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 백 명의 호송단(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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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중산은 과연 울창한 숲에 복잡한 능선을 거느리고 있었다·
특히 크고 작은 바위들이 산면마다 가득해서 매복지로서는 최고였다·
그러나 산을 넘는 동안 사람의 그림자라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설인탁의 예상대로라면 놈들은 어딘가에 숨어서 우릴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내게 할 말이 있지 않나?”
황보중악이 내게 물었다·
전낭을 훔쳐 간 걸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번 호송에 참여한 후기지수들 중에는 호리독사에게 전낭을 도둑맞은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다·
“그렇지 않아도 호리독사가 당사자들을 찾아 뵙고 사과를 했습니다·”
“조장인 내게도 해야 하지 않을까?”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두소부 양조광 당군백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남궁소소는 순번에 따라 가장 뒤쪽에서 척후를 살피며 오느라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두소부가 참견할 생각에 말을 조금 빨리 몰아 앞으로 오려고 했다·
나는 조용히 한 손을 뻗어 그를 제지했다·
이어 황보중악을 향해 정중하게 포권지레를 올리며 말했다·
“선배님 말씀이 맞습니다· 불문곡직하고 저의 객원표사가 용봉지회의 무인들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해 사과드리겠습니다·”
“공령신투의 제자라지?”
“그런 것으로 압니다·”
“도둑을 표사로 고용하다니 이걸 기발하다고 해야 하나 어처구니없다고 해야 하나·”
“앞으론 불미스러운 일 없을 겁니다·”
내가 순순히 사과를 하자 황보중악도 더는 시비를 걸지 못했다·
오히려 나의 기를 꺾어 놓았다는 생각에선지 의기양양한 기색까지 보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앞으로 치고 나가며 말했다·
“사과는 받아두도록 하지·”
그때부턴 황보중악이 별동대를 이끄는 모양새가 되었다·
나는 주장이 누구인지 하는 것 따위에는 하등의 관심이 없었으므로 그대로 놔두었다·
나의 관심은 온통 어딘가에서 지켜볼지도 모를 적들에게 쏠려 있었다·
황보중악 역시도 바보는 아니어서 가는 동안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
크고 작은 능선을 다섯 개쯤 넘었을 때였다·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자 우마차가 올라올 수 있을 정도로 넒은 길이 보였다·
화전(火個)도 없는데 왜 이렇게 넓은 길이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천중산을 거의 넘어 반대편 평지가 얼마 남지 않은 것만은 분명했다·
어느 순간 조그만 계곡이 나타났다· 겨울 가뭄에 바짝 마른 계곡은 가까스로 한줄기 맑은 물줄기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잠시 쉬었다 간다·”
황보중악이 한 말이었다·
그러더니 말에서 훌쩍 뛰어 내려서는 계곡으로 다가가 물을 손으로 떠 마셨다·
황보중악을 따르는 후기지수들도 보란 듯이 같은 행동을 했다·
잠시 후에는 말까지 끌어다 물을 먹이기 시작했다·
두소부 양조광 당군백 등이 나를 바라보았다· 어찌할지를 묻는 것이다·
그들은 사마옥이 내게 별동대를 이끌라고 지시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내가 쉬라고 하지 않으면 쉬어선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잠시 계곡을 살피다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황보중악에게 말했다·
“마시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여기 와 본 적 있나?”
“없습니다·”
“나는 한번 와 본 적 있지·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해지기 반 시진 전에는 칠량협곡의 출구에 도착할 테니까·”
“그때도 이 계곡물을 마셨습니까?”
“그건 왜 묻는 거지?”
“물고기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아서요· 본래 가뭄이 든 겨울 산중 계곡엔 소(招)마다 작은 물고기들이 우글거리는 법이거든요·”
“뭣!”
황보중악이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그를 따라 물을 벌컥벌컥 마시던 후기지수들이 후다닥 물러났다·
물을 쭉쭉 빨아 마시던 말들도 앞다투어 뒤로 잡아당겼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계곡의 위쪽과 아래쪽의 작은 소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어떤 건 황소가 한 마리 통째로 잠기고도 남을 만큼 큰 탕이었지만 역시 물고기는 한 마리도 없었다·
“혹시 적들이 독을 풀었을까요?”
남궁소소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독이라는 말에 황보중악과 그를 따르는 후기지수들의 얼굴이 노래졌다·
“그건 아닌 것 같소·”
“어째서요?”
“독을 풀었다면 물고기 사체가 사방에 가득했을 것이오· 게다가 본대가 아직 오지도 않았고 오더라도 이 작은 개울에서 백여 기의 인마가 대기하며 물을 마실 거라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오·”
“하면 왜 물고기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거죠?”
“원래부터 물고기가 살 수 없는 물인 것 같소만·”
“세상에 그런 계곡도 있나요?”
