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Escort Warrior Chapter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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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화·  < 붕정만리(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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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별산의 정확한 이름은 대별산맥이었다·

하남성과 호광성과 남직예성의 경계를 이루며 달리는 이 거대한 산맥은 예로부터 깊고 울창한 수림으로 유명했다·

도화곡은 대별산 하고도 깎아지른 직벽들이 많은 동쪽 깊숙히 양지바른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제 막 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복숭아 꽃들로 골짜기 전체가 마치 이야기 속 선계의 풍경 같았다·

“사저!”

섭부용을 발견한 열서너 살가량의 여자아이가 대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신나게 달려왔다·

그녀를 시작으로 곳곳에서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사저 어딜 갔다 오신 거예요?”

“사저 저잣거리에도 가 보셨어요?”

섭부용을 둘러싼 채 숨 쉴 틈조차 주지 않고 질문을 해대는 모습들이 꼭 어미를 기다린 새끼 새들 같았다·

그러고 보니 모여든 제자들은 전부 열서너 살 안쪽의 어린 여자아이들이었다·

여자아이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나와 남궁소소에게로 향했다·

자기들 딴에는 안 들리게 한다고 그러는 것인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와 예쁘다·”

“남궁세옥 공자님의 여동생이신가 봐·”

“어쩐지 예쁘더라니·”

“부용 사저가 더 예쁘시거든·”

“누가 부용 사저가 안 예쁘시대· 저 언니도 나름대로 되게 예쁘시다는 거지· 착한 남궁세옥 공자님을 닮았으면 분명 마음씨도 고우실 거야·”

“옆에 있는 남자는 누구지?”

“그 사람인가 봐· 천룡표국의 사공자·”

“향시와 회시에 연달아 장원급제했다는 그 천재?”

“얼굴도 잘생겼다·”

“남궁세옥 공자님보다 못 한데?”

“남궁세옥 공자님과 비교하는 건 좀 아니지·”

가만 놔두면 무슨 이야기들이 더 나올지 모르겠다·

섭부용이 어린 사매들에게 물었다·

“다들 왜 대바구니를 들고 있어?”

“태사부님께서 사천까지 가는 동안 먹을 산나물을 최대한 많이 캐서 이레 동안 말리라고 하셔서요·”

“태사부님께선 지금 어디 계시지?”

태사부는 곡주인 여종매를 말한다·

오는 동안 섭부용에게 듣기로 도화곡은 모두가 사승의 관계로만 맺어졌기에 따로 부리는 시비나 일꾼들이 없다고 했다·

“장로님들과 함께 도화봉으로 올랐어요· 남궁세옥 공자님과 천룡표국주님도 함께 가셨고요·”

“도화봉에는 왜?”

“칠검향 사저들께서 말씀하시길 불길이 번지지 않게 전각들을 태울 방법을 찾는 거라고 하셨어요·”

“그렇구나· 자 다들 일렬로 줄을 서 보렴·”

도화곡의 어린 제자들이 영문도 모르고 줄을 섰다·

그러자 섭부용이 등에서 행낭을 풀더니 무언가를 꺼내 대바구니에 하나씩 넣어 주었다·

나와 남궁소소는 살짝 놀랐다·

저건 수서루에서 먹었던 것으로 밀가루와 꿀과 달걀을 섞어 만든 피에 각종 견과류를 넣어 구운 작은 월병이었다·

반죽 후에는 여러 가지 꽃 모양의 틀에 찍기까지 해서 맛도 맛이지만 모양 또한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와아 월병이다·”

“예쁘다·”

“나는 매화 모양이야·”

“나는 진달래꽃·”

“나는 복숭아꽃 모양이야!”

