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이프 플레이어 (931)
After Story 3· 그녀만 아는
노은하가 이번 기회에 가족들끼리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노은아의 신혼여행 기간과 겹치고 여행지도 같다 보니 의심도 갔지만 아내들은 일단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동안 일이 끊이지 않았던 데다 여론의 눈치를 봐야 했던 그들로서는 기분을 전환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은하의 의도가 어찌 됐든 그들이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던 것이다·
그날부로 그들은 짬이 나는 틈틈이 여행 준비에 착수했다·
―호텔은 은아 언니가 숙박하는 호텔로 할 거라고 했지? 그러면 따로 찾아볼 필요는 없겠네·
―문제는 그때가 성수기라서 지금 예약해도 과연 방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는 건데···· 유정아 네가····
―우리가 소유한 호텔이니까 아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야· 안 되면 내가 따로 부탁해 볼게·
―그런데 얘들아 방은 어떻게····
―무조건 4개로 잡아야지 언니·
―하양이 말에 동감이야· 밤일은 가급적 서로 비밀로 하고 싶잖아? 은하랑 오붓하게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할 테고· 여행 가서 손잡고 잠만 자고 올 것도 아닌데 다 같이 한방을 쓰기는 그렇지·
―은하하고 잘 때는 다른 사람이 애들을 봐주는 게 어떨까?
―···나도 찬성이야· 4개로 하자·
―그럼 방은 그렇게 예약하고···· 밤일은 각자 알아서 준비하기로 하고 여행 일정이나 짜 보자·
―아 나 가고 싶은 곳 하나 있어· 전에 SNS에서 봤었는데····
―나는 유채꽃밭에 가 보고 싶어· 이번에는 눈으로 직접 보고 싶거든· 유채꽃이 필 시기가 지나긴 했는데 그래도····
―나는 여기····
네 사람 모두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다 화제로 은하가 나오게 되면 그들끼리 동질감을 불러오는 한편 질투심을 유발하기도 했다·
―그래? 은하가 그랬단 말이지?
―····
다투지 않고 화목하게 지내기로 약속한 그들은 감정을 추슬렀다·
대신 은하를 들들 볶기로 했다·
그것이 남편으로서의 책임이라고 그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렘을 차린 은하 잘못이다·
서로의 생각이 일치했다·
이후로도 그들은 계획을 세웠다·
―다들 수영복은 어떻게 할 거야? 새로 살 거지?
―인터넷에서 마음에 드는 거로 살 생각이야·
―나는 은아랑 같이 매장에 가서 사기로 했어·
이야기가 수영복으로 흘러간 것은 그러던 중이었다·
바다에 들어갈지는 알 수 없지만 호텔 수영장을 이용할 생각인 만큼 없어서는 안 됐다·
은하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라도·
이에 그녀들은 이번 여행을 위해 새로 수영복을 사기로 합의했다·
다만 제각기 일정이 있던 관계로 서로 시간을 맞출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각자 알아서 구입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하여·
“음···· 몇 층으로 가면 되지?”
이날 이유정은 루미너스 백화점을 찾은 것이다·
“언니! 여기 보니까 수영복 매장은 6층에 있다는 것 같아요·”
“수영···? 그게 모예요?”
하백련 노유린과 함께·
* * *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
백서진의 국가 전복을 진압한 뒤 선녀 임가을이 세상에 밝힌 포부는 그날부로 사회에 다양한 변화를 일으켰다·
그 변화를 이끌어 가야 할 세대이자 2대 선녀로 주목받고 있는 하백련은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으으··· 이걸 언제 다 하지····
―언제 다 하기는· 오늘 안으로 끝낼 수 있도록 해야지·
―이 많은 걸요···?
―선녀가 되면 그것보다 더 많은 일을 처리하게 될 거야· 겨우 그걸로 힘들어하면 안 되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보면 모르겠니?
