희나 미예한테 참가를 부탁해 볼게· 걔네라면 네비게이터 편성에 차질이 없을 거야·”
“태희랑 미예라면 든든하겠네· 부탁할게·”
은하는 정하양의 심정에 공감했다·
그녀의 부재가 아쉽게 됐으나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가고 하양이도 가 버리면 유란이 입장에서는 몇 개월이나 엄마 아빠를 볼 수 없는 셈이니 많이 불안해지겠지·’
제아무리 한서현 이유정 류연화가 노유란을 친자식처럼 돌본다 해도 친어머니가 될 수는 없으리라·
노유란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은하와 정하양의 사랑일 테니까·
그러니 자신은 별수 없더라도 정하양은 노유란을 돌볼 수 있도록 곁에 남기는 게 좋을 듯했다·
그때였다·
“아빠 또 어디 가요?”
“····”
“엄마도 어디 가요?”
흘러가는 대화를 주워들었는지 은하의 품에 안겨 있던 노유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은하는 순간 흠칫했다·
“다 또 가요···?”
“유란아 그게 있잖아····”
“유란이는 또 아빠 없어요? 엄마도 없어요?”
“····”
“오빠는 엄마가 있고 유린이도 엄마가 있는데···· 또 유란이만 다 없어요?”
히잉····
노유란이 울먹거린다·
은하는 곧 울음을 터뜨리며 앙증맞은 주먹으로 가슴팍을 때리는 그녀에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정하양은 얼른 수습에 나섰다·
“유 유란아! 엄마는 안 가! 엄마는 이번에는 유란이랑 남아서 재미있게 놀 거야!”
“···진짜요?”
“그래 진짜야· 우리 유란이 엄마가 거짓말하는 거 봤니?”
“네에····”
“····”
잠시 정하양이 멈칫했다·
그녀가 입가를 씰룩였다·
“이 이번에는 거짓말 안 할게· 약속·”
“진짜요?”
“응 진짜야· 이번에는 진짜로 어디 안 갈게요· 유란이랑 같이 있을 거예요·”
“아빠는요?”
“아빠는···· 금방 돌아올 거야·”
“금방 언제요?”
“···아마도 6개월 후에?”
“여 보 야?”
정하양이 은하를 째려보았다·
은하는 홱 고개를 돌렸다·
“6개월 많아요?”
“아니야 유란아· 하나도 안 많아· 우리 여섯 밤만 자면 돼·”
“여섯 밤?”
“그래! 그러니까 아빠도 이번에는 금방 돌아올 거야· 그렇지 여 보 야?”
“어어···· 맞아 유란아· 아빠가 여섯 밤만 있다가 올게·”
“진짜요? 약속·”
“그래···· 약속·”
노유란이 새끼손가락을 내민다·
은하는 그녀와 손가락을 얽으며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했다·
‘유란아 미안····’
그래도 다행히 노유란은 더는 떼를 부리지 않게 됐다·
은하도 정하양도 속으로 안도했다·
이내 정하양이 입을 열었다·
“유란이는 내가 챙길 테니까 여보는 우리 걱정하지 말고 공략에 전념하도록 해·”
“알았어 고마워·”
“그리고 혹시 몰라서 유성이한테 의견을 구했었는데····”
“유성이? 큰 유성이?”
“응 그 유성이· 이야기를 듣기로는···· 미래에서도 나는 참가하지 않았다는 모양이야· 그러니 내가 빠진다고 변수가 되진 않을 거야· 오히려····”
정하양이 의아하다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나는 가지 말아야 한다던데? 미래를 위해·”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나도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자세한 언급은 피하더라고· 필터링이 걸려서 안 된다면서····”
“흠···· 신경이 쓰이기는 하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는 건가? 거기나 여기서·”
“잘 모르겠어· 유성이 뉘앙스로는 안 좋은 의미는 아니었던 것 같던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심해·”
“알았어 하양이 너도·”
이때 〈심해의 던전〉 공략 과정에서 어떤 해프닝이 일어날지·
두 사람은 알지 못했다····
* * *
‘쌍둥이 애들은 왜 안 한 거지?’
