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공주의 호위무사(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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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흑도놈들이 자리를 잡느라 어수선한 틈을 타 재빨리 젓가락에 물을 찍어 탁자 위에 썼다·
서호삼견(西湖三犬)
양 행수와 단주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분위기로 미루어 질이 좋지 않은 자들이라는 건 알았지만 하필 좀 전에 점소이가 말한 서호삼견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우리도 교자와 소홍주로 부탁한다·”
“먹다가 모자라면 짜증 나니까 넉넉하게·”
“돼지고기도 좀 삶아내고·”
“삶은 돼지고기는 따로 팔지 않습니다만····”
“사다가 삶아주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점소이를 돌아보는 흑도의 눈빛이 싸늘하다· 점소이는 찍 소리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인 채 물러났다·
그나마 알았다는 대답이라도 하지 않는 건 작은 저항일 것이다· 한데 흑도는 그것마저도 용납하지 않았다·
“왜 대답이 없어?”
“아 아닙니다·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는데 나가질 못하고 쭈뼛거린다·
돼지고기를 살 돈이 없는 거다· 그렇다고 돈을 좀 미리 달라고 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말도 못 꺼내고 있었다·
“우리 돈부터 받고 가·”
눈치 빠른 양 행수가 점소이를 불렀다· 충분한 음식값이 건네지자 굳었던 점소이의 얼굴이 그제야 펴졌다·
“우린 곧 나갈 것 같아서 미리 주는 거야·”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점소이가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며 또 한 사람이 불쑥 들어섰다·
서호삼견의 또 다른 패거리인가 했더니만 아닌 모양이었다·
“어? 어!”
사내는 외진 곳의 작은 반점이 뜻밖에도 손님으로 가득 찬 걸 보고 첫 번째로 놀라고 그중에 칼잡이들이 열 명이나 있는 걸 보고 두 번째로 놀랐다·
얼른 돌아서 나가려는 사내를 주방에서 숙수가 불러 세웠다·
“뭘 드릴깝쇼?”
“교자 한 판만····”
“좀 걸릴 것 같습니다만·”
“그럼 나중에····”
“빨리 해드리겠습니다·”
“아 알았습니다·”
그 사이 흑도들은 한 놈도 빠짐없이 이쪽을 힐끔거렸다· 특히 단주를 위아래로 훑어댔다·
양 행수가 역용으로 얼굴을 만져주긴 했지만 타고난 미모는 여전했다·
예전에는 귀여운 예쁨이었다면 지금은 나이를 열 살이나 더 들어 보이게 하는 바람에 오히려 성숙한 예쁨이 있었다·
평소 누군가 공주를 저런 눈으로 훑었다면 눈알을 뽑히고도 남을 불경죄였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자객을 피해 철저하게 신분을 숨겨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말썽도 최대한 피해야 했다·
“단주님 식사는 어떠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이미 좀전에 했던 질문이지만 슬슬 일어날 준비를 하란 신호를 단주와 짐꾼들에게 주기 위해 다시 물은 것이다·
“최고였어요· 마희단 공연을 구경하느라 배고픈 줄도 몰랐는데 교자를 먹는 순간 조금 더 일찍 올 걸 하고 후회되더라고요·”
“마희단 공연이 그렇게 재밌었습니까?”
“어려서부터 마희단 구경하는 걸 좋아했어요· 아버지께서 여자라고 바깥출입을 못 하게 하시는 와중에도 마희단이 오면 함께 데리고 나가 주시곤 하셨거든요·”
“그러셨군요·”
이쪽에서 개인사를 이야기하니 흑도놈들이 귀를 쫑긋 세운다·
더 이상의 관심은 사양이다· 눈치 빠른 양 행수가 딱 맞춰 보조를 해주었다·
“식사도 끝났는데 이제 그만 일어날까요? 오후에 부지런히 차방(茶房)을 돌려면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럴까요?”
단주도 분위기를 알고 호응해 주었다· 문제는 흑도놈들이었다·
“못 보던 사람들 같은데····”
결국 한 놈이 말을 걸어오고 말았다· 서호삼견은 아니고 그 아래에서 제법 오른팔 노릇 정도는 하는 놈 같았다·
양 행수에게 내게 맡기라는 눈짓을 보낸 후 돌아서며 말했다·
“차를 사러 온 상인들입니다·”
“북방 말투를 쓰던데·”
“북쪽이 고향인 사람들이 많다 보니·”
“젊은 여단주께서는 벙어리요? 아닌데 방금 말하는 걸 봤는데?”