“와 좋겠다·”

“아까워서 못 먹겠어·”

줄은 아직 삼십 명도 넘게 남았는데 월병은 고작 스무 명 정도에게 나눠주자 그만 똑 떨어져 버렸다·

섭부용이 사이좋게 나눠 먹으라고 했지만 받지 못한 아이들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시무룩해졌다·

나와 남궁소소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반성했다·

수서루에서 차려진 음식들 중에 월병이 가장 맛있어서 그것만 먹었다·

한데 섭부용은 입에도 대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다가 마지막에 남은 걸 전부 싸 온 모양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덜 먹을 걸 그랬다·

괜히 아이들 음식을 빼앗아 먹은 것도 같고·

그때 도화봉을 올랐다던 여종매와 이종산 손지백 남궁세옥 등이 경내로 들어서다 우리와 딱 마주쳤다·

“태사부님을 뵙습니다·”

섭부용이 여종매를 향해 포권지례를 올렸다·

남궁세가에서는 곡주님이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도화곡의 경내로 들어오니 태사부로 바뀌었다·

나와 남궁소소도 동시에 포권지례를 올렸다·

우리는 특히 여종매의 뒤쪽에 시립해 있는 다섯 명의 초로인들에게도 따로 인사를 올렸다·

“천룡표국 십칠각주 이정룡입니다·”

“양주 남궁장의 남궁소소입니다·”

이들은 이른바 오대장로들이었는데 무려 네 명이 여종매와 같은 항렬의 사매들이었다·

유일하게 검은 머리에 온화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은 한 배분 아래의 제자로 섭부용의 사부인 일섬단혼(一閑斷魂) 이막하였다· 여종매가 섭부용에게 물었다·

“별일 없었느냐?”

“이 공자님과 남궁 소저께서 바람막이가 되어주신 덕분에 소손은 딱히 험한 일을 겪지 않았습니다·”

“고마운 일이구나·”

여종매가 나와 남궁소소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종산이 기다렸다가 내게 물었다·

“간 일은 잘 해결되었느냐?”

“개방과는 일이 잘 안 되었습니다· 대신 하오문의 남직예성을 총괄하는 해룡당주로부터 확실한 협조 약속을 받아 냈습니다·”

“하오문?”

“그렇습니다·”

“어떻게 된 영문이더냐?”

“그게 말입니다····”

“제가 말씀드릴게요·”

남궁소소가 불쑥 끼어들더니 수서루에서 매용초에게 들었던 것들을 전부 이야기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누군가 이 공자만을 따로 만나고 싶대서 갔는데 그게 장막에 가려진 해룡당주 소수옥녀였다는 얘길 전해 듣고는 자기도 매우 놀랐다고도 했다·

이종산이 말했다·

“이무기의 힘을 빌리러 갔다가 용의 힘을 빌려왔구나· 수고했다·”

“별 말씀을요·”

도화곡에는 현재 칠대제자부터 구대제자들까지 함께 어울려 살고 있었다·

칠대제자는 여종매와 오대장로를 비롯해 생존자가 서른 명이 채 안 되었다·

도화곡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팔대제자는 칠십 명 정도였는데 모두가 중장년층이었다· 그 외 나머지는 전부 구대제자들이었고 대부분 10대에서 20대였다·

섭부용이 바로 구대제자의 대사저 격이었다·

본격적인 이사 준비가 시작되자 가장 바빠진 것은 팔대제자와 구대제자들이었다·

이종산이 개인 짐은 한 명당 행낭 하나만 허락했기 때문이다·

이 얘기는 남궁세가에서도 들은 바 있다·

그때도 나는 너무 엄격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일정도 지나치게 재촉을 한다는 느낌이 강했고·

한데 도화곡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뭣! 말을 탈 줄 모른다고?”

“산속에서 말을 탈 일이 뭐가 있었겠어요?”

“도화곡 제자들 전부?”

“외부활동을 했던 제자들 일부가 탈 줄은 아는데 실력이 형편없대요· 그나마도 모두 합쳐 서른 명이 채 안 되고요·”

“그럼 삼천리를 걸어간다고?”

