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 마침내 남궁세가로(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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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관은 내 활을 가져오시게·”
“존명!”
남궁세가의 총관 좌고학이 누각 아래에 대기 중인 무사들 중 한 명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무사가 어디론가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때 남궁소소의 다급한 전음이 들려왔다·
[안 된다고 하세요·]
[나도 내키지 않소·]
[양조창 선배는 귀하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고수예요· 연못 건너편에 천오백 명의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고요· 두고두고 망신살이 뻗칠 거예요·]
[조금 전엔 나를 골탕 먹이더니·]
[그래서 하겠다고요?]
[방법이 없잖소·]
[찾아봐야죠· 표행을 할 때는 어떤 곤란한 상황이 닥쳐도 온갖 잔꾀들을 잘만 짜내더니·]
[내가 망신당하는 게 그리 걱정되시오?]
[귀하가 망신당하는 걸로만 끝나지 않을 것 같으니까 그렇죠· 만약 비무를 해서 진다면 다시는 나를 볼 수 없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좋아요?]
[그건 어째서 그렇소?]
[한 시진 전 양가장주께서 아버지와 할아버지께 나와 양조창 선배의 혼인 얘기를 정식으로 꺼내셨어요· 그 바람에 이야기가 길어져서 지금까지 함께 있었던 것이고요·]
[···!]
[강호인들은 무림세가라면 부족한 것이 없는 줄 알죠·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예요· 가진 게 많으면 많을수록 오히려 더 많은 걸 가지고 싶어 해요·]
형제가 없는 양조창은 훗날 창왕의 뒤를 이어 신창양가의 가주가 될 것이 확실했다·
거기에 모삼풍의 제자까지 되었으니 그의 앞날은 그야말로 서광으로 가득 찼다·
남궁소소가 만약 양조창의 아내가 된다면 신창양가의 가모(家母)가 되어 평생을 지고한 신분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에 반해 나는 사남 중 막내인 데다 천출이기까지 해서 현재로선 누가 보아도 천룡표국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향시와 회시에서 장원급제한 전력이 있으나 이건 벼슬을 하지 않는다면 그냥 장식용 이력밖에 되질 않는다·
만약 나와의 비무에서 양조창이 이기기라도 한다면?
남궁세가에서 남궁소소와 양조창을 짝지어 주기로 결정해 버릴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때부터는 아무리 자유분방한 무림인이라고 해도 함부로 다른 남자를 만나고 다닐 수가 없다·
반대로 내가 이기면?
곽석산과 손지백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와 남궁소소를 짝지어주려 할 것이다·
이번엔 이종산까지 적극적으로 가세할 것이 확실했다·
어쩌면 양가장처럼 정식으로 혼인 얘기를 꺼낼 수도 있다·
십중팔구 그럴 것이다·
‘그리곤 난감해 어쩔 줄 모르는 남궁유룡과 남궁중백을 보며 현실을 직시하게 되겠지·’
나는 마지막으로 남궁소소에게 물었다·
[내가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소?]
[내가 양조창 선배와 혼인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먼저 물었잖소·]
[그래서 대답했잖아요·]
[질문을 한 것 같은데·]
[그게 대답이었어요·]
[···?]
그때 활이 도착했다·
남궁세가의 총관 좌고학이 커다란 활과 전통을 남궁유룡에게 공손히 전달해 주었다·
궁간도 화살도 거무튀튀한 가운데 금속성의 질감이 느껴지는 것이 아무래도 철궁에 철전인 듯했다·
남궁유룡이 시위를 잡아당기자 그 큰 철궁이 대나무로 만든 아이들 장난감 활처럼 휘었다·
핑!