“약수가 있으면 독수도 있지 않겠소?”
그때 당군백이 말에서 훌쩍 내려 물가로 갔다·
이어 품속에서 은잔을 꺼내 물을 약간 떠서는 잠시 변색을 살폈다·
그러자 은잔이 꺼멓게 얼룩이 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화들짝 놀랐다·
특히 황보중악과 그를 따르는 후기지수들은 아연실색했다·
이쯤 되자 나도 표정이 굳었다·
“군백 무슨 일이야?”
두소부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군백은 대답은 않고 갑자기 허리춤에 차고 있던 협봉검을 뽑았다·
이어 물이 고여 있는 소로 다가가 바닥을 칼끝으로 휘저었다·
그러자 노란 가루들이 뿌옇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저게 다 뭐지?”
“사황(死黃) 이에요·”
“사황?”
“맹독성 광물의 일종이에요· 오래된 광산 아래의 개천에서 가끔 발견되는데 왜 이런 곳에 사황이 있는지 모르겠군요·”
“천중산 기슭에 한때 석탄을 캐던 광산이 있었는데 수맥을 건드리는 바람에 못쓰게 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 폐광에서 흘러나온 물이 섞인 듯합니다·”
황보중악을 따르는 후기지수들 중 한 명이 불쑥 말했다·
눈치를 보니 근방의 지리를 조금 아는 것 같았다·
어쩐지 길이 넓게 닦여 있더라니·
“독성은 어느정도나 되지?”
“중독되면 처음엔 머리카락이 빠지다가 점차 눈이 멀고 몸에서 핏기가 사라지면서 끝내 목숨을 잃게 되죠·”
“그 정도야?”
“최소한 석 달 정도는 장복을 했을 때 얘기예요· 그러나 장복하면 반드시 중독되고 한번 중독되면 백약이 무효라 맹독으로 분류되고요·”
“물을 마신 사람들은?”
“그 정도 양으로는 별일 없을 거예요· 하지만 물속에서 일 년 내내 사는 물고기는 다르겠죠·”
황보중악과 그를 따르는 후기지수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몇몇 후기지수들은 가죽으로 만든 물통에 물까지 채웠다가 서둘러 버렸다·
남궁소소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런 건 어떻게 알았어요?”
“경험 많은 표사들에게 배웠소· 산중의 물이라고 모두 마실 수 있는 것이 아니니 항상 물고기가 있는지 물고기가 살 수 없을 만큼 좁은 상류라면 낙엽을 들추어 물벼룩이라도 사는지 살피라고·”
“총군사께서 표사들을 길잡이로 고용한 이유를 조금은 알겠군요· 덕분에 좋은 공부 했어요·”
“무슨 공부까지나·”
“이제 어떡하죠?”
“다 마셨으면 가야지·”
“나는 말을 몰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두소부 양조광 당군백 남궁소소가 뒤를 따랐다·”
그때까지도 계곡 가장자리에 서서 천국과 지옥을 오가던 황보중악과 후기지수들은 그야말로 벌레 씹은 얼굴이었다·
남궁소소가 악도광을 지나치며 툭 내뱉었다·
“다음부턴 아무 물이나 마시지 마라· 그러다 대머리 되는 수가 있다·”
***
해가 한 뼘 정도 남았을 때 칠량협곡의 출구에 도착했다·
반대편에서 볼 때야 출구지만 이쪽에서 보면 다시 입구다·
협곡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완만한 경사를 이룬 산기슭은 수백 명이 한꺼번에 야영을 해도 될 만큼 넓었다·
“남자들은 전부 흩어져 땔감을 모아 오십시오· 백여 명이 추위를 견디려면 모닥불을 열 개는 피워야 할 겁니다· 해가 반 뼘 정도 남으면 다른 더 중요한 일들이 있으니 무조건 이 자리에 집결하시고요·”
“너는 무얼 할 거지?”
황보중악이었다· 그가 정확히 묻고 싶은 건 ‘너는 여자들과 무얼 할 거지?’였을 것이다·
여자들 속에는 당연히 그가 좋아하는 남궁소소가 있었고·
“개울 가장자리에 물이 많이 고여 있는 소를 찾아 새 물이 유입되지 않도록 흙을 퍼다 웅덩이를 만들 겁니다·”
“그건 왜?”