순간 나와 시선이 마주친 가불염의 눈동자에 살광이 감돈다· 짐꾼들의 눈동자에도 살기가 뻗쳤다·
지금 이 순간 내 한마디면 방금 입을 놀린 저 새끼는 목이 떨어진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다행히 단주를 보니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속으로는 어떤지 모르지만 일단 감정은 숨길 줄 아는 것이다·
“용건이 없으시면 그만 가보겠습니다·”
“술 한잔 더 하고 가지 않겠소?”
“사양하겠습니다·”
“나도 북방 사람이오· 타지에 가면 열 개의 관청보다 고향 사람 한 명이 낫다고 했소· 혹시 또 아오? 내가 싸고 좋은 차방을 소개해 줄지·”
말투가 딱 남방 촌놈 말투인데 개소리를 지껄인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서 킥킥대는 소리가 들린다·
칼부림이 일어날 걸 예감했는지 어리바리가 교자도 포기하고 슬그머니 줄행랑을 치는 게 보였다·
외출이고 뭐고 이것들을 싹 다 조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가불염을 비롯해 표사들도 내 명령이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놈들이 저러는 건 전부 젊고 예쁜 단주 때문이다· 한데 당사자인 단주가 이 모멸감을 견뎌내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입술을 부르르 떨 지언정은 내게 모든 걸 맡긴 채 일절 대응을 하지 않았다· 모처럼의 행복한 생일을 망치고 싶지 않은 거다·
“그만들 해라!”
나직한 일갈에 킥킥대던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수하들의 입을 닥치게 한 건 쉰 살가량의 장년인 이었다·
서호삼견 중 첫 번째인 일견 탁맹방이었다·
참고로 서호삼견이니 일견이니 하는 건 전부 강호인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서쌍교방 내에서 저들의 공식적인 별호는 서호삼절(西湖三絶)이었다·
각각 도 검 창으로 나름 흑도들 사이에서는 달인 소리를 듣는 고수들이기 때문이다·
일견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를 향해 정중하게 포권지례까지 하며 말했다·
“못 배운 것들이라 아무리 가르쳐도 예의를 모르오· 호위무사께서는 어서 단주를 모시고 갈 길을 가시오·”
단주를 놔두고 굳이 내게 저리 말하는 것은 사과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긴 사과를 할 정도로 양식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수하들에게 허튼짓을 못 하도록 했겠지·
됐다· 이 정도로 끝낸 것만도 다행이었다·
나는 양 행수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눈짓을 했다· 모두가 밖으로 나가기 위해 궤짝들을 짊어졌다·
한데 단주는 불끈 쥔 양 주먹을 허벅지에 딱 붙이고 서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어깨가 잔뜩 올라가 있는 것이 무언가 터져 나오려는 걸 사력을 다해 참는 눈치다·
“단주님 어서 나가····”
“귀하들이 서호삼견인가요?”
결국 터져 나와 버렸다·
나도 양 행수도 깜짝 놀랐다·
세상에 누가 개라고 불리는 걸 좋아하나· 별호에 견(犬)자가 붙는 건 전부 강호인들이 그 대상을 경멸해서 붙이는 이름이다·
서호삼견의 눈이 허옇게 뒤집혔다· 다른 흑도들은 너무나 황당한 나머지 멍한 얼굴로 단주를 바라보았다·
“수하들이 허구한 날 돈도 없이 교자를 먹고 다니는 걸 아시나요? 왜 그랬는지 짐작 못 하는 바는 아니나 그런 행동들이 이런 작은 반점에는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도 있어요· 그것 때문에 반점이 문이라도 닫아버려 이렇게 맛있는 교자를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니까 제발··· 돈 좀 내고 먹으라고 하세요·”
나는 눈매를 좁혔다· 여태 속으로 꼭꼭 눌러 담고 있던 말이 자신에게 불경스럽게 군 것에 대한 진노가 아니라 반점이 문을 닫을까 걱정한 것이라고?
