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 명표를 만나다(2) >
———————–
나는 일단 호리독사를 돌아보며 물었다·
“귀하는 왜 여기 있는 거요?”
“갈 데가 없습니다·”
“삼룡채로 가지 않고?”
“가면 배신자로 몰려 죽을 겁니다·”
“음 그것도 그렇겠군·”
“공자님께서 그리 남 얘기하듯 말씀하시면 안 되지요· 제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나 때문에 이렇게 됐단 말이오?”
“공자님께서 구태여 삼룡채를 찾아가 채주의 손목을 끊어 놓는 바람에 놈들이 제가 불었다는 걸 전부 알게 됐잖습니까·”
“귀하가 수적놈들과 함께 나를 죽이러 오지 않았다면 내가 구태여 귀찮음을 무릅쓰고 삼룡채를 찾아가는 일도 없었겠지·”
“그 빚은 이미 충분히 갚은 걸로 압니다만·”
“길 안내에 대한 대가는 귀하의 목숨을 살려준 것이었소· 어디서 슬그머니 갖다 붙이기는· 내가 만만해 보이오?”
“그런 것이 아니고요·”
“아니면?”
“죄송합니다·”
“사람 봐 가면서 사기를 쳐야지·”
“무슨 사기까지나····”
“됐고· 이제 어떡할 거요?”
“일단 술이나 실컷 마시면서 생각 좀 해보려고요· 이 집 술맛이 정말 기가 멕힙니다· 저랑 한잔 하시겠습니까?”
척 보니 술뿐만이 아니라 안주까지 아주 한 상이다· 나로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왠지 비쌀 것 같은 요리들도 보이고·
“돈은 어디서 나서 이렇게 먹는 거요?”
“저는 사람들만 있으면 어딜 가도 돈 걱정은 없습니다·”
몸에 한 가지 기술이 있으면 허리춤에 만 관의 은 덩어리를 차고 있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하물며 그 기술이 남의 주머니에서 전낭을 빼 오는 것이라면?
나도 모르게 전낭이 들어있는 가슴을 손으로 한번 쓰윽 누를 뻔했다·
이 인간 앞에서는 특별히 조심해야겠다· 황제의 후궁도 훔쳐서 재미 본다는 공령신투의 제자가 아닌가·
“천룡표국의 객원표사로 일하는 동안에는 절대 그런 짓을 용납할 수 없소· 특히 내 앞에서는·”
“제 인생 제가 사는데 무슨 상관이십··· 예?”
“보수는 신입 객원표사의 공식 액수인 이틀에 은전 한 냥씩을 주겠소· 서호삼절 선배들께서도 처음엔 이렇게 시작했소·”
말을 해놓고도 나는 신입이라는 단어와 객원표사라는 단어를 함께 써도 말이 되는지 살짝 헷갈렸다·
“표사··· 라고요?”
“표사가 아니고 객원표사·”
“열심히 하겠습니다!”
“일단 여기서 대기하시오·”
“존명!”
‘한 명은 구했고·’
나는 다시 후기지수들이 있는 곳을 슬쩍 바라보았다·
아직도 모두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지난번에 내가 두소부에게 한 말이 있으니 부르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바라만 보는 모양이었다·
때마침 지나가는 점소이를 불러다 물었다·
“이 집에서 가장 좋은 술이 무엇이냐?”
“그야 물론 천삼대향주(天參大香酒)입죠· 고산준령에서 캔 산삼 한 뿌리를 주재료로 빚어 10년 이상 숙성한 작품인데 한번 맛을 보면 저승에 가서도 잊을 수가 없을 겁니다· 가격은 은전 석 냥이고요·”
“산삼주는 호불호가 강한데· 다른 건·”
“대곡장향주(大曲普香酒)도 좋습니다· 질 좋은 수수에 각종 과일을 넣고 빚은 다음 3년을 숙성시킨 것으로 은은한 과일 향이 끝내줍니다·”
“여자들이 마시는 술이군· 다른 건·”
“고정공주(古井貢酒)도 있습니다· 오래된 우물물을 길어 빚은 백주의 한 가지인데 숙취가 전혀 없지요· 가격은 은전 한 냥이고요·”
“싱거운 술들이 숙취가 없지· 다른 건·”
“얼마까지 생각하십니까?”