폭발적으로 날아간 철전은 연못 한가운데 있는 거대한 두꺼비 바위의 머리에 부딪혀 새파란 불똥을 튀겼다·
한데 연못 주변 어디에도 철전이 나가떨어지면서 생기는 파문이 일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안력을 돋우어 보았다·
놀랍게도 철전은 단단한 화강암을 무려 두 뼘이나 뚫고 들어간 후 꼬리 일부분만 남겨 둔 상태였다·
화살촉에는 미늘이 역방향으로 달려 있으니 아마 뽑는데도 꽤 애를 먹을 것이다·
한 박자 늦게 상황을 파악한 연못 건너편의 방문객들에게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경지에 나도 어안이 벙벙했다·
무공이 극상의 경지에 이르면 나무 작대기에도 강기를 주입해 검처럼 쓸 수 있다더니만·
대체 내공이 어느 정도여야 화살을 저렇게 바위에 박아 넣을 수 있는 걸까?
“수단과 방법은 따지지 않겠다· 저 화살을 뽑아 내게 가져오는 사람에게 같은 무게의 황금과 패왕궁(顯王弓)을 하사하겠노라!”
“와아아아!”
연못 건너편에서 또다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자신들끼리만 교분을 나누느라 무료하던 차에 기가 막힌 구경거리가 생긴 탓이다·
나는 수단과 방법을 따지지 않겠다는 말에 집중했다·
먼저 뽑아오든 남이 뽑은 것을 가로채든 결국 최종적으로 손에 쥐여 주는 사람에게 황금과 저 철궁을 준다는 뜻이다·
철궁은 잘 모르겠고·
‘철전 한 대면 한 스무 냥쯤 나가려나?’
그때부터 나와 양조창과 남궁소소는 치열하게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양조창이 가장 먼저 움직일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그는 가만히 있었다·
우리 셋 중 나이가 가장 많으니 선수 정도는 양보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나는 누각에서 훌쩍 뛰어내린 후 연못가에 딱 한 척 놓여 있는 쪽배를 향해 질풍처럼 달려갔다·
이어 달려가는 기세 그대로 쭉 밀며 올라탄 다음 삿대를 척척 찍어갔다·
이 모든 동작이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졌다·
연못에는 연잎과 연대가 여러 해 동안 쌓여서 생긴 부유물 위로 크고 튼튼한 새 연잎이 활짝 피어 있었다·
지난해 핀 연잎과 연대가 아직도 썩지 않은 채 떠다니는 것도 그렇고 이른 봄에 이렇게까지 크게 잎이 열린 걸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연(達)이 아닌 듯했다·
쪽배는 그런 연잎 부유물들 사이를 잘도 미끄러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무언가 첨벙첨벙하면서 옆을 빠르게 지나갔다·
홱 돌아보니 장검을 등에 멘 남궁소소가 놀랍게도 상승의 경공을 펼치며 연잎 위를 달려가고 있었다·
약간의 차이를 두고 장창을 든 양조창이 마찬가지로 경공을 펼치며 쌩 하니 지나갔고·
두 사람의 표표한 신법에 연못 건너편의 방문객들로부터 또다시 우뢰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한심한 상황이지만 대여섯 장 안에서의 유령 같은 움직임이라면 모를까
나의 경신공은 아직 연잎 위를 달릴 정도의 수준이 못 되었다·
대신 이제 칠십 년에 육박하는 가공할 공력이 있었다·
척! 척! 척! 척!
예닐곱 번 정도 미친 듯이 삿대를 찍어대자 배는 어느새 연못 중앙의 바위 앞까지 미끄러져 갔다·
배가 닿기도 전에 신법을 펼쳐 훌쩍 뛰어내렸다·
두꺼비의 등 위에서는 이미 앞서 도착한 양조창과 남궁소소가 화살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신나게 싸우는 중이었다·
꽝! 꽝! 꽝!