질문은 황보중악이 했지만 모두가 잔뜩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두소부 일행마저도 땔감을 구하러 가려다 말고 멈춰 서서는 나를 돌아보았다·
“보시다시피 가뭄으로 협곡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개울 수준입니다· 밤에 적들이 상류에서 독이라도 풀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해서 미리 웅덩이를 만들어 놓는 것이지요· 하면 내일 아침까지도 안심하고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말을 했을 때 사람들은 이미 표정이 굳어 버렸다·
“사람도 사람이지만 말이 더 문제입니다· 사람이 한 되의 물을 마실 때 말은 한 말의 물을 마십니다· 사람은 말린 육포나 과일 같은 건량으로도 견디지만 사람을 태우고 수백 리를 가야 하는 말은 조석으로 반드시 충분한 양의 콩을 물에 불리거나 걸쭉하게 삶아 주어야 합니다· 우린 그런 말이 백 필이나 되고요·”
사람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시선들은 전부 내게 박혀서 떠나질 않았다·
말은 않지만 다들 속으로 크게 감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무림인들은 많아야 십여 명 정도가 함께 이동을 한다·
설사 이렇게 대규모로 이동을 한다고 해도 적들에게 쫓기는 상황인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반면 표국의 표행단은 대규모로 이동하는 일이 많고 거의 언제나 호시탐탐 표물을 노리는 자들이 있다·
비적들이 가장 잘 하는 수법 중에 하나가 식수로 쓸 개울에 독을 풀거나 인분 등으로 오염시켜 설사를 유발하는 것이다·
말과 사람들이 온종일 폭풍 설사를 하며 가다 보면 저녁쯤 되어 축 늘어지는 것이 털어먹기 딱 좋은 상태가 된다·
한참 만에야 두소부가 입을 열었다·
“아까 천중산에서의 일로 적들이 개울에 독을 탈 수도 있다는 우려는 나도 했었네· 하지만 고작 물통에 물이나 채우고 말에게도 서둘러 물을 마시게 해야겠다고만 생각했지 그런 수가 있는 줄은 몰랐군·”
양조광도 덧붙였다·
“역시 총군사님이시군요· 우리 중 가장 어린 정룡에게 별동대의 수장 자리를 맡겼을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셨던 겁니다·”
다분히 황보중악과 그를 따르는 후기지수들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었다·
당군백은 가만히 고개를 끄떡였고 남궁소소는 제가 칭찬을 받은 것도 아닌데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두소부가 황보중악을 돌아보며 말했다·
“웅덩이 만드는 건 여자들에게 맡기고 우린 땔감을 구하러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황보중악은 두말 않고 조용히 따라나섰다·
다들 고수들이다 보니 모든 면에서 보통 사람들의 움직임과는 달랐다·
남자들은 숲에서 쓰러진 나무를 통째로 끌고 왔는데 한 식경쯤 지나자 땔감이 가득 쌓였다·
나와 여자들도 멀지 않은 개울가에서 크고 넓은 웅덩이를 찾아 물막이 작업을 끝냈다·
흙탕물이 조금 번지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라앉을 테니 큰 문제는 없었다·
어느새 해가 반 뼘 정도 남았다· 그때부터 나는 직접 주변 지형을 살피며 매복을 점검했다·
이어 적이 기습을 해 올 만한 길목들을 찾아 요소요소에 경계병을 심어 두었다·
말이 좋아 경계병이지 실제로는 매복조였다·
이렇게 해두었다가 본대가 도착하면 인원을 보강하거나 교대를 해주어야 한다·
그러면 밝을 때부터 야영지 주변 수백 장을 우리가 먼저 장악한 채로 밤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마침내 모든 준비를 끝마쳤을 때 해가 서산을 꼴깍 넘어갔다·
때를 맞춰 저만치 보이는 협곡의 출구로부터 본대의 선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훌륭하군·”
“과찬이십니다·”
“솔직히 물웅덩이까지는 기대를 안 했네·”
“선배 표사들께 배웠습니다·”
“매복조를 심은 위치도 모두 자네의 생각이었다지? 솜씨가 예사롭지 않더군· 이건 선배 표사들에게 몇 마디 들은 정도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네만·”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을 잘도 피해가는군·”
“딱히 말씀드릴 게 없다 보니·”
“다그치려는 게 아닐세· 신통해서 물어본 것일 뿐· 어쨌든 수고했네·”
“감사합니다·”
설인탁과 함께 야영지 주변 지형을 돌아보고 온 사마옥이 내게 해준 말들이었다·
설인탁도 옆에서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애초 나를 선발대로 보냈던 사람에게 칭찬을 들으니 그제야 임무를 제대로 완수했다는 게 실감 났다·
두 사람이 돌아가자 나는 남궁소소와 다시 만난 독사를 데리고 저녁을 준비했다·
혈검대는 일곱 개의 조로 나뉘었고 용봉지회의 후기지수들은 또 그들끼리 모여 식사를 준비했다·
여기에 유성표국과 용문표국의 표사들도 각자가 모닥불을 피우니 야영장 주변은 어느새 군병들의 작은 주둔지를 방불케 했다·
“또 요리를 하려고요?”