보나 마나 별 같잖은 이유로 공략에 지원하지 않은 것이리라·
은하는 장담할 수 있었다·
그러니·
‘얘네는 강제 참가다·’
〈제미니〉라는 이명으로 불리는 쌍둥이 자매 메이링과 메이린·
그녀들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걔네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태희랑 미예 설득은 부탁할게·”
“응 알았어· 힘내· 유란이도 아빠 힘내세요 해야지·”
“아빠! 힘!”
은하는 그녀들이 뭐라 항의하든 억지로라도 끌고 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다짐하며 정하양 노유란을 뒤로한 은하는 친구들을 찾아 나섰다·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일은 다 하고 돌아다니는 거냐? 마침 잘됐다· 안 그래도 너한테 가려던····”
“너 왜 지원 안 했어·”
“뭐?”
판도라 클랜 서브 로드 목민호였다·
은하는 대뜸 그에게 따졌다·
손에 든 서류철을 넘기려던 그는 어처구니없어했다·
“지금 농담으로 묻는 거냐 아니면 진담으로 묻는 거냐· 알 텐데? 나랑 은우랑 결혼식 있는 거· 청첩장도 보냈잖아·”
“그래도 미리 양해는 구했어야지· 결혼 때문에 못 갈 것 같다고·”
“꼰대냐· 우리 사이에 무슨···· 그러는 너야말로 양해를 구해야지· 우리 결혼식을 못 볼 것 같다고·”
“미리 양해를 구한다·”
“알면 됐다· 그냥 축의금이나 두둑이 챙겨 줘라· 네 결혼식에 네 번이나 참석한 만큼·”
목민호가 피식 웃는다·
그가 은하에게 서류철을 건넸다·
“사람이 잘 안 구해지나 보지?”
“아니· 사람은 잘 구해지는데 손발이 맞는 애들이 적다는 게 탈이지····”
“다들 어지간히 고생했으니까· 이젠 공에 욕심도 없겠다 편히 쉬고 싶은 마음인 거지· 진파랑이나 메리 나나 은우처럼 〈심연의 던전〉 공략을 계기로 가정을 꾸리고 싶어진 사람도 많고····”
“그러게 말이다 다들 어떻게 연달아 청첩장을 보내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단체로 결혼하면 안 되나? 회관에 있는 교회에서····”
“괜한 오해를 사기 십상이겠네· 은하신교에서 합동결혼식을 장려한다고·”
“아 그건 좀···· 끔찍하네·”
코웃음을 치며 받아치는 목민호·
은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반쯤 체념한 어조로 물었다·
“정말 안 되겠어? 공략·”
“어 정말 안 되겠다·”
“은우를 설득해서 결혼을 미루면···· 아니다 던전에서 결혼식을 올리면····”
바로 그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만·
“은하야?”
“····”
차은우가 기척도 없이 나타났다·
“어···· 은우야 언제····”
“언제 왔냐고? 지금 왔지· 너희 목소리가 들리길래·”
“····”
“그래서 은하야·”
아래로 휘어진 눈꼬리와 더불어 눈물점이 인상적인 차은우·
은하가 당혹감을 느끼는 가운데 옆으로 다가온 그녀가 생긋 미소 지었다·
“지금 무슨 개소리 중이었니?”
“····”
차은우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에는 명백히 가시가 담겨 있었다·
은하는 뜨끔했다·
‘〈심연의 던전〉에서 나온 이후로 얘가 더 거침없어졌어····’
잘못 말했다가는 큰일 난다·
무섭다·
시선을 피한 은하는 변명했다·
“그냥···· 너희 결혼 축하한다고· 보러 가지 못해서 미안하고···· 아 축의금은 두둑이 챙겨 줄게·”
“아아 개소리가 아니었구나· 내가 잘못 알았나 보다· 고마워 축의금은 잘 받을게!”
차은우가 작게 손뼉을 치며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