양 행수 또한 적잖게 당황한 모양이었다· 솔직히 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나는 단주를 응원해주고 싶었다·
그녀의 이 한 마디로 말미암아 한바탕 싸움이 벌어진다고 해도 다 해결해 주고 싶었다·
어차피 자기가 엎질러버린 물이니 신분이 밝혀져도 이제 내 책임은 아닌 거고·
“그렇게 하겠소· 한데 방금 젊은 여단주께서 우리에게 서호의 세 마리 개라고 욕한 건 아시는지?”
“네?”
“수하들이 보는 앞에서 나와 두 아우를 모욕했으니 그 대가는 치러야겠소· 안 그러면 항주의 강호 형제들이 우리 서호삼절을 배알도 없는 놈들이라고 손가락질하지 않겠소?”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어요· 실언을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어떻게 보상해드리면 될까요?”
“사과는 필요 없소· 그리고 보상이 아니라 대가요· 단주의 것도 좋고 다른 사람의 것도 좋으니 팔을 세 짝만 내놓고 가시오· 하면 돼지고기 대신 그걸 수하들과 구워 먹고 깨끗이 잊겠소·”
스릉!
스릉!
스릉!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 명의 흑도가 칼을 뽑아 들고 다가왔다·
스릉!
나 역시도 칼을 뽑아 들고 앞을 막아섰다· 그러면서 재빨리 외쳤다·
“모두 뒤로 물러나시오!”
내가 해결해 볼 테니 아직은 나서지들 말라는 소리다·
가불염을 비롯해 각자의 병장기를 꺼내려던 짐꾼들이 내 말을 듣고 조용히 한발 뒤로 물러났다·
“서호삼절의 명성은 나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소· 이번 일은 내가 모시는 단주께서 강호의 경험이 부족해 빚어진 실수이니 부디 선배들께서는 이 후배의 체면을 보아 한 번만 양보해 주시길 바라오·”
“뭣들 하는 거냐· 저 호위 놈 팔목부터 잘라라!”
씨알도 안 먹혔다· 흑도놈들이 나를 덮치려는 일촉즉발의 순간·
쾅!
문이 터져나갈 것처럼 울어대며 십여 명이 괴한들이 들이닥쳤다·
놀랍게도 저잣거리에서 보았던 마희단 패거리였다·
칼을 목구멍에 넣고 머리 위에 올려놓은 벽돌을 망치로 깨고 물이 펄펄 끓는 가마솥에 손 넣는 기예를 보이던 자들·
“이것들은 또 뭐야?”
뻑!
가까이 있던 흑도 하나가 눈알을 부라리다가 갑자기 정강이가 뚝 부러진 채 쓰러져 굴렀다·
“으아악!”
“시끄러!”
뻑!
얼굴에 발길질을 맞은 흑도가 비명을 뚝 그쳤다· 까무러친 것이다·
범인은 마희단의 오척단구 난쟁이· 그는 고작 두 자도 안 되는 몽둥이를 공중으로 한 바퀴 휙 던졌다가 받더니 다시 허리춤에 꽂았다·
“이런 썅!”
뻑!
두 번째로 덤비던 흑도 역시 쓰러져서는 게거품을 물고 경련을 일으켰다·
머리에 무언가를 맞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을 듯싶다·
범인은 난쟁이의 옆에 서 있던 사마귀 형상의 인간· 펄펄 끓는 가마솥에 손을 넣어 동전을 줍던 자였다·
채채채챙챙!
채채채채챙!
흑도들이 먼저 일제히 도검을 뽑아 들었고 그에 반응하여 마희단 패거리들도 각자의 병장기들을 뽑아 들었다·
평화롭던 반점은 순식간에 살벌한 싸움터가 되어 버렸다·
“모두 물러서라!”
일견이 소리쳤다· 예사로운 자들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서 있는 위치로 미루어 한참이나 수하로 보이는 난쟁이와 사마귀에게 당했으니·
일견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우리는 서호삼절이라고 하오· 내 수하들을 병신으로 만든 고인들이 누구인지 알아야겠소이다·”
목소리에 노기가 가득하다· 상대가 고수임을 알아보고 신중한 것이지 결코 겁을 집어먹은 얼굴이 아니었다·
하지만 누구도 대답을 해주는 이가 없었다· 심지어 일견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마희단 패거리는 전부 나와 차상인으로 위장한 일행을 보고 있었다·
“이것 보시오!”
“아가리 닥치고 있어!”