―그래도 선녀님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 할 수 있는 업무량이 아닌 것 같아요····
―뭐 맞는 말이기는 해· 하지만 우리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니? 힘들어도 해야지·
―으으···· 네에····
올해로 17세·
특별법에 의해 준성인으로 인정받는 하백련은 고등학교를 다니는 한편 임가을의 업무를 돕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그녀도 다른 사람들처럼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의 노예로 살고 있던 실정이었다·
그녀로서도 숨을 돌릴 틈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녀와 평소 가까이 지내던 이유정이 그녀의 상태를 알아보고 쇼핑에 데려온 것이다·
―백련아 유린이랑 백화점 갈 건데 너도 같이 갈래? 나가서 맛있게 저녁 먹고 들어오자·
―정말요!? 네 좋아요! 갈래요 저도!
사실 임가을이 무작정 하백련에게 일만 시킨 것은 아니다·
일을 하는 만큼 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고 업무 외에도 여러 경험을 통해 견문을 넓혀야 할 필요성 또한 모르지 않았다·
그 나이에만 겪을 수 있는 경험은 무척이나 값지고 중요했다·
그렇기에 임가을은 그녀가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하는 등 일상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해 주고 있었다·
그녀가 휴식을 원한다면 너그럽게 이해하고 눈감아 주고는 했다·
물론 그동안 쌓아 온 신뢰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사명을 잊고 놀기만 하는 사람이었다면 임가을도 탐탁잖게 여겼을 것이다·
여하튼·
“어디에 있으려나····”
“한 바퀴 둘러보다 보면 나오지 않을까요?”
루미너스 백화점 6층·
임가을의 허락을 받고 놀러 나온 하백련은 이유정 노유린과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들은 수영복 매장을 찾기 위해 층 내를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사람들의 시선을 덜 받게 돼서 편하네요·”
“그러게· 요즘에 많이 나아졌지? 다른 애들도 그렇게 말하더라고·”
하백련이나 이유정이나·
두 사람은 외견이나 지위 신분 능력 등으로 인해 세간에 익히 얼굴이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간혹 그들의 외견에 혹해 눈을 돌리는 사람이 있기나 할 뿐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지닌 아티펙트의 효과였다·
“그래도 우리보다는 백련이 네가 더 잘된 것 같아· 이제 머리 색도 바꿀 수 있게 됐잖아·”
“마나를 발현하면 효과가 사라져서 원래대로 돌아오는 게 아쉽지만 다행이기는 해요· 그동안 어디를 가든 머리 색 때문에 제 정체가 들통나고는 했으니까요·”
〈심연의 던전〉 공략은 사람들에게 기존에는 없던 기술을 가져다주었다·
인식을 저해시키는 효과를 부여한 두 사람의 아티펙트가 그 기술의 일부라고 할 수 있었다·
하백련이 소지한 아티펙트의 경우 〈백은〉의 기프트의 반발력을 이용해 체모를 검게 바꿀 수 있게도 했다·
그녀의 마나 제어 능력이 상당한 성취를 보인 덕이기도 했고·
덕분에 그녀는 이전과 달리 편하게 거리를 나다닐 수 있었다·
새하얀 머리로 인해서 사람들에게 정체를 발각당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윽고·
“언니! 저기 있어요!”
“아 그러네·”
하백련이 한곳을 가리켰다·
바다에 온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매장이었다·
전시된 수영복과 물놀이 장비가 보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쇼핑을 나온 하백련은 들뜬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유정은 노유린을 태운 유모차를 끌며 그녀를 뒤따랐다·
“매장이 넓어서 예쁜 게 많이 있을 것 같아요· 언니 여성용 수영복은 저기에 있대요·”
“기다려 백련아· 우선 유린이 것부터 사도록 하자· 아동용 수영복이····”
“아! 저기요!”
아동용 수영복은 매장 입구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유정은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매장이 넓어서 그런 건지 아동용도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는 것 같았다·
가볍게 주위를 훑은 그녀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이내 그녀는 마음에 드는 수영복을 몇 벌 골라 노유린에게 보여 주었다·
“유린아 이게 수영복이에요·”
“그래요?”
“네 그래요· 이거 입고 물에 들어가 노는 거예요· 물속에요·”
“물에요?”