장창과 검이 부딪힐 때마다 굉음과 함께 묵직한 공기의 파장이 전해졌다·
남궁소소가 검초에 내공을 아낌없이 담아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남궁세옥이 작심하고 똑같은 검법을 펼쳤다면 아마도 천둥번개 치는 소리가 났을 것이다·
이는 남궁세가 가문비전의 검법들이 지니는 특징이었다·
현란한 데다 위력적이기까지 한 남궁소소의 검법에 양조창도 감히 경시할 생각을 못 하고 위력적이면서 변화무쌍한 창술로 응수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마음에 두고 있는 남궁소소를 상대로 전력을 다해 싸우는 게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의 입장에선 남궁소소에게 화살을 양보해도 크게 나쁘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그가 남궁소소보다 약해서 화살을 빼앗겼다고 생각하진 않을 테니까·
반면 남궁소소는 양조창을 꺾어 어떻게 해서라도 그를 돋보이지 않도록 할 생각에 최선을 다했다·
나는 두 사람을 홱 지나쳐 화살이 있는 곳으로 질풍처럼 달려갔다·
그때였다·
꽝!
굉음과 함께 남궁소소의 칼이 손과 함께 바깥으로 크게 튕겨 나갔다·
동시에 한줄기 강맹한 기운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양조창이 갑자기 공격의 대상을 바꾼 것이다·
한데 조금 전 남궁소소를 상대할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기세는 산과 같고 빠르기는 번개와도 같았다· 거기에 엄청난 내공이 실려 있었다·
후웅!
훅 들어오는 창날에 시퍼런 기운이 소용돌이쳤다·
귀영무의 보법을 펼쳐 가까스로 피했는데도 불구하고 옆구리가 서늘할 정도였다·
놀랄 사이도 없이 이번엔 창날이 바닥으로 처박히더니 돌연 반대쪽 창끝이 장봉이 되어 정수리 위로 뚝 떨어졌다·
그 기세가 가히 산이라도 쪼갤 것 같았다·
‘이 새끼가 진짜로 죽이려고 드네!’
집중만 하면 자동으로 발동되는 이능력이 없었더라면 귀영무의 보법이 없었더라면 나는 머리통이 박살 나서 정말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쾅!
아슬아슬하게 빗나간 창간이 바닥을 쳤다·
굉음과 함께 단단한 화강암이 대포에라도 맞은 것처럼 떨어져 나갔다·
화들짝 놀란 나는 더는 화살에 다가가지 못하고 세 걸음을 후다닥 물러났다·
그러자 연못 건너편의 방문객들에게서 다시 한번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내가 보인 건 이리저리 미꾸라지처럼 피하고 도망친 것밖에 없었다·
그러니 저 함성은 양조창의 놀라운 창술에 대한 감탄과 찬사였다·
끊이지 않는 방문객들의 함성 속에서 내가 말했다·
“이거 손속이 너무 살벌한 것 아니오?”
“겁나면 포기하는 게 어떻겠나?”
“초면에 반말도 하시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닐 텐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듣자 하니 소소와 꽤 친하다지?”
나는 삼각형 모양으로 대치 중인 남궁소소를 힐끗 바라본 후 대답했다·
“아마도·”
“소소의 얼굴을 봐서라도 마지막 체면을 챙길 기회 정도는 주겠네· 이쯤에서 조용히 물러나는 게 어떤가?”
“싫다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창으로 꿰지는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하지만 물속에 거꾸로 처박히는 망신까지는 피할 수 없을 것이네·”
“화살은 관심도 없군·”
“어차피 내가 뽑을 테니까·”
그때쯤엔 방문객들의 함성이 완전히 잦아든 상태였다·
나는 그때까지도 한 손에 검을 들고 서 있었다·
“기어이 벌주를 마시겠다면야·”
거침없는 보법과 함께 양조창의 장창이 다시 날아들었다·
그때였다·
별안간 두꺼비 바위 아래의 연못 속으로부터 시커먼 그림자들이 벼락처럼 쭈욱 솟구쳤다·
그리고는 체공 상태에서 무언가를 힘차게 뿌려댔다·
“이건 또 뭐야!”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도 양조창도 남궁소소도 싸움을 멈춘 채 각자의 병기로 허공을 급박하게 휘저었다·
따따다다당!