“삼백 명에게 말타기를 훈련할 수는 없잖아요· 그 많은 말을 준비하는 것도 가는 동안 먹이는 것도 일이고요· 워낙 산을 많이 타서 걷는 건 자신 있다더라고요·”

“아아····”

나는 이종산의 선견지명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행낭 하나’라는 말이 가져온 파장은 컸다·

지금까지 써왔던 물건들을 전부 행낭 하나로 압축해야 한다는 뜻이니까·

얼핏 보면 꼭 필요한 물건을 고르는 작업 같지만 사실은 이건 정든 물건들을 버리는 작업이었다·

남자와 달리 작은 물건에도 애착을 갖고 의미를 부여하는 여자들에게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도화곡에 들어온 지 이틀째 되는 날 딱히 도울 일이 없었던 나는 조용한 계곡 상류에서 비격쌍뇌창으로 선천오법술을 수련하고 있었다·

틈틈이 선천오법술을 수련하면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첫 번째 움직이려는 물건이 무거울수록 조종하는 것도 어렵다·

한데 이것은 아무래도 뼛속 깊이 새겨져 있는 심리적 저항 때문인 것 같았다·

이 문제를 극복해 보려고 집중력을 한계까지 끌어 올려 보았다·

심리적 저항만 극복한다면 화살이나 창도 날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현재로선 바늘 이상은 불가능했다·

이건 일종의 술법에 가까운 영역이어서 내공을 키운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었다·

두 번째는 의지를 가진 것 즉 살아 있는 것을 생각만으로 조종하는 것은 같은 무게의 물건을 움직이는 것보다 열 배쯤 어려웠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실 부스러기 같은 모기를 조종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파리로 성장하기 위해 시도를 해보았지만 역시 어림 반푼어치도 없었다·

세 번째 바늘을 한 개 움직이는 것과 두 개를 동시에 따로 움직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이건 생각을 둘로 나눌 수 있지 않는 한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바늘을 허공에 던지고 한참을 조종하고 있는데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아이 하나가 저만치 아래의 계곡 가에 나타났다·

‘저 녀석은····’

도화곡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내 얼굴이 남궁세옥만 못하다며 수군거렸던 녀석들 중 한 명이었다·

‘목욕이라도 하러 왔나·’

나는 얼른 돌아서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다·

그때 여자아이가 바구니에 담아온 자기병의 뚜껑을 열더니 계곡에 붓기 시작했다·

계곡물이 금세 파랗게 변했다·

순간 여자아이가 갑자기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그냥 갈까 하다가 궁금해서 다가갔다·

인기척을 느낀 여자아이가 깜짝 놀라더니 나를 알아보고는 포권지례를 해왔다·

나도 포권을 쥐고는 물었다·

“여기서 무얼 하십니까?”

“염료를 전부 버리고 있어요·”

“염료?”

“개인 짐은 행낭 하나까지만 허용한다고 해서요·”

바구니를 보니 생쥐만한 자기병이 서른 개도 넘었다·

저것들을 다 계곡물에 버릴 모양이었다·

“이런 거 여기다 함부로 버리면 물고기가 다 죽을 텐데·”

“전부 꽃이나 치자 같은 열매를 달인 물인데요?”

“몸에 좋은 인삼도 많이 먹으면 죽을걸요·”

여자아이는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런데 염료를 왜 이렇게 많이 만드셨습니까?”

“저는 도화곡에서 유일한 화공이거든요· 사부님과 사저들의 초상화는 물론이고 전각의 단청들까지 전부 제가 다 그렸어요·”

말 속에 자부심이 가득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시무룩해졌다·

자신이 정성껏 단청을 그려 넣은 전각들을 며칠 후 전부 불태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정든 도화곡을 떠나 머나먼 사천으로 이사를 한다는 생각에 제자들 모두가 슬픔에 빠져 있었다·

“소저는 이름이 무엇입니까?”

자기소개를 할 때는 격식을 갖춰야 한다고 배웠는지 여자아이가 다시 나를 향해 포권을 쥐며 말했다·

“안여여라고 합니다·”

“안 소저 지금 바쁘십니까?”

“아뇨·”

“그럼 나랑 같이 도화봉에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왜요?”