나긋나긋한 어조로·
이유정이 노유린에게 설명했다·
선글라스를 쓴 토끼 인형을 안고 손가락을 빨던 노유린은 기우뚱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왜요?”
이제 두 살·
호기심이 왕성한 나이다·
수영복과 이유정을 번갈아 보면서 눈을 깜빡이던 노유린이 물었다·
이유정은 어쩐지 딸아이의 생각을 알 것 같았다·
그녀가 귀여워 죽겠다는 얼굴로 질문에 답했다·
“유린이가 목욕할 때는 옷을 다 벗고 물에 들어가죠? 그런데 물에 들어가서 수영하고 놀 때는 옷을 입고 들어가야 하는 거예요·”
“그래요?”
“네· 다른 사람들하고도 같이 놀 건데 옷을 벗고 있으면 부끄럽잖아요· 유린이도 부끄럽죠?”
“으음···· 그래요?”
“유린이가 아직 어려서 부끄러운 것을 잘 몰라서 그래요· 유린이 아빠랑 물놀이하고 싶죠?”
“네에!”
“아빠랑 엄마들이랑 유성이 오빠 유란이랑 다 같이 물놀이하려면 옷을 입어야 하는 거예요· 알겠죠?”
“네에·”
“꺄아! 귀여워·”
자신이 낳았지만 정말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딸아이다·
이유정은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을 텐데도 고개를 끄덕이는 노유린이 귀여워서 볼을 꼬집어 주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잘 칭얼대지 않고 말을 잘 듣는 그녀는 뭐가 그리 좋은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유린아· 이 중에 뭐가 제일 좋아요? 이거? 아니면 이거? 이거?”
한편 노유린의 수영복을 고르는 이유정의 눈은 날카롭기만 했다·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면서 그녀는 미의식에 눈을 뜨게 됐다·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고 상대에게 좋게 보이는 것에 신경을 쓰게 된 것이다·
그 잣대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딸아이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그녀는 엄선한 수영복 세 벌을 골라 노유린에게 내보였다·
“으음····”
“유린이는 뭐가 좋아요?”
물론 아직 두 살밖에 안 된 아이에게 미적 감각이 있을 리 없었다·
고심하듯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던 노유린은 영리하게도 그녀가 기뻐할 반응을 선택했다·
“이게 좋아요?”
“네에· 좋아요!”
“아니면 이거?”
“좋아요!”
“이건요?”
“좋아요!”
“엄마는요?”
“좋아요!”
“꺄아 귀여워! 엄마가 골라 주는 건 다 좋다는 말이구나?”
“네에!”
“엄마 생각에도 그래요· 유린이한테 다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우리 그냥 다 살까요?”
“네에!”
사실 이유정 입장에서도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래서 노유린에게 맡기려 했는데 그녀의 생각이 그렇다면 차라리 전부 사 버리면 그만이다·
돈이라면 부족하지 않았다·
당장 매장에 있는 아동용 수영복을 전부 살 수도 있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수영복들을 손에 든 바구니에 넣었다·
“언니한테 이런 면도 있었네요····”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하백련은 쓴웃음을 흘렸다·
그러면서 그녀도 노유린이 쓸 만한 수영모를 고르고 있었다·
“언니 모자는 이런 거로 어때요? 색 조합이 괜찮을 것 같은데·”
“나한테 보여 주지 말고 유린이한테 보여 주는 게 어때?”
“유린아 이 모자는 어때? 좋아?”
“좋아요!”
“그럼 이 모자는?”
“좋아요!”
“그럼 이건?”
“좋아요!”
“언니는?”
“좋아요!”
“꺄아 귀여워! 언니 얘 왜 이렇게 귀여운 거예요? 너무 귀여운 거 아니에요?”
“그치? 내 딸이지만 너무 귀여워·”
···결국 하백련도 이유정과 똑같은 전철을 밟았다·
이후로도 그들은 노유린에게 맞는 수영 도구를 물색했다·
수영복 수영모 물안경 튜브 등 아동용으로 나온 물건은 종류별로 적어도 하나씩 챙겼다·
도중에 바구니에 들어가지 않아서 카운터 앞에 내려놔야 할 정도였다·
그러던 중 이유정이 말을 꺼냈다·
“백련이 너도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사도록 해· 내가 사 줄게·”
“네? 저도요?”