잔뜩 상기되었던 점소이의 목소리가 탁 풀렸다·
눈치 빠른 새끼· 나는 호리독사가 앉아 있던 탁자의 술을 턱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저건 얼마냐?”
“죽엽청주이고 한 병당 동전 열 냥입니다· 열 병 시키면 한 병 더 드리고요·”
“한 병은 저 탁자에 갖다 주고 나머지 열 병은 갖고 나를 따라와라·”
기다란 사각 탁자를 가운데 두고 마주 앉은 후기지수들은 모두 이십여 명 하나같이 비범한 기운에 당당한 태도가 느껴졌다·
내가 다가가자 두소부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이미 간 줄 알았습니다·”
“말씀 놓으시지요· 선배님·”
“그래도··· 될까?”
“이미 선배님으로 모시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그건 그렇지·
“실은 조금 전에서야 총군사님을 뵈었습니다·”
“이런 나흘이나 기다렸군·”
“지나는 길에 선배님들 얼굴들이 보여 인사나 드릴까 해서 잠시 들렀습니다· 마침 제가 잘 아는 사람도 있고요· 방해를 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럴 리가· 잘 왔네·”
그 사이 점소이는 두 사람당 한 병씩 술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이건 뭔가?”
“약소하지만 제 성의입니다·”
“뭘 이런 걸 다·”
그때 어디선가 작게 ‘죽엽청주네·’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궁소소의 바로 왼쪽에 앉아 있는 사내가 한 말이었다·
화려한 무복에 보옥이 요란하게 박힌 요대를 허리에 찼는데 척 봐도 부유한 집안의 자제인 것 같았다·
소리가 작다고 해서 못 들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분위기가 살짝 어색해지자 두소부가 모두에게 나를 소개했다·
이미 모두 알고 있었는지 놀라거나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형식적인 소개일 뿐이었다· 두소부의 소개가 끝난 후에는 한 명 한 명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전생에서는 볼 수도 없고 보았어도 감히 말도 못 붙여볼 정도의 쟁쟁한 문파와 세가의 이름들이 줄줄 흘러나왔다·
“한데 어딜 가는 길인가?”
“서호삼절 선배들을 만나 술이나 한잔 하려고 했더니만 벌써 떠나고 없군요· 해서 무림맹으로 돌아가 잠이나 잘까 하던 참입니다·”
“곧장 항주로 가는 게 아니고?”
“며칠 더 묵을 예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와 함께 마시지 않겠나?”
“괜히 제가 끼어 분위기를 망치면 쓰나요·”
“분위기를 망치다니·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모두 자네를 만나보고 싶어 했다네· 기대를 않고 있다가 이렇게 갑자기 만나니 더욱 반갑군·”
“그럼 잠깐만 앉았다 갈까요?”
양조광이 즉석에서 자신의 옆에다 빈 자리 하나를 만들어 주며 말했다·
“이리로 앉으라고·”
“고맙습니다·”
“그런데 나도 말을 놓아도 될까? 나이는 내가 세 살 많기는 한 것 같은데····”
“물론입니다· 선배님·”
금전을 이백 냥이나 벌게 해주었는데 당연히 되고 말고요·
양조광의 얼굴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이 인간이 이렇게 살가운 인간이었나?
원래 양조광의 왼쪽에는 두소부가 오른쪽에는 당군백이 앉아 있었다·
한데 어쩌다 보니 내가 양조광과 당군백 사이에 앉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바로 맞은 편에는 남궁소소가 앉아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입꼬리가 저절로 벌어졌다· 남궁소소도 말갛게 웃어 주었다·
지켜보고 있던 양조광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은 서로 친하겠군· 같은 항주에서 지내는 데다 소문에 듣자 하니 표행도 두 번이나 함께 했다지?”