도화곡에 도착한 지 엿새째 째 되는 날 항주 천룡표국으로부터 지원대가 도착했다·

적룡당 당주인 양진각이 다섯 명의 표두와 스무 명의 표사 그리고 서른 명의 쟁자수들을 이끌고 온 것이다·

이건 모두 이종산과 손지백이 도화곡의 사정을 면밀히 살핀 후 전서를 통해 지시한 내용이었다·

양진각은 한때 명포(名捕)로 이름을 날린 관부의 포두 출신이었다·

이종산은 사천까지 가는 동안 만날 수많은 관병들의 검문을 고려해 일부러 양진각을 부른 게 틀림없었다·

이레째 되는 날엔 서호삼견도 중무장을 갖춘 채 나타났다·

안 본 사이에 얼마나 잘 먹었는지 셋다 살이 포동포동 올라 있었다·

나는 일견에게 포권을 쥐며 말했다·

“먼 길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멀긴 멀더군·”

“앞으로의 길은 더 멀 겁니다·”

“돈만 확실히 준다면야 뭐·”

“제가 언제 공짜로 부려 먹는 거 보셨습니까?”

듣고 있던 이견이 불쑥 끼어들었다·

“하루에 은전 세 냥씩 준다고 해서 왔네만·”

“거짓말 마십시오· 어제 도착한 표사들을 통해 이미 연락받았습니다· 매일 은전 한 냥씩에 얘기가 끝났다고요·”

“소식 한번 빠르군·”

삼견이 이견에게 버럭 면박을 주었다·

“그러게 제가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해서 손해 볼 건 또 뭐냐?”

“사람이 민망하게 됐잖습니까?”

“세상에 어느 무덤 속 해골이 민망해서 죽었다더냐· 걱정도 팔자다· 장난 한번 쳐 본 걸 가지고·”

티격태격하는 서호삼견의 뒤쪽으로 한 사람이 쓰윽 모습을 드러냈다·

술 냄새를 폴폴 풍기면서 씨익 웃는 사람은 호리독사였다·

나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당신이 여긴 왜 왔소?”

“그냥 따라 왔습니다·”

“누구 마음대로?”

“저는 어차피 객원표사잖습니까·”

“내가 고용을 해야 객원표사인 거요· 당신은 고용한 적 없으니 한 푼도 줄 수 없소· 그냥 돌아가시오· ”

“매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돈이 그닥 필요 없습니다·”

물론 그러시겠지· 필요할 때마다 남의 주머니에서 꺼내 쓰면 되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이견이 얼른 끼어들었다·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호리독사는 우리가 임시로 데리고 다니는 수하일세· 그러니 그의 몫은 우리에게 주시게· 똑같이 은전 한 냥 씩·”

그리고는 호리독사를 향해 눈을 찡긋해 보였다·

마치 자기가 어떻게든 끼워 넣어 줄 테니 모든 걸 믿고 맡기라는 듯·

“그럴 바에야 차라리 제가 고용하죠·”

나는 호리독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매일 은전 반 냥씩이오·”

“술은요?”

“하루에 한 병까지는 허락하겠소·”

“충성!”

붕정만리·

붕새가 만 리를 날아간다는 뜻으로 머나먼 노정을 말한다·

마침내 긴 여정이 시작됐다·

행렬의 선두에는 이종산과 여종매가 나란히 말을 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천룡표국과 도화곡의 깃발이 사이좋게 펄럭이고 있었다·

표마차는 모두 스무 대였다·

첫 번째 표마차에는 역대 조사들의 위패 무공비급 오래된 향로를 비롯한 제기(祭器)들 그리고 복숭아나무로 만든 현판이 실려 있었다·

나머지 열아홉 대의 표마차에는 가는 동안 수백 명의 사람이 먹을 식량과 숙영에 필요한 천막들이 가득했다·

표마차의 뒤에는 삼백여 명에 달하는 도화곡의 제자들이 행낭 하나씩을 짊어지고 항렬에 따라 줄지어 걸었다·

그들은 모두 이종산의 요구대로 복장을 통일해 맞추었는데 암녹색의 장포에 유건을 쓰고 허리에는 협봉검을 찼다·

천룡표국의 표사들과 남궁세옥이 이끌고 온 비검대의 고수들은 각각 전후방의 경계를 맡으며 가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줄지어 구불구불한 산허리를 감아 도니 마치 거대한 구렁이가 기어가는 것 같았다·