“그냥 따라오기만 하면 재미없잖아· 너도 하나 사야지·”
“음···· 그런데 저는 사도 입을 일이 없을 것 같은데····”
“클랜회관에도 수영장이 있잖아· 거기서 입고 놀면 되지·”
“····”
어느덧 8년이 흘렀다·
9세에 불과했던 하백련은 이제는 17세가 되어 이유정과 비슷한 눈높이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유정은 자신의 앞에서 머뭇거리는 하백련이 여전히 귀엽게 느껴지기만 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이상하게 정이 갔다·
지금이야 그 이유를 알겠지만·
‘회귀 전의 기억 때문인 거겠지·’
자신에게나 은하에게나·
더없이 소중한 존재다·
이번 삶에서도 하백련과 친해져서 기쁘고 다행이다·
그렇기에 수영복 따위는 얼마든지 사 줄 수 있다·
이유정은 그녀를 설득하러 말했다·
“여행 가서 입고 끝날 게 아니라 돌아와서도 클랜 수영장에서 입고 놀 텐데···· 그렇지 유린아?”
“네에!”
“백련이 너는 같이 안 놀 거니?”
“아뇨···· 혼자 노는 게 싫은 거지 언니들하고 놀면 좋죠·”
“맞아· 우리하고 놀기 위해서라도 수영복을 사 둬야 하지 않겠니? 아마 은하도 같이 놀게 될 텐데····”
“····”
“예쁜 수영복이 필요하지 않을까?”
조금은 짓궂은 어조로·
이유정이 하백련을 자극한다·
멈칫한 그녀가 머리카락에 가려진 얼굴로 살며시 턱을 움직였다·
“···네에·”
하백련의 귀 끝이 빨갰다·
* * *
하백련의 수영복을 고르는 것도 끝났다·
그녀가 부끄러워했지만 시착 사진도 여러 각도로 몇 장이나 찍었다·
이유정은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수영복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나는 어떤 거로 할까····’
이제부터는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수영복을 찾아야 한다·
이유정은 생각에 잠겼다·
수영복의 스타일이 다양해서 그만큼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다·
그중 어떤 분위기를 연출해야 할지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은하는 어떤 스타일을 좋아할까·’
보여 주기 위해 입는 수영복이었다·
단순히 잘 입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녀로서는 은하가 넋이 나갈 만한 수영복을 고르고 싶었다·
‘한번 애들한테 물어볼까·’
혼자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유정은 결국 자신의 경쟁자이면서 한 가족인 은하의 아내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녀가 은하는 없는 아내들만 모인 톡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나]: 다들 수영복 뭐로 할 거야?
읽음 표시가 빠르게 사라졌다·
마침 다들 시간이 비었던 모양이다·
그들이 답장을 보내왔다·
[서현 언니]: 나는 이걸로 생각 중이야
[서현 언니]: (사진)
[서현 언니]: 검은색으로 하려고
“와아····”
서현 언니 대담하다·
이유정은 그녀가 보낸 사진을 보고 놀람을 금하지 못했다·
한 벌 원피스로 된 모노키니란 수영복이었다·
디자인이 선정적이면서도 세련됐다·
어깨와 가슴골 옆구리 심지어는 배꼽까지 보이는 수영복은 몸매에 상당한 자신감이 있어야만 입을 수 있을 듯했다·
그녀에게는 잘 맞을 것 같았다·
[하양이]: 언니 작정했구나 ㅎㅎ···
[서현 언니]: 너희랑 같이 가는 건데 눈에 띄어야 하지 않겠니?
[하양이]: 그건 그래
[하양이]: 나도 그래서 작정하려고
[서현 언니]: 너는 뭐 입을 건데?