새파란 불꽃을 튀기며 바닥으로 떨어진 것들은 불가사리 모양의 날붙이들이었다·
우리가 암기를 쳐내는 틈을 타 바위 위로 착지한 놈들은 검은 복면을 뒤집어쓴 아홉 명의 괴인이었다·
“뭐 하는 새끼들이야!”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
놈들은 놀랄 시간마저도 주지 않은 채 폭이 좁고 기다란 칼을 뽑아 거침없이 공격해 왔다·
‘왜도!’
까가가강! 깡깡!
격렬한 격돌이 숨 쉴 틈 없이 몰아쳤다·
양조창과 내게는 각각 두 명씩 붙었고 남궁소소에게는 무려 다섯 명이 붙었다·
그제야 나는 이들이 진짜로 노리는 게 남궁소소라는 걸 알아차렸다·
다섯 자루의 칼은 일찍이 본 적이 없을 만큼 가공할 속도로 남궁소소를 향해 날아들었다·
‘고수들이다!’
이대로 두면 남궁소소는 순식간에 난자당해 죽는다·
나는 그녀의 왼쪽을 찔러가는 두 놈을 향해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속도로 검을 뻗어갔다·
그 바람에 내 등이 다른 두 명의 자객에게 그대로 노출되었지만 상관없었다·
용린신갑이 한번은 막아 줄 테니까·
물론 놈들이 정확하게 등을 노려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갑옷을 눈치챈 놈들이 다시 목을 베어버리기 전에 피하거나 반격도 해야 하고·
푹! 쓰윽!
한 놈의 목에 검을 박고 그걸 빼면서 또 다른 놈의 가슴을 베어 버렸다·
이능력을 발동하고서도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펼친 천무십검의 이초식이었다·
덕분에 남궁소소도 오른쪽에서 날아드는 세 자루의 검을 가까스로 피하고 쳐내는 데 성공했다·
만약 내가 두 놈을 처리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지금쯤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졌을 것이다·
한데 어쩐지 내 등 쪽에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질풍처럼 돌아서며 일단 반격의 자세부터 취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한 놈은 이미 고꾸라져 있고 다른 한 놈은 이제 막 고꾸라지는 중이었다·
놈들의 등에는 철전이 한 자루씩 박혀 있었다·
급히 금하루 쪽을 보니 남궁유룡이 철궁을 든 채 오연하게 서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천둥 같은 대갈일성을 내질렀다·
“모두 멈춰라!”
순간 사방에서 연잎들을 밟으며 두꺼비 바위를 향해 바람처럼 달려오던 남궁세가의 용 같고 범 같은 고수 수십 명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연못이 생각보다 깊지 않았는지 무사들은 가슴까지 잠긴 상태로 물속에서 대기했다·
남궁유룡의 사자후가 얼마나 우렁찼던지 자객들도 공격을 뚝 그치며 얼떨결에 대치 상태가 이루어졌다·
천여 명의 방문객들이 지켜보고 있는 연못 건너편에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모두 지금의 상황을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이다·
자객들이 누구인지 왜 남궁소소를 노린 건지 갑자기 어떻게 물속에서 튀어나올 수 있었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후의 상황은 명료했다·
양조창이 두 명의 자객들을 상대로 제 한 몸 돌보는데 급급한 사이 나는 등을 적들에게 내주면서까지 먼저 남궁소소부터 구하려 했고 실제로도 구했다·
그리고 그녀의 할아버지인 남궁유룡이 가공할 철전 두 대를 벼락처럼 쏘아 내 등을 지켜 주었고·
덕분에 나는 지금 남궁소소의 앞을 막아선 채 세 명의 적들과 대치 중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양조창이 홀로 자신을 공격하던 두 명의 적과 대치 중이었다·
한데 남궁유룡은 왜 갑자기 돕기 위해 달려오는 무사들을 멈추게 한 것일까?
이는 우리 세 명에게 내리는 무언의 명령이었다·
갑자기 난입한 저 자객들을 상대로 이제부터는 비무가 아닌 진짜 싸움을 해보라는·
그때 남궁소소의 발아래로 붉은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게 보였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외쳤다·
“소저!”