사마귀의 일갈에 일견은 한순간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했다·
그 사이 흑삼에 검은 죽립을 쓴 자가 우리 쪽을 향해 조용히 포권지례를 해왔다·
“공주마마를 뵙습니다·”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들이 문을 박차고 들이닥치는 순간 난쟁이와 사마귀가 비범한 솜씨로 흑도 둘을 꽂아버리는 순간 이미 평범한 마희단이 아님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이들이 하고많은 반점 중에 이곳을 찾아온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도·
당황하진 않았지만 속으로 깜짝 놀랐다· 이처럼 과감하게 그리고 빠르게 손을 쓰는 자들은 일찍이 본적이 없었다·
한편 공주마마라는 말에 서호삼견 패거리들은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수하 두 명이 쓰러지는 와중에도 한 가닥 평정심을 잃지 않던 일견조차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용케도 알아차렸군·”
양 행수가 가만히 짐꾼들을 제치며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죽립의 사내를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닷새 전 아바마마를 시해하려 한 놈이 너였더냐?”
놀랠 노자였다· 양 행수의 목소리가 단주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심지어 단주 특유의 북경식 억양까지·
언젠가 주워듣기로 역용술의 최고 경지는 누군가의 얼굴은 물론 목소리와 말투까지 그대로 흉내 내는 것이라고 했다·
양 행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남장한 공주 흉내를 낸 것이다·
그렇다면 단주로 위장한 진짜 공주는 본래 시비였는데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단주로 위장한 것이 되고·
한데 이게 통할까?
“누군지 모르지만 재밌는 재주를 가졌군·”
안 통했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무리수였다· 그래도 잘했다· 싸움을 피할 수만 있다면 뭐든 해보는 거지 뭐·
“눈썰미가 좋군요·”
“여자인건 맞군·”
“말투를 보아하니 귀하들이야 말로 회수의 위쪽에서 내려온 것 같은데 북방의 유명한 살수문파라면 살막(殺幕)? 백백곡(魄魄谷)? 귀총(鬼塚)? 어느 쪽이죠?”
“강호의 문파들에 대해 많이 아는군·”
“집안 내력이라서·”
“어떤 집안인지 궁금하군·”
“남궁세가·”
“···!”
“할아버지의 별호가 뇌검이시죠·”
“뜨헉!”
갑작스러운 비명은 흑도들 중 누군가의 입에서 뛰어나온 것이었다·
공주에 이어 남궁세가주의 손녀까지 등장하자 서호삼견을 비롯한 흑도들은 그야말로 공황상태에 빠져 버렸다·
놈들도 귀가 있으니 진왕이 왕비와 공주를 이끌고 이화원으로 와서 머물고 있다는 것쯤은 들었을 것이다·
그 진왕과 공주를 시해하려 한 자들이 눈앞에 있고 공주가 있고 공주를 지키려는 남궁세가주의 손녀까지 있다·
복수고 뭐고 지금쯤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을 것이다·
하지만 마희단 패거리들이 입구를 떡하니 막고 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놀란 건 흑도와 마희단만이 아니었다·
“여자였어요?”
공주가 깜짝 놀라 물었다· 남궁소소는 눈앞의 죽립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공주마마 자리가 자리인 만큼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따로 드리겠습니다· 우선은 벽에서 떨어지지 마십시오·”
그리고는 허리춤에서 두 자가량의 철척(鐵尺)을 척하고 뽑아 쥐며 격투의 자세를 취했다·
철척은 상단의 행수들이 흔히 갖고 다니는 강철로 된 자였다·
이걸 조금 더 두껍고 단단하게 만들면 똑같은 이름의 무림인들이 쓰는 무기가 된다·
척! 척! 척! 척!
남궁소소를 시작으로 네 명의 짐꾼들도 등짐을 벗어 던져 버리고 각자의 병장기를 뽑아 쥐었다·
그러자 덩치만 큰 짐꾼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찐득찐득한 살기를 뿌려대는 일류고수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멋모르고 깝죽대던 흑도들은 또 한 번 오금을 저렸다·
반면 남궁소소가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신분까지 밝혔건만 살수들은 조금도 물러날 기색이 없었다·
결국 나까지 나섰다·
“어떻게 알아차렸지?”
“귀하가 조장인가?”
“척 보면 모르나?”