[하양이]: (사진)
[하양이]: 짠! 일단 이걸로 하려고
“와아····”
이유정은 다시금 감탄사를 흘렸다·
한서현이 작정했듯 정하양도 작정했다·
그녀가 보낸 사진에 나오는 수영복은 분홍색 오프 숄더 비키니였다·
비키니처럼 노출 면적이 많으면서 대놓고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 줄 듯 말 듯 한 아슬아슬한 아름다움을 추구한 수영복이었다·
가슴에 천을 한 장 얹은 것 같다·
하늘거리는 프릴을 들치면 속 안이 들여다보일 지경이었다·
물론 정말 보이지는 않으리라·
그때 류연화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연화 언니]: 나는 크롭으로 할
크롭 래시 가드·
상의가 짧아서 배 부위가 드러나는 노출 면적이 적은 수영복이었다·
한서현 정하양에 비해 무난한 편이지만 네 사람 중 운동 실력이 뛰어난 류연화에게는 잘 어울릴 듯했다·
하지만 그녀가 다음에 보낸 메시지는 이전 내용과 흐름을 달리했다·
[연화 언니]: 야한 거로 입을 거야!!
[연화 언니]: 엄청 야하고 섹시한 거로!!
[연화 언니]: 그냥 끈으로 된
[연화 언니]: 미안 은아가 보낸 거야
아무래도 류연화는 현재 노은아와 같이 있는 듯했다·
그녀의 등장으로 톡방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이유정은 그들과 대화를 주고받다가 톡을 중단했다·
“음 뭐로 하지····”
다들 작정한 모양이니 역시 자신도 작정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다만 어떻게 작정해야 좋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은하한테 물어볼까·’
가능하면 비밀로 하고 당일에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었지만 세 사람의 수영복이 저래서야 효과는 미미할 듯했다·
차라리 놀라게 해 주지는 못하더라도 그의 취향에 맞는 수영복을 골라서 눈길을 끄는 게 낫겠다·
그렇게 판단한 그녀는 눈에 들어오는 수영복 몇 벌을 바구니에 담았다·
“백련아 나 옷 좀 입어 보려고 하는데 그때까지 유린이 좀 봐줄래?”
“네 그럴게요· 천천히 입어 보세요·”
“응 고마워· 유린아 엄마가 없더라도 울고 그러면 안 돼?”
“네에·”
하백련에게 노유린을 부탁한 뒤 이유정은 탈의실에 들어갔다·
그녀는 입고 있던 옷을 벗고 바구니에 담은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러고는 전신 거울을 보며 시착한 사진을 촬영했다·
그 사진을 은하에게 보냈다·
[나]: (빨간 비키니를 입은 사진)
[나]: 어때? 예뻐?
읽음 표시가 금세 사라졌다·
은하가 메시지를 읽은 것이다·
[♥서방님♥]: 여행 갈 때 입으려고 사는 거야?
[나]: 응응
[♥서방님♥]: 괜찮은데? 예뻐
[나]: (시스루 비키니를 입은 사진)
[나]: 이건?
가슴골이 반투명하게 보이는 수영복이었다·
답장은 조금 늦게 도착했다·
[♥서방님♥]: 그것도 좋네· 예뻐
이유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문득 자신의 사진을 보고 반응할 은하를 떠올리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번에는 어떻게 반응할까·
이유정은 조금 대담해지기로 했다·
그녀는 얼른 수영복을 갈아입었다·
[나]: 그럼 이건?
[나]: (깊은 V넥 옆트임 화이트 모노키니를 입은 사진)
가슴골이 깊이 파이고 옆트임이 있는 수영복이었다·
이번에도 은하의 답장은 늦어졌다·
[♥서방님♥]: 괜찮은 것 같아
[나]: 야해?
[♥서방님♥]: 야하지
[나]: 이거 좋아?
[♥서방님♥]: 응 좋아
좋단다·
이유정은 자판을 치며 키득거렸다·
그의 칭찬이 떨어지니 그녀의 시착은 더욱 과감해졌다·
[나]: 이건 어때?