“남궁소저께서 저를 두 번이나 도와주셨죠·”
잠깐만 이거 족보가 좀 이상해졌는데· 양조광이 나보다 세 살 많고 남궁소소가 두 살이 많으면 호칭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
남궁소소 한테도 선배라고 해야 하나?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은 오늘 이후로 볼 일이 없을 것이다·
나는 최대한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말했다·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소·”
“저도요·”
“언제 온 거요?”
“어젯밤 도착했어요·”
“개봉까지 무슨 일로?”
“원래는 개봉이 아니라 곡부(曲卓)로 갔어요· 거기서 마중 나온 사람들에게 호송해온 물건을 넘긴 후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른 거예요·”
“호송? 무얼 말이오·”
“다시는 호송하고 싶지 않은 거요·”
남궁소소는 갑자기 점소이가 놓고 간 죽엽청주를 병째 집어 들고는 벌컥벌컥 마셨다·
푸르스름한 실핏줄이 비치는 목이 오늘따라 삶은 만두피처럼 깨끗하고 투명해 보였다·
여기저기서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술잔을 들고 꺾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침울해진 것 같았다· 당군백이 옆에서 조용한 목소리로 설명해 주었다·
“지난번 항주에서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백발노성을 천룡표국에 맡기고 다선초당으로 갔던 것 기억하나요?”
“선배님께서도 말씀을 편히 하시지요·”
“선배 아닌데·”
“예?”
“제가 더 어려요·”
“몇 살이신데요?”
“스물한 살이에요·”
“···!”
갑자기 분위기가 또 다른 의미로 싸해졌다·
당군백은 얼굴이 벌게졌고 남궁소소는 술을 마시다 말고 옆눈으로 나와 당군백을 번갈아 보았다·
나는 미안함에 어쩔 줄을 몰랐다· 얼른 말을 덧붙였다·
“어쩐지 어려 보이더라니·”
이미 늦은 것 같았다· 당군백은 조용히 하던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때 모처에 놓아두고 온 언보보의 주검을 부탁했어요· 이후 소소 선배께서 다선초당의 무사들과 함께 곡부까지 운송을 한 것이고요·”
함께 있는 걸 보는 순간부터 대충 짐작했지만 남궁소소 역시 한때 용봉지회의 무인이었던 것 같다·
이들은 지금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은 후배를 기리며 애도의 시간을 가지는 중이었다·
한데 애도를 하는 사람의 입맛이 그렇게 좋다고?
남궁소소의 앞에는 파리도 안 붙을 만큼 깨끗하게 발라진 닭뼈가 한 줌이었다·
“제가 눈치 없이 끼어들었군요·”
“선배님이라면 충분히 함께할 자격이 있어요·”
나를 향한 당군백의 호칭이 갑자기 이 공자에서 선배로 바뀌었다·
내가 두소부와 양조광을 선배라 부르니 그녀도 계속 이 공자라 부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언보보를 죽음에 이르게 한 마두를 잡아다 무림맹의 지하 뇌옥에 가둘 수 있었으니까요·”
두소부와 양조광을 비롯해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언보보의 죽음은 슬프지만 백발노성을 가둔 건 또 다행인지 술을 한 잔씩 꺾기도 했다·
이제 보니 애도의 술자리인 동시에 축하의 술자리이기도 한 모양이었다·
그러면 남궁소소가 닭을 혼자 한 마리 뚝딱 해치운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나도 말을 편하게 해도 되겠지? 참고로 난 소부와 동갑내기 친구라네· 무림맹으로 들어온 건 내가 좀 더 빠르고·”
고풍스러운 비단 무복을 입은 미공자가 한 말이었다·
어찌나 잘생겼는지 꼭 솜씨 좋은 석공이 정교하게 깎아 놓은 백옥에다 노련한 화공이 한붓한붓 이목구비를 그려 넣은 것 같았다· 황보세가(皇南世家)의 황보중악이라던가?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소문과 달리 예의가 바르군·”
“개봉엔 제가 버릇이 없다고 소문이 났나 봅니다·”
“신경 쓰지 말게· 사람들의 선입관이라는 게 원래 무서운 법이니까· 그것보다 이렇게 만나서 반갑네· 어느 날 갑자기 달라진 평판이 워낙 대단해서 한 번쯤 보고 싶었거든·”
선입관이라는 말이 묘하다· 대체 나의 무엇에 관한 선입관이라는 걸까?