돌덩어리 몇 개를 붙여 만든 화덕에 특수 제작한 쇠솥을 척 걸자 남궁소소가 한 말이었다·
“무슨 요리씩이나·”
“다들 육포에 건량으로 간단하게 때우는데 우리만 저녁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지어 먹으니까 하는 말이죠· 그것도 매일 조금씩 다른 밥을·”
“난 육포 쪼가리 같은 거 먹고는 못 간다고 했잖소·”
“이상하게 이런 건 또 까다롭단 말이야·”
“그래서 싫소?”
“그럴 리가요· 천룡표국의 객원표사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유일한 시간인 걸요· 오늘은 또 무슨 밥이예요?”
“오곡일포칠채보양식이오·”
“듣기만 해도 살이 찔 것 같네요·”
“바싹 말린 오곡에 소고기 육포와 일곱 가지 건채를 잘게 잘라 넣어 만든 특식이오· 물론 물만 넣고 끓이면 끝이고·”
호리독사가 물을 길어다 쇠솥에 채우자 뜰 놈은 뜨고 가라앉을 놈은 가라앉았다·
가라앉는 건 오곡과 육포 덩어리고 뜨는 건 건채 조각들이었다·
그걸 보면서 더 넣을 것들과 그만 넣을 것들의 비율을 조절했다·
마지막으로 광목으로 만든 작은 포대에서 붉은 대추를 한 줌 집어 쇠솥에 던져 넣었다·
“대추는 또 왜요?”
“오곡밥에 대추를 보태면 영지초보다 낫다고 했소·”
“차라리 육포나 좀 더 넣지·”
“염려 마시오· 육포와 건채가 칠 대 삼이오·”
“왜요?”
“우린 아무리 몸에 좋아도 맛이 없으면 못 먹소·”
“잘 하셨어요·”
모닥불의 화력이 좋더라니 잠깐 사이에 솥의 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그러자 맛있는 냄새가 야영지 전역으로 퍼져갔다·
며칠째 반복된 상황에 여기저기서 이쪽으로 고개를 쭉 빼고 군침을 흘렸다·
누군 딱딱한 건량으로 끼니를 때우는데 한쪽에선 따뜻한 밥을 지어 먹고 있으니 회가 동할밖에·
밥이 익기를 기다리며 나는 남궁소소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나저나 우리가 호송하고 있는 물건 말이오·”
“뭔지 알아냈어요?”
“내가 지금 그걸 물어보려고 했소·”
“난 또 뭐라도 알아낸 줄 알았네·”
“역시 소저도 모르는구려·”
“짐작 가는 거라도 없어요?”
“내가 또 지금 그걸 물어보려고 했는데·”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한때 용봉지회의 후기지수였고 지금도 맹도이긴 하니 나보단 나을 거 아니오·”
“이렇게 꽁꽁 숨길 정도로 중요한 물건을 고작 용봉지회의 후기지수였던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두소부 선배도 전혀 모르는 눈치더라고요·”
“목적지가 어딘지는 아시오?”
“이번엔 내가 그걸 막 물어보려던 참이었는데·”
“두 분 궁합이 찰떡 같습니다·”
불쑥 끼어든 사람은 호리독사였다·
남궁소소가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자 호리독사는 얼른 화덕에 장작을 집어넣으며 딴청을 피웠다·
내가 이번엔 호리독사에게 물었다·
“총군사님께서는 왜 귀하를 남아 있으라고 한 거요?”
“절 더러 물건을 하나 훔쳐보라고 하더라고요·”
“무슨 물건을?”
“지금 호송하고 있는 물건 말입니다·”
“그걸 왜?”
“빈틈이 있는지 점검하려는 것이겠지요·”
짐작이 간다· 호리독사로 하여금 물건을 훔치라고 해놓고도 자신들은 최선을 다해 지킬 것이다·
그러다 호리독사가 훔치기라도 하면 취약점을 보강하고·
설사 훔치지 못하더라도 그가 접근해온 방향과 방식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키는 입장에서는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무려 공령신투의 제자가 아닌가·
호리독사를 이렇게 깨알같이 써먹다니 과연 무림맹의 총군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이 무엇인지는 아시오?”
“당연히 모르지요·”
“어디에 있는지는?”
“그것도 모르고요·”
“물건의 위치를 찾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말씀이로군·”
“그런 것 같습니다·”
“비록 돈을 받고 내게 고용된 처지지만 귀찮다고 생각 말고 최선을 다해주기 바라오· 그래야 나도 낯이 서질 않겠소?”
“염려 마십시오· 반드시 훔치고 말 겁니다·”
“고맙소·”
“성공하면 저는 곤장을 전부 면제해 주겠다고 하셨거든요·”
“뭐요!”
“뭐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