[나]: (하얀 마이크로 끈 비키니를 입은 사진)
[나]: 아까 것보다 노출이 좀 심한데···
노출이 심한 것뿐만이 아니다·
이걸 입고 돌아다닐 만한 배짱이 이유정에게 있을 리 없었다·
다만 은하에게 한번 보여 주고자 입어 본 것이다·
답장은 전보다 한참이나 늦었다·
그렇게 해서 온 답장은 전과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서방님♥]: 괜찮기는 한데···
[♥서방님♥]: 아니 좋은데···
[♥서방님♥]: ···정말 그거 입을 거야?
[나]: 응♥
은하가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겼다·
톡으로 대화를 주고받을 뿐이지만 그가 걱정하고 있을 모습이 절로 상상됐다·
이유정은 그에게 더 장난을 치고 이 기분을 더 느끼고 싶어졌다·
마침 바구니에는 지금 입고 있는 수영복보다 노출 면적이 많이 있는 수영복들이 있었다·
[나]: (사진)
[나]: 이건 어때?
:
[나]: (사진)
[나]: 과감하게 입어 봤어
:
[나]: (사진)
[나]: 애 엄마로 안 보이겠지?
:
[나]: (사진)
[나]: 너무 야한가?
:
[♥서방님♥]: 유정아···
[♥서방님♥]: 안 돼
[♥서방님♥]: 그건 입지 마
[♥서방님♥]: 그건 입는 게 입는 게 아니잖아···
사진을 보낼 때마다·
이유정은 노출 면적을 늘려 나갔다·
급기야 은하가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기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띤 상태로 은하의 의견을 듣지 않았다·
[나]: 싫어!
[나]: 꼭 입고 싶은데?
[♥서방님♥]: 입을 거면 그럼 나랑 있을 때만 입으란 말이야
[♥서방님♥]: 바다에서 그걸 입고 다닐 거야?
[♥서방님♥]: 너 그거 입고 다니면
[나]: 예쁜데 왜 ㅎㅎ
[♥서방님♥]: 유정아 제발···
[나]: 다음에는 이것보다 더 노출이 심할 거야
[♥서방님♥]: 안 돼 입지 마
[♥서방님♥]: 너 지금 어디야
[♥서방님♥]: 유정아? 우리 전화 좀 하자
[나]: 이번에는 착한 사람한테만 보이는 수영복이야
[나]: 나쁜 사람한테는 안 보인대♥
[♥서방님♥]: 대체 뭘 입으려는 거야
[나]: 기대해! 이건 금방 입을 거야
[나]: 지금 입고 있는 것만 벗고···
[♥서방님♥]: 유정아 안 돼 하지 마···
키득키득·
수영복을 새로 갈아입은 이유정은 거울을 향해 스마트폰을 들었다·
스마트폰으로 전신 거울에 비치는 자신을 찍었다·
그녀는 곧장 그 사진을 은하에게 전송했다·
[나]: 짠! 착한 사람한테만 보이고 나쁜 사람한테는 안 보이는 수영복이야
[나]: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사진)
그동안 입었던 수영복에 비해서 제일 건전하다고 할 수 있는 수영복이었다·
이유정은 어깨를 들썩이며 은하의 답장을 기다렸다·
[♥서방님♥]: 어···
[♥서방님♥]: 내가 생각한 게 아니네
[나]: 뭘 생각했는데?
[♥서방님♥]: ······
[나]: 지금 뭐가 보이는데?
[♥서방님♥]: 꽃무늬 수영복
[♥서방님♥]: 원피스인가?
[나]: 맞아 ㅎㅎ
[나]: 내 남편은 착한 사람이라서 제대로 보이는 모양이네?
[나]: 나쁜 사람이었으면 안 보였을 텐데
[♥서방님♥]: 유정아
[나]: 응
[♥서방님♥]: 장난치니까 재밌어?
그제야 은하는 그동안 이유정의 장난에 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이유정은 키득거리는 소리를 내곤 고개를 끄덕이며 답장을 보냈다·
[나]: 웅웅!!
〈심연의 던전〉 공략 이후·
많이 짓궂어진 이유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