혹시 표왕이 시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서자라는 걸 두고 하는 말인가?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다·
슬쩍 곁을 돌아보니 두소부 양조광 당군백을 비롯해 나와 같은 줄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잔뜩 굳어 있었다·
반면 황보중악과 함께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미세하게 조소가 어렸고·
그러고 보니 황보중악이 내게 양해 없이 반말을 할 때도 그렇고 하필이면 탁자를 가운데 두고 이쪽과 저쪽의 반응이 다른 것 같다· 공교롭게도 이쪽 줄에 앉은 이들은 청성 점창 당문을 비롯해 전부 대륙의 남서쪽에 위치한 문파와 세가의 후기지수들이었다·
반면 저쪽 줄에 앉은 이들은 황보세가 산동악가 단목세가를 비롯해 모조리 대륙의 북동쪽에 위치한 세가의 후기지수들이었고·
‘놀고들 자빠졌네·’
무림맹은 하나의 산에 중원 전역에서 온 범들이 모여 사는 것과도 같다·
제가 살던 곳에서 왕 노릇을 하던 자들이 여기서 쉽게 남의 밑에 들어가려고 하겠나·
당연히 산중 제왕의 권력에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음으로 양으로 치열하게 경쟁을 할 것이다·
무림맹은 무림의 축소판이다· 용봉지회는 다시 그런 무림맹의 축소판이고·
이 인간들은 지금 지연끼리 서로 뭉쳐 세력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고 애들 노는 일에 일일이 신경 쓸 생각 또한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하필 이런 자리에서 나와 남궁소소가 서로 다른 진영에서 마주 보며 앉아 있다는 게 씁쓸할 뿐·
“그러고 보니 동부삼성(東部三省)을 대표하는 무림세가의 후기지수들이 전부 한자리에 모였군요·”
양조광이 말했다·
동부삼성은 동쪽 바다를 접하고 있는 세 개의 성(省)· 즉 산동성·남직예성·절강성을 하나루 뭉쳐 부르는 말이었다·
산동성 황보세가의 후예인 황보중악 남직예성 남궁세가의 후예인 남궁소소 그러고 가장 작은 성이지만 절강성을 대표하는 천룡표국의 후예인 내가 만났으니 말이 되긴 한다·
하지만 동부삼성이라는 말 자체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건 죽은 말이다· 양조광은 지금 분위기를 좋게 만들려고 무리수를 둔 것이다·
“그건 아니죠· 표국을 무림세가와 함께 묶는 것까지야 그렇다고 쳐도· 일공자인 이갑룡 공자 아니 하다못해 이공자 삼공자도 아니고 사공자와 비교하는 건 황보 선배께 예의가 아니죠·”
황보세가와 함께 산동성에 근거지를 둔 산동악가의 후예 악도광이었다·
아까는 ‘죽엽청주네·’라고 해서 분위기를 깨더니 이번엔 내가 천출이라는 걸 비꼬고 있었다·
이 정도로 흔들릴 내가 아니었다· 전생에서 50년 동안이나 절름발이라고 손가락질 받으며 살았다·
표왕의 서자라는 말은 내게 전혀 상처가 되질 않았다·
내가 궁금한 것은 이 새끼들이 대체 내게 왜 이러냐는 것이었다·
한참 대화를 하다가 빈정이 상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앉자마자 조롱이라니·
“도광 그게 무슨 뜻이냐?”
양조광이 발끈했다·
“일단 나이부터 차이가 너무 많이 나지 않습니까· 황보 선배께서는 올해 스물일곱 살이신데 스물두 살짜리 무림초출이랑 비교하는 건 좀· 그렇다고 천룡표국에 다른 적자(觸子)가 없는 것도 아니고요·”
“도광!”