이윽고 도화봉에 올라 대별산맥을 넘으려는 순간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도화곡이 있는 뒤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발걸음을 뚝 멈추었다·

저만치 아래 도화곡에서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전각들이 하얀 연기를 괴물처럼 피워 올리면서 활활 불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화곡의 제자들이 갑자기 훌쩍이기 시작했다·

짧게는 몇 년에서 많게는 육칠십 년을 살아온 자신들의 터전이 눈앞에서 불타고 있으니 누군들 억장이 무너지지 않겠나· 훌쩍거리는 소리는 어느새 울음으로 바뀌었고 급기야 어린 구대제자들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남궁소소도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서호삼견의 막내인 삼견과 호리독사도 훌쩍였다·

울지 않는 사람은 사실상 둘을 제외한 남자들 전부였다·

“갈 길이 멀다· 모두 일어나거라!”

오장로 중 고약하게 생긴 노파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누구 하나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심지어 팔대제자들 조차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기 바빴다·

“어허 이 녀석들이 정말!”

“잠시 기다리시게·”

“곡주님····”

“마지막으로 보는 도화곡이 아닌가·”

오장로의 다그침은 여종매의 만류가 있고 나서야 멈추었다·

그러자 가까스로 울음을 참던 팔대제자들까지 고개를 돌리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저 불이 꺼지기 전에는 발을 떼지 못할 것 같군요· 오늘 중에는 꺼지지 않을 텐데 이를 어쩐다····”

“더 심각한 건 저 어린 제자들의 가슴 속에는 이제 불타는 도화곡만 선명하게 남아 있을 거라는 것입니다·”

“아아 그렇겠군요·”

손지백과 이종산의 대화였다·

참고로 손지백은 대장궤로서의 역할이 모두 끝났기에 대별산을 내려가는 즉시 항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때 안여여가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안여여가 용기를 내어 여종매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등에 짊어지고 있던 제 키만 한 대나무 통을 풀어 뚜껑을 열더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어 구겨지지 않도록 돌돌 만 두루마리를 여종매에게 공손히 바치며 말했다·

“태사부님 이것 좀 보아 주셔요·”

“이게 무엇이냐?”

“지난 엿새 동안 소손이 도화봉에 올라 작년 봄 태사부님의 칠순잔치 풍경을 정성껏 그려 보았습니다· 본시 한 사람당 행낭 하나로 한정되었습니다만 태사부님께서 허락해 주시면 이 그림도 꼭 가져가고 싶습니다·”

여종매가 말에서 내리더니 두루마리를 받아서 펼쳤다·

그러자 커다란 화폭에 복숭아꽃 만발한 도화곡의 전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원 구석구석엔 놀랍게도 잔치를 준비하는 도화곡의 제자들이 하나하나 다른 동작으로 정성껏 그려져 있었다·

난데없이 아름답고 화사한 그림이 나타나자 여기저기서 울고 있던 도화곡의 제자들이 하나둘씩 관심을 보였다·

어느 순간 칠검향의 제자 하나가 그림 속 한 사람을 가리키며 조용히 말했다·

“저거 혹시 부용 사저 아니에요?”

“어디?”

“저기 지붕 위에서 지전을 태우는 사람 말이에요· 작년 봄 태사부님의 칠순잔치 때 부용 사저께서 만수무강을 바라시며 동쪽 지붕에 올라가 지전을 태웠잖아요·”

“밑에서 사다리를 잡고 있는 사람은 나인 것 같은데·”

“저기 우물에서 나오는 귀신같은 여자는 저예요· 칠순잔칫날 두레박 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제가 들어갔다가 나왔잖아요·”

“저기 멧돼지를 잡아 오는 저도 있어요·”

“독사에 물려 업혀 오는 사람은 저예요·”

“그렇다면 업고 달리는 사람은 나겠네·”

“혹시 나도 있어?”

나는? 나는?