“호들갑 떨지 말아요·”
“어딜 얼마나 다친 거요?”
“어깨를 조금 찔렸어요·”
“버틸 수 있겠소?”
“버티는 건 문제가 아닌데· 하필 오른쪽 어깨를 찔려서 더는 도와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 큰 도움은 안 됐소·”
“말할 때 입을 너무 크게 벌리지 말아 주세요·”
“그건 왜?”
“바람이 이쪽으로 불어서 부창화 냄새가 전부 내게로 와요·”
“이게 누구 때문인데·”
“미안해요·”
“대체 왜 그런 거요?”
“얄미워서 그랬어요·”
“내가 뭘 어쨌다고·”
“그걸 모르는 게 너무 얄미워서요·”
“아까부터 당최 뭔 소린지·”
“일단 목전의 문제부터 해결하죠·”
복면의 자객들이 갑자기 위치를 바꾸며 검진을 펼쳐왔다·
우리가 대화를 하는 동안 놈들도 전음으로 작전을 짠 모양이었다·
좀 전에 겪어본 자객들의 검술은 내가 정상적으로 싸워서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초전에 두 명을 쓰러뜨린 것은 놈들이 오직 남궁소소만을 목표로 한데다 내가 등을 포기하면서까지 불의의 기습을 가했기 때문이었다·
절정의 경지를 바라본다는 양조창 조차도 고작 두 명에게 발이 묶여버린 걸 보면 알 수 있다·
‘창과 검을 동시에 쓸 수 있을까?’
그런 걸 고민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반드시 무조건 해내야 한다·
나는 왼쪽 소맷자락에 숨겨둔 두 개의 청동빛 묵직한 바늘 즉 비격쌍뇌창 중 하나를 슬그머니 뽑아 아무도 모르게 아래로 툭 떨어뜨렸다
동시에 정신을 초집중하며 바늘을 조종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으며 출수하는 동작도 없는 이 암기의 위력을 마침내 실전에서 시험해 볼 때였다·
첫 번째 놈이 보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순간 바늘이 놈의 왼쪽 무릎을 뼈째 뚫고 지나갔다·
“헛!”
극통을 느낀 놈의 몸이 한순간 왼쪽으로 휘청거렸다·
미리부터 이능력을 발동하고 있던 나는 귀영무의 보법과 천무십검을 동시에 펼쳐갔다·
“죽엇!”
깡!
쒜애액!
격렬한 첫 합에 이은 섬전같은 살초!
첫 번째 놈의 목에서 핏물이 터지는 순간 바늘은 왼쪽 허공에서 날아들던 두 번째 놈의 심장을 뚫고 들어갔다·
나는 두 번째 놈의 흔들리는 동공을 보면서 일도양단의 기세로 옆구리를 베어 버렸다·
그때쯤엔 두 번째 놈의 등을 뚫고 나온 바늘이 상체를 착 가라앉히면서 다리를 베어오는 세 번째 놈의 왼쪽 눈에 꽂혔다·
깡!
검끝을 오른쪽 바닥에 힘차게 찍어 칼날을 막은 나는 좌장으로 놈의 천령개 즉 정수리를 내리쳤다·
퍽!
막강한 장력을 감당하지 못한 놈은 그대로 단단한 화강암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그리고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좌장에 실린 암경에 뇌가 터져 버린 것이다·
‘이 이게 무슨!’
내가 하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남궁소소는 숫제 유령이라도 본 것같은 얼굴이었다·
푹!
섬뜩한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양조창이 이미 한 명을 쓰러뜨린 후 마지막으로 남은 한 명의 어깨를 창으로 꿰는 중이었다·
“커헉!”
짧은 비명을 끝으로 마지막 자객이 무릎을 꿇었다·
그와 동시에 연못 건너편으로부터 오늘 들어본 것중 가장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복면인들을 물리치는데 남궁소소나 양조창이 딱히 한 게 없으니 저 함성은 분명 나를 향한 환호성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