촥!
양조광이 소리를 지른 것과 악도광이 술을 뒤집어 쓴 건 거의 동시였다·
바로 맞은 편에서 암기술의 고수가 내공까지 담아 벼락처럼 뿌리다 보니 미처 피하고 말고 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당군백에게로 향했다·
쭉 뻗은 그녀의 손에는 아직도 빈 술잔이 들려 있었다·
내가 사준 죽엽청주였다· 참 잘 사줬다는 생각이 든다· 동전 열 냥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당 선배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제가 뭐 틀린 말 했습니까?”
순간 악도광의 머리 위로 걸쭉한 국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번엔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남궁소소가 직접 탕그릇을 들어다 천천히 머리 위에서 붓고 있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악도광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당하고만 있었다·
“내 젓가락 쓰지 말라고 했지· 나는 누가 내 젓가락에 입 대는 거 질색이라고· 특히 악도광 네 입에서 얼마나 악취가 나는지 알아?” 이윽고 국물과 고기 건더기가 모두 떨어지자 남궁소소는 탁자 위에 빈 그릇을 텅 소리가 나도록 던져 놓았다·
이어 황보중악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런 꼴 보여주려고 오라고 했어요?”
“···”
“내가 왜 선배를 떠났는지 알아요? 생긴 것만 멀쩡하지 도량이 벼룩 등짝만큼 좁아서예요· 선배는 무언가 일생을 걸고 되고 싶거나 이루어 보고 싶은 게 있나요?”
“···”
“진짜 모자라는 사람은 선배예요·”
연달아 하는 세 마디가 전부 예사롭지 않았다·
특히 두 번째로 한 말은 귀가 번쩍 뜨였다·
두 사람이 과거 만나던 사이였다고?
나는 그제야 저 인간들이 날 못 마땅해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항주에서 함께 표행을 할 정도로 남궁소소와 친하게 지냈다는 게 질투가 난 것이다·
그 사이 남궁소소는 품속에 손을 넣어 뒤적거렸다·
무언가를 찾는 데 없는 것 같았다· 잠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더니 갑자기 맞은 편에 앉은 내게 손을 불쑥 내밀었다·
“열 냥만 빌려줘요·”
잃어버린 게 전낭인가 보다· 순간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저만치 호리독사를 곁눈질했다·
이쪽을 보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움찔 놀란 호리독사가 얼른 고개를 돌렸다·
‘설마 저 인간이?’
나는 품속에서 얼른 은전 열 냥을 꺼냈다· 이어 그녀의 희고 고운 손바닥 위에 척 올려 주었다·
“동전 없어요?”
“없소· 그냥 쓰시오·”
“이렇게 많이는 필요 없어요·”
“전낭을 잃어버린 것 같은데 일단은 쓰시오·”
“금방 갚을게요·”
“안 갚아도 되오·”
남궁소소는 잠시 의아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아홉 냥은 품속에 챙기고 나머지 한 냥을 딱 소리가 나도록 탁자에 붙여 놓고는 말했다·
“제가 먹은 술값이에요·”
그러고는 홀연히 나가 버렸다· 아무래도 오늘 술값은 황보중악이 내기로 한 모양이었다·
남궁소소는 황보중악에게 만큼은 눈곱만큼도 빚진 마음이 들기 싫어서 자기 먹은 값을 내는 것이고·
그녀의 이런 모습은 황보중악을 더욱 열 받게 했다· 놈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 오르고 있었다·
자신이 사주는 술은 한 잔도 공짜로 안 마시면서 내게는 은전을 열 냥이나 아무렇지 않게 빚졌으니 약이 바짝 오를밖에·
모두 넋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는 가운데 저만치 가던 남궁소소가 갑자기 멈춰 서서는 홱 돌아보며 말했다·
“눈치 없이 계속 앉아 있을 거예요?”
그럴 리가· 나는 얼른 두소부 양조광 당군백에게 눈짓으로 작별인사를 하고는 후다닥 남궁소소를 따라나섰다·
‘일단 계약금은 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