점잖을 빼느라 궁금한 와중에도 쭈뻣거리는 팔대제자들과 달리 어린 구대제자들은 여종매의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행렬이 순식간에 무너져 버리자 양진각이 표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이를 바로 잡으려 했다·

그러자 이종산이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종매가 안여여에게 물었다·

“혹시 사형제와 사부님들 전부를 그려 넣었느냐?”

“예·”

“삼백여 명을 전부?”

“예·”

“다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는 줄 어찌 알고?”

“기억나는 분들은 그대로 그리고요· 나머지 사저들과 사부님들은 평소 잘 가시던 곳과 하시던 행동들을 상상하며 채워 넣었습니다·”

곳곳에서 ‘와아!’ 하는 작은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이어 삼백여 명을 전부 그렸다는 말에 다들 자신을 찾느라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다시 여종매가 물었다·

“이걸 어떻게 그릴 생각을 했느냐?”

“제가 염료를 버리려고 하자 이정룡 표사님께서 아깝다 시며 마지막으로 도화곡 전경이나 한번 그려 보라고 하셨습니다·”

안여여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향했다·

나는 멋쩍음에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부렸다·

어느새 곁으로 와 있던 남궁소소가 그림에 시선을 꽂은 채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며칠 동안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바쁘셨군요·”

“저 어린 제자는 그림을 그리고 나는 무공을 수련했소· 함께 도화봉을 오른 것은 호위가 필요할 것 같아서였고·”

“대답이 길면 보통은 뭔가 켕기는 게 있던데·”

“그렇게 길지도 않았소만·”

“그런데 왜 하필 작년 칠순잔치 풍경을 그렸대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 보라고 했더니 저걸 그렸소· 왜 그때가 가장 행복했냐고 물었더니 그날은 모두가 웃고 행복해 보여서 자기도 행복했다고 합디다·”

도화곡의 제자들은 그림 속 인물과 자신들을 맞춰 보느라고 아직도 정신이 없었다·

자기들끼리 저건 누구고 저건 누구라면서 까르르 웃기도 했다·

잠시 후 여종매가 두루마리를 말아 다시 대나무 통에 넣었다·

그리고 안여여에게 말했다·

“행낭은 한 명당 하나로 이미 정했고 한번 정한 원칙은 중도에 바꿀 수 없다·”

안여여의 얼굴이 대번에 시무룩해졌다·

그림 속의 자신들과 사형제들을 찾아 비교하며 잠깐이나마 웃음꽃을 피우던 어린 제자들도 덩달아 풀이 죽었다·

“하지만 이 그림은 사천까지 갈 것이니라·”

여종매는 대나무 통을 섭부용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첫 번째 표마차에 실어라· 성도의 장원으로 가져가 사조전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둘 것인즉·”

“와아아!”

별것도 아닌 일에 갑자기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건 나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라 살짝 어리둥절했다·

조금 전까지 시무룩했던 안여여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폈다·

그녀가 나를 돌아보며 감사하다는 듯 포권을 쥐어 보였다·

안여여의 옆에 있던 섭부용도 나를 향해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그 사이 여종매가 도화곡의 제자들을 향해 사자후를 내질렀다·

“지금부터 정든 도화곡을 떠나 태사조님의 고향이 있는 사천성 성도로 향할 것이다· 도화곡의 제자들은 모두 열을 맞추어라!”

“존명!”

우렁찬 외침과 함께 무너졌던 행렬이 언제 그랬냐 싶게 다시 맞추어 졌다·

그리고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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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incarnated Escort Warrior

Reincarnated Escort Warrior

Score 8
Status: Ongoing Released: 2022
My dream is to become an escort warrior that rides on a cool horse and transports goods. But I’ve got a limp leg and I’m unable to learn decent martial arts. I’ve lived as a porter working odd jobs for the entirety of my life. Until I died because of the mountain bandits that I met during an escort mission. But… ‘I became the fourth young master, Lee Jungryong?!’ When I died and woke up, I was reborn as the Heavenly Dragon Escort Agency’s infamous good-for-nothing youngest son. The weakling, Lee Jungryong, will become the best escort warrior in thi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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