“공주마마께선 마희단 공연을 그냥 지나치시는 법이 없지· 닷새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공연을 하며 기다렸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가 공주마마의 일행인 줄은 어떻게 알고 반점까지 따라온 거지?”
“여자 하나와 남자 여럿의 조합· 호위를 하는 듯한 짐꾼들의 동선 북경에선 흔히 볼 수 없는 뱀을 넋 놓고 바라보는 젊은 여자 그리고 북경 말투·”
“사람들이 많은 곳에선 말을 한 적이 없는데·”
놈들의 뒤쪽에서 한 사람이 쓰윽 고개를 내밀었다· 아까 교자를 사러 왔던 그 어리바리였다·
“지난 닷새 동안 저 친구가 뒤를 밟은 사람들만 무려 서른 명이 넘····”
“졌으니까 그만해·”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우리는 평생을 이런 일로 먹고 살아온 사람들이니까· 솔직히 말하면 당신의 작전은 아주 훌륭했····”
“됐고· 그래서 어쩔거지?”
“공주마마를 넘겨달라면 줄까?”
“아직 식전인가?”
“그건 왜 묻지?”
“욕이나 좀 푸짐하게 얻어먹고 꺼지는 건 어때?”
나는 심장이 벌렁거렸다· 하지만 뻥을 칠 땐 확실하게 쳐야 한다· 기싸움에서부터 밀리기 시작하면 끝장이다·
“더 할 얘기가 없을 것 같군·”
“감당할 수 있겠어?”
“일단 거추장스러운 것들부터 치우지·”
죽립인이 구석탱이에 모여 있는 서호삼견과 그 수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밖으로 나가도 좋다· 우리가 누군지는 굳이 얘기하지 않겠다· 밤에 자다가 뒈지기 싫으면 지금부터 한 시진 동안은 누구도 만나지 말고 말도 섞지 마라·”
문을 막고 있던 죽립인의 수하들이 슬그머니 길을 터주었다·
흑도들이 그때까지 바닥에 쓰러져 뒹굴던 두 명의 동료들을 챙겼다·
서호삼견은 분노로 얼굴이 시뻘게져 있었다· 특히 일견의 눈동자에는 불길이 일렁이고 있었다·
“어떤 일을 하는 분들인지 짐작은 가오· 오늘은 그냥 물러나겠소· 그러나 나와 서쌍교방의 형제들은 반드시 혈채(血債)를 받으러 갈 것이오·”
“누구 마음대로!”
흑도들이 발걸음을 뚝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품속에서 마패를 꺼내 흑도들에게 척 보여주며 말했다·
“나는 금의위 암행위사 방자광이다· 네놈들이 감히 진왕 전하와 공주마마를 능욕하고도 목이 붙어 있기를 바랐더냐!”
공주 남궁세가에 이어 금의위 암행위사까지· 흑도들은 하얗게 질리다못해 죄다 넋이 나가 버렸다· 저들에게 나는 지옥에서 온 저승사자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살 길을 열어주겠다· 저 흉악한 무리로부터 목숨 걸고 공주마마를 지켜라· 만약 공주마마의 털끝 하나라도 상하면 네놈들이 어디에 숨든 세상 끝까지 쫓아가 한 놈도 남기지 않고 도륙할 것이다· 또한 열흘 안에 서쌍교방을 불태워 쓸어버리고 너희의 일족까지 모두 찾아내 씨를 말릴 것이다!”
장내가 심연의 동굴처럼 조용해졌다· 흑도들은 감히 밖으로 나갈 생각도 못 하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다·
금의위 암행위사라는 말에 그 꿈쩍 않던 죽립인도 어깨가 살짝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다른 상황에서 만나 내가 마패를 내밀며 금의위 암행위사 어쩌고 했더라면 다들 눈곱만큼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공주를 뒤에 세워놓고 이렇게 큰소리를 치니 흑도든 살수들이든 모두 깜빡 속아 넘어갔다· 사실 아주 거짓말도 아니지만·
스릉!
스릉!
스릉!
서호삼견이 뒤늦게 각자의 무기를 뽑는 소리였다· 일견이 반점이 떠나가라 사자후를 내질렀다·
“서호삼절과 서쌍교방의 형제들은 오늘 여기서 공주마마와 생사를 함께한다· 모두 자리를 잡아라!”